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핫’하다는 동네를 가면 도심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예스러운 정취가 풍기는 공간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을 찾아갔다.
1980년대 모습을 간직한 카페
망원동 부부
1980년대 지어진 가정 주택을 개조한 카페 부부. 당시 주택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거의 손댄 부분 없이 카페로 재탄생시켰으며 오래된 가구들로 조화를 꾀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목 계단.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는 주택 설계도가 액자에 걸려 있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홍대 인근과 달리 건너편 동네인 망원동(서울 마포구 월드컵로)은 한결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흐른다. 주택가에 들어서면 카페 ‘부부’를 만날 수 있는데, 한 노부부가 살던 1980년대 주택을 거의 손댄 부분 없이 카페로 만든 곳이다. 카페 주인은 오래된 목재를 이용해 테이블을 만들거나 그 당시에 판매되던 가구를 발품 팔아가며 공수해 당시 주택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힘썼다. 2층으로 올라가는 벽에는 주택을 지은 당시의 설계도가 액자에 걸려 있고, 방이 있던 구조 역시 그대로 두어 마치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오래된 나무 계단과 빛바랜 소파 등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그 자체로 멋스럽다.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5길 27 문의 070-4257-8080
한옥의 아티스틱한 변신
종로 익동다방
옛 정취가 묻어나는 서까래와 깔끔하고 모던한 가구가 의외의 조화를 이루는 익동다방. 공간은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따금씩 다른 작품들로 꾸며진다.
설치미술 작품이 시선을 끄는 익동다방. 한옥과 현대미술 작품의 묘한 어울림에서 비롯된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이어지는 종로 낙원악기상가 인근 익선동(서울 종로구 돈화문로)의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자 도심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예스러운 가게들이 등장한다. 익선동은 1920, 30년대부터 서민 동네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 서울 사대문 안에 유일하게 남은 한옥 100채 단지다. 최근에는 옛 한옥 주택을 개조한 카페들 덕분에 다른 동네 사람들의 방문이 점차 늘고 있는 중. 일제강점기 시절 익선동이 ‘익동’으로 불렸다 해서 ‘익동다방’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곳은 서양화를 전공한 젊은 미술가들이 자신들만의 재기 발랄한 감성으로 한옥에 예술가적 영혼을 불어넣어 기묘한 매력이 흐르는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천장의 서까래 아래에는 색색의 페인트를 칠한 나무판들을 불규칙하게 이어 붙여놓아 시선을 사로잡는다. 곳곳에 자리한 미술 작품 역시 전통적인 한옥과 의외의 조화를 이뤄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구는 일부러 이질적인 느낌이 들도록 모던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선택했는데, ‘트렌디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공간을 추구하는 익동다방 대표의 계획 아래 놓은 것이다.
주소 서울 종로구 수표로28길 17-19 문의 010-2939-3974
인쇄소의 재발견 성수 자그마치
드라이플라워와 조명 등이 오래된 공간에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성수동(성수이로)에 위치한 인쇄소를 개조한 카페 자그마치. 당시 쓰던 낡은 테이블과 수납함 등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흑백 렌즈를 통해 공간을 보는 것처럼 한눈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카페 ‘자그마치’. 분명 공간 한쪽에서 상영되고 있는 흑백 영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현대적인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갤러리, 카페, 공방 등 다양한 복합 문화 공간을 겸하는 요즘 상업 공간의 감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인쇄소를 개조한 이곳은 당시 쓰던 낡은 라이팅 테이블이나 종이함, 수납함 등을 그대로 손님 테이블로 사용하거나 판매 제품을 진열해 옛것의 가치를 살렸고, 프로젝터를 통해 상영되는 흑백영화는 어렴풋이 과거를 회상하게 하면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 88 남정빌딩 1층 문의 070-4409-7700
빈티지한 가정 주택 카페
서촌 코수이
기존의 주택이 지닌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빈티지한 조명과 가구로 조화를 이뤘다.
옛 공간을 그대로 유지해 개조한 곳이 있는가 하면, 옛 모습이 은근하게 드러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도 있다. 서촌에 있는 카페 ‘코수이’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보는 순간 카페이면서 카페 같지 않은 분위기가 어떤 공간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 벽돌 벽과 노출 천장이 거친 느낌을 주는 반면, 아늑한 조명과 서로 다른 디자인의 빈티지한 소파, 의자가 친구 집에 놀러 온 듯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카페 주인은 기존 가정 주택의 벽돌 벽을 흰색으로 칠해 깔끔하고 세련된 카페로 재탄생시켰고, 가정 주택이 지녔던 빈티지한 느낌을 살려 앤티크한 조명과 가구, 소품 등이 한데 어우러지게 꾸몄다.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9길 14 문의 02-730-8589
카페가 된 한옥 종로 식물
쓰러질 듯한 낡은 벽은 허름한 느낌 그 자체만으로도 감각적이다. 한옥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빈티지 가구 선택이 돋보인다.
대청마루에 놓인 자개 테이블은 실제 진일환 대표의 어머니가 쓰시던 것이다.
익선동에 가면 시간이 멈춘 듯한 카페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카페 ‘식물’도 그중 하나로, 기본적인 한옥의 틀은 유지하면서 유리 창문을 설치하거나 테이블, 의자 등 필요한 가구와 소품만 들여놓는 식으로 본래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헌데 가구들이 마치 본래 있었던 것들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대부분 진일환 대표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오거나 풍물시장에서 빈티지 제품을 구입한 게 그 이유. 특히 대청마루에 놓인 자개 테이블은 진 대표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이곳에서 한옥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한 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46-1 문의 02-747-4854
■진행 / 장인화 기자 ■사진 / 원준희, 김동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