대통령 내외가 머무는 청와대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반 사람들 상식으로는 쉽게 감이 오지 않는 게 사실. 청와대 여성 최초 행사기획비서실 김은경 비서관이 말하는 청와대의 ‘여성’ 파워.
약간의 두려움은 오히려 즐길 줄 알아야
흔히 청와대를 떠올릴 때면 여성보다 남성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청와대 내에는 남성들이 선점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그렇다. 과거 5공화국 때는 행정관 이상 여성 공무원이 1명, 6공화국 2명, 문민정부 4명, 국민의 정부 24명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참여정부에서는 여성 인력의 기용을 대폭 확대하면서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28%(1백38명)나 될 정도로 늘어났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위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다. 그리고 남성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보다 더 ‘부드러운 힘’을 발휘해온 덕분이다.
“행사기획은 많은 부서와 연계가 돼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깐깐하다고 욕을 먹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욕을 얻어먹더라도 강력하게 밀어 부쳐야 해요. 대통령의 행사이기 때문이죠. 작은 실수도 절대 용납이 안 돼요.”
지난 3월, 여성 최초 행사기획 비서관으로 발령을 받은 김 비서관. 주위에서는 ‘일이 힘들 것’이라고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을 즐겼다고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겁이 없었어요.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속으로는 분명히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은 일을 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두려움을 넘어서 그 일을 해냈을 때 기쁨은 정말 굉장하죠. 그리고 ‘자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녀가 하는 일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통령의 공식적인 행사를 ‘연출’하는 것이다. 보통 지방 각 부처의 공식적인 행사, 3·1절, 4·19 기념식 등이 그것. 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관련 부처와 행사 의전팀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다.
“대통령의 동선, 무대 위치, 행정 관련 부처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보통 행사하기 한 달 전, 두 달 전부터 기획을 하고, 경호 쪽에서도 같이 움직이죠.”
기억에 남을 만한 3가지 에피소드
이렇게 대통령 내외의 행사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다 보면 잊지 못할 황당한 일들을 경험할 때가 많다.
에피소드 1 - 폭우 속 탱크 시범식
우리나라 차기 전차 출고식 날. 대통령 내외를 모시고, 넓은 대지에서 달리는 전차의 실험을 하는 날이었다. 보통 이렇게 야외 일정이 있는 날은 ‘언제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비는 언제 얼마나 오는지’까지 일일이 다 체크한다. 밤새도록 준비한 행사. 하지만 행사 당일 아침부터 비가 엄청 쏟아졌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햇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게 된다. 행사 시작 1시간 전. 급기야는 5백여 명의 우비를 긴급 공수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안 된다는 이유는 통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1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완료해야 했다.
행사 준비 요원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빗속에서 진행될 모든 상황을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기 5분 전. 빗발이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비가 그치더라는 것. 특히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도착할 때 쯤에는 기적처럼 하늘이 맑게 개였다고 한다. 무사히 탱크 시범을 끝내고 나니, 아까의 정신없는 사투(?)가 마치 꿈속의 일 같더란다. 그래도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는 뿌듯함에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고 한다.
에피소드 2 - 잊을 수 없는 헬기의 공포
하지만 헬기를 타면 냉난방이 안 되고, 공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헬기 타고 가는 동안 갑자기 얼굴이 노래지면서 속이 울렁거리고, 손에서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던 것. 돌아갈 때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리라 마음먹으며,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해내기 직전이 돼서야 겨우 헬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땅에 내리는 즉시, 모든 비서관들은 대통령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 호흡을 돌릴 시간도 없다.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대통령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정신이 몽롱하면서, 속이 울렁거렸고, 몸을 비틀거렸지만 주춤할 시간이 없었다. 간신히 한우 농가에 도착한 뒤에 김은경 비서관은 한 여기자를 만난 후 ‘헬기 공포증’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 헬기를 처음 탄다며, 무척 좋아하던 여기자가 있었어요. 그 여기자를 농가에서 만났는데, 노랗게 뜬 얼굴을 하고 ‘저 죽을 뻔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어제 방방 뛰며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왜 그렇게 웃기던지…. 호호호.”
에피소드 3 - 중동 순방 그리고 카타르 왕비
3월 말에 대통령 내외를 모시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중동은 여성 경시 문화 때문에 외국에서 영부인이 와도 궁에 입장시키지 않는다. 현지에서 영부인을 따라다니게 된 김 비서관은 카타르의 왕비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입궁하기 전 카타르 왕비가 11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집이 있는 아줌마 왕비를 예상했다. 하지만 왕비를 직접 만난 그녀는 충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180cm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항아리 몸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의상을 입은 미모의 여성이 그들을 맞이했던 것. 김 비서관은 ‘왕비가 저렇게 예쁠 리가 없잖아’라면서‘왕비를 옆에서 모시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카타르 왕비였던 것. 그렇게 고상하고 멋있는 카타르 왕비는 직접 내궁을 안내하면서 내궁 디자인을 직접 했다고 설명을 하더란다. 또 우리나라 교육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권양숙 여사와 한국의 교육 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하기도 하더라는 것. 이에 9월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김 비서관은 아직도 대단한 열정을 지닌 미모의 왕비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퍼진다고 한다.
“여성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어릴 적 그녀의 꿈은 연극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아역탤런트를 해봤는데, 무척 재미가 있더라는 것.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아나운서로 꿈을 돌리게 됐다. 김 비서관은 1985년 MBC에서 처음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결혼과 출산 등을 겪으면서도 항상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던 그녀. 연극을 할때는 연극에 푹 빠져 살았고, 방송을 할때는 또 방송의 매력에 푹 빠져서 행복하게 일을 했다. 이후 대학 강의를 나가면서는 어린이 재단, 여성의 전화, 부산 비엔날레 홍보위원 등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좀 더 큰물에서 뜻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렇게 정치 쪽과 인연을 맺은 그녀는 지난해 7월 청와대 국내 언론비서관실 국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늘 그래왔듯이 청와대에서의 일은 무척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녀가 행사기획으로 발령받아 오면서 생각한 점은 ‘밝게 웃으면서 일하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행사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잖아요. 저는 그걸 탈피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주위에서 ‘비서관님이 오시고 나서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 게 정말 좋아요.”
청와대에서 여성의 입지가 어떤지, 그리고 청와대 내에서 여성들에 대한 배려는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눈에 뛰는 점은 참여정부 들어서 여성들을 뽑는 인원이 늘어났다는 거죠. 또한 여사님의 지시로 여성휴게실과 수유실을 두 군데나 만들었어요. 여사님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야 된다고 늘 말씀하세요. 여성의 발언이 많아져야지 앞으로 우리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청와대에서 지난 1년 동안의 생활은 김은경 비서관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은경 비서관의 꿈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것을 지역사회 내려가서 활용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것을 지역사회 내려가서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데, 한 몫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좀더 욕심이 있다면 많은 여성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웃음)”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