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의 미식 여행

티격태격 모녀의 지구여행기

빈에서의 미식 여행

ㆍ오스트리아_ 첫 번째 이야기

이달 소개할 티격태격 모녀의 여행지는 오스트리아 빈이다. 오랜 숙원 사업이던 둘만의 유럽 여행을 드디어 떠난 것이다.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이 무척 많았지만 모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체코로 목적지를 정했다. 14일간 펼쳐지는 유럽 여행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됐다. 유서 깊은 빈의 슈테판 성당, 쇤부른 궁전, 벨베데레 궁전 등을 구경하고, 오스트리아의 전통 음식인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로 알려진 비엔나 멜랑게를 마시며 미식 여행의 즐거움을 맛본다.

쇤부른 궁전의 전경

쇤부른 궁전의 전경

엄마와 나는 각각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몇 해 전 여름 엄마는 오빠와 함께 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재미있는 점은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는 후 두 번 다시 오빠와는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엄마가 유료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에 대해 구두쇠인 오빠가 볼멘소리를 했고, 또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안 사주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 사건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나라면 절대 안 그랬을 텐데!”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그러다 나온 얘기다. 엄마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막상 유럽 여행을 준비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머리가 아팠다. 내가 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7일 정도를 다녀와야 했다. 하지만 큰맘 먹고 떠나는 유럽인 만큼 그보다는 더 길게 머물고 싶었다. 고민 끝에 14일 동안 오스트리아와 체코, 독일을 둘러보기로 했다. 평소 엄마가 빈에 가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화려한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하지만 일정상 결국 이 소원은 이루지 못했다.

또 한국 아주머니들이 유럽 여행을 다녀올 때 꼭 하나씩 사온다는 독일산 냄비를 사기 위해서 독일을 스케줄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이번 여행은 일정상 독일에 가는 것이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지만 엄마는 완고했다. 아주머니들의 정보에 의하면 독일의 어느 도시에나 있는 냄비 가게 한구석에 70, 80% 이상 할인하는 냄비 세트 상품이 있는데 그걸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독일도 가기로 하고, 체코는 오스트리아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결정하게 됐다. 우리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방문하는 것보다 한 도시에 이틀 이상 머무는, 여유 있는 일정을 짜기로 했다. 60대에 접어든 엄마의 체력으로는 매일매일 숙소를 옮기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는 엄마를 모시고 먼 곳으로 가는 것이니만큼 패키지 상품이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자유 여행의 경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빠의 말도 맞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엽서 속 그림이 되고, 미식 문화를 어디서나 체험할 수 있는 유럽을 패키지 상품으로 가는 것은 정말이지 싫었다.

자동 로밍이 안 될 때는 수동 로밍 기능을 떠올리자!
빈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미리 인터넷 정보를 통해 익혀둔 대로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무사히 나왔다. 예약한 숙소는 일반적인 호텔이 아닌, 오래된 건물에 지어진 렌털 아파트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레지던스를 빌리는 것과 비슷한 경우로, 흔한 호텔 체인보다 독특한 경험이 될 듯싶어 결정한 일이다. 예약은 이메일을 통해 했는데, 우리가 공항버스를 탈 때 전화를 주면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무사히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랐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집주인에게 전화만 하면 일이 끝난다 싶어 전화기를 켰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내 휴대폰 화면에 ‘통화 연결 지역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뜬 것이다. 자동 로밍 기능이 있는 휴대폰인데,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던 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나는 직감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혹시나 싶어서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켰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오빠 말을 들을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울상이 된 나를 본 엄마도 눈치를 챘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일단 집주인이 마중 나오기로 한 서역으로 가자고 했다. 옆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기적처럼 한국말이 들렸다.

[티격태격 모녀의 지구여행기]빈에서의 미식 여행

[티격태격 모녀의 지구여행기]빈에서의 미식 여행

“무슨 문제 있으세요?”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한 여학생이 나와 엄마를 지켜보고 있다가 말을 건넨 것이다. 로밍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그 여학생은 내 휴대폰을 몇 분 만지작거리더니 밝게 웃으면서 건네주었다. 자동 로밍 기능이 안 되는 나라가 있는데, 그럴 때는 수동 기능을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창피했지만 어쨌든 이제 살았다 싶었다. 그렇게 만나기로 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도 바짝 긴장을 하셨는지 야경은 내일 구경하자며 일찍 잠이 드셨다.

슈테판 성당에서의 미사, 얼굴보다 더 큰 슈니첼
빈은 여행하기에 참 편한 도시다. 트램, 메트로 등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고, 도시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이라 오랜 시간 걸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빈에서의 둘째 날, 엄마와 나는 이른 아침부터 숙소에서 나와 서역 근처를 돌아다녔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서역 안으로 들어가 다음날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 일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역에 들어서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빵집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출근 전 가볍게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엄마와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빵집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기로 했다. 달걀 프라이를 얹은 빵과 겉은 딱딱하고 속은 보드라운 발효 빵 한 덩어리, 치즈샐러드를 사 먹었다. 물론 맛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간단한 짐을 챙긴 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인 슈테판 성당으로 향했다. 메트로를 타고 슈테판 플라츠역에 내리면 바로 성당이 보인다.

엄마는 슈테판 성당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이 성당은 빈에 왔다면 반드시 보고 가야 하는 곳으로, 고딕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위엄 있는 외관을 자랑한다. 또 이 성당 덕분에 근처에는 유명한 카페와 식당, 상점이 밀집해 있다. 이 일대는 ‘게른트너 거리’라고 불린다.

당시 성당 안에는 백발의 신부님 너댓 분이 미사를 집전하는 중이었다. 한국 성당처럼 많은 신자가 자리를 차지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똑같았다. 유서 깊은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라는 생각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천주교 신자인 엄마와 나는 조용히 앉아 미사를 드렸다. 헌금을 내는 방식이 재밌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뒷걸음질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서로 헌금을 냈다. 미사가 끝난 후에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고 두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일어나 성당을 천천히 둘러봤다. 9년 전 친구들과 함께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엄마도 기도를 마치고 일어났다. 이어 우리는 빈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슈니첼 맛집으로 향했다.

“여기서 멀지는 않니?”
“응, 성당에서 5분 거리인데 진짜 유명하고 맛있는 집이래. 문 열 때 가야 줄 안 서고 먹는대.”

1·3 빈국립오페라극장 맞은편 유명 카페에서 먹은 자허 토르테와 비엔나 멜랑게. 2 쇤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4 자연사 박물관 앞 모습.

1·3 빈국립오페라극장 맞은편 유명 카페에서 먹은 자허 토르테와 비엔나 멜랑게. 2 쇤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4 자연사 박물관 앞 모습.

인터넷과 여행 책을 뒤져가며 엄선한 점심 메뉴는 바로 슈니첼이다. 원래는 송아지 우둔살을 얇게 펴 돈가스처럼 튀겨내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음식이지만, 일반적인 식당에서는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를 같은 방식으로 튀겨낸다. 우리는 불친절해도 맛있다는 평이 많았던 한 슈니첼 식당으로 향했다. 여러 사람의 의견대로 종업원은 건성으로 자리를 안내하며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엄마와 나는 돼지고기 슈니첼과 닭고기 슈니첼, 샐러드와 맥주를 시켰다. 식당 안에서는 이미 얼굴이 벌게진 아저씨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었고, 우리처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테이블에 먹음직스러운 슈니첼 두 덩어리와 작은 샐러드 한 접시, 맥주 두 잔이 나왔다.

“아니, 왜 이렇게 양이 많아! 일단 먹어보자.”
우리는 생각보다 큰 슈니첼의 크기에 놀랐다. 하지만 고기의 두께가 마치 종잇장처럼 얇아 금세 먹어치웠다. 돈가스와 비슷한 맛이지만 좀 더 짭짤하고, 향신료 향이 더 강했다. 아주 적은 양이 남았지만, 나는 슈니첼을 또 먹고 싶은 마음에 포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재미있던 점은 단지 종업원을 불렀을 뿐인데 그가 포장용 종이와 종이봉투를 건넸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큰 크기 때문에 먹다가 포장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했다.

벨베데레 궁전에서의 달콤한 낮잠
든든히 점심을 먹은 우리는 게른트너 거리를 따라 걸었다. 고풍스러운 건축물, 맑은 하늘, 예쁘게 치장한 말이 끄는 마차보다 더 눈길이 갔던 것은 세련된 차림의 사람들이다. 어느 나라든 패션 1번지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게른트너 거리가 그랬다. 엄마와 나는 각자의 나이와 비슷한 여성들의 옷차림을 열심히 구경했다.

“저 아줌마 옷 멋있네. 엄마도 저런 거 하나 사 입으면 어때?”
“어머. 내가 저걸 어떻게 입니?”
“어때? 저기 옷가게 엄청 많다. 한번 들어가 보자!”

원래 우리의 목적지는 벨베데레 궁전이었다. 차라리 점심을 먹은 후 트램이나 메트로를 타고 곧장 벨베데레 궁전으로 갈 계획이었다면 무리 없이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화도 시킬 겸 10여 분 걷기로 한 게른트너 거리에서 계획에 없던 윈도쇼핑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곳의 물가는 비쌌다. 겉보기에 동대문시장에서 5만원 정도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옷이 보통 15만에서 20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선뜻 옷을 고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한 가게에서 엄마에게 어울릴 만한 시폰 셔츠를 발견했다.

빈국립오페라극장 전경. 쇤부른 궁전의 공원 카페에서 빵 부스러기를 먹던 참새. 엄마와 함께 벨베데레 궁전 분수 앞에서.

빈국립오페라극장 전경. 쇤부른 궁전의 공원 카페에서 빵 부스러기를 먹던 참새. 엄마와 함께 벨베데레 궁전 분수 앞에서.

“엄마, 이거 입어봐! 진짜 예쁘다!”
“그래 좋아 보인다. 근데 너무 비쌀 것 같은데?”
“아니야, 내가 사줄게! 일단 입어봐.”
“엄마 옷 많아. 너나 좀 사 입어라.”

가격 때문에 망설이던 엄마는 결국 그 옷을 입어보셨다. 엄마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엄마에게 그 옷을 선물해드리니 기분은 좋았다. 엄마는 여행 내내 그 옷을 잘 입고 다니셨다. 그 상점에서 나온 후 엄마는 “이렇게 마음에 든 적이 없다”라며 샌들도 사셨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엄마, 우리 이제 궁전 구경도 좀 하러 가자! 응?”
이렇게 해서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트램에 올랐다. 빈 중심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빈의 세력가이던 오이겐 폰 사보이 공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설계했는데, 무엇보다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높게 자란 나무들을 미로처럼 다듬은 산책로, 얕은 연못 위를 떠다니는 오리가 빚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자와 장군, 매혹적인 여인의 조각상이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벨베데레 궁전 곳곳을 구경하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피곤했다. 새벽 산책을 시작으로 여태껏 돌아다녔으니 그럴 법도 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늘진 벤치를 하나씩 택해 누워 짧은 낮잠을 잤다.

유럽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언제라도 누워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는 점이다. 따로 돗자리를 챙기지 않아도 피곤하면 언제라도 긴 벤치에 누워 쉴 수 있다. 더욱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크게 경관을 해치는 행동이 아니라 더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

비엔나커피? 비엔나 멜랑게!
다시 트램을 타고 빈 시내로 돌아온 엄마와 나는 우리에게는 ‘비엔나커피’로 알려진 비엔나 멜랑게로 유명한 한 호텔 카페로 향했다. 빈국립오페라극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이곳은 비엔나 멜랑게뿐만 아니라 합스부르크 왕정 시절부터 납품했다는 초콜릿케이크인 자허 토르테도 유명하다. 이곳은 빈국립오페라극장을 바라볼 수 있는 야외 좌석과 실내 좌석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갔을 때 야외 좌석은 만석이었다. 아쉬워하는 내 표정을 본 종업원은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금방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했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야외 자리에 앉아 비엔나 멜랑게와 자허 토르테를 먹을 수 있었다. 자허 토르테는 달지 않고 계피 향이 어우러져 절묘한 맛이 났다. 찐득거리고 지나치게 단 초콜릿케이크가 아니라서 엄마는 더 맛있게 드셨다. 또 커피에 크림을 부어 마시는 비엔나 멜랑게도 환상적인 맛이었다. 커피 또한 달지 않은 크림을 써서 더 매력적이었다.

“엄마, 정말 재미있지?”
“응, 우리 딸이랑 이렇게 있으니까 더 좋다.”

이렇게 달콤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이곳에서 자연사 박물관, 미술사 박물관 등이 모여 있는 박물관 지구를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엄마와 여행 계획을 짤 때 과감히 생략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박물관 입장이다. 물론 역사적인 박물관이 넘쳐나는 유럽에서 박물관을 둘러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물관 관람의 특징상 엄마는 쉽게 피로해질 수 있다. 역시 엄마의 경험에 의한 것으로, 동선이 길고 읽고 봐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은 대형 박물관은 웬만하면 피하기로 했다. 이런 플랜에 따라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따라 성 피터 교회, 미하엘의 문 등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때가 다 됐다. 엄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게른트너 거리 노천카페에서 마신 빈 현지 맥주 지펠.

“엄마, 저녁 먹고 들어갈까? 아니면 그냥 지금 바로 숙소로 돌아갈까?”
내 마음 같아서는 밤까지 놀고 싶었지만, 피곤한 엄마의 모습을 보니 당장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엄마는 “우리 저기 좀 앉아 있자!”라며 한 거리의 가운데 자리 잡은 노천카페로 들어갔다.

“우리 맥주 마실까?”
“맥주? 취할 거 같지 않아?”
“아니야, 얘. 내가 젊었을 때 얼마나 술을 잘 마셨는데!”

우리는 이렇게 저녁 대신 노천카페에서 빈에서만 판매한다는 맥주 한 병씩을 마셨다. 톡 쏘는 맛이 강하거나 맛이 깊지 않았지만 피로와 갈증에 지친 우리에게는 꿀맛이었다.

엄마와 나는 그곳에서 우리 가족의 옛날이야기,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의 남자친구 이야기, 집에 두고 온 오빠 이야기 등을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아빠가 계셨다면 함께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부터 같이 왔더라면 우리가 돈을 많이 써서 혼났을 거라는 상상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다 엄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종업원은 옆 건물로 들어가면 무료 화장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 건물을 바라보았는데, 크리스털로 유명한 한 액세서리 회사가 지은 6층 규모의 로드 숍이 있었다. 엄마와 나는 들뜬 마음에 맥주 값을 치르자마자 그 건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무지갯빛 크리스털이 사방에서 반짝이는 그곳에서 우리는 “빈에 오길 잘했다”라는 말을 연신 했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은 값이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냈지만, 적당한 가격에 합의를 본 액세서리 몇 개를 두 손에 든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쇤부른 궁전에서의 아침 산책
빈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오전 시간에 쇤부른 궁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점심 기차로 잘츠부르크로 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트램으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쇤부른은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궁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75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설계됐다고 한다. 또 마리 앙투아네트가 15세까지 지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너무 일찍 나왔나봐! 아무도 없네. 그래도 사람 없을 때 오는 게 좋지?”
우리는 오전 8시 30분쯤 쇤부른 궁전에 도착했다. 관광객은 아예 없었고, 아침 운동을 나온 듯 보이는 현지인들이 걷거나 뛰고 있었다. 무엇보다 울창한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쇤부른 궁전 안의 공원을 거닐었다. 아침이라 사람들도 많지 않고 한갓져서 좋았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빈에서의 2박 3일이 아쉬울 뿐이었다. 엄마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리 둘 다 간절히 바란 것이 있었다. 바로 커피였다. 바로 어제 마신 비엔나 멜랑게라는 맛 좋은 커피! 기차 시간 역시 넉넉히 남았기에 엄마와 나는 공원에 마련된 야외 카페로 향했다. 비엔나 멜랑게 두 잔과 즉석에서 만든다는 전통 애플파이도 주문했다. 재미있던 기억은 작은 참새들이 야외 카페 테이블에 앉아 ‘짹짹’거리면서 빵 부스러기를 먹고 도망가는 모습이었다. 주문한 애플파이와 커피가 나오자, 참새 몇 마리가 쪼르르 우리 테이블로 날아왔다. 고개를 조아리며 ‘한 입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라고 하는 듯 보였다. 엄마는 귀여운 참새들에게 파이를 조금 떼어 주었다. 우리 집 강아지처럼 순식간에 파이 부스러기를 다 해치운 참새들은 이내 다른 테이블로 날아가버렸다. 이렇게 빈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엄마와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티격태격 모녀의 빈 여행 따라잡기
교통 수단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비싸더라도 직항을 타자! 티격태격 모녀는 인천에서 국적기를 타고 빈으로 출발했다. 유럽 항공권 중에는 왕복 요금이 채 1백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항공권이 많다. 대부분 목적지에 가기 전 다른 도시를 경유하는 노선이다. 경유 일정에 따라 11시간이면 갈 거리를 적게는 18시간, 많게는 30시간도 더 걸려서 간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경유 항공권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는 14일도 짧게만 느껴졌기에 비싸긴 했지만 직항편을 선택했다. 편히 갈 수 있었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숙소 선택 호텔만 고집하지 말고 현지 주택을 체험해보자!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숙소 선택이다. 물론 잠만 자는 의미의 숙소로 볼 수도 있지만, 그곳의 현지 주택을 체험해보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티격태격 모녀도 현지 주택 체험을 위해 오래된 건물에 지어진 아파트 한 칸을 빌렸다. 우리나라에서 예약할 수 있는 웹 사이트는 거의 없고, 외국의 빌라, 아파트 렌털 사이트를 활용하면 괜찮은 숙소를 구할 수 있다. 가격 면에서 호텔과 큰 차이는 없지만 현지 문화 체험을 해보는 데는 도움이 된다. 해외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villa rental’, ‘apartment rental’ 등을 치면 유명 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다.

여행 일정 60대 엄마를 위한 여유 있는 일정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유럽 여행이라면 한 도시에서 2일 이상 머무는 것은 낭비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60대 이상의 부모님을 모시고 간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여행지에서 가장 피곤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숙소를 옮기는 일인데, 여행에서 숙소 이동을 최소화하면 그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도시를 방문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지만, 피곤한 상태로 많은 곳을 볼 것인지, 편안하게 적게 볼 것인지는 개인의 취향대로 골라야 한다. 티격태격 모녀는 1일 숙박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도시인 빈에서 2박 3일을 묵었다. 첫날에는 도착 후 숙소에서 쉬었고, 둘째 날 슈테판 성당, 벨베레데 궁전,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둘러보고 쇼핑을 하고, 슈니첼과 자허 토르테 등을 사 먹고 저녁 전에 귀가했다. 마지막 날 오전 시간에는 쇤부른 궁전에도 다녀왔다. 물론 빈에서도 못 가본 곳이 많지만 엄마와 함께 다니기에 무리 없는 일정이었다.

* 5월호에서는 오스트리아 2편 잘츠부르크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글&사진 / 정은주(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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