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아들과 둘이서 일본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필자의 세 번째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이달에 소개하는 여행지는 2차 대전 당시 두 번째로 원자폭탄 공격을 받았던 나가사키다. 글을 쓴 필자도, 지금부터 읽어 내려갈 독자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여행지가 될 듯하다. (편집자 주)
원자폭탄과 나가사키
나가사키 역에서 우라카미 가도를 따라 4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원폭낙하중심지공원과 평화공원이 나온다. 원자탄 투하로 즉사자만 무려 4만 명 가까이 나올 정도였다니 그 공포와 충격이 어떠했을까. 패전 후 그 참혹했던 상처를 뒤로하고 전후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에 평화라는 개념이 감초처럼 삽입되었다. 국제사회는 침략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과 책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저들에게 평화 개념이란, 교묘하게 책임을 누락시킨 채 막연한 구호로만 전달되는 느낌이다. 전쟁을 일으킨 야만적 과오에 대한 반성이 점점 더 희석되고 있는 것 같아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곤 한다.
공원에서 요기를 하는 사이 갑자기 수백 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공원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들어 시끌벅적하니 소란스러운 풍경은 이곳 나가사키가 처음인 것 같다.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평화기념상 앞에서 기념촬영들을 하고 있어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을 열심히 찍기는 했지만 근육질의 남자상이 조금 거슬린다. 이보다는 반가사유상에서 볼 수 있는 중성적 부드러움이 평화 주제를 더 잘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평화공원에서 내려가는 길에 원폭낙하중심지공원과 원폭자료관에 잠시 들렀다. 자신들의 피해상만 생생하게 기록할 뿐 어떠한 반성의 흔적은 없었다. 하기야 군인들이 희생된 것도 아니고 무고한 시민들이 대량으로 희생된 것을 두고 일말의 하소연을 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를 피해가고 있으니 탈이지….
다시 우라카미 가도를 따라 내려가 나가사키 역에 거의 당도해 왼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니시자카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에 대표 성지인 ‘일본 26성인 순교기념관’이 있다. 16세기 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그리스도교 탄압에 의해 구교 신부 6명과 일본인 교인 20인이 순교한 곳이다. 당시 히라도나 나가사키 개항에 의해 스페인,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무역선을 통해 들어와 큐슈 일대는 교회가 크게 번창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세력화되는 것을 경계한 막부에서는 이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독 큐슈에서는 그리스도교가 번창했다.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도 규슈 출신 그리스도교인이었다. 순교기념관 뒤로는 필리포 교회가 세워졌는데 마치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이채롭다.
오란다자카에서 오우라 이시바시 거리를 건너 미나미야마테 언덕으로 가면 오우라 성당과 그라바엔(글로버저택정원)이 나온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자전거를 거의 끌고 다녀야 했다. 1864년에 지어진 일본 최고의 목조성당이라는 오우라 성당. 26인 순교자들도 바로 이 교구 소속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번창했다가 극심한 박해를 받아 그리스도교도들이 거의 종적을 감춘 가운데서도 몰래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기에 훗날 이 성당이 지어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당 바로 옆에는 그라바엔이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인 토머스 글로버가 약관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와 무역과 광업으로 거부가 되어 나가사키 항이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 언덕에 대저택과 정원을 꾸민 것이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로 보존되고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인 글로버의 부인이 일본인이며 나비 문양이 염색된 기모노를 즐겨 입어 모델이 되었다 한다(미 해군 장교 핑커튼과 사랑을 나눈 극중의 나비부인의 이야기는 물론 실화가 아니다). 그라바엔은 규모가 커서 입구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다. 8채의 저택과 서양식 정원들, 그리고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였던 일본 여가수 미우라 다마키의 동상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우라카미 강 맞은편의 이나사야마 전망대를 올라갈까 했는데 바로 이 언덕에서 보는 나가사키의 풍경도 더없이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여러 곳을 돌아다닌 까닭에 출출했다. 그라바엔을 내려가던 중 현지 명물로 알려진 나가사키 짬뽕을 맛보고 싶었으나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점심은 좀 잘 먹자”는 아들의 간청에 아쉽지만 포기했다. 대신 가까운 바닷가에 있는 나가사키미술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이 미술관은 현립으로 수로를 사이에 두고 두 동의 건물로 지어졌다. 미술관 사이로 운하가 있는 모습 자체가 나가사키다운 디자인인 것 같았다. 마침 유서 깊은 스위스 빈터투르 미술관 컬렉션 명화전이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었다. 일요일 나들이객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과 아트숍의 다양한 문화상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몇 개 구입하고 싶은 품목들이 있었지만 자전거 여행의 철칙 때문에 단념했다. 절대 짐을 불리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 말이다.
미술관에서 나와 점심 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이제 구마모토까지 먼 길을 가야 한다. 출발에 앞서 고민이 생겼다. 오늘 구마모토로 가기 위해서는 반도의 맞은편 시마바라까지 가야 하고, 거기서 구마모토까지 배로 이동해야 한다. 마지막 배가 저녁 7시 30분에 출발한다. 시마바라까지는 65km 정도이니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수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251번 가도에 터널이 많아서 혹시라도 불가피하게 우회도로를 택하는 날엔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사하야까지는 철도편으로 가고, 거기서부터 자전거로 시마바라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필자 이재언은… 1958년생. 강원대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희대 겸임교수, 선갤러리 조형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종로의 여정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미술과 자전거에 관한 다수의 칼럼 집필이나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
■글&사진 / 이재언(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