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강원도 영월

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

단종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강원도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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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이 이끄는 KBS-2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덕분에 대한민국 구석구석이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어느 여행자는 “더 이상 대한민국에 숨겨진 여행지는 없다”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1박 2일’이 여행을 일상으로 끌어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강원도 영월 역시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얼마 전 화제를 모은 ‘여배우 특집’의 주무대도 바로 영월이었으니 말이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선돌의 모습. 일몰이 아름다워 출사 명소로도 잘 알려졌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선돌의 모습. 일몰이 아름다워 출사 명소로도 잘 알려졌다.

‘영월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라고 할 정도로 1970년대 영월의 모습은 대단했다. 곳곳에 탄광이 자리를 잡았고 저녁 시간 젊은 광부들은 번화가를 누비며 석탄 찌꺼기를 술로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번성하던 영월도 일장춘몽의 꿈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10만 명이 넘던 인구는 1980년 후반에 불어닥친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2009년 4만여 명으로 감소했다. 물론 그 감소세는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유입 인구보다 유출 인구가 많음에도 지금의 영월이 이름값을 유지하게 된 건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관광지가 있기 때문이다. 단종애사로 대표되는 명소와 자연 풍광이 빼어난 곳을 소개한다.

청령포는 관음송을 비롯한 소나무로 유명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소나무의 신비로움을 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곤 한다.

청령포는 관음송을 비롯한 소나무로 유명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소나무의 신비로움을 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곤 한다.

한양이 그리워. 왕비, 당신이 그립소
영월을 찾은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손가락을 꼽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많지만, 매번 참 이상하다. 단종의 유배지로 잘 알려진 청령포에 도착하면 맑은 날씨는 어느 틈엔가 흐려지고 스산한 바람과 안개가 드리우기까지 한다. 내가 방문하는 날에만 생기는 일기상의 징크스인가? 그저 우연인가? 혹시 단종이 세상을 뜬 지 5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애절함이 가득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저런 복잡한 심사를 품은 채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려본다. 작년에 왔을 때보다 배의 규모가 더 커진 듯하다. 아마도 찾는 발걸음이 많아진 덕분일 게다. 나루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왕방연의 시조비가 있다. 청령포를 찾는다면 꼭 한 번 시조비 앞에 서서 시조를 읊어보길 바란다.

‘천 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 길 예놋다’

배는 채 몇 분을 가지도 않고 청령포 자갈밭에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어린 임금이 이곳으로 유배 와서 죽음을 맞기 전까지 살아온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청령포이다.

풀밭에 핀 들꽃이 장릉의 분위기를 더욱운치 있게 만든다.

풀밭에 핀 들꽃이 장릉의 분위기를 더욱운치 있게 만든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종어가를 먼저 찾는다. 어가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시중을 들던 궁녀와 노비들이 기거하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방 안에는 무표정한 밀랍인형이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데 무심한 그 모습이 애달픈 마음을 더한다. 군주를 향해 예를 갖추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가 보다. 청령포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 어가를 향해 머리를 조아린 신하처럼 한 방향으로 몸을 틀고 있다.

우거진 소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우뚝 솟은 노송이 눈길을 끈다. 바로 관음송인데, 수령이 600년이 넘었단다. 유배 당시 마음 줄 곳 없던 단종의 모습과 심경을 보고(觀), 들은(音) 소나무(松)라 하여 의인화한 것은 아닐까 싶다. 천 일을 하루처럼 울고, 하루를 천 일처럼 절규하던 그 모습을 소나무는 기억이라도 하듯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관음송을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본다. 그곳에서는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생각하며 단종이 돌멩이를 하나씩 쌓았다는 망향탑을 만날 수 있다. 발끝을 들어 탑 뒤를 내려다보면 몸을 순간적으로 움츠러들게 하는 낭떠러지가 보인다. 그 아래에 무심한 강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저 강물에 뛰어들어 하염없이 헤엄쳐 가다 보면 어느새 한강에 다다르고 이윽고 왕비가 있는 한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을….’ 이처럼 부질없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갓 열다섯 살 넘은 어린 임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애통한 눈물을 흘리며 때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을까.

임금이시여, 이곳에 편히 쉬소서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길에 장릉을 빼놓을 수 없다. 청령포에서 자동차로 5분여 거리에 위치한 장릉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더욱 뜻 깊은 곳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청령포에서 비통한 시간을 보내다 꽃다운 나이 17세가 되던 해에 죽임을 당한 단종. 그 주검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도 없게 강에 띄워졌다. 세조의 서슬 퍼런 후한이 두려워서일까. 아무도 시신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곳이나 의인은 있는 법. 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수습해 현재의 능이 있는 이 자리에 암매장했다고 전해진다. 누군들 제 목숨이 귀하지 않을까? 그 역시 임금(세조)의 엄명을 거역하면 어떤 사단이 있을지 불을 보듯 알고 있었겠지만 그에 굴하지 않았다. 이후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고 암매장터는 왕릉으로 정비했다. 단종 사후 240여 년이 지나서 일어난 일이다.

선운마을의 한반도 지형. 말이 필요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그 닮은꼴에 감탄한다.

선운마을의 한반도 지형. 말이 필요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그 닮은꼴에 감탄한다.

“단종 대왕님은 참 마음씨가 따뜻한 분이랍니다.”
무슨 말인가 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장릉에서 참배를 하면 좋은 일이 생겨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장릉을 참배한 후 관직에서 앞길이 활짝 열렸다는 사람도 많고요. 또 어떤 이는 원하던 아들을 얻었다고도 해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장릉은 임금의 능임에도 여느 능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을 일컫는 병풍석과 난간석도 세우지 않았다. 다른 능에는 없는 특이한 점도 있다.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한 것이다.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대표적으로 정려비는 단종이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았는데, 관까지 준비해 장례를 치른 충신 엄흥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세운 비각이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능의 모습. 기존 왕릉과는 비교될 만큼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는 능의 모습. 기존 왕릉과는 비교될 만큼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아이들과 함께 단종의 애잔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영월을 여행한다면 짧은 여행일지라도 긴 여운이 남을 것이다. 놀이시설이나 유원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좋겠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산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면 더욱 의미 있을듯 하다.

자연을 만든 신은 예술가인가?
영월 여행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필수 코스가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으면 이구동성으로 “우와 정말 똑같다!” 하며 감탄하는 곳. 전망대에 올라서면 삼면이 바다인 우리 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 바로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이다. 동고서저의 지형과 나무가 빽빽한 동쪽의 강원도 지역, 갯벌이 발달한 서해안 지역,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공업시설이 가득 들어선 중국 땅까지, 실제와 무척이나 똑같은 모습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모습을 본 이들은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쉬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만다.

영월의 대표 음식 곤드레비빔밥. 은빛으로 반짝이는 서강의 물결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내지만 청령포가 간직한 사연은 슬프기만 하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한 어가를 향해 드리워진 소나무가 이채롭다. 단종제향 때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

영월의 대표 음식 곤드레비빔밥. 은빛으로 반짝이는 서강의 물결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내지만 청령포가 간직한 사연은 슬프기만 하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한 어가를 향해 드리워진 소나무가 이채롭다. 단종제향 때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

한반도 지형을 보고 놀랐다면 푸른 서강과 우뚝 솟은 돌기둥이 잘 그린 병풍처럼 아름다운 선돌을 꼭 보고 가자. 우주만물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 분명 예술가적 능력으로 선돌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놀랄 것이다.

영월 당일치기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별마로천문대. 최상의 관측 조건이라고 하는 해발 799.8m의 봉래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어둑어둑 일몰이 다가올 시간에 정상에서 바라보는 영월 읍내의 전경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는 태양을 관측할 수 있고, 저녁 8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천체 관측이 가능하다. 일기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할 때는 천문학 기초 강의와 가상 별자리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하늘의 별은 여기 다 모였다.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을 볼 수 있는 별마로천문대. 날씨가 흐린 날에는 별마로천문대에서 천문학 기초강의와 가상 별자리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하늘의 별은 여기 다 모였다.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을 볼 수 있는 별마로천문대. 날씨가 흐린 날에는 별마로천문대에서 천문학 기초강의와 가상 별자리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당일에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월의 핵심 여행지를 돌아봤다. 서울에서 차로 달려 2시간이 좀 넘으면 닿을 수 있는 영월은 1박 2일 여행지로 제격이다. 여유가 없다면 당일치기 코스로도 손색이 없으니, 올 여름 가족 여행지 후보에 올려놓기를 권해본다.

핵심 코스 가이드
한반도 지형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산 180
문의 033-372-6001 입장료 없음
선돌 영월군·읍 방절리 산 122
문의 033-370-2544 입장료 없음
장릉 영월군·읍 영흥리 1086
문의 033-374-4215
입장료 성인 1천4백원, 어린이 1천2백원
청령포 영월군·읍 남면 광천리 산 67-1
문의 033-370-2657 입장료 성인 1천4백원,
어린이 1천2백원(도선료 포함)
별마로천문대 영월군·읍 천문대길 397
문의 033-374-7460 입장료 성인 5천원, 어린이 4천원
* 홈페이지(www.yao.or.kr)를 통해 예매 필수

이것만은 꼭 먹어보자
영월에서 꼭 맛을 봐야 할 것은 단연코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밥은 담백하면서 심심한 것이 특징인데, 독특한 맛 때문에 한 번 맛을 본 사람은 또 찾게 된다고. 고추장보다는 간장에 비벼먹는 것이 제맛이다. 유명한 식당으로는 솔잎가든(033-373-3323)과 청산회관(033-374-3030)이 있다.

숙박 가이드
여행지에서 잠자리를 정하기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특히 7월부터 시작되는 성수기에는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할 정도로 그 가격이 어제 오늘 다르니 기분 좋게 떠난 여행을 불쾌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영월군에서는 ‘민박요금예고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민박 가구별로 그 해에 받을 민박요금을 민박업주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인터넷 등을 통해 예고하는 제도이다. 홈페이지 http://ywtour.com/kor/에 접속해서 메뉴 상단에 있는 맛집·숙박·쇼핑 탭을 클릭하고 편안한 잠자리 항목을 선택하면 된다. 관광 안내를 위한 콜센터(1577-0545)를 운영하고 있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단종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강원도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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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임운석은…
2001년 본인보다 여행을 1% 더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에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아웃도어 전문업체의 로드플래너 및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 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글·사진 / 여행작가 임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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