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돌담 따라 풍경 소리 들으며 창덕궁길 산책

동네 이야기

야트막한 돌담 따라 풍경 소리 들으며 창덕궁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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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창덕궁길을 걸었다. 옹기종기 작은 한옥들이 모여 있는 동네를 거닐며 낮은 돌담 너머 궁 안 가득한 가을도 엿보았다. 파란 하늘 아래 고즈넉한 주말 나들이, 더할 나위 없이 한가로웠다.

1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돈화문. 이 문을 넘으면 500년 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2 창덕궁 길목을 지키고 있는 엿장수.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풍경이다.

1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돈화문. 이 문을 넘으면 500년 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2 창덕궁 길목을 지키고 있는 엿장수.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풍경이다.

낮은 돌담 너머 깊어지는 창덕궁의 가을.

낮은 돌담 너머 깊어지는 창덕궁의 가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서울에 살면서도 고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깊어지는 듯 멀어지는 가을을 쫓아 나선 길, 토요일 오후 창덕궁 앞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복궁 동쪽에 자리 잡았다 하여 ‘동궐’이라고도 불렸던 창덕궁은 서울 시내 고궁 중 가을 경치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10월 말부터 11월 중순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 신령처럼 궁을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와 향나무들 사이로 단풍이 타오르고, 울긋불긋 가을에 물든 궁궐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특히 궁궐의 뒷동산이자 왕가의 정원이던 후원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창덕궁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후원은 가끔 호랑이와 표범이 나타났다고 전해질 정도로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데 가을빛이 담뿍 어린 정자와 연못을 거닐다 보면 그 옛날 권세를 누렸던 왕이 부럽지 않다. 지정된 시간, 정해진 인원이 해설사를 따라 돌아보는 것만 허용되기 때문에 주말에는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창덕궁은 창경궁으로 이어진다. 멀리 서울대학병원이 보인다.

창덕궁은 창경궁으로 이어진다. 멀리 서울대학병원이 보인다.

창덕궁길 끄트머리에 있는 빨래터. 왼쪽 언덕을 넘으면 계동이다. 한옥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창덕궁길.

창덕궁길 끄트머리에 있는 빨래터. 왼쪽 언덕을 넘으면 계동이다. 한옥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창덕궁길.

궁을 나와 현대 계동 사옥과 창덕궁 사이로 난 골목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가 펼쳐진다. 북촌의 동쪽 동네, 원서동과 계동으로 이어지는 창덕궁길이다. 경복궁의 서쪽 동네인 서촌이 조선시대 역관이나 의관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면 삼청동과 가회동, 팔판동, 계동 일대 북촌은 사대부들이 살았던 곳이다. 옛 모습을 간직한 북촌 ‘윗동네’가 수백 년 전의 권세를 이어오고 있다면 창덕궁길이 이어지는 북촌 ‘아랫동네’의 느낌은 또 다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한옥들 사이 작은 골목이 흐르는 소박하고 정감 어린 동네다.

창경궁길이 이어지는 원서동 풍경.

창경궁길이 이어지는 원서동 풍경.

알록달록 귀여운 조각들로 꾸며놓은 놀이터 담장. 창덕궁길에 위치한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알록달록 귀여운 조각들로 꾸며놓은 놀이터 담장. 창덕궁길에 위치한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미용실과 놀이터와 노인정이 있는 사람 사는 동네에, 오래된 미술관과 박물관, 작은 카페들이 자리를 잡았다. 마당극과 창극, 판소리 등 전통 문화예술 공연을 펼치는 ‘북촌창우극장’과 실험적인 전시로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는 ‘인사미술공간’, 원서동을 기반으로 한 세 명의 아티스트들이 꾸리는 기념품 가게 ‘메이드인 원서동’ 등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예술 공간들이 떠들썩하지 않게 어우러져 있고 누구라도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동네 사랑방 ‘동네커피’ 등 한적한 카페들도 조용히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길이 끝나는 무렵 왼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중앙고등학교가 나온다. 바로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계동길이다. 얼마 전부터 작은 공방과 카페, 맛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걷는 즐거움을 더하는 곳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야트막한 돌담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긴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짧아진 해만큼이나 멀어진 가을을 바라보며 또 다른 설렘으로 새 계절을 기다린다.

[동네 이야기]야트막한 돌담 따라 풍경 소리 들으며 창덕궁길 산책

[동네 이야기]야트막한 돌담 따라 풍경 소리 들으며 창덕궁길 산책

1 중앙고등학교 앞 빈티지 소품과 가구를 파는 ‘place Mori’ 2 어느 집 대문 위 까치밥으로 남아 있는 감 하나에 발걸음을 멈췄다. 3 실험적 전시로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사미술공간.

1 중앙고등학교 앞 빈티지 소품과 가구를 파는 ‘place Mori’ 2 어느 집 대문 위 까치밥으로 남아 있는 감 하나에 발걸음을 멈췄다. 3 실험적 전시로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사미술공간.

창덕궁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직전. 현대 계동 사옥과 창덕궁 사이로 난 돌담길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왼편 언덕을 넘으면 중앙고등학교가 나오고 그 아래쪽으로 계동길이 이어진다. 창덕궁 관람 예약은 홈페이지(www.cdg.go.kr)를 통해 할 수 있다.


■글&사진 / 노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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