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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나마스테, 네팔!
아이들을 두고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네팔. 그곳의 어머니를, 그곳의 딸들을 만나면서 잠시 아이들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열흘 만에 다시 만난 아이들. 은산이와 은설이는 떨어져 있는 동안 부쩍 성장해 있었다. 때때로 떨어짐은 내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엄마 역시 성장하게 한다.엎친 데 덮친 격“네팔에 가서 열흘 정도 촬영해야 하는데 괜찮으세요?”“저야 당연히 좋죠!”섭외를 위해 걸려온 작가의 전화에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앞뒤 잴 것도 없이 일단 흔쾌히 수락했다. 게다가 남편과 함께 가는 촬영이라고 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호시탐탐 어느 나라를 갈까 궁리하는 내게 해외 촬영 제안은 육아휴직 후 받는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얼굴은 싱글벙글,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이미 마음은 인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었다.그렇게 한참을 룰루랄라 하다가 아뿔싸! 아이들 생각이 났다. 세 돌이 얼마 남지 않은 첫째 녀석은 요새 한창 엄마한테 온갖 사랑을 쏟고 ... -
(22) 엄마의 보물찾기
잘한다, 잘한다. 오늘도 아이는 엄마의 칭찬으로 자란다. 작은 단점보다 꼭꼭 숨어 있는 아이의 장점을 발견해 크게 키우는 능력, 오직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보물찾기다. 은산이는 소심하지만, 세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집중력이 강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다.소심해도 괜찮아얼마 전부터 주말마다 첫째 은산이를 데리고 동네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다. 하루 종일 뭘 하고 놀아줘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도 덜고,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도 찾을 겸 시작한 주말 나들이다. 우리가 간 곳은 은산이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그저 춤추고 뛰어노는 신체 놀이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는데, 과정을 등록하면서 은산이가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했다. 난 역시 멋진 엄마라는 자부심과 함께 말이다.“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파이팅할까요? 이리 나오세요.”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첫 번째 시간. 30개월 안팎의 아이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선생님께 달려가 손뼉을 부딪치고 안기는 등 활기가... -
(22) 여행은, 엄마의 환상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1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이번 가족 여행은 정말이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아들과의 오붓한 물놀이를 꿈꾸며 수영을 배운 엄마의 노력은 파도와 함께 물거품이 됐고, 연신 옹알이를 하는 딸 덕에 당분간 외식은 금기 사항이 됐다. 개구쟁이가 된 은산이, 돌고래가 된 은설이.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다시 만난 제주도1년 전쯤 이 지면에 제주 여행을 다녀오고 쓴 글이 생각난다. 돌이 갓 지난 은산이와 함께 떠난 가족 여행에서 난 걱정했던 것에 비해 큰 문제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그에 감동해 글을 써내려갔다. 처음 타는 비행기에 겁먹지 않을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여행한다는 게 아이에겐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등등의 걱정을 했지만 녀석은 매번 내 걱정을 파도가 모래 위 낙서를 지우듯 말끔히 지워버리곤 했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남편과 나는 아이가 잠든 밤이면 뿌듯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기억으로 인해 기대치가 높아... -
(21) 내 마음에 사랑이 싹트네요
가끔씩 상상해본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나아가 그림을 더 그려본다. 아이가 사랑하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를 꼭 닮은 사람일까, 아니면 나와 정반대의 사람일까? 두근두근 고백을 앞두고 떨리던 바로 그 순간처럼 궁금하고 기대된다. 아마도 부모란, 평생 아이를 짝사랑하는 존재인가 보다.애교쟁이 은산이산이는 엄마, 아빠를 닮아서인지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아침 먹을 시간도 없이 어린이집 가자고 어르다 보면 이미 등원 시간을 훌쩍 넘기곤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평소보다 일찌감치 눈을 뜨더니 엄마, 아빠까지 다 깨웠고, 아침을 먹었는데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것저것 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문득 이러다간 집에서 계속 놀겠다며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시간 상관없이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어린이집에 보냈다.“산이 오늘 일찍 왔네?”평소 은산이가 천사 같다며 잘 따르던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날 역시... -
(20) 개구리 엄마, 올챙이 적 떠올리며
아이를 키우면서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이 고비를 넘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툭툭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난관들에 초보 엄마들은 불안하고 또 불안할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늘 제자리걸음은 아니라는 것. 보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함께 성장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삐뽀삐뽀 비상, 비상!‘우리 아이 얼굴 좀 봐주세요. 얼굴에 오돌토돌한 게 하나둘 나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다 그래요. 모유만 먹는 아기인데 제가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걸까요? 혹시 이게 아토피인가요?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못난 엄마 만나서 고생하는 울 아가. 그저 미안하기만 하네요. 지금도 이 글 쓰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구합니다.’그냥 보통 태열이구만. 목욕 깨끗이 씻겨서 로션만 듬뿍 발라주고 조금만 기다리면 금세 좋아질 텐데 너무 오버하네. 이것저것 웹서핑을 하던 중에 만난 아무개 엄마의 글을 보며 콧... -
(19)“나 어린이집 안 가! 으앙!”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한참 동안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눈물뿐. 돌연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는 은산이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아침마다 눈물 바람15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닌 은산이는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다. 처음 등원했을 때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며 눈물 바람을 일으켰지만 은산이는 ‘왜 울지?’라는 표정으로 선생님께 안기곤 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선생님, 교실이 모두 바뀌는 상황에서도 처음 며칠만 조금 어색해할 뿐이었다. 동생 은설이 출산으로 엄마랑 떨어져 있던 2주 동안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의연히, 아니 내가 보기엔 오히려 더 신나게 어린이집을 다녔다.그랬던 녀석이 반을 옮긴 지 석 달, 동생을 본 지 두 달이 된 요즘 갑자기 어느 날부터 등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처음 이틀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반은 끌려 들어가더니 3일째 되는 날 결국엔 통... -
“은산이 눈 작아졌다. 화났나 봐”
제법 말이 많아진 은산이와 대화하랴, 시시때때로 표정이 달라지는 은설이를 지켜보랴, 조금은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두 아이가 주는 기쁨만큼 더욱 풍성해진 미소가 그녀의 행복 척도를 가늠케 한다.눈빛으로 대화하는 아이제 새끼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못생겼어도 세상에서 제일 미남, 미녀라더니 내가 딱 그런 꼴이다. 기분이 좋아지면 동그랗게 뜨며 깜빡이는 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당당히 윤곽을 드러냈던 오뚝한 코, 뽀뽀를 부르는 도톰한 앵두 입술, 굵게 자리 잡은 가지런한 눈썹까지 내 눈에 은산이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는 완벽에 가깝다. 목욕시키고 얼굴에 로션을 바를 때면, 팔베개를 하고 내 품에서 재울 때면, 앵두 입술을 오물거리며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절로 감탄을 하곤 하는데, 이런 날 보며 남편은 또 시작이라면서 옆구리를 찌른다. 물론 지극히 객관적이지 못한 고슴도치 엄마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이 녀석은 눈웃음은 물론이고 눈빛으로 참 많은 말을 건넨... -
딸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배시시 웃는 아이의 미소에 천근만근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버린다.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는 울음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함께 울고 싶을 때마다 내 어머니에 대한 뒤늦은 고마움과 애절한 그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부모가 된다는 건 그런 거다.은산아, 엄마 잘해낼게2014년 3월 6일 오후 12시 47분. 하얀 눈과 함께 은설이가 우리 품으로 왔다. 둘째 아이의 출산은 내게 상당한 긴장감을 안겨줬다. 출산 예정일 한 달 전부터 꿈자리도 뒤숭숭했고, 차라리 빨리 낳았으면 했다가도 눈만 감으면 손에 잡힐 듯한 통증의 공포 때문에 날짜 가는 게 두려웠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대부분이었는데, 둘째 때는 잠시 잊고 있었던 출산의 아픔이 자꾸 떠올라 두려움이 마음을 가득 채우곤 했다.전날 밤부터 배를 콕콕 찌르는 듯, 싸하게 배 전체가 아파오면서 진통은 시작됐다. 진통이 시작되고 12시간 정도는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 -
남편 조기영 시인이 보내온 편지 “은산이 동생 은설이가 태어났어요!”
출근을 하려고 채비를 하는데 고민정 아나운서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은설이의 탄생 소식이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두 사람을 꼭 닮은 아이는 또 얼마나 고울까. 이달, 고민정의 감성 육아 에세이는 산후조리 중인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남편 조기영 시인이 대신했다.3월 6일, 눈송이와 함께 꽃 한 송이가 피었다. 둘째 은설이가 태어난 것이다. 첫째 은산이가 태어난 날에도 눈이 왔었다. 두 아이가 눈과 참 인연이 깊다.두 돌이 지난 은산이는 이제 제 작은 세상들, 집과 어린이집과 외할머니 댁을 휘젓고 다닌다. 양가 어르신들을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로 부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구별해주니 “외엄마”, “외아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웃음꽃을 퍼 나른다. 녀석은 요즘 뭐든 자기가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아무도 손대지 말라며 “지가!”, “지가!”를 연발하고 있다. 신발을 신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이를 닦을 때도 엄마, 아빠가 도와주려 하면 “... -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1년 전,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아빠의 손을 의지한 채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돌쟁이 은산이가 이제는 촬영장을 뛰어다닌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아이는 훌쩍 컸고, 질문도 많아졌다. 새싹이 올라오는 봄. 은산이네 가족은 새 식구를 맞이한다. 아마도 다음달엔 둘째의 탄생 소식을 전해줄 수 있겠지.나의 철천지원수, 감기!어릴 적부터 기관지가 튼튼하지 못해 감기를 달고 살았다. 조금만 한기가 돌아도 금세 목감기에 걸렸고, 반드시 코감기로 끝이 났기에 코밑이 늘 헐어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감기라는 녀석에 대해 큰 존재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몸을 따뜻하게 하며 집에서 민간 치료를 했을 뿐 약도 별로 먹지 않았다.그래서일까. 항상 내 목소리는 비음이 섞여 있었고, 꽉 막힌 노래방처럼 공기가 좋지 않은 곳에 가서 목을 조금만 쓰기라도 하면 금세 쉬어버리곤 했다. 아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계속 감기를 마치 생활의 일부처럼 여기며 큰 불평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