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The Lady

  • 즐거운 지구 여행자 - 노소남

    1996년 청춘들의 배낭여행 로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이 돼주었던 한비야의 「바람의 딸, 지구 세 바퀴 반」. 그보다 1년 앞서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실크로드를 넘어 아프리카 7개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2권의 여행서를 내놓았던 한 주부 여행가가 있었다.낯선 거리에서 느끼는 고독한 행복조리대 벽면에 붙여놓은 ‘세계의 명소’ 달력 사진을 보면서 ‘갈 거야, 갈 수 있을 거야’를 주문처럼 되뇌었던 주부가 세계여행가가 됐다는 이야기는 현대판 동화나 다름없었다. 「세계가 궁금한 여자, 지구 위를 돈다」를 쓴 노소남(67) 작가는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었다. 당시 주부 여행가의 놀라운 활약을 기사화했던 경향신문 평기자가 국장이 됐고, 품안의 3남매도 제 짝을 찾아갔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외모는 아주 조금 변했지만, 그녀는 첫 인터뷰 때와 다름없는 말을 들려주었다. “흔히들 나중에 돈 벌면, 나중에 시간 나면 한다고 말하지만 인생에 나중이란 없다”라고.노 작가...
    [The Lady]즐거운 지구 여행자 - 노소남
  • 두 장의 초상화, 유난순

    카페의 볕 좋은 테라스석에는 유아용 식탁 의자에 앉은 아이의 밥을 챙기는 엄마들과 노트북으로 작업 중인 젊은 여성 그리고 모녀로 보이는 한 쌍이 있었다. 약속보다 이른 시간인데다 식사를 마친 것으로 보이는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있었지만 「엄마의 초상화」의 주인공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다시 그린 엄마「엄마의 초상화」(이야기꽃)라는 제목의 그림책 마지막 장을 넘기자마자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작가가 아니라 작가의 어머니를요?” 하고 반문하는 편집자를 거쳐, 유지연(35) 작가를 통해 그림책 속 주인공 ‘미영씨’의 인터뷰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유 작가는 첫 창작 그림책의 주인공을 엄마로 삼았다. “덤덤하더라고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 유난순씨(63)가 전하는 소감의 끝은 웃음으로 번졌다.‘엄마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자랑스러워하지만, 미영씨는 내가 그린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았어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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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룩한 내리사랑, 권오남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줄 안다는 말은 참 가혹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서촌에서는 유명한 대오서점 권오남 할머니. 건강한 핑크빛 혈색의 할머니는 본인이 받은 만큼 세상에 사랑을 뿌리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DSLR 카메라를 들고 서촌 좀 돌아봤다는 이들의 앨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촬영 스폿,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고 서점, 김남길·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상어’와 가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 곳. ‘서촌에서 이 할머니 모르면 간첩’이라는 그 흔한 말이 절로 나오는 권오남(82) 할머니가 바로 이 ‘명소’ 대오서점의 주인이다.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찍은 포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재촬영을 요구할 정도로 카메라와 친근한 권 할머니를 굳이 다시 불러낸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대오서점의 시작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사랑 듬뿍 받은 며느리7년 전인가, 10년 전인가. 시작부터 다섯째 딸 조정원씨와 할머니의 기억의 아귀가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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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비서의 역사를 새로 쓰다, 전성희

    “70세까지 하려고요”라는 몇 년 전 인터뷰를 본 터라 내심 불안했다. “전성희 이사님이세요?”라는 질문에 맞다고 답하는 낭랑한 목소리를 듣고는 국내 최고령 · 최장수 비서의 건재함에 쾌재를 불렀다. 올해 72세, 지난 1979년부터 30년이 넘도록 대성 김영대 회장의 수석 비서를 맡고 있는 전 이사에게는 배우고 싶은 점도 참 많았다.최고의 파트너, 미세스 심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별도의 출입구 없이 바로 전성희(72) 이사와 책상이 보여서 다소 놀랐다. 대기업 회장 비서실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이 깨진 것을 눈치 챘는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크지 않은 방이 회장실이라고 일러주었다. 전 이사는 이내 책상 뒤 수납장의 문을 열고 물었다.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까요?” 무채색 슈트부터 오렌지색 구두까지 구색을 맞춰 준비돼 있었다. 비서계의 대모, ‘명품 비서’라는 수식어를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제가 오늘 한 일을 얘기해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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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조은일 - 빵점 엄마, 만점 할머니가 되다

    1992년 첫 발간 이후 「빵점엄마 백점일기」 연작 3권을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불량엄마’로 통했던 작가 조은일. 속 깊고 우애 좋았던 삼남매와 용감한 엄마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처음에는 우리가 조은일(65) 작가를 ‘발견’한 줄 알았다. 1천만 관객동원에 빛나는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아역 스타 갈소원의 외할머니가 소소한 일상이 담긴 에세이를 쓰는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칼럼 청탁을 넣었다. 그래서 연재 타이틀도 ‘아역 배우 갈소원양의 외할머니 조은일 작가가 손녀에게 쓰는 편지’였다. 지난달 11개월의 연재를 끝으로 독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던 작가에게 만남을 청했다. 소원이 외할머니가 아닌, 주인공으로 그녀의 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다.위안과 용기를 준 빵점 엄마초여름의 캠퍼스는 싱그러웠다. 운동장 스탠드에서는 한바탕 운동을 마치고 땀을 닦는 청년들의 뿌듯한 후일담이 무성했고, 바람에 일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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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편지, 그 사랑의 역사 박시현

    1956년 3월부터 1961년 9월까지 대학 선후배에서 장거리 연애 커플, 두 아이의 부모로 성장해가는 동안 한 부부가 주고받은 3백32통의 편지가 한 권의 책이 됐다. 청춘 남녀의 사랑스러운 기 싸움에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사무실 동료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고, 손글씨로 꾹꾹 눌러 담았을 애틋함으로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며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바로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예쁜 편지를 주고받은 커플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꼭 만나고 싶었다.1956년 봄, 서울대 사범대학 생물학과 석사과정의 김준호군은 명륜동 이영노 박사 댁에 들어서다가 같은 과 2학년 박시현양을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나 그는 ‘순간 나의 눈에는 황홀한 섬광이 번쩍였다. 세상에 이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책 서문을 통해 그때를 회상했다. 기념비적인 첫 데이트 이후 그는 첫 편지를 띄웠다. ‘장충단공원의 은세계 속에서 고즈넉한 미스 박은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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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의 독립 선언, 윤문희

    내가 갖기보다는 양보하는 게 속편했던 11남매 중 아홉째 딸은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뒤 성장이 멈춰버렸다. 사춘기도 갱년기도 건너뛴 인생은 ‘할머니’가 되고서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예순이 넘어서 감행한 독립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화를 토양 삼아 지금도 할머니는 매일매일 성장한다.>“내가 솔직히 (인터뷰) 거절하려다가 젊은 일꾼들 하루 쉬어가게 하자, 그래가지고 하는 거예요. 이 봄날 좋은 데도 많지만, 같은 일이라도 이렇게 왔다 가면 그래도 힐링이 -이 단어는 쓰기 싫지만- 될까 싶어가지고.”서울 시내 벚꽃은 거의 끝물이었는데 그래도 북녘이라고 경기도 포천 윤문희(75) 할머니네 앞마당에는 아직 하얀 꽃구름이 바람을 따라 넘실거렸다. 그리고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주인처럼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잎이 무성해지면 족히 열댓 명은 넉넉한 그늘로 품어줄 것 같다. 고운 얼굴과 달리 ‘농군’의 손을 가진 할머니가 이 집에 혼자서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2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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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희 명창 “죽을힘으로 불렀소”

    “벌써 2년이 됐네요.” 인생 최고의 무대로 그날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춘희 명창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던 순간 하얀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불렀다. 흰 나비와 같았던 그 순간을 위해 그녀의 청춘은 그리도 분주했나 보다.“‘아리랑~’ 하고 시작하면 묻힐 거 같아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하고 치고 나갔어요. 1초라도 놓칠까 봐 무대 뒤에서 나가면서부터 불렀지요. 10시간이 넘는 회의를 하느라 피곤에 전 사람들이 ‘이게 웬 아름다운 소리야?’ 하는, 정말 환희에 찬 표정을 짓는데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아리랑’이 끝나자마자 손뼉을 치며 몰려나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 부둥켜안고 울었지요.”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 4층에 이춘희(67) 명창·한국전통예술학교장의 연습실이 있다. 층층이 쌓아올린 장구탑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밀려들었다. 목을 아껴야 한다며 인색하게 굴어...
    [The Lady] 이춘희 명창 “죽을힘으로 불렀소”
  • ‘꽃 피는 시심’ 박태순

    ‘88세 초등학생’이라는 제목의 시로 잔잔한 울림을 주었던 박태순 할머니는 본인의 시처럼 꾸밈없고 다정했다. 여든이 넘어 알게 된 한글은 할머니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소통의 도구가 돼주었다.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 쓰기“(시 한 편을 쓰는 데) 한 이삼일? 아니 이삼 일이 뭐야, 1주일도 더 걸렸나 봐요. 시를 써가니 선생님이 잘 못 썼대요. 한 번 더 써오래서 안 한다고 했더니 계속 하래요. 지금도 쓰고 있어요. 방학책(숙제)에도 다 썼어요. 한 번 또 도전해볼까?(웃음)”이 할머니 정말 보통 분이 아니구나, 라는 감이 온 것은 인터뷰를 막 시작하면서였다. ‘도전’이라는 단어를 저렇게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80대라니.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났다. 박태순 할머니(89)는 지난해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88세 초등학생’이라는 제목으로 시화를 출품해 최우수상(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성남시 중앙동복지회관에서 운영하는 서로사랑문해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
    [The Lady]‘꽃 피는 시심’ 박태순
  • 흔쾌히 감당하는 최초의 무게 - 여성 건축사 1호 지순

    강단에서 가르친 제자가 얼마 전 65세로 현역에서 은퇴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고 한다. 장충체육관 인근에 자리한 간삼건축 7층 지순 상임고문의 방은 희소식이 모이고 때로는 고민과 상담이 벌어지는 건축인들의 사랑방이다. 나이 먹으니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봐주고, 얘기해주고, 대변해줘야 하는 ‘아이들’ 때문에 ‘건축계 대모’의 하루는 금세 간다.천직 의식을 가질 것1월 초 발표된 2013년 건축사 자격시험 결과, 29세 여성 신명숙씨가 최고 득점을 기록했다. 아이 셋을 둔 주부가 여성 최초 건축사가 됐다는 소식이 몇몇 일간지를 장식했던 것이 지난 1967년의 일이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은 늘 지순(80) 고문을 따라다녔다. 그 책임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대한여성건축사회 초대회장까지 맡았던 지 고문에게 1천5백여 여성 건축사 후배들은 자식이나 진배없다.“내가 건축사 라이선스를 받고도 한 10년간 여성은 저 혼자였어요. 제일 나이가 가까운 여...
    [The Lady]흔쾌히 감당하는 최초의 무게 - 여성 건축사 1호 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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