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사진과 포스터, 그림을 감각적으로 배치해 월 데커레이션을 완성했다.
매봉산 공원 앞자락에 위치한 한남동 주택 단지를 지나다 보면 심상치 않은 외관의 주택과 종종 마주친다.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눈길을 끈다. 이런 곳들의 대부분은 주택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회사로,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전시 공간 리모델링 및 전시 그래픽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소조아시아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소조아시아의 김유석 대표는 주거를 목적으로 이사를 왔지만 회사를 차리면서 이곳을 사무실 공간으로 꾸미게 됐다. “처음 회사를 차리고 사무실을 만드는 데 당연히 화려하고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렇지만 1970년대 지어진 주택의 내부 구조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어요.

1·2·3 곳곳에 배치된 현대 작가들의 로봇 태권브이 모티브 작품.

김유석 대표의 개인 사무 공간으로 테이블 상판은 버려진 문짝으로 만들고 다리 역시 폐자재들을 모아 활용했다. 벽은 붓의 터치를 살려 페인팅해 감각적으로 연출했다.
주택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점 이외에도 특별한 것은 가구와 인테리어다. 공간을 디자인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일을 하다 보니 현장에서 멀쩡하게 버려지는 자재들이 아깝게 느껴져 하나 둘 가져와 직원들과 꾸미게 됐다. 테이블 상판으로 변신한 문짝, 벤치와 협탁으로 변한 원목 자재 등은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멋이 느껴지면서 리사이클 트렌드와 부합하는 멋스러운 가구가 됐다. 또 곳곳에 걸어놓은 작가들의 작품과 기획한 전시의 포스터로 감각적인 월 데커레이션을 완성했다. 성태진, 김석, 찰스 장 등 현대 작가의 로봇 태권브이를 모티브로 한 그림과 조각도 눈에 띈다. “김석 작가의 ‘론리 나이트’는 구입 후 다른 전시에 몇 번 대여도 될 만큼 인기가 좋고 감각적인 작품이죠. 일부러 공중에 매달아 띄우고 그 아래엔 여러 작품을 전시해 소박한 동네 갤러리처럼 꾸미고 싶었는데, 일정이 바쁘다 보니 태권브이 혼자 외롭게 엎드려 있게 됐네요. 그 나름대로 느낌이 있지 않나요?(웃음)”

뉴트럴 컬러가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아담한 2층집 구조의 외관.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1층에 테이블을 두어 미팅이나 회의를 할 수 있는 다용도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에는 블랙 페인트를 부분적으로 칠하고 액자를 걸어 감각적인 월 데커레이션을 완성했다.

지하 1층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무 공간. 골조를 그대로 노출시켜 빈티지한 분위기로 연출했으며 천장에 옐로 컬러 페인트를 칠해 포인트를 줬다.
연희동 주택 단지에서도 숨이 찰 때까지 언덕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갤러리 싱킹강(Thinking Kang).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감성을 간결한 선을 통해 보여주는 강일구 작가가 자신의 주택을 개조해 만든 비영리 갤러리다. 우렁차게 짖어대는 강아지를 만났다면 바로 찾아온 것. 주거 공간으로 이어지는 앞문을 지나 주택 뒤쪽으로 돌아가면 갤러리 입구인 작은 문이 나온다. “처음 촬영 제안을 받았을 때 ‘오피스’라는 점이 갸우뚱했어요. 그렇지만 작가인 저는 이곳에서 그림 작업을 하니 저에게는 이 갤러리가 일터인 셈이죠(웃음).”

창고를 개조해 만든 미니 갤러리로 질감을 그대로 살린 벽과 바닥이 빈티지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림이 전시된 미니 갤러리는 창고로 사용하던 곳으로 구조만 남겨 심플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하층은 갤러리 겸 쉼터로 관람객도 음식을 직접 가져와 조리할 수 있는 키친,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린룸, 세미나룸 등으로 만들어 예약한 관람객에 한해 오픈하고 있다. 강 작가는 이곳이 미술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논할 수 있는 문화 대안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애정은 갤러리를 꾸민 곳곳에서 드러난다. 콘크리트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조명과 인테리어 작업을 모두 직접 했다. 전문 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아내와 발품을 팔아 소품을 구하고, 공간을 꾸미는 재미를 놓치기 싫었다고. 특별히 눈에 띄게 고친 곳은 없지만 유일하게 욕심을 냈던 부분이 나선형 계단이다. 갤러리인 지하 1층부터 개인 작업실인 2층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높이의 철제 계단은 아내가 기획한 것으로, 시공하는 사람들도 손사래를 쳤지만 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멋스럽게 완성됐다.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쪽은 개인 휴식 공간, 왼쪽은 작업실로 나뉜다. 지붕의 모양을 그대로 살린 다락방 작업실은 그 자체로도 멋있지만 연희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또한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1 갤러리로 통하는 주택 뒤편의 작은 입구. 2 지하 1층 갤러리에 만든 세미나실. 선풍기의 앞판만 떼어 액자처럼 연출한 월 데커레이션이 독특하다. 3 지붕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다락방은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꾸준한 작업의 결과로 방 안을 가득 메운 작품들이 눈에 띈다.

계단을 만들기 위해 허문 벽의 디테일을 그대로 살려 멋스럽게 연출했다. 개인 작업 공간과 응접실로 사용한다.

갤러리와 작업실을 잇는 나선형 철제 계단은 지하층부터 2층을 통으로 뚫어 만들었다. 갤러리 바닥은 노출 콘크리트 위에 에폭시로 도장한 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완성했다.
■진행 / 이채영(객원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