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홍손의 카렌, 희망이 자라나는 마을

테오의 여행 테라피

매홍손의 카렌, 희망이 자라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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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태국의 테오로부터 스마트폰 메신저로 전갈이 왔다. 태국에서 갓 찍은 사진으로 따끈한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TV 다큐멘터리로 보았던, 목에 황동고리를 잔뜩 건 여인들의 사연이 담긴 이달의 에세이에서 그 어느 여행지보다 각별한 필자의 애정이 전해진다. (편집자 주)

증상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졌을 때
처방 태국의 시골 도시 매홍손을 찾아가 카렌족을 만나고 올 것

[테오의 여행 테라피]매홍손의 카렌, 희망이 자라나는 마을

[테오의 여행 테라피]매홍손의 카렌, 희망이 자라나는 마을

안개 도시 매홍손
태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 카오산 로드와 파란 해변이다. 그러나 태국의 고유한 매력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북부의 고산 도시들은 태국의 다른 지역들을 그저 흔한 관광지로 만들어버릴 만큼 신비롭다. 바로 치앙마이, 치앙라이, 빠이, 골든 트라이앵글 그리고 미얀마와 접경 지역에 있는 안개 가득한 도시 매홍손이다. 특히 매홍손은 지금의 시골 같은 풍경과 달리 한때 란나 왕국을 대표하던 화려한 중심 도시였다. 도시 가운데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종캄 호수가 있다. 기온도 쾌적해서 한낮에는 30℃,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는 15℃ 정도를 유지한다. 호수 주변을 걸으며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아침 일찍 왓 프라탓 도이 콩무 사원에 올라 도시를 감싼 안개를 바라보는 것이 매홍손을 즐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도시에 기대하는 건 안개나 호수 같은 것이 아니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홍손에는 주 거주민인 타이족을 비롯해 몽족, 야오족, 라후족, 리수족, 아카족, 샨족, 카렌족 등의 고산족들이 평화롭게 모여 살고 있다.

1·2 매홍손의 사원, 왓 프라탓 도이 콩무. 3 매홍손 거리의 코끼리상.

1·2 매홍손의 사원, 왓 프라탓 도이 콩무. 3 매홍손 거리의 코끼리상.

꿈, 당신이 잊고 살아온
일상은 무겁다. 그래서 꿈을 들고 살아가기 어렵다. 기억하는가? 당신의 꿈. 아침이 올 때마다 해처럼 떠오르던 소중한 꿈.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그 꿈을 잊은 지 오래다. 놓고 살아간 지 오래다. 일상이 당신의 어깨를 눌러 생활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꿈을 잃은 사람의 시계는 일주일 혹은 한 달 간격으로 돈다. 시계를 보면 또다시 금요일이고 고개 흔들어보면 그새 달이 바뀌어 있다. 지난달 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사용한 시간이지만 믿을 수 없다. 나는 그 시간들을 사용한 기억이 없다. 같은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일상이 바쁠수록 꿈을 그려야 한다. 하루하루 꿈에 다가가야 한다. 어느 날 그 꿈에 닿을 것을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눈가를 빛나게 만드는 방법이다. 나이트 리페어 크림 따위로 관리할 일이 아니다. 주름을 지우고 당신의 미소를 싱싱하게 만들어줄 비결은 꿈을 되찾는 것이다. 일상에 치여 꿈을 잊고 살아가는 당신을 위해 이번에 찾아갈 여행지는 매홍손, 그 중에서도 카렌족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1 카렌족의 전통 가옥. 1층에는 가축을 기르고 2층에는 사람이 산다. 2 카렌족 여성, 황동고리의 무게는 10kg이 넘는다. 3 카렌 학교 선생님.

1 카렌족의 전통 가옥. 1층에는 가축을 기르고 2층에는 사람이 산다. 2 카렌족 여성, 황동고리의 무게는 10kg이 넘는다. 3 카렌 학교 선생님.

카렌
카렌은 원래 미얀마 민족이다. 지금도 미얀마에는 인구 200만 명의 카렌 주가 있다. 카렌족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 선교사들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영국과 미국인들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미얀마 군사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이후 독립운동을 전개한 카렌족은 아웅산과의 ‘팔롱 합의’에 따라 자치 독립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아웅산이 암살되면서 이 합의는 무효가 된다. 1449년 카렌족은 독립국을 선언하고 정부군과 전쟁을 벌였다. 한때 수도 양곤을 거의 함락시킬 뻔도 했지만 이후 태국 국경 쪽으로 밀려났고 그들 중 일부가 자유를 찾아 태국으로 도망왔다. 망명이다. 그렇지만 매홍손 카렌족의 현재 신분은 난민이다. 태국 정부가 이들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교에도 갈 수 없으며 취업도 불가능하다. 다른 나라로의 망명도 어렵다. 미얀마와의 외교 관계에 예민한 태국 정부가 이들의 이동을 제한한 까닭이다. 카렌족은 지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의료 시설도 이용할 수 없다. 미국 NGO가 세워준 마을 안의 보건소에서 응급처치만 가능할 뿐이다. 마을에 학교도 있지만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만 받을 수 있다.

황동고리의 비밀
카렌족이 낯설다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목이 긴 여자들. 목에 황금빛 링을 수십 겹이나 차고 다니는 여자들. 그들이 바로 카렌족이다. 카렌족의 여자는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 목에 황동고리를 착용한다. 한 번 착용한 황동고리는 잘 때조차 벗지 않는다. 그걸 쓰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1년에 한두 개씩 늘어나는 황동고리는 스무 살이 될 때 10kg이 넘을 만큼 무거워진다. 그녀들의 목이 길어 보이는 것은 목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황동고리의 무게로 인해 갈비뼈가 처졌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목과 가슴은 고리로 인한 상처로 늘 아프다.

안녕, 무지
카렌족의 마을에 들어섰다. 무지를 만났다. 열네 살의 어린 여자아이. 3일 동안 짠 목도리를 우리돈 700원에 팔고 있었다. 방금 완성한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 황동고리, 엄마가 차라고 해서 하는 거지?”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 예뻐서 차는 건데?” 다시 물었다. “그럼 싫으면 벗을 수도 있겠네?” 그녀가 웃으며 곁의 친구를 가리킨다. “얘는 없잖아, 황동고리. 좋으면 차고 싫으면 벗는 거야. 지금 벗어도 되고 나중에 벗어도 돼.” 다행이다. 억지로 차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카렌의 여자들이 아무도 황동고리를 차지 않게 되면 더 이상 여행자들은 이 마을을 방문하지 않게 될 것이다. 목 긴 여자들이 사라진 마을을 애써 찾아올 일이 없을 테니까. 그들을 위한 장사가 거의 유일한 생업인 카렌족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된 것이다. 문화가 아니라 밥을 이유로 여자들의 목에 황동고리를 채워야 하는 것이 지금의 카렌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어서 누구도 억지로 어린 여자아이들의 목에 황동고리를 채우려 하지 않았다. 무지처럼 스스로 선택해 황동고리를 목에 건 여자아이들은 이 마을의 희망이다. 카렌을 살아 있게 만드는 구원이다. 마을의 남자들은 세계 여기저기에 망명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직업을 갖기 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희망한다. 여자들의 목에 황동고리를 채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기를. 그것이 온전히 ‘선택’이 될 수 있기를. 무지가 어느 날 아침 아무 걱정 없이 황동고리를 벗어놓고 자기네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꿈꾸고 있다.

무지의 아침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도시. 우리는 거기서 살아가고 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순간 삶으로부터 낙오될까 두려워하며. 꿈이라고는 그저 아파트 대출금을 모두 갚거나 직장에서 잘리지 않거나 더 이상 아프지 않거나 하는 종류가 전부인, 그런 당신의 아침이 무지의 아침과 만나길 희망한다. 무지가 생각하는 꿈이 당신의 일상과 만나 당신에게도 아침마다 그리워할 간절한 꿈 하나 떠오르게 된다면 좋겠다. 무지는 싱싱했다. 목에 반짝이는 황동색 링을 차고 사흘이나 걸려서 짠 목도리를 고작 700원에 팔면서도 싱싱하게 웃었다. 무지는 내게 목도리를 건네고 친구들과 함께 마을 입구로 뛰어나갔다.

별 만드는 밤, 콤로이
카렌의 마을을 나와 매홍손 중심에 있는 종캄 호수에 도착했다. 나이트바자가 열려 호수 주변이 요란하다. 노점에서는 소원을 적어 올리는 콤로이를 팔고 있었다. 소원을 적어 불을 붙이면 밤하늘을 별처럼 날아오르는 등불이다. 콤로이를 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의 손목에 흰 실을 묶어주며 축복을 나눈다. 3일간 실을 풀지 않고 묶은 채로 있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무지에게서 건네받은 꿈을 콤로이에 실었다. 짙은 밤하늘 위로 나의 콤로이가 날아올랐다. 무지의 콤로이가 날아올랐다. 매홍손의 밤하늘이 콤로이의 별로 반짝였다.

Travel Tip
매홍손 가는 방법 매홍손은 태국의 북부 도시 치앙마이를 거쳐서 들어갈 수 있다.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 대한항공이 운항하는 직항편이 있다. 타이항공이 치앙마이-매홍손 구간을 하루 3회 운항한다. 프로펠러 경비행기의 상승 고도가 높지 않아 태국 북부 지역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매홍손까지 이동할 수 있다. 요금은 편도 870바트(세금 포함)다. 방콕의 경우 PB에어가 방콕-매홍손 구간을 주 2, 3회 운항하며 편도 요금은 3,150바트(12만원 정도)다. 수완나폼 국제공항에서 출발한다. 치앙마이에서 매홍손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치앙마이-빠이-매홍손 코스로 운행되며 1일 6회, 요금은 105~147바트 정도다. 중간에 정차하는 빠이 역시 아름다운 도시이므로 여기서 며칠을 머무는 일정도 좋다.

4 카렌 마을 사람들이 흙벽에 새긴 조각. 5 열네 살 소녀 무지와 함께. 6 목에 황동고리를 차는 여성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4 카렌 마을 사람들이 흙벽에 새긴 조각. 5 열네 살 소녀 무지와 함께. 6 목에 황동고리를 차는 여성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카렌족 마을 가는 방법 카렌 마을에는 숙소가 없다. 전기, 수도도 없다. 매홍손 시내에서 40km 정도의 거리이므로 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원하는 시간만큼 방문하는 것이 좋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빨간색 버스 성테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가격은 40바트. 단, 일행이 없을 경우 10명에 해당하는 요금을 혼자서 지불해야 한다. 보통은 10명이 다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오토바이 택시인 툭툭을 탈 수도 있지만 카렌족 마을까지의 길은 험한 산길이므로 권하지 않는다.

7 카렌 마을의 입구. 8 총캄 호수의 콤로이.

7 카렌 마을의 입구. 8 총캄 호수의 콤로이.

테오는 여행을 통해 얻은 성찰과 사진을 도구로, 지친 사람들의 일상을 치유하는 여행 테라피스트. 아프리카에서 5년, 남미에서 1년을 살고 돌아와 두 권의 여행 에세이를 쓰고 여러 기업과 학교에서 특강 형태의 여행 테라피를 진행하고 있다. 비가 내리면 기적이 일어나는 볼리비아 소금사막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들려주는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과 아프리카가 주는 위로와 치유의 목소리가 담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를 저술했다. 두 권 모두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으며 스테디셀러를 기록 중이다.

■글&사진 / 테오(여행 테라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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