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을 바라보다 보니 다른 일정을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쉬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좋은 인상과 추억을 거두었다는 뜻이리라. 오늘도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 서둘러야 한다. 뷔페에서 포식을 마치고 바로 니지노마츠바라 숲 속으로 진입했다. 방풍림으로 조림된 곳이다 보니 곧게 자란 나무들이 단 한 그루도 없었다.
잠시 관광 안내소에 들러 이마리(伊万里)로 가는 도로 사정을 물었다. 여성 안내원은 유창한 영어로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었다. 202번 도로는 가깝기는 하지만 산지가 많아 자전거 통행이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우회로를 가르쳐주었다. 이마리와 아리타(有田)에 도착하거든 참고하라고 지도를 몇 장 챙겨주기까지 했다. 가르쳐준 대로 40번 도로를 택했는데 주로 마츠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마츠우라를 따라 가는 길에 도자기 공방이나 공장들이 많이 보였다. 어쩌면 저기 종사하는 사람들 중 분명히 조선 도공의 후예들도 있을 터라 길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도로 사정이 전날보다는 나았지만 불편하기는 여전했다. 특히 완충이 잘 되지 않는 사이클을 타고 인도의 턱을 넘어 다니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35km 정도 주행 끝에 이마리에 도착했다. 평상시 출퇴근 때 거리인데 이상하게도 멀고 힘겨웠다. 아담한 이마리는 여러 개의 강과 하천이 합류되는 하류에 자리 잡은 도자기 도시이다.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 여러 곳 있지만 이마리와 아리타가 특히 유명해, ‘이마리-아리타’는 세계적인 도자 브랜드로 알려져졌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조선 도공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지만 말이다. 이마리는 시내 곳곳의 공공미술 작품들이 모두 도자로 제작된 것이 인상적이다. 이마리와 아리타의 도자기는 조선 백자의 기술을 도입했을 때만 해도 조선 백자의 소박미를 탐미적으로 추구하다가 산업화 추세 속에 상업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원색의 문양들이 장식되기에 이른다(이에 비해 카라츠의 도자기는 조선의 막사발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공 조형물, 대형 벽화, 보도블록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도자로 제작되어 과연 도자 도시답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도자산업은 침체 국면에 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워낙 도자기의 비중이 큰 곳이어서 이제는 도자를 관광의 핵심 테마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들어간 식당이 마침 영화 ‘카게무샤’로 유명한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기념관 바로 옆에 있었다. 음식을 주문해놓고 잠시 들러볼 기회를 잡았다. 둘러보면서 이마리와 무슨 인연이 있는지를 살펴보려 했지만 특별한 연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흥미롭다.
도조(陶祖) 이삼평이 잠들어 있는 아리타로
카라츠에서 만난 관광안내원의 말로는 이마리에는 나베시마 번요 공원이 볼 만하다고 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임진왜란 당시 이삼평을 비롯한 조선 도공들을 끌고 간 장수로 이삼평의 강력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은 이마리에서도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지체 없이 아리타를 향해 달렸다. 가장 보고 싶은 이가 바로 조선 도공 출신으로 일본 도자를 일으킨 이삼평이다. 아리타에서도 10km 정도를 더 가야 도산 신사와 이삼평비가 있다. 이마리-아리타 도자의 비조(시조)로 추앙받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다케오 방향으로 동진하면 협곡이 나오는데, 고풍스러운 도자기 관련 가옥들이 나타난다. 오랜 세월 동안 도자기를 가업으로 삼아온 마을임이 느껴진다.
나가사키를 향하여
사세보를 거쳐 하우스텐보스로 달렸다. 다시 만난 202번 도로는 노폭도 넓어서 시간 절약을 위해 차도로 달렸다. 더러 비좁은 구간을 만나면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그냥 달렸다. 일본인들의 자동차 운전 매너가 좋은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한 번도 일본 자전거 여행 중 경적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서 오무라 만(灣) 북단에 있는 나가사키 현 사세보 시의 하우스텐보스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가운데 우리말도 많이 들렸다.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라는 의미의 하우스텐보스는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부상해 있다.
사실 나가사키가 일본 전국시대 때부터 자유무역항으로서 발전했다지만 정작 나가사키 시는 오무라 만 맞은편 아주 먼 곳에 있다. 사세보 시가 쇠락해가는 산업단지를 재개발해 조성한 테마파크인데도 나가사키 인근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나가사키가 네덜란드 상인들의 독무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종교 때문이다. 처음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무역선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들은 반드시 무역을 포교와 결부지었다. 특히 기독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켜 막부를 위협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다 보니 포교보다는 무역에 더 관심을 보인 네덜란드가 무역 상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역 근처에 예약한 비즈니스호텔의 일본식 다다미방에 짐을 풀었다. 열차 속에서 잠도 보충했겠다, 오늘은 아들과 나가사키의 밤거리를 마음껏 활보해볼 생각이다. 자전거를 두고 걷는 것이 마치 무슨 족쇄라도 풀고 자유를 얻기라도 한 듯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자에게 신비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나가사키의 열기를 잊을 수 없다.
1958년생. 강원대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희대 겸임교수, 선갤러리 조형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종로의 여정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미술과 자전거에 관한 다수의 칼럼 집필이나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