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 속에서 취향을 만들어가는 우연수집
그리고 며칠 뒤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40년 된 재개발 지역의 전셋집을 스스로 고친 내용을 포스팅하며 많은 네티즌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어 파워 블로거가 되고, 「숨고 싶은 집」이라는 책을 낸 작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블로그 이름은 ‘우연수집’이었다. ‘우연수집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블로그 운영자이자 작가 그리고 선물 상점 주인인 이강산씨(34)는 분명 공간에 대한 애착과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졌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1 저녁이 되고 조명이 켜지면 작은 동화 마을 속 상점 같은 분위기를 내는 우연수집. 2 뷔페 접시에 이 작가가 직접 그려 만든 간판. 3·4 이강산 작가의 위트와 유머를 엿볼 수 있는 안내문.
셀프 인테리어로 완성한 또 하나의 공간, ‘우연수집’
고시원에서 시작해 원룸, 반지하 투룸을 거쳐 지난해까지 살던 한남동 전셋집 그리고 우연수집 상점까지, 이중 이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은 오직 고시원뿐이다. 첫 독립의 로망에 부풀어 있던 그는 드라마를 보며 꿈꾸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노란 장판과 옥색 싱크대를 보고 현실과 이상과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폭풍 검색을 통해 나무색 문을 사포로 갈고 그림이 그려진 벽지에 페인트칠을 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완성하던 그의 내재된 포텐은 한남동에서 터졌다. 곧 재개발될 집이라 마음껏 창작 훈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모든 낭만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풀어내기 시작해 카페 같은 주방, 갤러리 같은 거실, 산토리니풍 욕실, 아늑한 분위기의 침실을 완성했다. 그 결과 성시경의 뮤직비디오를 자신의 방에서 촬영하게 되고, 꿈이었던 책까지 출간하게 됐다.
이렇게 2년 동안 쌓은 경험으로 안정된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좁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으며 5평짜리 작업실 겸 상점을 차렸는데, 그게 바로 우연수집이다. 자신만의 장난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 우연수집을 열게 된 가장 큰 이유. 여기에 작은 가게의 주인을 해보고 싶은 꿈도 담았다. 인생의 변화를 좋아해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하는, 일명 ‘이사 중독자’의 새로운 공간인 우연수집에는 자연주의와 동심, 판타지가 혼재돼 있다. 자신만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담긴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이곳 역시 셀프로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킨 공간이다.

1 타일 세면대 위에는 이 작가가 좋아하는 사기로 만든 동물 모티브 장식품을 디스플레이해놓았다. 바라보고 있자니 작은 동물 왕국에 온 느낌이 든다. 2 카드로 장식한 빅 사이즈 액자. 샘플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되고 카드의 일러스트나 패턴이 주는 장식적 효과가 크다. 3 이 작가의 취향에 맞게 재해석한 비비드한 뿔을 가진 헌팅 트로피 캔버스 그림. 판매 요청이 많아 인테리어 액자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4 고시원에서 자주 들었던 성시경의 라디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일명 ‘잘 자요’ 조명. 타이포 모양대로 종이를 오리기만 하면 된다.
우연수집 인테리어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은 바로 일본풍의 타일 세면대. 세면대로서의 용도는 물론 욕실이나 물 관련 상품을 디스플레이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가벼운 종이를 걸 수 있는 대왕 액자 역시 우연수집의 상징.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이 액자는 안을 거미줄처럼 엮은 뒤 미니 집게로 카드를 집어서 거는 방식이다. 같은 종류의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인테리어인데, 수량이 주는 아름다움과 디스플레이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다. 손님들이 밖에서 이 액자를 보고 궁금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많단다.
네덜란드 타스카 조명을 따라 하면서 발전시킨 종이학 조명은 트레이싱지에 이 작가가 직접 만든 패턴을 출력해 은은한 빛이 투과되게 만들었다. 또 천장에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LED 은하수 전구를 사서 코드 부분을 잘라내고 천장 쪽 전선과 연결한 뒤 전구 1백 개짜리 10개를 연결한 세트 2개를 달아 총 2천 개의 밤하늘의 별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아이디어와 동심 어린 감성 덕분에 우연수집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면 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1 일본의 뮤지컬랜드 제품인 관람차를 모티브로 한 오르골. 비비드한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 고르는 재미가 있는 명언 카드. 3 1백50여 가지의 플레잉 카드는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장사나 사업에 소질은 없지만 공간에 대한 욕심으로 시작한 우연수집을 연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우연수집의 한 달, 한 달 이야기 역시 그의 블로그에 재미있게 연재 아닌 연재 중이다.
사실 우연수집의 탄생 계기는 이 작가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고자 함이 컸다. 이런 취지에서 서촌이라는 지역을 선택한 것. 창작을 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이상, 윤동주와 같은 작가들이 거주했던 곳이라 이야기가 많은 동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조촐하게 오픈해 무턱대고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 독특한 제품,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제품들 위주로 우연수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컨셉트의 선물 상점이 바로 우연수집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제품은 오르골이다.
“오르골은 처음부터 취급하려던 상품은 아니었어요. 계산대 위에 놓여 있는 오르골을 보고 판매하는 제품이냐고 묻는 손님들이 많아 상품화된 경우죠. 오르골이야말로 가장 실패하지 않는 선물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어요. 인테리어 장식 효과도 크고요.”
별 생각 없이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심산으로 우연히 들어온 사람들도 오르골의 태엽을 감았다 놓는 순간 “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동시에 어릴 적 추억을 되짚어볼 수 있게 하는, 현재와 동심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는 게 이 작가의 설명이다.
전 세계 유명 스튜디오부터 킥스타터에 모금을 해서 만드는 디자이너의 카드까지 모두 섭외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카드를 판매하게 된, 포커를 좋아하는 친구의 플레잉 카드 역시 마음에 든단다. 친구 역시 우연수집에 입점하길 원했고, 선택 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가짓수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이 작가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진 경우다. 한 장 한 장 다른 캐릭터로 된 카드, 팀버튼 스타일의 카드, 미국 흑인 리그를 기리는 카드, 국내에 20개밖에 없는 한정판 카드 등 카드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점 역시 이 작가의 취향을 저격했다.

공간 속에서 취향을 만들어가는 우연수집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제품으로 가득 채운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 가게이자 선물 상점을 목표로 했지만 아무래도 상업성이 반영되다 보니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언제부턴가 잘 팔리는 상품 위주로 들여놓았다는 이 작가의 고백. 하지만 1주년을 맞이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동심과 창작으로 버무려진 상품과 자신이 직접 만든 제품 위주로 우연수집의 아이덴티티를 재정비하는 게 목표다. 그동안 찍은 사진과 바탕화면으로 만들었던 이미지, 보케로 만든 일러스트들을 수정과 테스트를 거쳐 액자, 엽서 등으로 만든 것이 바로 그 예다. 눈에 보이는 장소만이 가질 수 있는 아기자기함과 유머도 계속 표현할 예정이다. 더 많은 작가들을 입점시키고, 지방에 살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한 온라인 사이트 오픈으로 우연수집은 많은 이들에게 동심과 감성을 전파하려 한다.
■진행 / 박솔잎 기자 ■사진 /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