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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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완규는 ‘히트 드라마 제조기’로 불린다. ‘허준’‘올인’‘주몽’, 이 세 작품만으로도 그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그가 이번에는 드라마가 아닌 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야쿠자와 재일 한국인의 사랑과 의리를 그린 장편소설 「히든」(랜덤하우스)이다. 작가 최완규의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


“야쿠자, 조총련 그리고 재일 한국인의 삶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4년 동안 준비했다”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작가 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건 언제나 설렌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어느 날, 여의도 63빌딩 옆의 한 오피스텔로 향했다. 작가 최완규(43)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 그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대개 이곳에서 꼼짝 없이 지낸다고 한다. 새벽녘, 해 뜨기 전에 내려다 보이는 한강의 경관이 멋지다는 그의 오피스텔에서 말이다.


시나리오 쓰는 게 꿈이었다
작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최완규와 마주앉았다. 그가 건넨 주스를 마시며, 소설 이야기부터 꺼냈다. 요 며칠 새벽 3~4시까지 「히든」을 읽느라 잠을 설친 기자는 궁금한 게 많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재일 한국인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많이 방송됐어요. 이 소설의 소재를 처음 접한 것도 ‘PD수첩’을 통해서였죠. 당시 ‘PD수첩’에서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관한 내용이 방송됐어요. 일본 고급학교(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에 다니는 치마저고리 입은 여학생이 나왔는데 아주 신선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친구들의 삶의 모습, 사고방식을 담고 싶었죠.”

오래전부터 괜찮은 시나리오 한 편 쓰기를 꿈꿨다는 그. 하지만 꿈을 실현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괜찮다’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을 시나리오를 쓸 능력도 없고, 드라마 쓰는 작업에 시달리느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번 꾼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평소 누아르물에 관심이 많았던 최완규는 ‘이 소재를 통해 내 꿈을 구체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재일 한국인을 취재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그동안 몰랐던 게 너무 많았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일본에 있는 북한 사람들은 조총련, 남한 사람들은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라고 알고 있어요. 조총련에 북한을 국적으로 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들의 90% 이상이 남한의 경상도와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들이에요. 왜 그들이 국적을 북한으로 뒀을까요?”

해방 이후 일본에 잔류한 한국인들이 남과 북을 선택하는 데 이데올로기는 중요치 않았다.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겹게 살아가던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자식이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남한이 일본과의 외교적인 관계 때문에 그들을 모른 체한 반면, 북한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줬다. 북의 지원으로 학교가 만들어졌다. 재일 한국인 대다수가 북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런 역사를 거치면서 1950~196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무슨 꿈을 갖고 살았을지 궁금했어요. 취재 결과 그들의 꿈은 지극히 한정적이었죠. ‘귀국선’이라고도 불리는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가거나 야쿠자로 사는 것. 일본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다른 인생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거예요. 그 시대를 산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취재부터 시작해서 총 4년이 걸렸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는 2년 조금 넘었죠. 이 소설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이에요. 작업을 하고 보니 두어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영화로는 다 담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고,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만족하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내게 익숙한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죠. 그 부산물로 소설까지 나왔고요. 소설로 펴낸 이유 중 하나는 취재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에요. 가능하면 소설로도 작업을 해보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재일 한국인들의 삶 다룬 소설 「히든」
소설 「히든」은 야쿠자와 재일 한국인의 사랑과 의리를 그리고 있다. 실존 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재일 조선인 2세 김성만과 그의 친구 동배,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 동희다. 김성만과 형제애를 나눈 야쿠자 야나기도 등장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 중 실존 인물은 주인공 성만과 그의 어머니, 친구 동배예요. 셋은 모두 현재 일본에 살고 있어요. 성만 어머니는 80대 초반이고, 성만과 동배는 60대 중후반이에요. 예전엔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성공해서 부자로 살고 있죠. 야나기는 야쿠자 역사에 있던 인물이고, 동희는 만들어낸 캐릭터예요.”

드라마 ‘올인’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 역시 도박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그가 드라마 ‘올인’ 촬영 당시 카지노에서 억대의 돈을 잃었다고 알려졌던 터라 “그때의 손실이 이번 소설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일본 도박 ‘폰비키’는 카지노 도박과는 달라요. 하지만 취재하는 과정에서 도박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심리는 똑같다는 걸 깨달았죠. 폰비키든, 카지노 도박이든, 고스톱이든. 야쿠자 역사에서 도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아요. 일본의 재일 한국인들에게도 파친코는 굉장히 중요한 삶의 기반이었고요.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파친코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어요. 파친코는 단순히 돈을 번 수단이 아니라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한 기반이었던 거죠. 소설 속 야쿠자의 도박 역시 나름대로는 삶에 대한 절실한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최완규는 “내 드라마는 여성보다는 남성적 판타지에 기댄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소설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기자가 여성이어서인지, 소설을 읽는 초반에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나는 재밌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소설은 내가 만족스러울 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흡족하게 표현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만으로 드라마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에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채워져야 하겠죠. 소설 속에서 보면 최규만 선생님, 동희를 포함한 학생들, 토모처럼 살짝 거론만 되고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표현되지 않은 게 굉장히 많아요. 그런 것들이 드라마를 통해서 만들어질 거예요.”

최완규는 소설 「히든」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 예정이다. 드라마는 내년 상반기에 만들 것이고, 영화는 그 뒤 상황에 달려 있다. 문득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으로 생각한 배우가 있는지 물었다. 주인공 성만 역에 소지섭, 동배 역에 신하균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요즘은 작가가 염두에 둔다고 해도 그 배우가 캐스팅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누가 돼줬으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뭐 돼야 말이죠(웃음).”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언젠가 그가 “배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워낙 ‘스타 작가’인지라 캐스팅이 쉬울 줄 알았는데, 헛다리 한번 제대로 짚었다. 내친김에 시청률에 관해서 물었다. 왠지 그는 시청률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울 것 같았다.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모든 작가들이 느끼는 거예요. 당연히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있죠. 안정적인 시청률이 나와주면 일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요. 시청률이 안 좋으면 관계자들의 말이 많아지고, 결국엔 모두가 피곤해지거든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요즘
“글을 써서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글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사춘기를, 또 20대를 보냈어요. 막연히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20대까지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무엇을 쓸 것인지만 생각했고,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안 했죠(웃음).”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첫 장편소설 ‘히든’ 펴낸 ‘허준’ ‘올인’ ‘주몽’의 작가 최완규

나이 서른 살이 되던 해,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 ‘종합병원’의 작가가 됐다. ‘종합병원’은 그가 드라마 작가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작품이다. 그 뒤 드라마 ‘그들의 포옹’ ‘간이역’을 선보였지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두 번의 고배를 마시고 쓴 작품이 드라마 ‘야망의 전설’이다. ‘야망의 전설’은 시청률 4%로 시작해 50%로 종영한 성공작. 그 뒤 ‘허준’ ‘올인’ ‘주몽’ 등의 성공은 굳이 말 안 해도 알 터. 그에게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찾는 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작업한 드라마에는 오리지널(직접 쓴 것)도 있고, 소설을 각색한 것도 있어요. 각색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드라마 작가로서 나의 역할은 ‘재밌는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예요. 그게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오리지널이냐 각색이냐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시청자가 재미를 느낄 만한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선택하고, 어떻게 작업하는가가 남아 있는 내 역할이에요. 내 기준에서 재미있고, 거기에 약간의 의미가 있다면 드라마로 만드는 거예요.”

지난 2005년, 최완규는 큰일을 저질렀다. 미국식 작가 시스템을 동경해 ‘에이스토리’를 만든 것. 그는 지금 30명이 넘는 작가를 거느리고 있다.

“10여 년 전, 드라마 ‘종합병원’을 쓰면서 미국식 작가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미국 드라마는 수십 명의 작가가 달라붙어 만들어내고 있어요. 작가 혼자서 만드는 우리나라와는 다르죠. 미국의 작가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작가 저변이 넓고 시장도 크기 때문이에요. 최근 몇 년 새 한류 바람을 타고 우리 시장이 커져가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에이스토리를) 만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요.”

에이스토리는 한국 드라마에 발전적 모델을 제시했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완규에게는 그렇지 않다. 에이스토리로 인한 금전적, 정신적 손해가 큰 것. 우리나라는 아직 드라마 작가의 저변이 넓지 않고 공동 창작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에이스토리로 얻는 장점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한 욕구나 의지의 문제일 뿐, 현실적으로 나한테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하거든요.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그래왔어요. 힘들어요.”

회사를 만들기 전에는 드라마를 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허영만 원작의 드라마 ‘식객’, 주몽의 손자를 주인공으로 한 ‘대무신왕’, 내년 상반기에 들어갈 ‘히든’, 2009년 들어갈 ‘올인 2’ 그리고 논의되고 있는 여러 작품들.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일이 그 앞에 쌓여 있는 것이다.

그는 당뇨 진단을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못한 채 약으로 버티고 있다. 의사는 ‘무조건 쉬라’고 했지만 쉴 수도 없다. 오늘도 작업실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아요. 자신이 없거든요. 최근에는 ‘모든 걸 안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더 이상 글을 쓰는 게 행복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욕을 먹겠죠. 하지만 내가 벌여놓은 게 너무 많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여러 모로 지쳐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내 자신을 조금 추스른 뒤, 향후 인생의 계획을 어떻게 잡을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어요.”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묻자 “그것 역시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남은 작가 생활 동안 무엇을 해야 더 만족스럽고, 의욕과 의지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

글을 쓰는 사람은 고독하다. 혼자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시간과도 싸워야 하는 드라마 작가는 더욱 힘겹다. 그럴 때 옆에 믿고 사랑하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 말을 들은 최완규는 “독신주의자는 아닌데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최완규는 인터뷰하는 동안 자주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루 평균 네 갑 정도를 피운다고. 인터뷰 전날이 생일이었는데 “누군가 담배를 선물해줬다”며 웃는 최완규. 그의 웃음이 애처롭게 느껴진 건 아마도 글쓰는 이의 고독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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