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

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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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게 펼쳐진 세상. 쉽게 생각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며 이 세상 가장자리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이야기. 그 길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편집자 주

프롤로그,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하는 첫 관문, 중국을 달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쿨 호수로 가는 길에 만난 유목민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라코람 하이웨이. 카라쿨 호수로 가는 길에 만난 유목민들.

지도 한 장과 자전거, 세상 밖 열쇠를 열다
건축공학도였던 20대, 나의 수많은 나날들에는 산이 함께 있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지리산과 설악산을 등반했고, 산속에서 그리고 산 아래서 잠을 자며 숱한 시간들을 세상과 단절하고자 살아갔다. 남들처럼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는 아니었다. 그저 답답한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 떠밀려 살아가는 게 싫었다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고, 한때 내 전부였던 20대 초반의 사랑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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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20대 중반의 내게 산을 통해 알게 된 선배가 선뜻 제안을 해왔다. “형욱아, 형이 내년에 유럽과 아시아, 그러니까 유라시아 대륙 1만8천km를 자전거를 타고 세계 최초로 횡단하려고 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대답을 미룰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네, 형!”

그냥 그리 쉽게 대답을 하고 나서 나는 세계지도와 우리가 가게 될 나라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0대 초반 이후로는 타본 적이 없는 자전거를 탈 조금은 허무맹랑한 도전을 꿈꾸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게 하나의 돌아오지 않을 길에 대한 도피처였고, 그저 남들처럼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것들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첫 도착지였던 톈진에서 만난 아이. 이 아이 때문에 지금까지의 길이 시작이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첫 도착지였던 톈진에서 만난 아이. 이 아이 때문에 지금까지의 길이 시작이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게 길을 떠날 준비는 시작됐고 말도 안 되는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인천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자전거를 싣고 떠나게 됐다. 멤버는 사막, 카약, 자전거, 도보탐험가로 유명한 남영호 탐험가와 군대를 제대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 했던, 지금은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막내 최다운, 20년 가까이 히말라야를 오르내린 산악인 박정헌 형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었다.

커다란 배에 자전거를 싣고 이틀 밤을 설렘과 긴장감으로 들뜬 채 지샌 우리는 첫 도착지 중국 톈진에 발을 내렸다. 낯설기만 한 뿌연 회색빛 하늘을 위로 둔 채 지평선을 따라서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 3일째. 톈진 외곽에 자리한 골동품 시장을 다녀온 밤, 나는 낮에 그 시장 뒷골목에서 만났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시간, 여동생과 함께 뜨거운 꼬치구이를 만들어 팔고 있던 위구르계 소수민족으로 보이는 아이에 대한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 밤 나의 수첩에는 ‘아이야, 지금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생활 전선에 나와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언젠가 네게도 멋진 기회가 주어져서 너의 미래는 한없이 푸르른 파랑이길 바라’라는 전하지 못한 편지가 남았다.

아마도 이날의 짧았던 기억이 오랜 시간 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서 지금의 나로 이끄는 열쇠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후 어느 길에서건 만나는 아이들의 미소를 이해하려고 했고, 또 그 아이들의 눈빛을 담으려 했으며, 그 아이들이 오랫동안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빌었으니 말이다.

실크로드에서 만난 새로운 하늘
책 읽어주는 남자. 네팔에 생긴 열한 번째 영어 도서관. 2010년 봄.

책 읽어주는 남자. 네팔에 생긴 열한 번째 영어 도서관. 2010년 봄.

무질서하게 놓인 중국인들의 삶과 눈을 따갑게 만드는 황사를 뚫고 중국 내륙 지방으로 향해 올라가는 길은 그리 신명 나는 일만은 아니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 달 만에 마주한 중국 칭하이 성의 실크로드. 옛 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넘나들었던 이곳에 들어섰을 때야 비로소 내가 꿈꾸던 실크로드의 흔적과 바람, 하얀 눈 덮인 산과 그 자연에 몸을 맡긴 내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산과 자전거는 다른 듯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건 바로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내 체력이 허락하는 것만큼의 풍경을 보여주었고 내가 흘린 땀만큼의 시원함을 전해주었으며 또 내가 걷는 것만큼의 새로운 하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리기 전이었던 2006년 중국에서는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우리 역시 중국어는 한문 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밥 하나 시켜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였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인적마저 드문 국도와 지방도를 지도 하나에 의지해 다녀야 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고생길이 따로 없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신기루.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신기루.

톈진에서 베이징을 거쳐 서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고도가 아주 조금씩 끝없는 지평선을 따라서 높아지곤 한다. 높아지는 길을 따라 함께 높아지는 건 바로 맥주의 도수다. 북경에서 마셨던 맥주는 4도에서 5도 정도였는데 고도가 2,500m가 넘는 칭하이성의 칭하이(청해) 맥주는 12도였으니, 쉽게 이야기하자면 맥주잔에다가 한국에서 마시는 청하를 가득 채워 마시는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언젠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 중국 숭산에 들러서 쿵푸를 하는 무도승들을 만나기 위해 소림사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길에서 훈제 닭날개를 파는 좌판을 만나 맥주와 함께 먹으며 허기와 갈증을 달랬는데, 그 맛이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또 대륙의 닭이라 얼마나 크던지… 한동안은 그 훈제 닭날개를 찾는 게 우리에게 최고의 미션이었다. 한 달 정도 훈제 닭날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동네에 갔더니 닭날개 전문점이 있지 않은가! 반가운 마음에 가게에 들어섰는데 거기엔 우리가 여태껏 그리 찾아 먹은 닭날개가, 닭이 아닌 산비둘기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평화의 상징 산비둘기 그림이 그득했다. 이 먼 중국 땅에서 원효대사의 해골 물을 떠올릴 줄이야…. 길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던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수박을 맛보다
일행을 앞에 보내고 홀로 뜨거운 사막을 가로질러 페달을 밟아가던 중이었다. 25톤 정도 되는 트럭 한 대가 나를 지나쳐 200m 정도 앞에 멈추는 것이었다. 순간 느낌이 이상해 나도 자전거를 멈추고 돌아보니 주위에 차는커녕 오두막 한 채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를 보고 멈춘 듯한데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 그 트럭에서 내린 장정 두 명이 허리춤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아도 개미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막은 고요했다. 그중 한 사내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뒤로 돌아 도망쳐도 곧 차에게 따라잡힐 것 같아 천천히 다가갔더니 이것저것 중국어로 물어왔다. 한 두어 달 달리다 보니 생활 중국어는 조금 할 수 있었던 터라 한국인이며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엄지를 치켜들었는데, 그 순간 다른 사내가 내 뒤로 다가왔다. 순간 뒤에서 칼로 찌르던지 아님 목을 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처 켜놓지 않은 무전기가 그리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차비가 필요했던 것일까. 아님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정저우에서 만난 어느 사연많은 아저씨.

차비가 필요했던 것일까. 아님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정저우에서 만난 어느 사연많은 아저씨.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을 찰나, 사내가 든 칼 뒤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란색 수박 두 덩이를 들고 웃으며 내게 수박을 건네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 사막에서 내가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 보고는 수박을 주려고 차를 세웠던 모양이다. 둘러보니 차 뒤를 덮고 있는 천막 밑으로 수백 개의 노란 수박이 가득했다. 나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두 통의 수박을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아마도 살면서 다시는 그렇게 맛있는 수박을 먹긴 힘들듯하다.

1 연 날리는 아이들. 티베트. 2 사막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사막을 지난다. 모래 먼지에 눈을 뜰 수가 없고, 온도계를 보니 섭씨 50도에 가깝다. 모래폭풍이라도 마주하면 1km를 나아가는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1 연 날리는 아이들. 티베트. 2 사막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사막을 지난다. 모래 먼지에 눈을 뜰 수가 없고, 온도계를 보니 섭씨 50도에 가깝다. 모래폭풍이라도 마주하면 1km를 나아가는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중국을 다 보려면 5년 하고도 반년이 더 걸린다고. 셀 수 없이 많은 소수민족들과 그들의 문화, 그리고 길 위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렇게 쉬지 않고 페달을 밟은 후에 우리는 파키스탄으로 가기 위한 필수 코스인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정상 부분, 쿤제랍패스(피의 골짜기)를 향해 천천히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다음달부터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천 개의 도서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편집자 주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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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형욱은
오지탐험가 겸 사진작가. 2006년 자전거로 실크로드 8,000km 횡단. 중국 톈진과 파키스탄을 비롯해 중동과 동남아, 인도, 네팔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천 개의 영어책 도서관 건립을 목표로 세상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등의 오지마을 17곳에 2만여 권의 영어책을 전해주었으며 더불어 한국의 산간마을에서는 게릴라 전시, 문화 공연, 공공도서관에서의 영어책 모금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눔을 함께하고 있다. 2012년 7월 현재 남은 도서관 수는 983개. 그는 여전히 세상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지구를 방랑 중이다.

■정리 / 노정연 기자 ■글&사진 /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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