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선비, 입신의 꿈을 안고 길을 나서다…영주 소백산 자락길](http://img.khan.co.kr/lady/201110/20111020113046_1_yongju1.jpg)
[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선비, 입신의 꿈을 안고 길을 나서다…영주 소백산 자락길
걷는 동안 가을이 친구하자며 손짓한다
소백산 자락길 제1구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명한 영주 소수서원에서 시작한다. 여타 서원에 비해 건물들이 자유롭게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초기 서원의 모습을 간직한 것이란다. 서원 앞을 흐르는 강과 솔숲이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한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툇마루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면 “공자 왈~ 맹자 왈~” 할 것 같다. 짧은 시간 서원을 돌아보고 금성단으로 향했다. 금성단으로 향하는 300m 길은 비록 아스팔트가 깔렸지만 길가에는 계절의 무게를 잔뜩 이고 머리를 숙인 벼가 친구 하자며 자리하고 있고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코스모스 역시 친구를 부르듯 손짓한다. 가을빛을 머금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사과나무를 구경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사과나무 과수원에는 감미로운 7080 음악이 흐른다. 분명 나무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일 게다.
금성단의 본디 이름은 금성대군신단이다. ‘단종 복위운동 성지’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숙부임에도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지 동생 금성대군은 조카의 왕위를 복위시키려 애를 썼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당시 승자인 세조는 아우 금성대군을 비롯해 성삼문 등 사육신 모두를 처형했다. 그렇게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과 사육신 등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금성단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혈육 간에 피를 본 것이 비단 우리네 역사뿐이겠는가. 셰익스피어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 숙부를 죽이기 위해 햄릿이라는 인물을 가공했다.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금성단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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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선비, 입신의 꿈을 안고 길을 나서다…영주 소백산 자락길
주자에게 무이산이 있다면, 안향에겐 죽계천이 있다
죽계구곡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난여름 많은 비가 와서인지 좁은 계곡물 소리가 천지를 호령하는 듯하다.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는 소수서원이 있는 백운동을 거처 영주 서천으로 이어지는 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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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선비, 입신의 꿈을 안고 길을 나서다…영주 소백산 자락길
현재는 1, 2, 4, 5, 9곡의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 이번 구간은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잠시 기거했다는 초암사까지다. 전체 구간에서 3분의 2정도를 걸었으니 다리도 쉬겠다고 아우성일 터, 초암사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달밭골길로 향하자.
걷기 여행의 삼합을 경험할 수 있는 곳
그동안 포장길에 다소 실망스러웠다면 달밭골길에서 시작하는 구간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달밭이라는 말이 낯설 텐데, 이는 ‘산에 있는 밭’을 일컫는 말이란다. 즉,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고 살았을 뿐 외지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다.
초암사를 나서 10여 분 지나면 그동안의 길과 완전히 다른 원시림을 만날 수 있다. 계곡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좌우에는 빈틈없이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길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다. 도시에서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고생한 다리가 호사를 누렸다. 더군다나 하늘 높이 솟은 전나무가 피톤치드를 내뿜고 있어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 구간은 개방된 지 오래되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덕에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백산 자락길 옆으로 붉은 사과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아람진 농촌 체험 마을에서 사과 따기 체험을 하고 있는 여행객들.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이곳을 걸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퇴계 선생은 소수서원을 출발해 국망봉 아래에 있던 석륜사에서 사흘을 머물며 소백산 기행을 했다고 한다. 하산할 때는 달밭골을 지나 비로봉으로 갔다고 하니, 우리가 지나는 이 길이 바로 퇴계 선생이 지난 그 길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길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길이 갖고 있는 연속성에 놀라게 된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영주시 제공).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모습.
소백산 자락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계곡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정안동 계곡은 특히나 소백산 깊숙이 숨어 있는 곳이다. 이 계곡은 등산객이나 약초를 캐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인데 하늘을 올려다봐도 빛을 찾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띄엄띄엄 화전민이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가 있었지요. 하지만 인적이 끊인 지 50년이 지난 요즘은 사람의 모습을 찾기 어렵답니다. 이 길을 개척하는 게 가장 난코스였지요. 사람의 발길이 워낙 없다 보니 냉혈 계곡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어요.”
해설사의 설명이다. 하늘로 쭉 뻗은 나무들이 파란 하늘을 과녁 삼아 날아가는 화살 같다. 울창한 전나무 숲길이 끝날 쯤 작은 산장이 과객을 맞이했다.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아니기에 이곳에서 목만 축이고 일어나려 하는데, ‘자유의 종’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종소리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꿈이 있습니다. 나지막이 종을 한 번 울려주세요. 당신의 영혼이 깨어날 것입니다.’
안내 글에 맞춰 내 영혼을 깨우기 위해 ‘땡땡땡’ 종을 쳐봤다. 인적 없는 곳에서 축 늘어져 있던 멍멍이가 종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길지 않은 길이지만 12첩 반상을 받은 기분이다. 천리 먼 길 괴나리봇짐 메고 과거를 보고 왔지만 이런 길을 걷는다면 낙방해도 실망스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해도 구중궁궐의 임금이 부러울까.
어느덧 눈앞에는 신라 말에 창건한 비로사가 지키고 있다. 여기까지 도착했다면 점심 먹고 출발한 자락길도 종착역에 다다른 셈이다. 시각은 어느새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여행 가이드 ▲영주 소백산 자락길 제1구간 안내 소수서원-금성단-압각수-순흥향교-삼괴정-죽계구곡-초암사-달밭골-비로사-삼가 주차장(총 12.6km, 5시간 소요) ●문의 영주문화연구회 054-633-5636, http://www.sanjarak.or.kr/ ▲교통 안내 제1구간의 종착지 삼가주차장에서 삼가리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26번 버스(오전 6시10분~오후 6시, 1일 8회 운행)를 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풍기이다. 이곳에서 27번 버스(오전 6시 50분~오후 7시 20분, 1일 14회 운행)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리면 출발지인 선비촌에 도착할 수 있다. ▲숙박 및 맛집 안내 대청마루에 앉아 사색에 잠겨도 보고 때론 아이들에게 특별한 한옥 숙박 체험 기회도 줄 수 있는 선비촌을 추천한다. 숙박 체험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까지 할 수 있으니 더욱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다. 요금은 2인실 4만5천원, 4인실 7만원 선이다. ●위치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357 ●문의 054-638-6444, http://www.sunbichon.net 맛집으로는 저잣거리에 있는 선비촌종가집(054-637-9981)을 추천한다. 쇠고기국밥이 유명하다. 30년 전통의 순흥 전통묵집(054-634-4614)의 묵밥과 옛날 토담집을 개조한 청다리 옛집(054-633-4288)의 닭볶음탕도 맛있다. ![]() 선비의 고장 영주 선비촌을 지키고 있는 선비상. 배순정려비 앞에는 마을 어르신들께서 늘어놓은 붉은 고추가 가득하다. |
영주에서 사과 과수원 농부가 되어보자! 영주는 사과가 유명한 만큼 아이들과 함께 사과 따기 체험도 하고 수확의 기쁨도 즐길 수 있다. 9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 사과 따기 체험을 하려면 아람진 농촌 체험 마을로 가면 된다. 체험 비용은 1인 기준 5천원이며 시식과 함께 사과 1kg 정도를 따갈 수 있다. ●위치 영주시 부석면 임곡2리 ●문의 054-637-8300, http://www.hanbamsil.co.kr
차 트렁크에 사과를 가득 실었다면 자동차로 7분 거리에 있는 부석사를 찾아가자. 부석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있다. 무엇보다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는 가을 풍광이 장관이다. ●위치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문의 054-633-3464, http://www.pusoksa.org
‘2011 영주 풍기인삼축제’가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6일간 영주시 풍기읍 남원천 둔치에서 개최된다. ●문의 054-635-0020, http://www.ginsengfestival.com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소개된 외나무다리로 유명한 영주 무섬마을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축제가 10월 1일부터 2일까지 양일간 개최된다. ●문의 054-639-6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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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떠나는 테마여행]선비, 입신의 꿈을 안고 길을 나서다…영주 소백산 자락길
2001년 본인보다 여행을 1% 더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에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업체의 로드플래너 및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 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글·사진 / 여행작가 임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