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의 ‘행복’ 중
금요일 자정 무렵, 심야 고속버스에 몸을 맡기고 떠나는 안식과도 같은 주말 여행이다. 시조시인 이영도를 향한 청마 유치환의 전설 같은 순애보를 떠올리며 통영행 버스를 탄 것이다. 통영 하면 시인들의 고향으로 통한다. 계관시인이랄 수 있는 문인들을 즐비하게 배출한 고장이다. 김춘수, 박경리, 김상옥 등의 이름들은 내가 교과서에서부터 익히 접해왔던 경외의 대상들이었다.
이 문호들에 가려서 그렇지 음악의 윤이상, 미술의 전혁림 등은 또 어떤가. 그야말로 통영에서 접한 예술가들의 이름만 외워도 교양의 적지 않은 분량이 완성될 것 같지 않은가. 나 같은 속물이야 저들의 위대한 예술 세계에는 범접할 수 없다 해도 드라마 같은 세기의 순애보를 탐독하고 순례에 나설 욕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토록 많은 예술가를 키워낸 통영의 속살
새벽 4시에 도착한 통영은 바람이 세찼다. 꿈결 같은 순애보는 온데간데없고 칠흑 같은 어둠의 거리를 잠시 배회해야 했다. 다행히 찜질방을 만나 몸을 녹이면서 잠시 동안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6시가 되어 통영항에 있는 여객터미널로 길을 나섰다. 6km 정도 거리 사이의 원문 터널 고개가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갓길이 양호하고 다닐 만했다. 달리 GPS가 없어도 남쪽으로만 따라 내려가면 되는 길이었다. 진해에서는 군항제가 열리는 시기인데도 아직 벚꽃은 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홀로 떠 있는 그림 같은 무인도 곁으로 배가 지나다닐 때마다 판타지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는 꿈꾸기와 사색이 그토록 많은 예술가를 키워낸 것은 아닐까.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배가 섬에 도착했다. 다들 어디에 있었는지 여객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경사진 계단길을 등산해야 한다. 잠시 자전거를 맡기기도 할 겸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 들러 아침을 사 먹고 자전거를 맡겨두었다. 가파른 계단길을 따라 올라 정상에 오르니 바로 등대섬이 눈에 들어왔다. 소매물도에서 연결되어 물때만 맞으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등대섬의 모습이 바다의 금강산이라 할 만한 비경이다. 한쪽은 기암절벽으로 거칠면서도 또 다른 쪽으로는 마치 잔디를 깔아놓은 것 같은 초지로 덮여 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등대섬 말고도 주변의 섬들이 연출하는 다도해의 절경 앞에서 사람들은 온갖 시름을 다 잊고 환한 얼굴들로 함께 기쁨을 누리며 행복해했다.
시심에 담긴 언제나 푸른 바다
12시 무렵 육지로 돌아가는 첫 배가 출항했다. 가는 길에는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한 쌍둥이 섬 비진도를 거쳐 갔다. 가는 길이 한산섬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한산섬에서 잠시 내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탄 배는 그럴 수 없단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해 인근 식당에서 유명한 도다리 쑥국을 시켜 먹었다. 해쑥 향기가 도다리의 걸쭉한 국물을 개운하게 해주는 일품 메뉴였다. 이렇게 포식을 하고 나서 포구를 굽어볼 수 있는 인근의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올라갔다. 전망이 좋고 시민들이 즐겨 찾는 남망산에서 보는 풍경들을 배경으로 한 야외 조각들이 시민들과 친숙하게 어울리며 소통하고 있었다. 특히 세계적인 미니멀 작가로 부상한 이우환, 인터액티브 미니멀아트로 유명한 소토 등의 작품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동피랑 언덕에서 내려와 망일봉 기슭에 자리 잡은 청마문학관을 향해 달렸다. 동호만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그 앞에 문학관이 아담하고 깔끔하게 지어져 있다. 청마의 시심에는 언제나 푸른 바다가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오오, 나의 고향은 머언 남쪽 바닷가
반짝이는 물결 아득히 수평에 조을고
창파에 씨친 조약돌 같은 색시의 마음은
갈매기 울음에 수심져 있나니
-유치환의 ‘향수’ 중
청마는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여중에서 교편을 잡던 중에 이호우와 남매 시인인 이영도를 만나 사랑에 빠져 무려 평생 5천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한다. 현재 중앙동 우체국은 골목 안에 있어 산만하지만 ‘행복’에 나오는 바로 그 우체국이란다. 그래서 우체국의 이름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다. 희대의 플라토닉 러브 스토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청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이영도가 주옥같은 편지들을 발췌해 펴낸 서간집 「사랑하였기에 행복하였네라」가 나오면서부터라 한다. 연서이기 이전에 당대 문호의 서간문 작품들을 혼자만 간직하기가 안타까웠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1960년대 시를 공부했던 어떤 시인의 전언에 따르면, 모르긴 해도 제자들이 함께 존경하고 따랐던 문학 동지로서 문학 내에서 교감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김춘수의 감수성을 지나 전혁림을 만나다
그곳에서 미륵산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전혁림 미술관이 나온다. 우리의 미감이 압축된 색과 구성이 독보적인 전혁림 작가가 올해로 아흔여섯의 나이란다. 얼마 전까지 정정하게 작업을 하던 분이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요양 중이어서 만날 수는 없었다. 과거 이중섭이 6·25전쟁 때 통영으로 잠시 피난왔을 때 함께 그림을 그렸던 예술 동지이기도 했던 작가다. 평생 통영의 코발트빛 바다를 지키며 찬란한 색의 마술을 왕성하게 펼쳤던 작가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오후 늦은 시간인데도 미술관에 의외로 관람객들이 많았다. 안팎으로 잘 단장된 미술관을 보면 누군가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장을 맡고 있는 아들 전영근 화백의 말에 의하면 자체 개발한 문화 상품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어 2003년 설립 이래 미술관의 유지가 원활하다고 한다. 미술관 건물이 해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것도 중요한 볼거리란다. 외장 타일 일부를 새로 시공해 해마다 항상 새롭게 연출을 한단다. 어쩐지 미술관 외벽이 부분마다 상이한 패턴으로 되어 있다 싶었다.
전혁림 미술관에서 나오니 벌써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밤 11시 버스를 예약해두었기에 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길에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충렬사와 임진왜란 당시 통제영 자리를 복원 중인 세병관을 서둘러 둘러보았다. 과거 지명인 충무도 충무공에서 딴 것이고, 통제영에서 따온 지금의 통영이란 지명에서도 보듯 통영은 이순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이다. 여수, 남해, 진해, 통영, 거제 등 남해안에 위치한 지역들이 앞 다투어 충무공을 기리고 있다.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존경했다는 이순신을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충무공의 애민정신과 살신성인의 덕을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1958년생.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명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선갤러리 아트디렉터 및 한국공예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