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콜롬비아

아메리카 여행기

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콜롬비아

하루하루 반복되는 ‘오늘’을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은 자유와 새로움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는 것을 꿈꾼다. 여기,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그 바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길을 떠난 가족이 있다. 손안에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무작정 나선 길 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진정한 삶에 대한 의미를, 그리고 함께하는 행복을 배웠다는 이 용감한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달은 달콤 살벌한 시간을 보낸 콜롬비아 이야기다. (편집자 주)

[아메리카 여행기]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콜롬비아

[아메리카 여행기]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콜롬비아

무섭기만 하던 콜롬비아의 따뜻한 속살
‘콜롬비아’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우선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 정도가 아닐까?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서는 단돈 2, 3달러면 코카인 한 봉지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쉽게 코카인을 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수많은 반정부군과 게릴라들, 콜롬비아 커피 정도가 우리가 콜롬비아에 대해 아는 모든 정보였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같이 여겨진다는 곳, 콜롬비아. 그래서인지 우리가 여행을 하며 만났던 많은 이들은 여행지로 콜롬비아를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베네수엘라에서 만났던 친절한 가이드 파벨도 콜롬비아에 가면 반드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런저런 걱정을 잔뜩 들었던 터라 콜롬비아로 향하는 우리 가족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콜롬비아 국경도시 쿠쿠타의 모습은 의외로 밝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오히려 우울한 베네수엘라에 비하면 무척이나 활기찬 모습이었다. 마음 같아선 며칠 지내면서 베네수엘라에 머무는 동안 지쳐버린 마음을 달래고 싶었으나 콜롬비아 보고타에 소재한 한인 호스텔 ‘태양여관’으로 보낸 짐들도 받아야 하는데다 결정적으로 한규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바로 떠나기로 했다. 사실 거리상으로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지만 안데스 산맥이 국토의 대부분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실제 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1 콜롬비아 산속에서 속절없이 서버린 우리의 차. 2 다른 차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길가에 앉아 깃발을 흔들고 있는 한규와 필자.

우리가 계획한 다음 도시인 부카라망가로 향하는 길에는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지그재그로 끝없이 펼쳐진 길을 열심히 오르는데 자욱하게 낀 안개 때문에 10m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산이라고 하니 왠지 게릴라들이 많을 거 같은데다 지나가는 차량도 드물어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겨우겨우 정상에 다다르니 경찰 초소 하나가 있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별다른 검문 없이 그냥 보내주었다. 죽어라고 올라왔으니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시간은 대략 오후 3시. 150km 정도만 더 가면 되니 어찌어찌 해 지기 전에는 부카라망가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펜스도 하나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끝없이 내려가고 있는데 30km 정도를 앞에 두고 갑자기 달리던 차의 시동이 꺼져버렸다. 이런 경험이야 과테말라에서 많이 해봤으니 여유롭게 키를 다시 돌렸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참고로 차의 브레이크는 시동이 꺼진 상태에선 작동하지 않는다. 옛날 한국의 대관령 도로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급한 경사에 펜스도 없으며, 길 너머는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길을 브레이크 없는 차로 달리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하늘이 도왔던 것이 자욱한 안개로 인해 차의 속도가 30km 미만이었고, 시동이 꺼지자마자 그나마 평탄한 지역이 나와줘서 기어를 내려가며 속도를 줄이다가 ‘P’ 모드로 바꾸며 길 구석에 겨우겨우 세울 수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시동을 아무리 걸어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게릴라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일단 차에 타고 있으면 더 위험할 듯한 생각이 들어 모두 내려서 차 뒤 30m 정도에 자리를 깔았다. 한규가 가지고 놀던 나뭇가지에 빨간 수건을 매서 흔들면서 지나가는 차를 기다렸다. 하지만 차를 세워도 걱정인 것이 차창 너머로 권총이라도 불쑥 나오면 어쩔가 싶었다. 지나가는 차 몇 대에 우리 사정을 손짓발짓으로 알려주고 저 위에 있는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설상가상 해까지 져가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는데 드디어 경찰이 도착했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지나가는 차량은 모두 세워서 운전자들에게 우리 차를 고쳐보라고 채근하던 경찰이 결국 견인차를 불러주고는 떠나갔다. 수줍게 한국 동전 같은 게 있는지 물어오던 경찰들에게 동전은 물론 한국에서 가져온 휴대폰 고리 등을 선물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1 엘 페뇰에서 애정을 과시(?)해본 필자와 멜라니. 2 거대한 바위, 엘 페뇰의 모습. 3 메데진에서 새와 친구가 된 한규.

결국 밤 11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부카라망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다음날이 휴일이었음에도 카센터 사장인 호세 아저씨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차 수리를 마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우리 차를 고쳐준 호세 아저씨는 온 식구를 부를 테니 같이 저녁을 먹고 가라고 끝까지 권유하다가 떠나야만 한다는 우리의 말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며 “콜롬비아 어디에 있든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라며 나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콜롬비아가 매우 위험한 곳인 줄 알았다는 나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이제 콜롬비아는 더 이상 위험한 곳이 아니라며, 이 동네에 있던 게릴라들도 이제는 다들 남부 지역으로 떠났으니 안심하고 여행하라던 호세 아저씨.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보고타에서 맞은 한규의 생일.

보고타에서 맞은 한규의 생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
콜롬비아에서의 운전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달리다가 앞에 고물차 하나라도 있으면 정말 목숨을 걸고 추월해야 했고 만약 추월하지 못하면 속절없이 두어 시간을 시속 20km 미만으로 가야만 했다. 그래도 휴게소(이마저도 사실 우리나라 휴게소 같은 곳이 아니라 도로상에 허물어져가는 식당이 전부다)에 잠깐 서기라도 하면 마을 주민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콜롬비아 좋으냐”를 물어오며 온갖 친절을 베푸니 여행하는 재미가 났다.

우여곡절 끝에 보고타에 도착해서 ‘태양여관’을 찾아갔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묵고 있었는데 정작 주인인 다니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한 여행자가 사고를 당해 같이 경찰서에 갔단다. 밤이 되어서야 다니님과 사고를 당한 J누님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콜롬비아 여행을 마치고 에콰도르로 넘어가는 밤 버스를 탔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준 과자를 먹고 무려 3일 후에 병원에서 깨어나셨다나? 다행히 버스 안이었기 때문에 신체적인 손상은 없었지만 콜롬비아가 첫 남미 여행 국가였던 관계로 엄청난 금전적인 손실(여행경비를 모두 털리는)을 봤다고 했다. 부카라망가와 보고타까지 오는 길에서 경험했던 친절한 콜롬비아인들로 인해 마음을 푹 놓고 있던 우리의 마음에 실로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철없음의 대가
베네수엘라에서 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 멜라니의 생리가 멎는 일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로 확인했는데, 선명히 나타난 두 줄…. 평소 아무 생각 없는 우리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놓고 무척 고민했었다. 한국에 들어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나올지, 아니면 4, 5개월까지 여행을 계속 하다가 어딘가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출발할지를. 결국 후자로 결정하고 병원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보고타에서 확실히 알아보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보고타행을 더욱 서둘렀던 것이다.

아이가 생겼으니 낳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니님에게 병원 위치를 물어 보고타의 큰 병원을 찾 아갔다. 다행히 의사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했고 믿음직스럽게 생긴 여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먼저 혈액검사를 통해 다시 테스트를 했는데 역시나 임신으로 나왔다. 멜라니나 나나 절로 웃음이 나왔다. ‘대체 우리 인생엔 왜 이리 돌발 상황이 많을까?’ 싶어서였다. “이래서 세상 사는 게 재미있는 건가?” 하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데 이번에는 초음파를 해보자며 나보고 잠시 나가 있으란다.

할로윈을 맞아 메데진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는 한규.

그런데 잠시 후 나온 멜라니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의사가 들어오라고 하고는 설명해주는데, 자궁에 착상까지는 되었지만 아기집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있단다. 멜라니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도 얼떨떨한 마음에 귀를 의심했다. 의사는 흔한 경우라며 우리를 애써 위로해줬지만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잠시 나와서 마음을 추스르는데 멜라니가 얘기했다. “처음에 아이가 생긴 걸 알았을 때 이제 여행은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이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냥 떠난 거 같아.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는데 그런 생각이 든 것 자체가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라며 다시 한 번 눈물을 터뜨렸다.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기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서로 어떤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라도 둘째를 갖기로 결심했던 건….

가는 날이 장날?
보고타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콜롬비아 제2 도시인 메데진으로 거처를 옮겼다. 메데진 근처에 있는 엘 페뇰과 구아타비타라는 마을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몰아 엘 페뇰로 향했다. 엘 페뇰은 지명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지칭하는 말인데 바위 하나가 거의 산만 한 크기다. 바위 하나의 높이가 200m에 달하는데다 형상이 마치 산 위에 달걀 하나가 올라가 있는 듯한 모습이다. 정상을 밟기 위해서는 무려 60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힘들어 죽겠다는 한규를 달래고 얼러서 겨우겨우 정상에 오르니 주변의 호수들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같이 올랐던 한국 여행자들과 맥주 몇 병을 앞에놓고 화창한 햇빛을 즐기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엘 페뇰에서 내려오니 멜라니가 가까운 구아타비타라는 마을에서 하루쯤 자고 가잔다. 계속해서 도시에만 있다 보니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하루쯤 자고 가는 것도 좋을 듯싶어 다른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 엄청난 사람들이 그 작은 마을에 우글거리고 있다가 우리 차를 보고는 숫제 포위를 해버렸다. 차도에도 사람들이 많은지라 거북이걸음으로 운전하는데 멕시코 번호판이 달린 우리 차를 보고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아예 빙 둘러서 우리만 따라 오는 것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악의 도시’라 불렸다던 ‘메데진’은이제 콜롬비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래요. 아빠랑 함께 산책 나왔는데 볼 것도 많고 사람들도 무척 친절해서 마음에 들어요.

겨우겨우 물가에 있는 주차장을 찾아서 차를 대고 내려보니 우리를 따라오던 300여 명이 주차장 입구에서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규 손을 잡고 멜라니와 주차장을 나서자 그 사람들이 그대로 움직이면서 포위망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재밌는 건 그래도 수줍음이 많은 시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가까이 다가오진 않아서 약 10m 반경의 포위망이 그대로 유지된 채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마침 바로 주차장 앞에 여인숙 수준의 마을 호텔이 있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그 사람들이 아직도 가질 않고 호텔 마당에서 득실거리며 우리를 기다리다가 나오는 걸 보고는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다시금 포위망을 형성했다. 몇 미터 걷고 있는데 한 총각이 용기를 내서 다가와서는 “어디서 왔느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멕시코 사람이냐” 등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그 총각 주위로 작은 원이 생기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난리가 난 것이, “뭐래? 뭐래?” 이런 걸 물어보고 있나 보다.

걷다가 말고 노점에서 엠파나다(밀가루 반죽 속에 채소, 고기 등이 들어간 남미식 만두)를 사 먹고 있자니 사람들이 멀리서 “맛있어? 맛있어?”라고 자꾸 물었다. 톱스타가 되면 이런 기분일까. 메데진에 있는 동안 중앙광장에서 한규랑 놀다가 메데진 학생들에게 완전 포위된 적도 있었는데, 이거 콜롬비아에 계속 있다간 콧대만 높아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쓴이 덩헌(이정현)은…
[아메리카 여행기]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콜롬비아

[아메리카 여행기]좋은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콜롬비아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떠난 이탈리아 로마에서 ‘참 좋은 사람’ 멜라니(정미자)를 만나 불꽃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매일 아침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헐레벌떡 회사로 향하던 어느 날, 결혼할 때 ‘너무 늙어 힘 빠지기 전에 세계 일주를 떠나자’던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부터 두 사람 모두 잘나가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 준비에 착수해 드디어 2007년 5월, 생후 43개월 된 아들 한규까지 데리고 거의 ‘무계획’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세워 길을 나섰다.

처음의 계획은 미국 LA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2년의 여행이었지만, 1년여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 뒤 어쨌든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박집 ‘남미사랑’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북미, 중미, 남미를 거치며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소한 깨달음 등을 담은 책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를 펴냈고, 아르헨티나에서 얻은 ‘보석’ 둘째 은규까지 넷이서 함께 계속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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