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여행의 소소한 묘미를 만끽하다

아메리카 여행기

에콰도르- 여행의 소소한 묘미를 만끽하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오늘’을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은 자유와 새로움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는 것을 꿈꾼다. 여기,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그 바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길을 떠난 가족이 있다. 손안에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무작정 나선 길 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진정한 삶에 대한 의미를, 그리고 함께하는 행복을 배웠다는 이 용감한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달은 에콰도르 곳곳을 둘러본 이야기다. (편집자 주)

[아메리카 여행기]에콰도르- 여행의 소소한 묘미를 만끽하다

[아메리카 여행기]에콰도르- 여행의 소소한 묘미를 만끽하다

에콰도르 방한 장비를 갖추다
처음 여행을 준비하면서 짐을 쌀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이랬다. ‘어차피 2년이나 돌아다녀야 하는데 굳이 다 바리바리 싸갈 필요가 뭐가 있어. 게다가 한 1년은 아메리카 대륙에 있을 테니 따뜻한 옷이 필요하겠지?’라는.

여행 준비 따윈 사치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떠났던 우리는 ‘남미’니까 무조건 ‘더운 곳’이라고 아주 단순한 생각을 해버린 거다. 그런데 콜롬비아에서부터 계속 고산지대의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점점 우리가 얼마나 ‘무식해서 용감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계절과는 상관없이 고산 도시일수록 날씨가 제법 추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콜롬비아에서부터 슬슬 방한 장비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워낙 등산 같은 데는 관심이 없었던 우리였고, 또 기왕 현지에 온 거 현지인처럼 입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보니 나중에는 현지인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닌 희한한 패션이 완성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여행자 차림(등산복에 트레킹화를 신고 챙 넓은 여행용 모자를 쓴)으로 치장을 하고 다니면 남미 전역에 퍼져 있는 ‘신의 손(소매치기)’들의 표적이 되기 쉬울 것 같아 그런 복장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게다가 우리야 차로 다니는 터라 짐의 무게에 대한 압박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패션이 완성되고부터는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들까지 영어나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태가 계속 발생했다.

콘돌 공원에서 만난 새들.

우리만의 공원, 콘돌 공원
에콰도르 오타발로를 떠나 수도 키토를 향해 떠난 우리 가족. 열심히 달리던 중 우리의 시선을 한순간에 잡아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Parque de Condor(콘돌 공원)’라는 표지판이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 우리 부부는 표지판을 보자마자 “한규야! 독수리 보러 갈까?”라고 물었고 한규 역시 “응! 볼래!”라고 아주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래, 가보자.

1·2·3 우리 가족의 ‘월동패션’ 소개. ‘남미’니까 단순히 더울 거라고만 생각했던 우리는 제법 추운 날씨에 슬슬 ‘월동용’ 옷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중고 옷 시장에서 각각 1만원, 2만원 정도 되는 가격에 한규와 필자의 점퍼를 구입. 필자의 점퍼는 나름 ‘할리데이비슨’ 정품이다. 멜라니는 가죽 패치를 100% 수공으로 이어 붙인 판초를 장만했다.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을 해 들어가는데 제법 높은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가보니 오타발로의 전경이 눈앞에 쫙 펼쳐지고 예쁜 호수들도 보이고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고, 뭐 하나 빠지질 않았다. 가는 중간중간에 멈춰서 사진도 찍고 쉬엄쉬엄 올라가다 보니 공원 입구가 나왔다. 그런데 제법 널찍한 이 주차장에 차라고는 한 대도 없었다. “어? 설마 오늘 쉬는 날 아니겠지? 자기야 오늘 무슨 요일이지?”라는 나의 질문에 멜라니도 “헉!” 하고 놀라며 “오늘 월요일이야”라고 답했다. 그제야 대부분의 박물관, 동물원들은 월요일이 휴일인 관계로 문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입구라도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우리가 서성거리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나와서는 “원래는 오늘 쉬는 날인데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들어가서 보고 나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입을 모아 “고맙습니다”를 외치는 우리에게 아저씨는 오히려 미안한 듯이 “오늘이 쉬는 날이라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는 열지 않았어”라고 하셨다. 어차피 차에 먹을 것, 마실 것은 그득하게 쌓였으니 카페테리아가 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공원 전체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개인 공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끔 느끼지만 남미 사람들은 친절하고자 할 때는 정말이지 대책 없이 친절해진다.

어렵게 도착한 에콰도르 해안 도시에서 동네 어부 아저씨들과 함께한 한규. 한규는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를 보고 신이 났다.

어렵게 도착한 에콰도르 해안 도시에서 동네 어부 아저씨들과 함께한 한규. 한규는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를 보고 신이 났다.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셨고 우리는 신이 나서 뛰어 들어갔다. 새들이 모여 있는 공원답게 여기저기 커다란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나서 들어가는 우리에게 아저씨가 한마디 하셨다. “여기는 새들을 잡아서 키우는 동물원이 아니야. 야생의 새들이 다친 걸 보면 데려다가 보호해주고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곳이지.”

아니, 이렇게 따뜻한 곳이 있을 수가…. 모처럼의 휴일에 쉬고 있다가 ‘불청객’을 맞은 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리의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졌다. 어쨌든 우리는 한규에게 팻말에 적힌 새들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하고 새들의 사진도 찍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새들을 구경하다가 돌아 나오면서 우리 부부는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입구에 쓰여 있던 입장료라도 아저씨에게 드리고 가자고 합의를 봤다.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입장료라도 드릴게요” 하면서 돈을 내밀자 아저씨는 후덕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 돈으로 꼬마에게 과자라도 사줘. 여행 잘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키토 적도선상에 날달걀을 세우고 기뻐하는 중. 적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키토 적도선상에 날달걀을 세우고 기뻐하는 중. 적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자기야, 바다 냄새가 나!
키토에 도착해 그동안 만났던 다른 여행자들과 조우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키토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은 멜라니와 내가 평생 처음으로 김치를 담갔다는 것이다. 멜라니나 나나 한국에 살 때부터 양가에서 보내주시는 김치를 받아서 먹기만 했으니 김치를 어떻게 담그는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 키토에서 정말 오랜만에 한국 슈퍼를 발견하고는 처음으로 김치 담그기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열악한 호스텔 주방 시설에도 어찌어찌해서 배추 네 포기를 ‘김치화(?)’하는 데 성공했고 그 성공에 고무된 우리는 남은 재료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키토를 떠났다.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한 관계로 이번에는 해안 도시로 가자고 결정을 내렸는데 키토에서 해안으로 가는 도로는 그동안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그 어떤 비포장길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최악이었다. 사실 비포장도로라고 함은 포장이 안 된 도로를 일컫는 말이어야 하거늘 이런 길을 비포장길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 몇 남지 않은 비포장도로들에게 심히 미안해야 할 정도로 이게 도로인지 산짐승이 다니는 길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고 이미 애초에 은퇴했어야 할 우리 차는 온몸을 비틀면서 신음을 하기 시작했다.

키토 적도 박물관 적도선상에서 시체놀이를 하고 있는 필자.

그렇게 내가 차에 타고 있는 건지 전신 안마기에 앉아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온몸을 털털털 털어가며 네 시간쯤 달렸는데 달리다가 창문을 여니 갑자기 바다 내음이 확 밀려들기 시작했다. “자기야, 바다 근처에 왔나봐. 바다 냄새가 나!”라는 나의 외침에 멜라니도 환성을 지르며 창문에 매달렸는데, 이상하게도 바다는커녕 짙은 수풀만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저 앞에 보이는 코너만 돌면 바다가 펼쳐져 있을 거라 굳게 믿으며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지만 그 후로 두 시간을 더 달려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그럼에도 바다 냄새는 점점 짙어져만 갔다.

이거 바다 귀신에라도 홀린 게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차를 세우고 쉬기로 했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려서 트렁크를 여니 제일 위에 있던 봉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고 거기서 뭔가가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그 정체는 키토 한국 슈퍼에서 산 ‘까나리액젓’…. 이 녀석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까지 얼마나 몸으로 울었던지(?) 트렁크에 가득 쌓여 있던 우리의 모든 짐에 촉촉이 젖어들고도 모자라 카펫으로 된 트렁크 바닥까지 흥건히 적신 것이다. ‘서해안의 싱싱한 액젓을 장기간 발효시켜 비린내가 없다’라는 친절한 설명이 무색하게 찌는 듯한 날씨 속에서 액젓은 엄청난 냄새를 피워 올렸고, 차 문을 연 지 5분도 안 되어 그 동네 파리들이 새카맣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단은 갖고 있던 방향제를 있는 대로 뿌리고 휴지로 닦아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그게 바다 냄새라고 생각할 때는 일종의 설렘을 주었는데 까나리액젓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로 변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바다는 그 이후로 약 다섯 시간을 더 달려서야 만날 수 있었다.

글쓴이 덩헌(이정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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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떠난 이탈리아 로마에서 ‘참 좋은 사람’ 멜라니(정미자)를 만나 불꽃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매일 아침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헐레벌떡 회사로 향하던 어느 날, 결혼할 때 ‘너무 늙어 힘 빠지기 전에 세계 일주를 떠나자’던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부터 두 사람 모두 잘나가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 준비에 착수해 드디어 2007년 5월, 생후 43개월 된 아들 한규까지 데리고 거의 ‘무계획’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세워 길을 나섰다.

처음의 계획은 미국 LA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2년의 여행이었지만, 1년여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 뒤 어쨌든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박집 ‘남미사랑’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북미, 중미, 남미를 거치며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소한 깨달음 등을 담은 책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를 펴냈고, 아르헨티나에서 얻은 ‘보석’ 둘째 은규까지 넷이서 함께 계속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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