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 감독의 ‘아포칼립토’라는 영화가 있다. 평화롭게 살던 한 부족이 강한 부족의 침략을 받게 되고, 한 아버지는 부인과 아이의 생사도 모른 채 하염없이 끌려가다가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같이 끌려간 사람들이 속절없이 그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목이 잘리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주인공은 추격자들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고 가족을 구해낸다. 그리고 배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하는 서구인들의 모습을 보고 추격자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패배자의 문화는 문화가 아닌가
치첸이트사 자체가 워낙 테마파크처럼 꾸며진 관광지이다 보니 여기저기 단체 여행객들이 많다. 덕분에 굳이 가이드를 구하지 않아도 귀동냥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역시나 가이드들은 영화 ‘아포칼립토’의 내용을 언급하며 “실제로 저 피라미드 위에서 인간을 산 제물로 태양신에게 바쳤다”, “저기 보이는 유적에서는 현재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가 펼쳐졌는데 그 경기의 승자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고 죽어갔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나름 독창적인 문명을 자랑하던 마야가 불과 한줌의 스페인 병사들에게 너무도 어이없이 무너져버렸던 이유는 그들의 토속 신앙에 ‘하얀 얼굴을 한 신이 와서 너희들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나? 결국 마야인들은 그들을 정복하려고 온 스페인 군인들에게 변변한 저항조차 못해보고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버렸던 것이다. 신화에 불과한 이야기를 따른 대가치고는 너무도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게 되었으니, 당시 도착한 ‘하얀 얼굴의 신’들은 구원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구대륙의 질병을 가지고 와서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원주민의 90%가 사망해버리고 말았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며 수없이 많은 원주민들을 죽게 만든 사람들은 미개하고 잔인한 원주민들을 개화한 것이 자기들이라며 승자로서의 역사를 써 나갔고, 그렇게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는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걸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다음 여행지인 과테말라로 넘어가기 위해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을 지나게 됐다. 치아파스는 예로부터 ‘반골의 땅’이라 불리며 각종 게릴라와 산적들이 활발하게 활동해온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우리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산크리스토발이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선 숙소를 잡았는데 일단 주차가 되질 않고, 그 다음 문제는 이스라엘 여행자들의 아지트 격인 숙소라는 것이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여행 중에 가장 피곤한 것이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몰려 있는 숙소인데 안하무인, 고성방가는 기본에 마약, 지저분함, 다른 여행자들과의 말다툼(심지어는 주먹다짐)은 옵션으로 따라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 때문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인 다른 나라 출신 여행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고 그네들도 ‘왕따’를 당하다 보니 그럴수록 몰려다니는 경향이 강하다.
겨우겨우 잠이 들었는데 온갖 악몽에 시달리다가 가위에 눌렸다. 무언가 내 가슴을 누르고 있다는 느낌에 힘들게 눈을 떴는데 깜깜한 어둠 속에 떠 있는 눈동자 한 개가 형형한 빛을 발하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위가 눌린 상태라 어쩌지도 못하고 헉! 하는 숨소리만 겨우 입 밖으로 튀어나왔는데 순간 움찔하는 느낌에 놀랐는지 순식간에 눈동자는 사라지고 내 몸을 누르고 있던 압박감도 같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저녁을 지어 먹을 때 한규가 먹을 것을 던져줬던 도둑고양이 중 한 녀석이었다. 말이 고양이지 몸집이 거의 강아지만 한 녀석이다. 이 녀석은 몸 전체가 칠흑같이 까만색인데다가 애꾸였는데, 새벽이 되어 추워지자 침대로 기어 올라와 내 배 위에서 잠을 청했다가 내가 움찔움찔하자 잠에서 깨어 날 쳐다본 거였다. 물론 애꾸이다 보니 눈은 하나밖에 안 보인 거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보니 이스라엘 전우회 여러분은 여전히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래 침대에서 자고 있던 멜라니 역시 끙끙거리며 영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차를 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숙소를 찾았는데 분위기가 꽤 괜찮은 ‘팔로마 호스텔’이란 이름의 호스텔을 찾았다. 사실 괜찮든 안 괜찮든 첫 번째 숙소에서는 단 하룻밤도 더 묵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체크인을 했다.
주인은 후덕하게 생긴 전형적인 멕시코 아주머니였는데 체크인을 하며 우리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봤다. “정현, 미자, 한규”. “영헌, 밋하, 한뉴?” 몇 번의 반복 끝에 대충 ‘쩡헌, 멜라니, 한키우’ 정도로 합의를 봤다. 뭘 그리 열심히 배우려 하나 했는데 이 아주머니는 그곳에서 묵는 4일 동안 항상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정원이 40명 정도인 호스텔이었는데 이 아주머니는 모든 여행자, 심지어 하루만 묵고 가는 여행자까지도 모두 이름을 외우고 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고단한 여행길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주는 것, 더더군다나 그네들이 발음하기 힘든 한국 이름을 기억해주는 것, 상상 외로 큰 위안이 된다. 이 아주머니에겐 팔로마란 이름의 딸이 하나 있는데 열두 살인 이 녀석, 한규를 보자마자 껌뻑 죽는다. 하루 종일 호스텔 마당에서 한규와 함께 놀고 노래를 불렀다. 얼결에 보모가 딸린 특급 호스텔에 숙박하게 된 거다.
결혼식을 보며 느낀 빈부 격차
산크리스토발 자체는 그다지 볼 것이 많은 도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구 구성에 인디오들이 많아서 이런저런 수공예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멕시코 특유의 원색 건축물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중앙광장의 성당에 갔는데 한창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다. 많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성당 계단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햇살도 좋고 날은 그럭저럭 선선했다. 예쁜 성당에 행복해 보이는 신랑 신부, 왁자지껄 흥이 난 하객들…. 제법 평화롭고 예쁜 풍경이었다.
하객들의 축복 속에 신랑 신부가 성당 문을 나섰고 하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봉지에서 쌀이며 색종이를 꺼내 신랑 신부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신랑 신부가 대기하고 있던 허니문 차에 올라타고 하객들은 흩어지는 가운데 내 눈에 들어온 모습은,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말까 한 인디오 여자아이가 전통 복장에 맨발로 바닥에 흩어진 쌀을 줍고 있는 것이었다. 다 모아봐야 한 홉이나 될까 싶은 쌀을 흙먼지와 함께 손으로 쓸어 모아 봉지에 담는 모습이 눈에 아프게 박혔다. 여전히 햇살은 좋고, 여전히 날씨는 선선하고, 여전히 하객들은 껄껄거리며 이리저리 흩어지고, 여전히 계단 앞의 여행자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그 아이는 그저 대를 이어 물려받은,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난한 일상의 한 부분인, 묵묵히 쌀을 줍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필자 덩헌(이정현)은…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떠난 이탈리아 로마에서 ‘참 좋은 사람’ 멜라니(정미자)를 만나 불꽃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매일 아침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헐레벌떡 회사로 향하던 어느 날, 결혼할 때 ‘너무 늙어 힘 빠지기 전에 세계 일주를 떠나자’고 한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부터 두 사람 모두 잘나가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 준비에 착수해 드디어 2007년 5월, 생후 43개월 된 아들 한규까지 데리고 거의 ‘무계획’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세워 길을 나섰다. 처음 계획은 미국 LA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2년의 여행이었지만, 1년여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 뒤 어쨌든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박집 ‘남미사랑’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북미, 중미, 남미를 거치며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소한 깨달음 등을 담은 책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를 펴냈고, 아르헨티나에서 얻은 ‘보석’ 둘째 은규까지 넷이서 함께 계속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는 중이다. |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