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여행기]매일 기대되는 우리의 여행 - 쿠스코&마추픽추](http://img.khan.co.kr/lady/201112/20111221174138_1_america_travel1.jpg)
[아메리카 여행기]매일 기대되는 우리의 여행 - 쿠스코&마추픽추
와카치나에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한국인 여행자 세 명과 함께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로 가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지도상의 위치로 보면 우리가 있는 와카치나에서 쿠스코로 곧바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도 한참 밑에 있는 아레키파라는 도시를 경유해서 가는 방법을 모두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인천을 가는데 뜬금없이 대전을 경유해서 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길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돌아도 너무 돈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이 물어보는 사람마다 소요시간이 죄다 다르다는 거였다. 이 사람은 열 시간, 저 사람은 스무 시간, 어떤 사람은 서른 시간이라고 말했다. 대책 없는 우리 가족은 그냥 마음 편하게 가장 짧은 시간(여덟 시간)을 이야기한 사람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과감히 쿠스코로 바로 올라가는 루트를 선택해 신나게 출발했다.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날 때까지는 도로도 포장되어 있는데다가 경사도 그다지 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킥킥거리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영 여행을 안 해봐서 잘 모르나봐. 역시 우리 생각대로 하는 게 좋아”라며 신나게 달렸는데, 그 웃음은 한 시간 후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거짓말처럼 포장도로가 끊겼고 눈앞에 까마득하게 펼쳐진 거대한 산맥과 이게 도로인지 산 옆에 금을 그어놓은 건지 구분이 안 가는 끝없는 지그재그 도로의 향연…. 우리 차는 ‘대체 이게 뭐냐’라는 듯 툴툴거리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고 결국 완벽하게 시동이 꺼져서 한 시간 동안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1 쿠스코 대성당의 모습. 2 쿠스코의 잉카인들이 만든 돌담길.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아아, 드디어 나에게도 그분이 오셨다! 나름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고원지대를 거쳐서 왔기 때문에 나에게 고산증은 없을 거라 자신했는데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래도 워낙 피곤하게 왔기 때문에 그저 감기 증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속도 메슥거리고 머리는 점점 깨질 듯 아파왔다. 멜라니와 한규는 멀쩡한데 나만 그러니 가장으로서 창피하기도 하고 앞으로 갈 볼리비아에서도 힘들어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고산병약, 두통약, 멀미약을 죄다 먹어도 별 효과가 없다가 숙소 아주머니가 계속 끓여주는 코카차(코카 잎으로 만드는 차로 고산증에 좋다고 한다.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그 코카 맞다. 물론 차로 마시면 환각 증상 같은 건 없고, 남미 고산지역에선 흔히들 차로 마시기도 하고 씹기도 한다)를 마셨더니 그나마 조금씩 좋아졌다. 걱정했던 한규는 숙소 마당에서 뛰어놀며 건강함을 과시했고 역시 아이들이 어른보다 적응력이 훨씬 좋다는 우리의 이론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왜 ‘메이드인 차이나’를 가져온 거야?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가 마침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온 도시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넘쳐났다. 날이 더운 남반구에서 산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아, 여기 산타들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담길의 돌이 신기해요!
그리고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가 됐다! 한규는 며칠 동안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무선 조종 자동차를 손에 넣게 됐다. 호스텔 마당에서 반나절을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던 한규는 그 다음날도 눈을 뜨자마자 자동차를 찾았고 마당으로 나와 자동차의 스위치를 켰지만…, 자동차는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배터리를 바꿔봐도 툭툭 쳐봐도 자동차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당황하기 시작했으며, 너무나도 당연히 한규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사실 남미의 서비스 마인드로는 절대 교환해줄 리가 없다(손전등 배터리가 작동되지 않아서 30분을 싸운 끝에 겨우 환불받을 수 있었다). 자동차는 겨우 반나절을 갖고 놀았는데 우는 한규를 달래는 데는 한나절이 걸렸다. 서럽게 울던 한규가 계속 반복했던 말은, “엄마! 왜 산타할아버지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가져온 거야? 진짜 나쁘다. 엉엉엉”이었다.

1 쿠스코를 벗어나는 길, 해발 4,500m에서 바라본 노을. 2 운전하다 우리 가족이 모두 죽을 뻔했던! 그 위험했던 도로.
누구나 ‘남미’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남미 여행의 꽃, 마추픽추다. 쿠스코에서 1주일 정도 고산증으로 끙끙 앓다가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했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방향으로 가는 길, 우리 차에 달린 GPS상으로 봤을 때 해발 4,000m를 통과할 무렵, 꾸불꾸불 올라가다가 다시 꾸불꾸불 내려가려는 찰나에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고 온 몸에 식은땀이 쫙 났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웠는데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펜스 하나 없는 이 도로에서 만약 앞에 차라도 오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당연히 도로 밖은 그냥 낭떠러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출발했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바로 밑에 있는 도시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 바로 가는 기차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하기엔 너무 비싸서 차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부터 기차를 타기 위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기차를 타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 마추픽추에 올라갔다. 잉카인들이 만든 비밀의 공중 도시,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조차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 신비한 도시는 잉카인들이 스페인군에 쫓겨 만든 마지막 잉카의 도시라는 설과 잉카인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도시라는 설이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었든 우리가 처음 본 느낌은 ‘어쩌자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이렇게 큰 도시를 만들었을까?’였다.

마추픽추에서 야마와 함께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한규와 필자.
한국 사람처럼 하고 다니라고요?
마추픽추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인원이 50명 정도 됐는데 덕분에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잠깐 설명을 듣다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한 동양 할머니가 내 카메라를 보더니 영어로 “프로 사진작가인가요?”라고 물어왔다. “아뇨, 프로는 아니고 아마추어인데 나중에라도 프로가 되고 싶어요”라고 영어로 답하고 그 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한규가 “아빠! 여기로 와 봐!” 하며 달려왔다. 그러자 할머니가 깜짝 놀라시며 한국말로 “아니, 한국 사람이었어요?”라고 했다. “네, 할머니도 한국분이셨어요?” 하면서 머쓱해하는데 할머니가 “아니,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처럼 하고 다녀야지 그러고 다니면 어떡해?”라며 버럭 하셨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처럼 하고 다니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두루마기에 갓이라도 쓰고 다녀야 하는 걸까?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제가 원래 좀 한국 사람처럼 안 생겼어요” 하고는 도망치듯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마추픽추에서의 한규. 지난번 소개한바 있는 ‘월동 대비’ 옷을 입었다. 야마에 올라 타 기념사진을 찍는 한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기차역에서 놀고 있는 한규.
글쓴이 덩헌(이정현)은…![]() [아메리카 여행기]매일 기대되는 우리의 여행 - 쿠스코&마추픽추 |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