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목적 없이 걷는 행복

테오의 여행 테라피

나가사키, 목적 없이 걷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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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사전 계획을 짜서 여행을 떠나면,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이 있다. 지금껏 그런 여행에 길들여졌다면 이번 한 번쯤은 목적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어떠냐고 테오는 묻는다. 휘적휘적 그야말로 여행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곳으로 나가사키는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인 듯하다. (편집자 주)

증상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일상이 힘겨울 때.
처방 낡은 도시 나가사키를 방문해 목적 없이 오래 걸을 것.
[테오의 여행 테라피]나가사키, 목적 없이 걷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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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혹은 강박으로부터 탈출
삶은 늘 그렇다. 우리에게 해야 할 무엇인가를 부여한다. 오늘이 어제한테 그걸 주었고 내일은 또 오늘한테 그걸 요구한다. 삶이 주는 과제를 안고 허락된 하루씩을 소모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목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월요일 없는 일요일로 한 주를 채워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행은 결국 돌아오기 위한 행위이다. 온전한 떠남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 주는 행복은 여행 전날까지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상에 변화를 줄 수는 없을까. 목표에 의해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느껴볼 수는 없을까. 수많은 계획에 의해 강박된 일상. 그것으로부터 탈출해 지독한 강박을 풀기 위한 여행.

폭탄이 떨어졌던 도시
[테오의 여행 테라피]나가사키, 목적 없이 걷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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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여행을 추천한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어떠한 사전 정보나 예약 없이 무작정 떠나는 방식으로 나가사키를 여행할 것을 권한다. 우리는 여행마저도 강박적으로 해왔다. 이 도시에서는 이걸 봐야 하고, 몇 시 기차를 타야 하며, 무얼 먹어야만 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했다. 지금 제안하는 나가사키 여행은 다른 방식의 여행이다. 목표 없이 오래 걷는다. 이것 하나만 정해놓고 무작정 떠나는 산책 같은 여행이다. 그래도 정 마음이 불안하다면 한때 이 도시에 떨어졌던 폭탄 하나를 생각하자. 그 슬픈 파괴를 안고 온 도시가 새로 정돈되었다. 히로시마에 이어 떨어진 두 번째 폭탄처럼 우리 삶의 강박을 허무는 무작정한 여행을 시작해보자.

나가사키 걷기
나가사키는 낡은 도시다. 도쿄는 물론이고 인근에 있는 후쿠오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낡고 오래된 도시다. 그래서 이 도시를 걷는 일은 재미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롭다. 사실 이 도시에도 몇몇 관광지가 있다. 이나사야마 산을 올라가 나가사키 야경을 보는 코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가사키 짬뽕을 본토에서 먹어보는 것도 기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행마저도 강박이 되는 이유는 두 번 다시 못 올 것처럼 여행하기 때문이다. 나가사키의 착한 점 중 하나는 가깝다는 것이다. 언제고 다시 올 수 있다. 한 번쯤 아무 계획 없이 빈둥거리며 도시를 걷는데도 아까울 것이 없다.

골목이 말해주는 대로
목적 없이 걷는 여행에는 말 그대로 목적이 없다. 그냥 걷는 것이다.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물건들을 만져보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음식을 먹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이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말해주는 대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는 너무 똑똑한 삶을 살았다. 정교하게 설계한 삶의 코스대로 한 발도 어긋나지 않게 살았다. 거기서 벗어나면 낙오되어 실패한 인생이라도 되어버릴까봐. 그렇지만 길을 잃는다는 것이 꼭 실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의 경우 길을 잃어야 진정한 자기 삶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나가사키 산책은 이를테면 그걸 연습하는 여행이다. 낯선 골목으로 불쑥 들어서는 일. 예정에 없지만 그냥 들어서는 일. 그리해도 무사하구나, 별일 없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껴보는 일.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이유는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보장된 안전을 타고 위기를 느껴보는 것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본질이다. 나가사키의 낡은 골목들을 그런 마음으로 걸어본다. 준비한 계획 없이. 골목이 말해주는 방향으로.

<B>1.</B>오래된 차와 오토바이도 버리지 않는다. 수리점이나 중고 판매점을 지날 때마다 쉽게 지나치지 못할 만큼 흥미로운 물건들을 만나게 된다. <B>2.</B>시내를 가로, 세로로 가르는 두 노선의 전차가 있다. 걷다 힘들면 전차를 타보는 것도 좋다. 원하는 방향으로 전차를 타고 아무 곳에서나 내리는 것도 목적없이 걷는 여행의 행복에 포함된다.<B>3.</B>도시 어디를 지나든지 쉽게 우동가게를 만날 수 있다. 가쓰오부시가 일본에서는 유독 깊은 맛을 내는지 나가사키 우동은 대부분 깊고 진한 맛을 자랑한다. <B>4.</B>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그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은 도시임에도 다양한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벽을 살피는 일이 재미있다.

1.오래된 차와 오토바이도 버리지 않는다. 수리점이나 중고 판매점을 지날 때마다 쉽게 지나치지 못할 만큼 흥미로운 물건들을 만나게 된다. 2.시내를 가로, 세로로 가르는 두 노선의 전차가 있다. 걷다 힘들면 전차를 타보는 것도 좋다. 원하는 방향으로 전차를 타고 아무 곳에서나 내리는 것도 목적없이 걷는 여행의 행복에 포함된다.3.도시 어디를 지나든지 쉽게 우동가게를 만날 수 있다. 가쓰오부시가 일본에서는 유독 깊은 맛을 내는지 나가사키 우동은 대부분 깊고 진한 맛을 자랑한다. 4.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그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은 도시임에도 다양한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벽을 살피는 일이 재미있다.

뜻밖의 행운
이마저도 말해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야기하자면 지난번 나가사키는 내게 카스텔라를 선물했다. 무작정 들어선 가게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집어든 카스텔라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가사키의 명물이었던 것이다. 1600년대 일본이 최초로 나가사키 항을 개방했을 때 포르투갈 사람들이 들어와 만든 빵이 나가사키 카스텔라라고 한다. 밀가루, 설탕, 우유, 달걀만으로 만드는 단맛이 강한 카스텔라다. 알고 만난 빵이었다면 이렇게 기쁠 리 없지. 맛을 확인하는 기분은 의외로 별거 아니지 않은가. 우연히 맛본 카스텔라가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목표였다는 걸 아는 기분은 유쾌하다. 당신의 행운 하나를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나가사키에는 더 강렬하고 다양한 행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혹시 이게 또 다른 방식의 강박이 될 수 있을까? 숨겨진 행운을 몇 개나 찾아내는지가 일종의 목표처럼 여행을 따라붙는 강박?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은 참 고되다. 나가사키를 산책하는 일이 그 일에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나가사키의 낡은 골목에서 길을 잃어보자. 애초에 그것이 목적인 여행처럼 골목마다 길을 잃으며 오래오래 걸어보자. 당신의 여행이, 당신의 나가사키가 당신에게 무얼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말이다.
<B>1.</B>나가사키에는 주인 없이 물건을 파는 무인 가게가 여럿 있다. 산등성이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 특히 그렇다.<B>2.</B>큰 인형이나 그림을 홍보에 사용하는 가게가 많다.

1.나가사키에는 주인 없이 물건을 파는 무인 가게가 여럿 있다. 산등성이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 특히 그렇다.2.큰 인형이나 그림을 홍보에 사용하는 가게가 많다.


Travel Tip
나가사키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방법: 나가사키 공항은 세계 최초로 바다 위에 세워진 공항이다. 옆에 있는 미노시마 섬의 흙을 퍼서 바다를 메워 만들었다. 도심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공항 앞에 서 있는 버스를 타면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요금은 800엔이며 50분 정도 걸린다.

전차를 타는 방법: 시내를 걷다 보면 쉽게 전차를 만나게 된다. 기차역이나 관광객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를 지날 때 일일권을 사두는 것이 편리하지만 현금을 내고 타도 상관없다. 걷는 여행이므로 전차를 탈 일도 많지 않다. 일일권은 500엔. 현금을 내고 탈 때는 한 번에 120엔이다.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린다.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지면 하차 버튼을 누르고 요금은 내리면서 운임 상자에 넣는다.

인포메이션 센터: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호텔을 안내받을 수 있다. 무료로 나눠주는 전차 노선도를 가져오면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 물론 작은 도시이므로 지도 없이도 마음껏 산책할 수 있다.

호텔: 산책하는 중에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호텔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면 된다. 시내에 있는 작은 규모의 호텔들은 대부분 200달러 이내의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까닭에 성수기라 할지라도 호텔을 이용하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마음에 드는 호텔이 나오면 우선 예약하고 다시 나와 산책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호텔로 돌아오고 싶을 때는 도시가 작아 택시를 타도 그리 많은 요금이 나오지 않는다. 호텔의 네임카드를 갖고 다니다가 택시 운전사에게 보여주는 방법을 쓰면 편리하다.

■글&사진 / 테오(여행 테라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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