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순수하고 사람은 수수하다 - 노르웨이 베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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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순수하고 사람은 수수하다 - 노르웨이 베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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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베르겐은 웅장한 대자연이 있는 것도 아니요, 화려하고 반짝이는 유명 관광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가야 하는 이유는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우리네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으나 다른 그네들의 일상을 통해 우리를 반추한다.

플뢰엔 산에서 내려다본 베르겐 항구

플뢰엔 산에서 내려다본 베르겐 항구

뭉크와 입센, 문화 수도 베르겐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오슬로보다 베르겐을 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베르겐 사람들의 자부심도 높아서 자신을 소개할 때 “노르웨이가 아니라 베르겐에서 왔다”고 할 정도다. 베르겐은 중세 때 노르웨이의 수도였다.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한 작곡가 그리그의 집이 있다. ‘절규’의 화가 뭉크와 좥인형의 집좦을 지은 입센도 노르웨이 출신인데 이들의 활동 무대도 베르겐이었다. 해서 베르겐은 노르웨이의 문화 수도라고 할 만하다.

베르겐의 목조 가옥.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베르겐의 목조 가옥.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노르웨이는 5월에야 봄이 온다. 북녘 땅의 겨울은 길다. 한겨울에는 해가 아예 뜨지 않는 곳도 있다. 해를 못 보기에 사람들은 집에다 ‘브라이트 라이트’라는 빛이 쏟아지는 난로를 하나씩 두고 있다. 햇살이 없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브라이트 라이트는 일종의 가짜 태양이다. 아마도 이런 날씨 때문에 뭉크의 ‘절규’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겨울은 우중충하지만 5월부터는 햇살이 좋다. 해가 길어진다. 6월이면 백야가 나타나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웃통을 벗어젖히고 햇볕을 즐긴다. 북유럽 사람들이 해를 보면 공원에서도 일광욕을 즐기는 것은 바로 이런 기후 때문이다. 북녘의 대지는 이런 데 매력이 있다.

비행기를 놓쳐 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베르겐은 참 아름다웠다. 나무 집들이 어깨를 기대고 서 있는 부두. 거기에 인형들이 살 것 같은 집이 앉아 있었다. 노르웨이 특유의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집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안겨줬다.

플뢰엔 산에서 보는 베르겐 항구는 절경을 자랑한다.

플뢰엔 산에서 보는 베르겐 항구는 절경을 자랑한다.

풍요로운 북해, 베르겐의 역사
베르겐의 역사를 살펴보자. 북해가 주목을 받은 것은 중세 때다. 항해술이 좋아지면서 먼 바다로 향해 나간 이들은 엄청난 대구어장을 발견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베르겐은 그 중심 도시 중 하나다. 과거에는 바이킹의 땅이었고, 검은 바다에 칼 한 자루 들고 뛰어들었던 바이킹 용사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 칼을 거둬들였던 것이다. 12세기 이후 유럽은 상인들이 활발한 무역활동을 벌였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 상인들이 바로 한자(Hansa)다. 이 상인들을 보호하자는 도시동맹이 바로 한자동맹. 베르겐도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였다. 베르겐의 브리겐 부두에는 독일인만이 묵는 상관을 짓고 무역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보세구역 같은 곳이었다.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칠한 베르겐의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옛 건축물들을 가까이서 보면 조금씩 기울었다. 워낙 오랜 세월을 버텨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지만 1층에는 작은 바들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맥주잔을 들고 팝송을 불렀다. 맥주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은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 노르웨이의 물가는 살인적이어서 생수 한 병에 5천원이 넘는다.
플뢰엔 산 숲길. 생가 옆 바위벽에 있는 그리그 묘. 그리그 생가와 야외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베르겐은 맥도날드 가게도 예쁘다(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플뢰엔 산 숲길. 생가 옆 바위벽에 있는 그리그 묘. 그리그 생가와 야외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베르겐은 맥도날드 가게도 예쁘다(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원래 노르웨이는 가난한 나라였다. 유럽에선 변방이었다. 기후도 그리 좋지 않았고 스웨덴이나 덴마크 왕국처럼 강력한 군대도 없었다. 주요 산업은 광업이나 어업이었다. 그런데 원유 값이 올라가면서 노르웨이는 돈방석에 앉았다. 북해산 기름이 쏟아지고 오일샌드를 수출하면서 노르웨이는 세계적 부국이 됐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를 상회했다고 한다. 룩셈부르크 다음 정도로 높다. 그래도 국민들은 가난하다.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거둬가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제도는 잘 돼 있다.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
어부들의 나라였던 노르웨이 사람들은 여전히 촌놈 같다. 멋을 낼 줄 모른다. 루이뷔통 백을 든 사람도 없고, 샤넬 백 들고 다니는 여자도 없다. 겨울에는 어둑어둑해서 뭘 들고 다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폼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치품이 안 통하는 나라가 노르웨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관광명소라면 어디든지 있는 루이뷔통이니 샤넬 같은 명품 매장이 없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첫째도 실용, 둘째도 실용, 셋째도 실용이다. 북유럽의 디자인이 단순하고 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햇살이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집값이 비싸다. 햇살이 더 잘 들기 때문이다.

생가에서 본 바다.

생가에서 본 바다.

어쨌든 베르겐은 낭만적이다. 수백 년 묵은 나무 집에 예술가의 작업실도 있다. 이런 나무 집도 사실은 재건축으로 사라질 뻔했다. 당시 주민들은 좀이 슬지 않게 생선 기름을 발랐는데, 걸핏하면 불이 났단다. 그래서 지방정부는 건축물들을 모두 부수고 석조 건물로 지으려 했다. 재건축 공사를 시작하려 할 때 엉뚱하게도 다른 지역에서 불이 나면서 이 나무 집을 허물자는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길 떠나는 길]자연은 순수하고 사람은 수수하다 - 노르웨이 베르겐

[길 떠나는 길]자연은 순수하고 사람은 수수하다 - 노르웨이 베르겐

베르겐의 목조 가옥은 박물관으로도 쓰인다. 바이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고 북유럽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념관도 주변에 있다. 노르웨이에서 눈여겨볼 것은 유독 많은 붉은 집. 이게 바로 노르웨이의 색깔이다. 과거 바이킹들이 동물의 피로 집을 칠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관광 포인트는 플뢰엔 산. 톱니바퀴차로 올라갈 수도 있고 걸어서도 갈 수도 있는 이 산은 베르겐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베르겐의 부둣가가 한눈에 보인다. 전망대 옆에는 식당도 있다. 차로 올라간 뒤 걸어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숲이 좋아서 걷기에도 좋다.

베르겐 사람들이 추천하는 곳은 그리그의 집. 그리그가 살았던 집에는 항상 국기가 걸려 있다. 그리그는 생전에도 이름난 작곡가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예우를 갖췄다. 그리그가 집에 있을 때는 깃발을 올리고 그리그가 집에서 나왔을 때는 깃발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그의 집은 늘 방문객들로 붐빈다. 노르웨이 학생들도 그를 찾아오고 관광객들도 ‘솔베이지의 노래’의 현장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리그의 집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언덕배기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는 바다를 보면서 노르웨이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는 죽어서도 그곳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사람들은 바위벽에 구멍을 내고 그를 묻었다.

그리그의 생가에서는 콘서트도 많이 열린다. 비스듬한 절벽을 이용해 자그마한 콘서트홀을 지었는데 이 홀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절벽에 계단식 논처럼 돼 있는 콘서트홀에서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생각만 해도 즐거울 정도로 아름답다.

베르겐은 북유럽 사람들이 아끼는 고도 중 하나다. 서유럽과는 다른, 소박하면서도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도시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겹다. 노르웨이의 즐거움은 순수의 발견에 있다. 자연은 순수하고 사람은 수수하다.

여행 길잡이
노르웨이 직항편은 없다. 암스테르담을 거쳐 들어간다. 암스테르담까지는 11~12시간, 암스테르담에서 베르겐은 2시간 거리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으며 네덜란드와는 시차가 없다.

■글&사진 / 최병준(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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