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기차 여행

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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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낯선 풍광 속으로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여행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동행, 자전거와 함께 기차에 몸을 실어보자.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밀양의 절경과 낙동강변의 푸른 바람을 맘껏 즐기며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어느새 가슴속 깊은 곳까지 뻥 뚫릴 것이다.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에코 레일에 자전거를 싣고 밀양으로
오전 7시. 밀양에서의 자전거 여행을 가능하게 해줄 특별한 열차가 서울역에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객차 4량,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자전거 전용 차량 4량으로 구성된 에코레일. 240여 대의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이 열차로 벌써 많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영동, 양평, 나주, 구미 등 전국 곳곳의 자전거길을 다녀왔다.

‘자전거’라는 공통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열차 안은 이보다 더 화기애애할 수 없다. 그 분위기를 이어가듯 이내 ‘자전거 안전 상식 퀴즈대회’가 열린다. ‘자전거 좌우 브레이크의 차이는?’ ‘자전거가 다닐 수 없는 도로는?’ 앞 다투어 정답을 외치는 승객들. 스태프의 재치 있는 진행과 승객들의 엉뚱한 오답들에 웃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전거 상식을 익힐 수 있다.

드디어 밀양역에서 인증샷 찰칵!
네 시간 반 만에 도착한 밀양역. 영화 ‘밀양’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잠시 인증샷 촬영 시간을 가진 뒤 난이도와 주행 거리에 따라 승객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정해진 코스로 출발한다. ‘자연을 즐기는 팀’, ‘속도를 즐기는 팀’, 그리고 가장 긴 거리를 달리게 될 ‘땀을 즐기는 팀’. 자전거 초보나 다름없는 기자는 고민할 것도 없이 가장 난이도가 낮은 ‘자연팀’에 합류했다. 허나 밀양의 명소를 보지 않고 바로 라이딩을 시작할 수는 없을 터. 가족 여행객이 많이 선택한 ‘자연팀’은 트럭에 자전거를 실어두고 우선 밀양 탐방에 나섰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영남루 누각에 앉아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영남루. 영남루(보물 제147호)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힌다. 고려 공민왕 때 밀양 군수에 의해 처음 지어졌고 지금의 건물은 조선 헌종 때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선조들이 이곳에 누각을 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충분히 증명이 되는 셈이다. 영남루 누각에 앉아 밀양강변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마당에 만발한 꽃들을 눈에 담으니 절로 시 한 수 읊을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이 선비들이 말하는 ‘운치’라는 것이 아닐까.

그 운치가 얼마나 선비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는지는 영남루 곳곳에 걸린 현판이 말해준다. ‘강성여화(강과 밀양읍성이 한데 어울려 마치 그림과 같다)’, ‘용금루(높은 절벽에 우뚝 솟아 있는 아름다운 누각)’ 등 다양한 현판의 뜻을 되새기다 보면 이 현판들을 아무 곳에나 허투루 달아놓은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풍경화 액자 아래 적힌 제목이 이보다 시적이며 함축적일 수 있을까. 현판은 누각의 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각각의 풍광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주석 역할을 한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다. 만약 하룻밤 묵어갈 시간이 된다면 영남루로 밤 산책을 나와보자. 오색의 조명이 환히 밝혀주는 영남루와 그 일대 교각의 야경은 밀양이 자랑하는 절경 중 하나다.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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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에서 ‘아랑각’까지
아랑의 전설이 숨쉬는 곳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마침 밀양아리랑 축제 기간에 방문해 밀양아리랑의 경쾌한 가락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장고, 북, 소고 등이 장단을 맞추고 노련한 소리꾼들이 구성진 음률을 입힌다. 밀양아리랑은 많은 아리랑 중 하나지만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곡조. 그러나 밀양아리랑이 슬픈 사연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밀양 부사의 딸인 아랑이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사내의 손에 죽자 그녀의 정절을 기리며 부른 노래가 밀양아리랑이라는 것. 아랑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 아랑각이 영남루 밑에 자리 잡고 있으니 발걸음 한 김에 들러보자. 또 5월 말부터 15주간, 매주 토요일에 영남루에서 밀양아리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고 하니 본고장에서 직접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단군의 영정과 역대 여덟 왕조의 시조 위패를 모시고 있는 천진궁, ‘신라의 달밤’의 작곡가인 박시춘의 생가, 새롭게 복원된 밀양 관아, 밀양 읍성이 모두 영남루와 가까운 거리 내에 있으니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달려라, 자전거! 낙동강변의 푸른 경치 사이로
다시 버스에 올라 자전거 순례의 출발 지점인 하남 체육공원에 도착했다. 간단한 체조를 마치고 스태프의 출발 신호에 따라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진 낯선 3차원 도로. 도보 길과 자전거 상·하행 도로로 이루어진 이 길은 아직 많은 이들이 밟지 않은 새로 난 길. 그런 까닭에 낙동강을 끼고 펼쳐진 탁 트인 장관을 누린 소수에 속하게 됐다.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가족 여행객, 초심자들을 배려한 코스니만큼 속도는 시속 10~15km로 유지된다. 그래서인지 주변 풍경을 즐길 여유는 충분하다. 정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 담이 낮은 시골집들, 절정을 맞이한 하얀 조팝나무 꽃들, 이제 어른 무릎 높이로 자란 푸른 벼들…. 정겨운 풍경들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그렇게 페달을 밟다 보면 멀리 그림자처럼 보이던 산등성이가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와 푸른 잎사귀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어느 순간, 바람 소리와 자전거 바퀴 소리가 섞여 하나의 자연음으로 들려온다.

좋은 자전거라 아니라서, 너무 고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선뜻 자전거 여행을 나서기 망설여진다면 걱정 말고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두어 번의 짧은 오르막길을 제외하면 내내 평평한 포장도로가 이어지기 때문. 후미로 달리다가 앞선 일행의 꼬리를 놓친다 해도 걱정 없다. 쭉 뻗은 길과 자세한 표지판이 친절히 길을 안내해준다.

[기차 여행]밀양, 자전거 그리고 기차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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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진역에서 맛본 원조 돼지국밥 한 그릇
두 시간 반 만에 최종 목적지인 삼랑진역에 도착했다. 총 25km에 이르는 거리를 완주하고 나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허기 역시 찾아오는데 대부분의 여행자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돼지국밥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남 지역 어딜 가도 ‘밀양 돼지국밥’이라는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밀양의 돼지국밥은 원조 격이다. 돼지 뼈를 우려낸 맑은 육수는 잡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다. 부추를 듬뿍 넣어 다진 양념과 새우젓을 취향에 따라 넣고 밥을 말아 먹으면 금세 배가 두둑해진다. 밀양의 일미까지 맛봤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낙동강의 푸른 경치를 보며 안구를 정화시키고 시원한 강바람을 마시며 몸속까지 씻어낸듯 두루두루 건강해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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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보
[자전거 열차 여행] 공휴일, 주말을 이용해 11월까지 비정기적으로 운행되며 여행지는 매번 달라진다. 자연을 즐기는 팀(생활 자전거/커플 자전거/완전 초급 위주), 바람을 즐기는 팀(동호회 초급/중급), 속도를 즐기는 팀(동호회 중급/상급) 등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신의 수준과 난이도를 확인해 예약시 팀을 선택해야 한다. 문의 코레일 관광개발 1544-7755 www.korailtravel.com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김혜정(프리랜서) 사진 박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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