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여행기]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 페루](http://img.khan.co.kr/lady/201111/20111110155910_1_america_tra1.jpg)
[아메리카 여행기]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 페루
드디어 페루다. 믿기 힘든 잉카의 전설과 신비의 마추픽추가 기다리는 곳. ‘남미!’라고 누군가 외칠 때면 저절로 떠오르게 되는 나라, 페루에 입성했다. 하지만 우리를 먼저 반긴 것은 찌는 듯한 햇볕과 황량한 사막,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는 지독한 가난의 모습이었다. 에콰도르-페루 사이의 국경을 넘어 조금 달리자마자 넓게 펼쳐진 사막의 향연이 눈에 들어왔다.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 봤던 울창한 밀림들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페루의 모습은 너무도 메말라 있었다.
‘헉헉’대며 차를 몰고 가다가 첫 번째 도시에 도착할 무렵 저 멀리 황량한 사막에 수많은 화장실 같은 것들이 보였다. 심지어 국경에서도 ‘적당한’ 곳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는데 ‘대체 이 사막에 왜 저리도 많은 화장실을 만들어놓았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멜라니도 “자기야, 저거 화장실 맞지?”라며 물어왔다. 점점 화장실로 추정되는 군락이 가까워오는데 멀리서 봤을 때보단 좀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일반 화장실보다 약간 더 큰 사이즈일 뿐 아무리 봐도 화장실이나 창고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절대 뭔가 다른 용도로는 쓰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이라고 하기엔 그 숫자가 너무 많고, 창고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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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여행기]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 페루

페루 트루히요에서 산타 복장을 한 아저씨와 함께한 한규.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물론 한국에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은 없는 사람들이 작은 꿈이나마 꿀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중남미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본 극에 달한 양극화 현상은 ‘없는 사람들’에게 내일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과거의 한국이 ‘비록 지금의 나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며 살지만 적어도 내 자식들만큼은…’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중남미는 ‘내가 쓰레기를 뒤져가며 사는데 내 자식은 나중에 좀 더 많은 쓰레기를 뒤질 수 있겠지’의 느낌이랄까?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쓰레기통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는 걸인을 봤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페루 망코라에서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즐거워하는 한규.
가난은 죄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자의 죄가 아니라 그런 시스템을 만든, 혹은 방치한 국가의 죄다.

와카치나에서 샌드보드를 타고 노는 한규.
리마의 한인 민박집에서 며칠을 쉰 후 우리는 아름다운 사막으로 유명한 와카치나로 차를 몰았다. 베네수엘라에서 만난 스위스 커플이 극찬을 하며 강력히 추천한 곳이어서 큰 기대를 하고 도착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스위스 커플이 ‘모래 언덕(Sand Dune)’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모래 언덕이 아니라 모래 산맥이다. 게다가 한가운데 위치한 오아시스의 모습은 어떤 말로도 표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만 그 스위스 커플이 “더우면 오아시스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물의 상태가 딱히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숙소로 갔다. 그런데 숙소 안의 수영장 물이 더러워서 도저히 수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래만에 수영장을 본 한규가 빨리 들어가자고 난리를 쳐서 스태프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숙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숙소를 찾는데 숙소 주인들의 표정에 황당함이 어려 있었다. 웬 동양인이 나타나서는 방은 볼 생각도 않고 “수영장 있냐.
수영장 좀 보여달라”라고 하니 말이다. 결국 찾아낸 ‘수영장이 깨끗한’ 숙소는 와카치나에서도 가장 비싼 곳이었다. 사실 그래봐야 일반 숙소와 숙박비가 딱 만원 정도 차이 난다. 물론 제한된 예산으로 여행을 다니는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로서는 만원이 하루하루 쌓이면 한 달이면 30만원, 일 년이면 360만원이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가급적 아껴가며 다니지만 가끔은 이런 호사(?)도 부려줘야 장기 여행을 이겨낼 수 있다. 한규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수영장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우리 부부는 호텔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모래 언덕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봤는데 정말 끝내줬다.

1 와카치나 숙소에서 키우는 앵무새. 2 페루 도로의 모습. 마치 그림 같다. 3 도시에서 밀려난 최하위층 빈민들이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주워 만든 사막의 빈민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4 드디어 페루에 입성했다.
와카치나의 명물은 아름다운 사막에서 즐기는 샌드보딩이다. 워낙 모래 언덕의 높이가 높다 보니 마치 슬로프처럼 보드를 타고 내려올 수 있는 거다. 콜롬비아에서부터 중간중간 만나왔던 한국 여행자들과 조인을 해서 버기카에 올라타고 투어를 시작했다.
사막의 초입에서부터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버기카. 마치 청룡열차를 탄 것 같다. 단순히 사막을 달리는 수준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때론 경사로를 옆으로 달리며 엄청난 스릴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신이 나서 함께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운전사 아저씨가 속도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해주었다. 신나 하던 한규도 몇 번 반복되자 멀미가 나는 듯했지만 신이 나서인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러다 아저씨가 갑자기 버기카를 멈춰 세우더니 뒷좌석에서 보드들을 내렸다. 사실 보드라고 부르기엔 좀 아쉽게 생긴 합판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뒤에다가는 양초를 슥슥 문질렀다.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다. 양초를 다 바른 아저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보드를 잘 타는 사람은 서서 타도 되지만 해마다 두어 명씩 서서 타다가 넘어져서 죽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당연히 누워서 타야지. 우리도 사막에서 보드 타다가 죽기는 싫다고.
한 명씩 보드 위에 엎어져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서서 타다가 넘어지면 황천 구경하겠구나’ 싶었다. 두 번을 그렇게 타고 마을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 해가 지는 모습이 보였다. 오아시스 바로 옆의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차를 세우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데 이건 잠깐 보고 갈 광경이 아니었다.
운전사 아저씨에게 “우리는 걸어서 내려갈 테니 먼저 돌아가라”고 말하고 사막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돌 하나 나무 하나 풀 하나 없이 그저 모래로만 이루어진 사막과 그 너머로 불타오르는 듯 넘어가는 태양의 모습. 사람들 모두 말이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리라.

버기 투어할 때의 모습. 사막 너머로 불타오르는 듯 넘어가는 태양의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바라봤다.
글쓴이 덩헌(이정현)은… 제대 후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떠난 이탈리아 로마에서 ‘참 좋은 사람’ 멜라니(정미자)를 만나 불꽃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매일 아침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헐레벌떡 회사로 향하던 어느 날, 결혼할 때 ‘너무 늙어 힘 빠지기 전에 세계 일주를 떠나자’던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부터 두 사람 모두 잘나가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여행 준비에 착수해 드디어 2007년 5월, 생후 43개월 된 아들 한규까지 데리고 거의 ‘무계획’이나 다름없는 일정을 세워 길을 나섰다. 처음의 계획은 미국 LA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2년의 여행이었지만, 1년여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한 뒤 어쨌든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박집 ‘남미사랑’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북미, 중미, 남미를 거치며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소한 깨달음 등을 담은 책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를 펴냈고, 아르헨티나에서 얻은 ‘보석’ 둘째 은규까지 넷이서 함께 계속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다. |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