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에서 며칠을 뒹굴거리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파울루로 향하기로 했다. 평야에 난 길을 달리고 있는데 앞에는 큰 유조차가 가고 있었고, 커브길에서 언뜻 보니 그 앞으로는 파란색 승용차가 보였다. 이곳은 야산조차 별로 없는 일직선 도로인데다 보통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큰 차 뒤에서 달리면 운전하기가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놓고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유조차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중앙선을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뭐지?’ 하고 놀랄 새도 없이 유조차가 비켜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우리 차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파란색 승용차!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나도 중앙선을 따라 넘었고,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던 차는 우리 차가 바로 옆으로 지나갈 무렵엔 아예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유조차는 바로 갓길에 차를 세웠고 나 역시 그 뒤에 차를 세우고 사이드미러로 보니 데굴데굴 굴러간 그 승용차는 결국 도로 옆으로 전복이 된 채 처박혔다.
상파울루 주민이 되다
2001년 군대 전역 후 홀로 떠난 여행에서 만났던 유쾌한 사촌형제들인 길헤르메와 호세. 이 녀석들을 만나기 위해 상파울루로 달려갔다. 너무 늦은 밤에 도착한 관계로 일단 호텔을 잡고 들어갔는데 다음날 녀석들을 만나자 당장 짐을 싸라고 하더니 호세가 자기 친구들과 사는 아파트로 우리를 데려갔다. 호세는 자기 방을 내주며 맘대로 묵다가 가라고 했는데 며칠 후엔 아예 길헤르메가 자신의 아파트 열쇠를 주며 있고 싶은 만큼 있으란다.
이 녀석들이 사는 아클리마쌍이라는 곳은 상파울루의 중산층이 사는 지역으로 한국 사람도 많이 살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의 현지 주민 체험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근처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다가 우리는 커피, 한규는 우유와 함께 아침을 먹고 공원에 가서 남은 빵조각을 공원 호수에 사는 거위와 잉어들에게 뿌려주었다. 그리고 한규가 미끄럼틀 타는 걸 보며 ‘저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커서 혼자 미끄럼틀을 다 타지?’ 하며 흐뭇해하다가, 점심이 되면 한인촌의 한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후에는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고, 한규가 TV를 보다가 잠이 들면 멜라니와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거의 9개월 만에 누리는 정상적인 삶이었다. 삐거덕거리는 도미토리 침대가 아닌 오롯이 우리 가족만이 있는 공간. 긴 휴가 속의 휴가랄까? 비록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정말 지지리도 할 것이 없는 그저 크기만 한 대도시로 정평이 난 상파울루였지만 간만에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을 잠시나마 한껏 즐길 수 있었다.
일과처럼 가던 아클리마쌍의 한인 슈퍼마켓에서 김밥을 먹고 있는데 물건을 납품하러 온 한국분이 우리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말을 걸었다.
“아니, 멕시코부터 여기까지 차를 몰고 내려온 거예요?”
오, 의외다. 보통 한국분들은 멕시코 번호판을 단 우리 차를 보면 당연히 배로 보내서 여기서 찾았겠거니 하는데 이분은 딱 보자마자 여행으로 몰고 온 걸 알아채는 것이 아닌가?
“네. 멕시코에서 사서 내려온 겁니다”라고 대답하자마자 이 아저씨, 하고 있던 일도 잊고 자신의 얘기를 시작한다.
이분은 원래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가 브라질로 재이민을 간 분인데 무려 1981년에 오토바이로 라틴아메리카를 종단했다고 한다. 당시에 88올림픽 홍보대사로 위임을 받아 친구와 함께 그 먼 길을 달렸다는 얘기에 그저 입이 딱 벌어질 뿐이었다. 우리보다 무려 26년이나 빨리 자동차도 아니고 오토바이로 라틴아메리카를 종단했다니…. 심지어 몇 년 후에는 약혼녀를 뒤에 태우고 한국까지 갈 계획으로 다시 브라질을 출발해서 캐나다까지 올라갔다가 집에 일이 생겨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당시엔 한국 사람은커녕 외국 여행자들도 그런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이 드물었을 것이다.
며칠 후에 그분 댁에 초대를 받아서 가보니 예전에 여행했을 때 각 나라 매스컴에 소개된 기사들을 모은 스크랩북을 보여주셨는데 무려 세 권 분량이다. 스크랩북을 소중하게 쓰다듬는 모습에 영 아쉬움이 남은 듯 보여 넌지시 “형님, 그럼 나중에 다시 오토바이로 여행하실 거예요?”라고 여쭤보니, “당연하죠. 그때 여행을 못 마친 게 얼마나 한으로 남는데요”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나이가 오십 줄에 들어서도 그토록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여행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만 반해버렸다. 한규는 형님댁 냉장고에 하나 가득 채워진 한국 아이스크림에 반해버렸지만 말이다.
카니발을 구경하고 해안 도로를 따라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천천히 놀며 내려가려던 우리의 계획은 한동안 여행을 같이했던 친한 여행자의 ‘빨리 오지 않으면 못 보고 아프리카로 떠날지도 모른다’란 메일 한 통에 휴지처럼 날아갔다.
2박 3일간의 죽음의 드라이브 끝에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칠레에서 만났던 선배님 부부의 증언에 의하면 ‘음식도 싸고 맛있고, 온갖 문화생활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서 돈 쓰는 맛이 나는 곳’이라 하여 절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반긴 건 숨 막히게 더운 날씨였으니 그동안의 피로도 풀 겸 말 그대로 퍼지기 시작했다. 워낙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습하고 더우니 그렇잖아도 게으른 우리에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고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싼 쇠고기와 와인을 사다가 저녁마다 파티를 하는 것뿐이었다.
날이 더워 여러모로 힘이 들었지만 이 도시, 왠지 느낌이 좋다. 수도치고는 참 지저분한 거리에 느긋한 사람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싼 고기와 와인. 맥주도 1리터에 천원이면 살 수 있다.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엔 정작 좋은 공기는 없었지만 좋은 느낌이 들었다.
글쓴이 덩헌(이정현)은…
■기획 / 이연우 기자 ■글&사진 / 덩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