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0 19:56‘이제 책 읽어주기는 안 해도 되겠지?’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누구나 이런 기대를 품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 초등학생이 돼도 아이는 변함없이 책을 읽어 달라고 쪼르르 달려옵니다. 처음 몇 주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고 이해하며 책을 읽어주지만 몇 주가 몇 달이 되고, 몇 달이 한 학기가 돼도 아이는 어김없이 책을 읽어 달라고만 합니다.‘이렇게 계속 읽어주는 게 맞을까?’ ‘내가 오히려 혼자 읽기를 훈련할 기회를 뺏는 게 아닐까?’여기에다 제법 두꺼운 책도 혼자서 척척 읽는 옆집 아이까지 있으면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그러면 결국 아이를 다그치게 되죠.“옆집 ○○이 봤지? 혼자서 그 두꺼운 책을 읽잖아. 너도 이제 혼자서 읽는 훈련을 해야 해. 하루에 30분이라도 혼자서 읽어. 알았어?”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펼치지만 좀처럼 집중을 못 합니다. 5분도 채 안 돼서 “그만 읽으면 안 돼?” 하고 칭얼대죠....
2021.06.13 20:24책의 세계가 낯설고 책을 고르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초보 독서가에게 도서관은 최적의 독서 훈련장입니다. 몇 가지 규칙만 정해놓으면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것만으로도 쉽게 독서가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한 달에 두 번 도서관 가는 날을 정합니다. ‘둘째·넷째 주 금요일 오후 5시는 도서관 가는 날’ 하는 식으로 일정을 못박아 둡니다. 또 도서관 방문 시 최소 30분은 서가의 책을 구경하면서 푹 빠져서 읽을 것 같은 책을 가능한 한 많이 찾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읽을 수 있는 양을 고려하지 않고 도서 대출카드 한도껏 책을 빌립니다.주기적으로 도서관에 가서 책 구경을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책을 빌리는 것은 ‘구경을 하고 책을 고르는 행위를 통해 책을 고르는 감각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옷 구경을 많이 해 패션감각을 기르는 것과 같은 원리죠. 또 자기만의 도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이런 방식으로 몇 달만 책 구경을 하면 도서관에 있는 책 ...
2021.05.23 20:51독서가는 재미있게 읽은 책 한 권으로 태어나고, 재미있는 책을 찾아서 스스로 서가를 넘으면서 성장합니다. 책을 고르는 능력은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길러야 하는 능력입니다. 책 고르는 능력이 있어야 책을 잘 읽을 수 있고, 책을 잘 읽어야 독서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아직 책의 세계가 낯설고 책을 잘 모른다면 무슨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막연할 수 있습니다. 이 막연함을 떨치는 유일한 길은 실물 책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이나 서점의 서가로 걸어 들어가서 ‘어디 재미있는 책 없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일단 들여다보면 재미있겠다 싶은 책을 찾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바로 알게 됩니다.흥미가 가는 책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의 책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동화나 소설이, 자전거 취미에 푹 빠져 있다면 자전거를 다룬 책이 흥미로울 수 있는 거죠. 이런 책을 만나게 되면...
2021.05.09 11:56언어 수준이 높은 책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글로 적혀 있지 않은 의미를 읽어내야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용 지식도서는 글만 잘 읽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성인용 지식도서는 관련된 기본 상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멈춰 서서 관련된 지식을 찾아봐야 합니다. 문학작품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상징’과 ‘함의’입니다. 시나 고전 명작, 현대소설은 물론이고 가장 초보적인 언어 수준을 갖는 그림책에도 상징과 함의가 있죠. 당연합니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고, 언어 자체가 상징과 함의의 기호 체계니까요.그런데 이 상징과 함의는 언어 수준이 낮은 책일수록 읽기 쉽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를 읽고 토끼는 ‘재주는 많지만 오만한 사람’을, 거북이는 ‘재주는 부족하지만 성실한 사람’을 상징함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언어 수준이 낮을수록 이야기와 상징이 단순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야기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겁니다....
2021.04.25 20:33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독서는 언어능력과 흥미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이고, 깊이 감정이입을 할수록 높은 독서효과를 누릴 수 있고, 생각을 많이 할수록 좋은 독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독서의 기본원리를 섣불리 적용해서는 안 되는 연령대가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입니다.예를 들어 보편적인 기준에서 속독은 책의 내용과 정서를 충분히 들여다볼 수 없다는 점에서 나쁜 독서법입니다. 그런데 이를 초등 저학년에게 적용하면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초등 저학년이 속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저학년은 진득하게 책을 읽는 것보다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책 한 권을 휘리릭 넘겨보고는 다른 책을 또 휘리릭 넘겨보는 식입니다. 어쩌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때도 있지만 그 빈도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적습니다. 10권을 펼치면 그중 1권을 제대로 읽을까 말까 합니다. 영락없는 속독, 그것도 초광속 속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죠....
2021.04.11 19:58지난 번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독서가는 책을 읽다가 멈추는 순간을 통해 사색으로서의 독서에 눈을 뜹니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독서능력이 뛰어난 독서가라 하더라도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는 그 모든 순간에 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잠길 수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책의 부분 부분은 깊게 들여다볼 수 있지만 부분 부분이 어떻게 연결돼 책 전체를 이루는지까지 들여다보기는 힘듭니다. 그러니 책 전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독서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수많은 독서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수준의 독서를 해냅니다. 그것도 의도치 않은 방법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입니다. 바로 반복독서를 통해서입니다.독서의 모든 것이 그렇듯 반복독서 역시 ‘책을 여러 번 읽어야지’ 하고 결심하는 방식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좋은 책, 지금 막 엄청난 것을 읽었는데 그 정체를 완전히 알지 못...
2021.03.28 20:09독서교육 이론에서는 ‘활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독서’를 가장 성숙한 단계의 독서로 봅니다. 바로 ‘사색적 독서’죠. 영화를 보고 하는 생각, 여행을 가서 하는 생각처럼 책을 읽고 하는 생각이 ‘사색적 독서’입니다. 아이들이 판타지 동화를 읽다가 상상에 빠지거나 죽음을 다룬 동화를 읽고 부모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생각에 엉엉 우는 것도 사색적 독서의 일종입니다.사색적 독서로의 이행은 아기가 팔다리에 힘이 붙으면 걸음마를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독서 자체를 즐기면서 꾸준히 읽으면 자연히 사색적 독서를 하게 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고도 독서의 메타인지로 넘어가는 독서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독서가도 많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이유가 뭘까요?푹 빠져 읽기를 거듭하면 독서 근육이 강화되면서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한결 쉬워집니다. 예전에는 ‘읽고 이해하기’라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과부하...
2021.03.14 20:11일전에 보다 깊이 읽는 독서법으로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방법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의 재미와 효과는 책을 읽는 동안 발생하는 생각과 감정의 크기와 깊이에 의해 좌우되는데, 등장인물에 감정에 집중하겠다는 자세를 갖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을 읽는 독서 외에 활용할 수 있는 독서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활자의 이면을 읽는 독서, 글자로 적혀 있지 않은 의미와 정서를 파악하는 독서 방법입니다.우리가 보는 풍경 전체를 사진에 담을 수 없듯 작가는 작중 상황 전체를 책에 담을 수 없습니다. 작가는 직접 표현하는 것 외에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표현하지 않은 메시지를 파악하겠다는 자세로 책을 읽으면 독서를 훨씬 더 깊이 할 수 있습니다.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데, 작중 화자를 활용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입니다. 특히 1인칭 화자일 때 이런 특징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1인...
2021.02.21 10:57독서 수업을 하다 보면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이 책 속의 구체적 사실들을 세부적으로 기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넘볼 수 없는 타고난 지능이나 기억력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등장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했는가, 모자를 쓰고 있었는가 벗고 있었는가까지 기억해 낼 수 있으니까요. 독서를 통한 언어능력 향상 폭도 압도적으로 크게 나타납니다. 그러니 ‘저렇게 머리가 좋으니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지’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하지만 이런 능력은 타고난 지능이나 기억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능력은 전적으로 책을 읽을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줄거리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면 되죠.예를 들어 아이가 방문을 닫고 부모님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장면을 읽는다고 할 때 줄거리에 포커스를 맞추면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식으로 다음을 예측하는 ...
2021.02.08 08:34‘좋아하는 책만 읽으면 편협한 독서를 하게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한 장르의 책, 비슷한 종류의 책만 읽으면 독서도 생각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겠느냐고 염려하시는 거죠. 타당성이 있는 걱정입니다. 실제로 한 장르의 책만 읽다 보면 생각이 편협해지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염려가 나의 독서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먼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한 종류의 책만 읽는 것이 정말로 나쁜 독서법인가 하는 점입니다. 같은 종류의 책만 읽는 것은 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준전문가급의 독서가가 되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외계인 마니아였던 칼 세이건이 세계적 천체물리학자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또 로맨스 영화 마니아나 공포영화 마니아가 있듯 추리소설 마니아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독서는 우리가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생활 중 하나입니다. 문화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취향을 묵살하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나쁜 일일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