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했던 여름이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계절의 끝자락을 거머쥐고 선 어느 날, 부산 대룡마을을 찾았다. 예술의 향취와 정겨운 풍경이 흐르는 조용한 시골 마을, 하늘은 파랬고 바람은 선선했다.
조각가 문병탁과 도예가 하영주 부부의 작업실 ‘스페이스 223’. 흙 놀이 교실과 일일 도자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부산 해운대에서 울산 방향으로 14번 국도에 몸을 싣고 30분쯤 달리다 보면 ‘대룡마을’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나타난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오리. 공예가와 도예가, 조각가 등 젊은 예술인 13명이 둥지를 튼 예술 창작촌이다. 낮은 담장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선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분주했던 여름의 소란이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알록달록 마을을 수놓은 벽화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조형물, 시골 풍경 속 있는 듯 없는 듯 몸을 숨긴 예술 작품들이 한데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속으로 즐거운 여행이 시작된다.
[동네 이야기]부산 대룡마을 - 예술가들이 사랑한 동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곳곳에 체험 가능한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을지도가 방문객을 맞는다. 농가와 작업실이 한데 모여 있는 대룡마을에서는 야생화 체험과 논 체험, 농장 체험 등 여러 자연 체험과 테라코타, 도자 체험과 같은 다양한 예술 활동도 경험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세라미스트 김미희씨의 ‘작업실 오리’. 10년 전 부산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도자기 공방을 차린 그녀는 대룡마을의 터줏대감이다. 분주한 도시를 떠나 조용한 작업 공간을 찾고 있던 중 아늑한 마을 분위기에 반해 남편과 함께 아예 이사를 왔다.
어디쯤인지 두리번거릴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마을 이정표. ‘작업실 오리’의 김미희 작가. 대문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허브로 꾸며진 아름다운 뜰을 구경할 수 있다. 단, 공방에 들어갈 때는 주인장의 허락을
구할 것. 수풀로 우거진 담벼락에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
대룡마을에는 그녀와 같은 이유로 연을 맺게 된 예술가들이 많다. 10여 년 전부터 하나 둘 모여든 부산 지역 예술가들은 평범한 시골 마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고 대룡마을에는 자연스럽게 예술 창작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곳곳의 조형물들과 벽화뿐 아니라 집집마다 선물처럼 걸린 문패도 그들의 작품이다. 각종 예술품들로 꾸며놓은 공방 자체가 설치미술이자 전시장이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 마을을 찾는 발걸음들이 이어졌고, 작가들은 누구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청량한 자연 속 예술 작품 감상과 도시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예술 체험까지, 즐겁고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볕이 내리쬐는 담장에 나무 한 그루가 기대고 있다.
‘작업실 오리’에서는 김미희씨의 도자기 작품을 비롯해 오리를 모티브로 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눈길이 가는 곳곳 야무진 예술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최근 마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며 불쑥불쑥 가정집 방문이 열리는 바람에 당부의 글귀를 대문에 써 붙이긴 했지만 운이 닿으면 예술가와 마주 앉아 예술가가 빚은 찻잔에 담긴 향긋한 차를 음미하며 담소를 나누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동네 이야기]부산 대룡마을 - 예술가들이 사랑한 동네
아쉬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을의 공동 작업장 ‘아트인오리’로 향했다. 참여 작가들의 기획전을 비롯해 작가와의 대화, 소규모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지친 발걸음들이 쉬어가는 ‘무인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작가와 방문객 모두 더없이 자유로운 공간이다. 다목적 공간인 ‘오리공작소’와 조각 체험장 ‘SPACE 223’까지, 느린 걸음으로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날 여유로운 휴일을 맡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동네 이야기]부산 대룡마을 - 예술가들이 사랑한 동네
[동네 이야기]부산 대룡마을 - 예술가들이 사랑한 동네
‘작업실 오리’네 애교 많은 고양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기다렸다는 듯 포즈를 잡았다. ‘아트인 오리’ 작가들의 다목적 공간, 오리 공작소. 방문객들이 주인이 되는 아트인 오리의 ‘무인카페’. 방문객들의 흔적이 빼곡히 남겨져 있다.
‘작업실 오리’ 김미희 작가의 공방. 맑은 날도 좋지만 비오는 날은 더 좋단다.
‘아트인 오리’로 가는 길. 수풀에서 있던 토끼인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룡마을 가는 길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대룡마을 113-2. 자가용 이용시 해운대·송정에서 울산 방향으로 14번 국도를 타면 된다. 기차는 동해남부선(동래,해운대,부전역 등)에서 남창, 울산 방향을 타고 좌천역에서 하차, 좌천 농협 옆에서 남창, 울산 방향 시외버스를 타고 대룡마을에 내리면 된다. 다양한 체험활동은 대룡마을 홈페이지(www.daeryong.kr)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글·사진 / 노정연 기자 ■문의 051-727-7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