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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오이타
열다섯 번의 여행기 속에서 콩콩이는 부쩍 자랐다. 네 살배기의 말대답에 순간 발끈했던 엄마의 모서리 같은 마음이 눈 녹듯 풀어진 것도 여행 중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뼘은 더 자란 콩콩이만큼이나 넉넉해진 마음 바구니를 가진 엄마의 ‘여행기 공개’는 이달로 끝을 맺지만 이들 모녀의 여행은 앞으로도 죽 이어질 것이다.여행 중이라 다행이야엄마와 함께 달리기도 열심히 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호새와 달리 콩콩이는 하고 싶은 것이 해야 하는 것보다 조금 앞서야 하는 아이. 콩콩이는 하우스텐보스 역에서 운동화 끈을 새로 묶고 싶어 했다. 그것도 시간 많아 빙글빙글 놀 때는 내내 아무렇지 않다가 플랫폼에 사람이 사라지고 차장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그 시간에 하필 운동화 끈을 묶겠다고 했다. 한쪽은 풀어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말짱했다. 트렁크만 없었다면 번쩍 아이를 안아 기차에 오른 뒤 하겠지만 나는 손이 두 개였다. 한쪽만 급하게 묶어주고는 어서 오라며 아이 팔을 끌어당겼다.... -
(14) 일본 북규슈 하사미&사세보
여행지보다 여행을 하는 주인공이 더 궁금해지는 이상한 여행기. 콩콩이는 ‘같은 산후조리원 출신’ 절친 호새와 함께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일본 북규슈로 여행을 떠났다. 동갑내기 엄마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남긴 두 가족의 여정을 따라가본다.# Prologue지난여름, ‘글램핑’으로 함께하는 여행의 맛을 본 꼬마 둘이 의기투합했다. 아이끼리 호흡이 좋으면서 엄마들까지 찰떡궁합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아이가 좋아해도 남의 아이는 내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아이들끼리는 죽고 못 사는 지경이라도 엄마들까지 그러기는 쉽지가 않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면 배려도 양보도 이해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걸 할 줄 모르는 아이보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 아이끼리는 ‘단짝 친구’인데 엄마들은 웃는 얼굴로 뒤돌아서서는 질시와 반목이 이어진다면 유아를 포함한 어린 시절 아이의 친구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맥락에서 콩콩이는 매우 운이 좋은 아이다. 43개월 아이의 월... -
엄마의 작심 조언 “무거운 게 없는 것보다 나아”
여행에 최적화된 아이 콩콩이와 엄마의 여행기가 벌써 12회를 넘겼다. 하늘을 장식한 대형 애드벌룬을 넋을 잃고 쳐다보던 ‘아기’가 어느덧 의젓한 꼬마 숙녀가 됐다. 그 시간만큼 모녀의 ‘여행력’도 한결 무르익었다. 이달은 콩콩이 모녀처럼 가족 여행을 꿈꾸는 독자를 위한 세세한 조언을 담았다.아이와 함께 여행하기의 거의 모든 것은 짐 싸기, 여행 준비에 있다. 실제 여행하는 것보다 더욱 재미있다는 여행 준비에 아이가 동행한다는 단서가 붙으면 재미있지만은 않다.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 준비라면 설레는 그 느낌하고는 조금 거리가 생긴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애 고생, 부모 고생, 옆에 있는 사람 고생의 삼단 콤보 고생이라고들 한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가 하나 딸리면 어느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여행의 속도, 목적, 형태, 취향 같은 것은 모두 우선순위 두 번째 이후에 배치된다. 모든 것은 아이 위주로 재편된다.한 손으로 아... -
열 번째 여정지→ 사이판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곳,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좋은 곳이라는 데가 있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그곳이 바로 그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내게 그런 곳이란 모든 곳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이란 없으니까. 더 편하고 덜 편한 곳이 있을 뿐. 그런데 여름이 가까이 오면서 사람들은 알파벳 세 글자를 말했다. 가면 안다고.Prologue아이들을 데려가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 난, 그 소문 때문인지 많은 부모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곳이라는 것은 출국장에서 알 수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이 없는 사람은 탑승권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그곳의 어른들은 모두 아이를 동반한 것 같았다. 아이는 정말 모두 아이여서 초등학교 고학년도 찾아볼 수 없는 놀이터와 같은 풍경이었다. 네 시간을 날아 도착해 사이판 공항 입국장에 쏟아진 탑승객 중에 아이가 없는 승객은 서너 커플이 전부인 듯했다. 날씨 좋고 하늘, 물 빛깔 모두 좋고 멀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 -
(9) 아홉 번째 여정지 → 제주도 2탄
콩콩이에 대한 취재팀의 애정은 진짜 이모 못지않다. 점점 어린이 태가 나는 외모뿐 아니라 쑤욱 늘어난 어휘 실력을 볼 때면, 자연스레 엄마 미소가 지어지며 마치 같이 키우기라도 한 것처럼 숟가락 얹는 심정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꼬물꼬물 아이 시절이 금세 끝이 날까,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한다.주황주황 핑크그린… 형형색색 에코랜드에코, 힐링, 네이처, 퓨어… 이런 말들이 진저리가 처지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어쩐지 저런 단어들이 붙으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주장’처럼 들리는 뉘앙스가 오히려 우세스러웠다. 그런데 제주를 다녀온 한 외국인이 말하는 에코랜드의 특장은 아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지 않으면 안 될 곳으로 느껴졌다. “증기기관차가 광활한 자연을 가로지른다. 동식물의 천국이다. 그런 식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호수, 숲, 평원이 이어진다.” 듣자마자 하루를 ‘꽁’으로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무슨 랜드, 에... -
(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엄마와 단둘이, 혹은 엄마의 출장팀에 깍두기로 끼어 다니는 여행자다.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한 여행은 사진에는 있어도 기억에는 없는 시간이었다. 지나치게 영양 상태가 좋았던 자신의 영유아 시절을 ‘뚱땡빵’ 때라고 말하는 콩콩이는 “아빠는 뚱땡빵 콩콩이랑만 여행했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번 여행은 아빠가 함께 갈 거라고 하니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는다. “아, 우리 가족이 같이 가는구나!” 엄마하고만 하는 여행은 가족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이번 여행의 주제는 초록 제주제주도로 행선지를 정한 이유는 남편의 짧은 휴가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근 더 깊이 알게 된 제주의 매력이 더 컸다. 「제주 세계자연유산 산책」이라는 책을 외국인을 위해 만들었는데 기획 단계부터 보니 내가 아는 제주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몇 차례 취재를 따라가봤더니 기획 단계에서 부풀었던 마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됐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말이 움직이는 사진이 돼 거기에 있었다... -
(7) 엄마, 콩콩이는 여행 몇 개 했어?
아이랑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엄마의 무한한 인내가 수반돼야 가능한, 엄마의 고행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엄마들은 안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아이가 눈을 맞추는 그 순간부터 여행을 꿈꾼다. 말 그대로 꿈꾼다.아이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태교 여행부터 시작된 요즘 엄마들의 ‘여행 로망’은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때마다 이유도 많고 명분도 창창하다.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는 중학교 입학 직전에 유럽 배낭여행으로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의 대장정이 끝난다고 한다. 아예 여행사들도 엄마와 아이의 여행을 전담하는 패키지를 만들어 풍구질을 하고 있다. 엄마가 아이와 여행을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그야말로 하나부터 백까지다. 아이가 영아이건 유아이건 소아이건 상관없이 밤하늘 별만큼 고민 사항은 넘쳐난다. 비행시간, 날씨,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거리, 수화물 관련, 승무원의 친절도, 탑승시간, 기류, 날씨, 출입국 절차에 드는 시간, 유모차 휴대 관련 사항, 음... -
여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다카마쓰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엄마와 콩콩이, 단둘만의 여행이었다. 공항에서부터 달라진 동행 인원을 체감한 아이는 여행 내내 달라진 면모를 과시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출국장에서 게이트까지 멀고 먼 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말이 많았다. 이윽고 엄마는 다 큰 딸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침 ‘확’ 자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어제 다르고 또 오늘이 다르게 크는 중이었다.Prologue잠들락 말락 하는 아이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얘기를 나는 믿지 않았다. 아이가 듣고 있거나 말거나 숙면에 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무에서 늦게 놓여난 엄마가 하루의 일과를 말해주는데 그것이 아이와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는 간증과도 같은 말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유, 애 꿈자리 사납게 뭘 그렇게 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정말 밥상머리 교육처럼 베갯머리 교육도 필요한 것 아닌가,... -
(5) 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벳푸
직업적 의무이기도 하면서 만만한 취미였던 여행은 콩콩이의 탄생 이후 다른 의미가 됐다.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 어쩌면 전혀 모르고 지나칠 뻔한 이면까지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돼준 여행.그래서 콩콩이 엄마는 또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다.Prologue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더니 토끼라고 말한다. 토끼띠라는 이유로 유독 많이 사준 토끼 인형과 최근에 빠져든 실바니안 패밀리의 초콜릿 토끼 시리즈가 만든 대답일 것이다. 질문을 바꿔 물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그랬더니 콩콩이는 어른 토끼가 될 거라고 답해 엄마를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든다. “어른 토끼가 되면 뭐가 좋을까?”라고 물으니 “여행 가는 토끼가 되지!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이모랑 그림 삼촌이랑 아라 언니랑 다 태우고 이렇게 갈 수도 있어”란다. ‘얘, 엄마랑 아빠 빠졌다’ 하려다가 말았다. 실바니안 패밀리의 캠핑카를 운전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콩콩이 여행 좋아해?”라고 ... -
(3)태국 푸껫- “내가 엄마 없이 살았잖아”
보름이 멀다 하고 애 짐까지 여행 가방을 바리바리 꾸리는 늙은 딸을 보며 엄마는 따라 할 수도 없이 큰 소리로 혀를 찼다. 옛날에는 열 살 아래로는 기차도 안 태웠다는 얘기를 붙이신다. 그러다가 트롤리만 보면 소리를 지르며 공항에 간다고 나서는, 여섯 바퀴를 돈 띠동갑 손녀를 보면 해바라기처럼 크게 웃는다. 어렸을 때 많이 보고 다닐수록 애가 품이 커진다며. 그런 엄마가 어처구니없이 웃겼다. “엄마, 하나만 해, 하나만.”프롤로그이번에는 엄마도 좋아하는 여행지여서인지 구명조끼와 퍼들 점퍼를 챙기는 옆에서 특대형 지퍼형 비닐 팩까지 살뜰하게 넣어주며 말씀이 많아지신다. “나는 해변 하면 채러팅 섬만 떠오르더라.” 그 대답에 추임새는 못 넣을망정 “채러팅이 섬이었어?” 하고 물었다. 진짜 몰라서 물은 것이었다. 기자라는 직함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아 촬영 때문에 가본 클럽메드는 충격이었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몰디브의 파루 빌리지는 풍광의 아름다움은 차치하고 클럽메드 특유의 형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