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행복 걷기

  • 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지금으로부터 약 1백20만 년 전. 불덩이를 품은 채 쉼 없이 꿈틀거리며 기어이 솟아오른 백록담의 용암이 바다로 향하다 그대로 주저앉아 드넓은 평탄면을 만들었다. 제주도 한라산 동남쪽 능선 자락의 가시리마을. 병풍처럼 둘러싼 13개의 오름과 바람에 흐드러진 억새, 한가로이 뛰노는 마소들을 보고 있노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목장 길 따라 밤길 걸으며 고운 임 함께 집에 오는데….’숲으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가시천시간을 더한다는 고운 이름만큼이나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지대를 잇는 이곳에는 과거 말테우리(말떼를 돌보는 목동)들이 말을 키워 임금에게 진상하던 갑마장이 있었다. 이 말들이 다니던 길이 바로 갑마장길이다.지난해 봄, 가시리는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설오름, 따라비오름, 잦성, 큰사슴이오름, 행기머체, 조랑말 체험공원 등 총 20km 구간 8개의 오름을 지나는 ‘갑마장길’과 그 절반의 구간인 ‘쫄븐갑마장길’의 문을 열었...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 부산 갈맷길-솔 향 머금은 해풍 맞으며 전설 따라 가는 길

    흐드러진 꽃길 사이로 꽃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파도 소리가 귓가에 철썩인다. 남녘의 봄빛과 바람에 실린 솔 향,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모두 담았다. 파도가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갈매기와 함께하는 길, 부산 갈맷길을 걷다.푸른 소나무가 안내하는 다정한 숲길숲과 바다, 강과 도심을 안은 갈맷길은 부산의 안과 밖을 촘촘히 싸고돈다. 9개 코스에 걸쳐 이어지는 총 263.8km의 여정. 무려 7백 리에 이르는 긴 길이지만 아름다운 절경을 만끽하며 부산의 숨겨진 얼굴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 한 곳 지루할 틈이 없다. 호젓하고 고요한 숲길부터 부서지는 포말과 시원한 파도 소리를 벗 삼는 바닷길, 휘황찬란한 신도시의 활기찬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도심길까지 따로 또 같이 즐긴다. 9개의 코스는 다시 크고 작은 20개 구간으로 나뉜다. 어느 길을 걸을까 고민하다 문탠로드에서 오륙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2코스를 걸어보기로 한다. 봄이 되면 만발한 벚꽃들로 꽃 대궐을 이루는 달맞이고개와 ...
    [행복 걷기]부산 갈맷길-솔 향 머금은 해풍 맞으며 전설 따라 가는 길
  • 하동 토지길을 걷다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 경남 하동 악양에는 풍요로운 황금빛 계절이 깊어가고 있었다. 지리산 맑은 물로 몸을 불린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생생한 자연의 에너지가 생명의 기운을 일으키는 곳.따사로운 가을볕 아래 눈부신 황금 들녘을 가로지르니 만석지기 사대부가 부러울 것이 없다.끝없이 펼쳐진 황금물결 속으로 풍덩거지가 1년 내내 집들을 돌며 동냥을 해도 들르지 못하는 집이 세 집이나 된다는 풍요와 인심의 땅. 지리산과 섬진강에 감싸 안긴 83만 평 악양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사시사철 꽃과 풀이 마를 날 없는 이 비옥한 땅에 박경리 선생은 만석지기 사대부집을 지었다. 토지길은 대지주 최씨 가문과 민초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소설 「토지」의 무대를 휘감아 돈다.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섬진강변과 화개까지, 그림 같은 풍경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다. 총 31km 중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됐던 평사리를 지나는 1코스(18km)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
    [행복 걷기]하동 토지길을 걷다
  • 산과 물이 빚어내는 청풍호의 진면목-제천 자드락길

    ‘나지막한 산기슭 비탈진 땅에 난 작은 오솔길’. 자드락길은 이름에서 주는 어감만큼이나 사랑스러운 길이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충북 제천.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비단결 같은 청풍호와 수려한 산세를 넘나드는 호사를 누렸다.천년고찰에서 세상 삼라만상과 마주하다‘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품고 있는 제천은 물만큼 산도 많은 곳이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비봉산과 장엄한 비경을 품은 월악산, 남한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금수산 등 수려한 산세에 숨어 있는 마을도 많다. 자드락길은 제천의 아름다운 호수와 산, 마을을 아우른다. 총 길이 58km, 7개의 다양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코스마다 개성이 뚜렷해 골라 걷는 재미가 있다. 그중 두 번째 코스인 정방사길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길이다. 산행을 즐기지 않거나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이라도 만족스럽게 둘러볼 수 있으니 꼭 한번 가보자. 길은 금수산의 숨은 계곡인 능강계곡 입구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정방사까지는 약 2...
    [행복 걷기]산과 물이 빚어내는 청풍호의 진면목-제천 자드락길
  • 여름 속의 겨울, 그 안의 봄 ‘홋카이도 매직 로드’

    소운쿄 호텔에 여장을 풀고 창문 너머로 만년설로 덮인 구로다케산의 정상을 바라볼 때만 해도 내가 내일 아침 오를 산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7월 1일 오전 7시, 나는 발목에 스패츠를 차고 스틱을 양손에 든 채 눈 덮인 산을 오르고 있다. 홋카이도 곳곳을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또 걷고 싶은 마법 같은 휴식의 길. 그 길은 중독성 강한 유혹이었다.구로다케 코스 계절을 초월한 아름다움새벽 6시 첫 로프웨이를 타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반바지에 단화 차림부터 곰을 쫓기 위한 방울을 배낭에 건 프로 산악인까지 차림새가 다양했다. 전망대까지만 올랐다가 내려가는 관광객도 많은 탓이다. 1백1명까지 탈 수 있다는 로프웨이로 5부 능선까지 다다랐다. 눈 덮인 정상이 성큼 가까워졌다. 일본에서 가장 늦게까지 핀다는 벚꽃(지시마 사쿠라)에 시선을 빼앗길 새도 없이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오른 지점이 해발 1,520m 7부 능선. 산악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껴입었던 재킷을 벗고 자외...
    [행복 걷기]여름 속의 겨울, 그 안의 봄 ‘홋카이도 매직 로드’
  • 서촌에서 북촌까지…서울, 봄 산책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를 켰다. 이유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봄이 왔다는 신호다.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 어느새 다가온 봄을 만끽하며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걸었다.소박하고 아늑한 골목 풍경 속으로봄이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 작고 오래된 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촌이다. 높은 빌딩과 차들이 달리는 광화문을 지척에 두고도 느긋할 수 있는 곳, 더없이 느린 걸음으로 낮은 한옥과 작은 골목들이 만들어내는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우선 시장 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금천교시장은 과일 가게와 정육점, 쌀집, 철물점 등 언뜻 보아도 관록이 느껴지는 오래된 가게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이다. 어스름 해가 질 무렵이면 술 한잔을 기울이러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정신없이 떠들썩했던 시장도 한적한 주말 아침, 한 템포 쉬어간다. ...
    [행복 걷기]서촌에서 북촌까지…서울, 봄 산책
  • 봄 내음 가득 품은 꽃길 따라 제주, 첫봄을 만나다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겨우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매화가 참았던 꽃망울을 톡, 하고 터뜨리듯.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노란 유채와 붉게 영근 동백, 따사로운 봄볕 아래 묵은 겨울을 털어냈다. 제주올레에서 만난 가장 이르고도 완연한 봄이다.입춘보다 먼저 온 봄, 서귀포 걸매생태공원매년 오는 봄이지만 올해만큼 애타게 기다린 적은 없는 듯하다. ‘어디쯤 오시려나’ 멀리서 오는 손님 마중하듯 길게 목을 빼고 떠난 여행. 떨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제주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봄이 따뜻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제주에서도 가장 먼저 봄을 만날 수 있는 서귀포시. 천지연 폭포 상류에 위치한 걸매생태공원은 매화를 비롯한 각종 야생화와 나무,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봄이 되면 앞 다투어 피어난 꽃들과 지저귀는 새들로 한껏 소란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도 입춘보다 하루 먼저 이곳 매화원의 백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공원에 들어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올봄 첫 매화를...
    [행복 걷기]봄 내음 가득 품은 꽃길 따라 제주, 첫봄을 만나다
  • (1) 선자령 풍차길-은빛 설원 위, 하얀 풍차가 나를 반기네

    뽀드득뽀드득, 폭신한 눈 위로 흔적을 남기며 길을 간다. 어느새 눈앞에 펼쳐지는 건 시리도록 하얀 평원, 그리고 푸른 바다다. 풍차가 안내하는 백두대간에서. 2013년 새해, 시작하는 마음.겨울의 한가운데, 설국으로 떠난 여행까만 새벽을 밟고 나서는 여행자의 발걸음엔 아직 졸음이 가득하다. 몇 십 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뼛속을 파고들던 12월의 한가운데였다. 영하 15℃, 긴장할 수밖에 없는 기온에 중무장을 하면서도 주말 내내 강원도 일대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기대감이 잔뜩 피어오른다. 목적지는 강원도 바우길의 첫 번째 코스, 대관령(832m)에서 선자령(1,157m)으로 이어지는 선자령 풍차길이다. 이한치한(以寒治寒)도 아니고, 꽁꽁 얼어붙은 추위에 대관령으로 향하는 이유는, 설원과 풍차가 어우러진 하얀 눈 세상을 보기 위해서다. 백두대간의 등길을 따라 우리나라 최대의 풍력 단지를 이루고 있는 선자령은 능선 위 펼쳐진 초원과 하얀 바람개비 같은 풍차들이 이국적인 풍경...
    [행복 걷기](1) 선자령 풍차길-은빛 설원 위, 하얀 풍차가 나를 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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