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판명화의 정원
이마데가와도리를 지나 가모가와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식물원 입구 좌측에 ‘도판명화의 정원’이 나온다. 교토 관광 안내책자에는 그다지 비중 있게 소개되지 않았지만 어떤 곳인지 궁금해 일부러 찾은 길이었다. 개장 시간까지는 한 시간가량 남아 교토의 성소로 여겨지는 북동쪽 히에이산(比叡山) 기슭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로프웨이를 타고 히에이산 정상으로 올라가 비와(琵琶)호의 절경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 역까지만 올라갔다. 하긴 거기까지만도 언덕이 많아 아침부터 땀을 비 오듯 쏟아야 했다.
‘철학의 길’을 걷다
동쪽 히가시야마 기슭으로 핸들을 돌렸다. 긴가쿠지(銀閣寺)로 알려진 지쇼지(慈照寺)로 가다 보면 ‘철학의 길’이 나온다. 근대 교토를 상징하는 철학자 니시다 이쿠타로(西田 幾多郞, 1870~1945)가 산책을 하며 사색을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주객(主客)의 일체를 통한 ‘순수 경험’ 세계를 실재의 근본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그의 철학은 메이지 유신 이후 동서 문물의 조화를 고민하던 일본 청년들만이 아니라 군국주의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주었다. 일본 현대미술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재일 화가 이우환씨도 일본 유학 초기 니시다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전거에서 내려 니사다 이쿠타로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걸어갔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 군국주의의 논리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어딘가 멀게만 느껴지는 애증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입구에 다다랐다.
문화 시설 단지, 오카자키공원
철학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오카자키공원과 헤이안신궁이 나온다. 도쿄에 메이지신궁이 있다면 교토는 헤이안신궁이 있다. 그 신궁이 목적지가 아니라, 그 앞에 미술관 단지가 조성되어 그리 가고자 하는 것이다. 교토국립근대미술관, 교토시립미술관, 호소미미술관, 칸포미술관 등이 밀집돼 있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 등의 문화 시설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휴관이어서 지나친 노무라미술관까지 합치면 이 지역에 얼마나 풍부한 문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잠시 국립근대미술관 관람을 하기로 했다. 실내로 들어서자 우선 시원한 공기가 반갑다. 먼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미술관 카페테리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마침 기획전으로 색다른 전시를 하나 하고 있었다. ‘생존의 윤리’로서 의료, 생명, 우주, 환경 등 현대사회의 현안과 예술이 접목된 아주 색다른 인터액티브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덕분에 초음파 치료기 같은 기구 속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그러한 참여 자체가 인터액티브 전시의 핵심인 것이다.
교토가 염색과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침 기요미즈데라 아래 고조도리(五條通)에서 도자기 장터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500m가 넘는 대로의 양쪽 인도에 수많은 작가와 공방이 참가해 직접 제작한 다양한 작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교토 인근의 도자공방들이 망라되어 이러한 장터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서울 인사동에서 파는 작품보다는 상당히 높은 편인 듯했다. 우리의 광화문광장이나 청계천 같은 곳에서도 이런 이벤트가 정기적으로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 작품 소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에게도 창작 의욕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마음에 드는 것들이 더러 눈에 들어와 사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짐을 짊어진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에필로그
기요미즈데라에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혼노지(本能寺)에 들르고자 가모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교토시청을 찾아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시내 어디서도 시청으로 가는 표지판은 흔했다. 2km 남짓 가니 교토시청 맞은편 재래시장 입구에 조그만 절의 모습이 보였다. 글씨를 보아하니 분명히 혼노지가 맞았다. 이곳이 전국시대 패자인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숨진 곳이란다. 하지만 지금의 혼노지는 원래의 건물이 불타 소실된 이후 히데요시 시절에 현재의 건물로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영화 ‘카게무샤’에서 본 후리후리한 키에 형형한 눈빛, 직선적인 성격의 오다 노부나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영화 속 그는 전통적인 무사들의 복장이나 두발이 아닌 개성 있는 차림의 영웅이었다. 쉰도 넘기기 어려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영화에서 보면 이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인생 오십 년
천하의 것에 비한다면
덧없는 꿈과 같은 것
한 번 태어나 죽지 않을 자
있다더냐.
1958년생. 강원대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희대 겸임교수, 선갤러리 조형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종로의 여정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미술과 자전거에 관한 다수의 칼럼 집필이나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