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불어온 찬바람에 내몰리듯 길을 떠났다. 겨울에도 초목이 마르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는 땅. 더 이상 나아갈 데 없는 땅끝에서 마주한 바다는 진한 가을볕 아래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1 10월, 남도엔 멸치 말리기가 한창이다. 은빛 멸치들이 가을볕 아래 몸을 뉘이고 있다. 2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탑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일몰. 3 크고 작은 섬들이 장관을 이루는 해남 앞바다와 바닷가 마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땅끝전망대.
전라남도 해남에는 땅끝마을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 육지로 치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며 삼천리금수강산의 시작점이자 끝점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에겐 스쳐가는 계절의 여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 안은 들판에는 계절을 잊은 들꽃들이 향기를 내뿜고, 옹기종기 작은 섬들이 머리를 내민 앞바다는 아침저녁으로 색을 바꾸며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끝. 지리학적 위치가 주는 명백한 정의는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는 끝을 보기 위해, 누군가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매년 수많은 발자국들이 땅끝에 선다.
1 땅끝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서서히 드러나는 해남 앞바다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2 땅끝전망대에서 만난 소망자물쇠. 땅끝에 선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 반. 해남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를 달리면 땅끝마을에 다다른다. 터미널에 도착해 땅끝으로 가는 완행버스에 몸을 싣자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가 출렁이며 춤을 춘다. 촉촉한 흙냄새와 바다냄새에 한나절을 달려온 피로가 저절로 녹아내리는 듯하다. 땅끝마을의 정식 지명은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다. ‘더 이상 갈 수가 없다’라는 뜻의 ‘갈수리(渴水里)’였다가 물이 귀한 바닷가 마을에 좋지 않은 이름이라 하여 ‘갈두리’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사실 해남은 14개의 읍·면을 거느리고 있는 전라남도에서는 가장 큰 지역이다. 대흥사, 미황사 등 곳곳에 아름다운 절과 명승지가 많다 보니 시간에 쫓겨 정작 해남까지 와서 땅끝마을을 보지 못하고 땅끝마을에 와서는 ‘진짜 땅끝’을 밟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다섯시간을 달려와 잠시 숨을 돌린 해남시외터미널. 이곳에서 다시 땅끝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 땅끝’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갈두산 사자봉 땅끝을 말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갈두산 전망대에 올라 신비로운 남도의 풍광을 감상하고, 산책로를 따라 땅끝탑에 들른 뒤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땅끝 선착장 입구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땅끝 모노레일 승강장으로 이어진다. 모노레일에 몸을 싣고 비탈을 오르며 정면으로 난 창을 통해 푸른 남해 바다와 다소곳이 자리 잡은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드넓은 수평선과 함께 아름다운 남해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여객선터미널. 보길도로 가는 배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객선터미널에는 노화도와 보길도를 왕복하는 유람선들과 작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산인지 섬인지, 어깨를 거느린 절벽들이 바다를 감싸 안고 있다. 백일도와 조도를 비롯해 저 멀리 진도까지, 땅끝에서 마주한 바다의 풍경은 뛰어내리면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아련한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400m의 해안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눈앞에 바다를 두고 길을 안내하는 산책로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한낮에도 빛을 가릴 정도다. 바다와 숲을 감상하며 10여 분쯤 내려가면 드디어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탑에 닿는다. 북위 34도 17분 21초, 해남군 송지면 사자봉 땅끝이다. 바다를 향해 나 있는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은 평생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하다. 붉은 노을을 토해내며 수평선 아래로 몸을 뉘는 태양과 붉게 타는 바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땅의 끝에서 만난 새로운 시작에 여행객의 마음은 희망으로 물들어간다.
남도엔 가을이 한창이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피어난 코스모스.
작지만 아름다운 절 미황사. 가을볕 아래 빨래가 보송보송 말라간다.
1 마을에서 만난 강아지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2 땅끝마을 여행자들의 쉼터, 게스트 하우스 ‘케이프’. 3 땅끝전망대에서 땅끝탑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바다와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땅끝마을 가는 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해남시외버스터미널까지 고속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해남시외버스터미널에서 땅끝행 버스를 타면 된다. 직행은 45분, 완행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차를 타고 목포 혹은 광주까지 간 다음에 버스로 갈아타고 땅끝마을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2번 국도로 갈아 타고 성전을 지나 해남읍으로 가면 된다. 호남고속도로는 광주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된다. |
■글&사진 / 노정연 기자 ■문의 / 땅끝관광안내소 061-530-5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