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천상의 커피 맛
![[아메리카 여행기]여행자가 들여다본 ‘사람들’의 삶 - 콜롬비아&에콰도르](http://img.khan.co.kr/lady/201109/20110914154228_1_america_tra1.jpg)
[아메리카 여행기]여행자가 들여다본 ‘사람들’의 삶 - 콜롬비아&에콰도르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그 다음날, 뉴질랜드에서 온 앤드류라는 총각과 함께 아침 일찍 한 커피 농장으로 향했다. 전날 저녁에 들어올 때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이곳 주변의 모든 산이란 산엔 죄다 커피나무가 있다. 1m 높이 내외의 나무에 빨갛고 파란 커피 열매들이 달려서 누구든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따로 예약을 한 것도 아니고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터라 농장에 가도 구경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했는데 다행히 예쁜 집에서 주인아저씨가 나와 직접 안내를 해줬다. 집 주변의 모든 야산은 커피나무로 숫제 도배를 해놨는데 이렇게 비탈길에 커피를 키우는 이유를 물어보니 커피나무는 일조량이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햇빛을 많이 받게 하기 위해서 산비탈에 키운단다.
한규는 보이는 족족 커피 열매를 따면서 신이 났다. 아직까지 아저씨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애써 키워놓은 커피 열매를 딴다고 불호령이 떨어질까봐 보는 우리가 더 조마조마했다.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은 전혀 기계를 쓰지 않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든다고 한다. 산비탈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나무를 촘촘히 심어놓아서 기계는커녕 사람도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커피나무를 둘러싸고 옥수수들이 심어져 있는데, 놀랍게도 이 옥수수들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피나무의 비료로 쓰려고 심은 거란다. 100% 유기농법인 것이다. 잘 익은 커피 열매들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수확해 커다란 솥에 한 번 삶아 껍질을 제거하는데 이 껍질도 다시 비료로 쓴다고 한다.

1 커피 농장 투어 후 주인아저씨 아들이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맛보는 멜라니. 2 커피 농장 노동자의 모습.
커피 농장 투어가 끝난 후 주인아저씨의 아들이 직접 로스팅부터 드립까지 마친 커피를 내줬다. 그 커피 향이야말로 환상적이었지만 투어 도중 만났던 커피 농장 노동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 300kg을 따야 고작 일주일에 30달러를 번다는 그들, 잘 걷지 못하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가족이 자기보다 더 큰 부대를 둘러매고 하나하나 커피 열매를 따서 모으는 모습….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인간의 행위 중 하나가 아닐까?

1 오타발로 시장의 모습. 2 콜롬비아의 한 도시에서 히피 청년과 함께.
남미로 넘어온 이후 경찰들의 검문이 부쩍 심해졌다. 남미에는 거의 없는 모델의 차인데다 현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번호판이 경찰들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외국 자동차 여행자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남미의 악질(?) 경찰들 중에는 차를 검문하는 척하며 마약 봉지를 슬쩍 밀어 넣고는 돈을 뜯는 경우도 있다고 한 터라 경찰들의 검문이 반가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도로교통법이 나라마다 워낙 달라서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인 나라도 있고 아닌 나라도 있고, 보험이 의무인 나라도 있고 아닌 나라도 있고, 전조등을 켜고 안 켜고도 다르므로 어떤 나라에 처음으로 갈 때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에콰도르 국경을 넘어서 한참 달리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경찰이 차를 세웠다. 제지에 따라 갓길에 차를 세우니 경찰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스페인어 실력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경찰의 빠른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차량 관련 서류를 넘기고 우리 여권을 보여주니 경찰의 눈에 혼란스러움이 스쳐갔다. 차량 관련 서류는 멕시코인데, 여권은 한국 여권이다. 멕시코에 사냐고 물었다. 그래서 여행하기 위해서 멕시코에서 차를 샀다고 하니, 그럼 멕시코에서부터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 거냐고 물었다. 여기까지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끝까지 갔다가 한국까지 차를 몰고 갈 생각이라고 말하니 박장대소를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트렁크를 열어보라고 하는데 그때부터는 검문이 아니라 본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게 너무 빤히 보였다. 트렁크 안의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며 이건 어떻게 쓰는 건지, 저건 뭔지 계속 물어왔다. 한참 탐구생활(?)을 하고 나서는 다시 한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한마디 했다. “Buen Viaje(좋은 여행)!!” 이 나라, 왠지 마음에 든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 있다

가끔은 차가 고장나서 이렇게 멈춰야 하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처음엔 ‘이게 뭐야?’ 하는 불만이 생겼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사실 한낱 여행자에 불과한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도 삶이란 것이 있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생존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을…. 백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억압받으며 살아왔던 사람들이 저렇게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게다가 한규가 맘에 들어 하는 피리 하나도 건졌으니 이쯤 되면 이미 목적을 넘어선 것 아닌가.

1 오타발로 근처의 마을에서 가죽 패치 재킷을 득템한 한규. 겨우 25달러에 샀다. 2 오타발로 동물시장에서 양과 함께하는 한규. 양띠인 한규는 양을 보고 신이 났다.
글쓴이 덩헌(이정현)은…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떠난 이탈리아 로마에서 ‘참 좋은 사람’ 멜라니(정미자)를 만나 불꽃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매일 아침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헐레벌떡 회사로 향하던 어느 날, 결혼할 때 ‘너무 늙어 힘 빠지기 전에 세계 일주를 떠나자’던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부터 두 사람 모두 잘나가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 준비에 착수해 드디어 2007년 5월, 생후 43개월 된 아들 한규까지 데리고 거의 ‘무계획’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세워 길을 나섰다. 처음의 계획은 미국 LA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2년의 여행이었지만, 1년여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 뒤 어쨌든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박집 ‘남미사랑’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북미, 중미, 남미를 거치며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소한 깨달음 등을 담은 책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를 펴냈고, 아르헨티나에서 얻은 ‘보석’ 둘째 은규까지 넷이서 함께 계속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