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7 08:00아직 바람 끝은 매섭고 해는 낮게 걸려 있다. 달력상으로는 분명 찬 겨울인데 시장 채소 가판 한쪽엔 봄동이 천지다. 특이하게도 이름에 ‘봄’이 들어가 있지만 봄동의 진짜 제철은 겨울의 한 자락, 바로 지금. 주로 1~3월에 수확해 먹는 봄동은 특히 설 전후로 달큼한 맛이 들어차는데, 이 시기를 잊고 있다가 놓쳐버리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한데 이달의 봄동 맛을 이미 알고 있다면 놓칠 수가 없는 것이 인지상정.겨울을 온몸으로 버텨낸 봄동은 잎이 단단하고 속이 꽉 차 있다. 찬 기운을 머금은 채 천천히 자라서인지 단맛이 또렷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도래한 봄기운이 묻은 봄동보다 지금 먹는 봄동이 더 맛있다고들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을 때 먹어야, 진짜(?) 봄동을 만날 수 있나니.이 봄동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단순하다. 화려한 양념도, 복잡한 손질도 필요 없다. 살짝 데쳐 숨만 죽이고, 물기를 꼭 짠 뒤 된장(토장)으로만...
2026.01.31 08:00냉장고 문을 열어 또 처음 본 신세계인 양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별거 없네’ 하며 콩나물 한 봉지와 잘 익은 김치를 꺼내는 순간, 오늘의 집밥 메뉴가 척하고 정해진다. 나름의 레시피를 상기하며 냄비에 물을 올리지만 사실 이 국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저 집에 있던 재료들로 엄마의 ‘손맛’을 이어 붙이려 노력할 뿐.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추위가 계속되면 생각나는 건,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뜨거운 ‘김치 콩나물국’ 한 그릇. 감기에 걸렸을 때나 괜히 기운이 없던 날, 특별한 반찬 없이도 김치 콩나물국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말아 조용히 비워냈더랬다. 늘 조금 얼큰했고, 혀끝을 톡 쏘는 신맛 뒤로 묵직한 위로가 따라왔던 우리 집 특제 김치 콩나물국.김장김치를 썰어 넣을 때 퍼지는 시큼한 향과, 콩나물이 물속에서 숨을 틔우듯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괜스레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특별할 건 아무것도 없는데 추억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손도 마음도 자꾸만 간다....
2026.01.24 09:00부엌 안에 따뜻한 밥 냄새가 퍼지면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다. 그날의 운세가 맹꽁이였어도 상관없다. 어떤 기분이든 단박에 해피하게 바꿔줄 수 있는, 스스로의 ‘비기템’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의 피곤함이 부드럽게 녹아 사라지는 푸근한 밥의 향기. 그 위에 내가 좋아하고 내 몸이 좋아하는 것들을 척척 올려주면, 한 그릇에 단지 ‘음식’ 이상의 무언가가 담기고 만다.밥솥에 쌀을 얹어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부엌 한편에 꺼내 둔 스테이크용 연어(껍질 없는)를 바라보니 사방이 짙은 오렌지빛이다. 그리고 썰어둔 제철 무 한 조각. 덕분에 아직 요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다 설렌다. 이 단출한 재료들이 만들어 낼 조화로움, 연어의 무던하고 고소한 기운과 무의 시원한 아삭함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완성될 한 끼에 내 기대도 함께 부푼다.곧 완성됐다고 ‘뻐꾹’거리는 밥을 먹을 만치 퍼다가 내열그릇 위에 평평하게 담고, 그 위로 촘촘하게 채 썬 무를 덮듯이 올...
2026.01.17 07:00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버거운 겨울의 하루. 신년 맞아 해버렸던, 얼마 안 된 큰 다짐들은 다 어딜 가고 그저 잠이나 좀 더 잤으면 좋겠다고. 사위가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 사무실에 나갔다가 종종거리며 퇴근하고는 우리 집 어린이를 데리러 간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또 저녁 시간. 차마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느긋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종일 간을 탓하며 급한 마음에 동동, 후루룩 뚝딱 요리에 손이 가고 마는데.간단하면 어떻고 불 안 쓰면 어떠랴. 맛있게 먹을 수도 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도 있으면 만사가 전부 태평이다. 고기와 채소 두루 둘러 온 가족 누가 먹어도 죄책감이 없는 저녁 식사의 서막. 그 서막과 동시에 5분이면 완성되는 휘뚜루마뚜루 ‘우삼겹 숙주찜’, 간도 넉넉히 해주고 곁다리로 ‘찍먹’소스도 같이 내놓으면 뚝딱하고 끝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코를 박고 먹으니 이것이야말로 신년의 땡큐가 아닐는지.전자레인지에 찌듯 조리해도 에...
2026.01.10 09:00연신 요란했던 새해 첫 주가 지나간다. 유독 시끌벅적했던 연말연시의 기운마저 슬슬 사라지는지 주위가 사뭇 고요한데 마음은 자꾸 동동 뜬다. 사무실 안에 앉아서도 손끝이 시린 추운 날이지만 쌩쌩 부는 찬바람에 미세먼지도 저만치 흩어졌는지, 사위가 퍼렇기만 한 것이 기분 또한 꽤나 쾌청하다. 덕분에 부득이 쉰다는 생각 없이 일하러 나왔지만 마음이 성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럭키비키’인가.럭키비키한 기분으로 오늘의 먹거리를 생각하니 역시나 뜨끈한 떡국 생각. 한데 지난주 해 먹었으니 오늘은 기출 변형으로다 만둣국이 맞겠다. 간편한 연두링 사골 국물에 냉동실서 꺼낸 만두 넣고 와글와글 끓이면 후루룩 뚝딱 끝나는 만둣국. 취향 따라 달걀물 휘릭 둘러 몽글하게 익혀주거나, 대파 얇게 찹찹 썰어 넣으면 은은한 향도 씹는 맛도 다 좋은 한 그릇 요리가 쉽게 완성된다. 거기에 잘 익은 김치 꺼내 잘라 곁들이고 김가루 올려 쓱쓱 섞어주면 먹을 때마다 뿌듯해지는 한 상이 된다.어제...
2026.01.08 13:53아침을 간단하면서도 든든하게 먹고 싶다면 ‘코티지 치즈 스크램블 에그’를 추천한다. 계란에 코티지 치즈를 조금 섞는 것만으로도 부드럽고 크리미한 식감을 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조리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코티지 치즈는 계란을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고소함과 촉촉함을 더해준다. 동시에 단백질 함량도 높아 아침 한 끼로 만족도가 크다. 바쁜 평일 아침에 특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어떤 코티지 치즈가 좋을까. 지방 함량이 2~4% 정도인 제품이 가장 무난하다. 계란이 익는 동안 자연스럽게 녹아 식감이 고르게 어우러진다. 무지방 제품은 수분이 많아 약간 분리될 수 있지만, 집에 있는 재료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콜레스테롤이 걱정되어 흰자만 먹는 이도 있다. 그러나 계란을 전부 흰자로 바꾸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코티지 치즈 자체에 수분이 있어 흰자만 쓰면 물기가 많아진다. 대신 계란 1개를 흰자 2개로 바꾸거나, 기존 레시피에 흰자 1~2개를 추가하는 방식은 ...
2026.01.03 08:00분명 홀가분하게 나선 퇴근길. 새벽녘 출근 때보다 기온이 더 떨어진 탓인가, 아니면 마음이 가벼워진 탓인가, 유독 차게 느껴지는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김없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풍경이 있으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가마솥과 그 안에서 뽀얗게 우러나는 진한 국물, 투박하게 썰어 넣은 고기가 가득한 국밥집의 모습.이 국밥이란 단순한 끼니라기보다 하루를 달래주는 위로의 음식이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단번에 녹여주는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어릴 땐 뜨거운 국물을 입에 척척 넣고는 “아따~시원하다~”를 외치는 아재 감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젠 다 안다. 알아버렸다. 따수운 국물에 토렴해 나온 축축하고 진한 쌀밥을 국물과 한술 떠 후루룩 넘기면 입에서부터 위장까지 얼쑤 좋아서 요동친다는 것을.돼지 뼈를 사다 핏물을 빼고 몇 시간 동안 불 앞을 지켜가며 육수를 내면 맛있고, 물론 집에서도 할 수 있겠지만… 아니 ...
2025.12.27 07:00집에서 요리한다는 것은 때론 거창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특히 ‘스테이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아주 상당하다. 두툼한 고기 속까지 적절히 익히는 온도 조절, 불 조절, 육즙을 가두는 타이밍, 그리고 맛의 정점을 찍어줄 소스까지. 이 모든 과정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연말 맞이 요리는 그냥 나가서 사 먹자는 결론이 나고 만다. 분명 오붓하게 모여 집에서 편안히 즐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면서도.그래서 엄두를 내본다. 하다 보면 그 또한 별일이 아니게 될 테니까! 스테이크를 ‘홈쿡’하는 일이 별일이 되지 않으려면 방법을 단순화하면 된다. 복잡한 과정과 여러 재료 없이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맛과 멋을 만들어 내는 것. 예열된 팬 위에 돼지고기 목살을 올리는 순간이 바로 시작이다. 치익-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가는 주방이 어느새 활기찬 공간으로 바뀌면, 마음속 일말의 ‘귀차니즘’ 역시 날아가고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너무 두껍지 않은 목살은 집에 있는 팬에 ...
2025.12.20 08:00아침부터 저녁까지 삭풍이 몰아치는 찬 겨울. 식탁에는 쉬이 만들기 좋은 ‘전’ 요리를 끼니마다 올린다. 유독 따뜻하고 고소한 향이 온 집안을 휘감는 전 요리들. 지글지글, 기름 위에 부쳐내면 으레 밀려들었던 찬 공기의 질감이 포근하게 바뀐 것만 같은 기분, 마음까지 몽글몽글하니 온기를 불러온다.두툼한 해물전이나 부추부침개, 김치전 같은 익숙한 것들도 물론 좋지만 밀가루와 그 친구들(부침·튀김가루) 없이도 쫀쫀한 맛을 자랑하는 전이 있으니 바로 버섯으로 만든 전이다. 이 추위에도 탱글탱글 살이 오른 새송이버섯을 한 봉지 사다 알알이 편으로, 또 채로 전부 썰어 식감 잔뜩 살린 전을 만든다.잘게 잘린 버섯들 사이사이를 이어붙이는 것은 달걀, 새송이의 밍밍한 맛을 상쇄시키는 건 모양 맞춰 썰어 넣은 양파와 고추들이다. 잘 풀어낸 달걀에 칼질한 재료들 모두 넣고 요리에센스 연두로 간을 잡아 휘휘 섞어준다. 그리고 프라이팬 위 열 오른 기름 위에 한입 크기로 쫑쫑 올려 앞, ...
2025.12.13 08:00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확신이 드는 날. 창문 밖 공기가 유리창을 파고들어 실내의 온기마저 서늘하게 식혀버리는 그런 날. 해는 일찍 기울고 길거리의 불빛마저 움츠러든 것처럼 느껴지는 저녁이 오면, 내 몸은 자연스레 가장 원초적인 위안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갈망의 끝에는 언제나 빨갛고 영롱한 순두부찌개가 반짝반짝 아른아른.급한 추위를 꺼보려고 이맘때 찾는 순두부찌개에는 육고기든 해물이든 재료가 부족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찬찬히 볶는 것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기름에 볶아지는 양념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지글지글 부산해지고, 매캐한 듯 구수한 향이 코끝을 맴돌며 온 집안에 ‘이제 막 따뜻한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안도감을 퍼뜨린다.잠시 후 썰어 둔 대파와 양파도 함께 넣어 달달 볶다가 요리에센스 연두를 넣어 간을 딱 잡아주고, 물과 순두부, 애호박과 연두링(황태와 무)을 넣어 국물을 바글바글 끓여준다.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