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예멘,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동자들을 만나다

아이들과 가만히 눈을 마주하면 한 명 한 명 개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도 유추해볼 수 있다. 연신 코만 파던 꼬맹이의 저 당당함.
잊을 수 없는 이란의 작은 도시들
어렵게 사나흘을 달려 도착한 이란에는 옛날 페르시아 사람들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진으로 사라져버린 아르게밤의 유적을 보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건축학도로서 서양 건축사 시간에 보았던 건물들을 직접 보고 느꼈던 감동은 이란 남부 쉬라즈 외곽에 위치한 페르세폴리스 유적지에서의 눈부신 석양과 함께 흘린 눈물만큼이나 뜨거웠다. 이란은 멋진 석양과 그 석양이 머무는 페르시아의 유산으로 내게 기억됐다.

어떤 설명도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운 예멘의 밤거리. 티베트의 신산이라 불리는 카와커부 앞에서.
이슬람 국가에서 사진을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큰언니뻘이나 어머니, 할머니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향하기 힘들고,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 역시 처음엔 카메라를 낯설어한다. 그것도 정말 예쁜 아이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곧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카메라와 눈을 마주쳐오거나 익숙한 시선을 경계하지 않는다. 에스파한, 테헤란, 야즈드, 쉬라즈. 이란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꼬마 아이들은 유난히 맑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수줍게 창가를 내려다보던 아이들의 짙고 예쁜 눈. 페르세폴리스에서의 석양과 함께 잊지 못할 이란의 모습이다. 한 달 넘게 이란을 여행하고 바레인을 거쳐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전설이 깃든 곳이자 먼 옛날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진 곳, 그리고 향 좋은 모카커피의 원산지인 예멘으로 발길을 옮겼다. 예멘은 정말 시간이 멈춰버린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현대식 건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멋들어진 치마와 화려한 벨트에 잠비아라는 칼을 차고 다녔다.

마법에 걸린 마을이라 불렀던 이란 북부의 마술레.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 아이들과 눈을 마주했다. 삶은 늘 마주 보며 살아가는 것.
예멘, 아이들이 있는 풍경
실은 예멘으로 방향을 정하게 된 건 유명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양떼를 몰고 돌 언덕을 내려오는 소년. 산골마을 알 하자라에는 그의 시선이 있었다. 3일 동안 그곳에 앉아 누군가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지켜봤다. 삶의 뒤안길에 서 있는 노인의 뒷모습, 땔감을 한가득 해 가지고 가는 얼굴을 가린 아낙들, 멀리서 보면 오는 것인지 가는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든 이슬람 여성들, 나귀를 타고 오는 목동, 그리고 아이들. 알 하자라는 예멘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연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저 아랫마을의 그곳 아이들이 궁금해졌다. 길도 나 있지 않은 곳을 여기저기 생채기를 만들며 내려가 보았다. 길가 밭 한가운데 형제로 보이는 아이 둘이 앉아 있었다. 카메라를 치우고 가만히 마주 앉아 한참을 바보같이 웃고 있다 보니 녀석들이 문득 사진을 찍어달랬다. 당나귀 위에 앉아 찍기도 하고 가젤을 안고 찍기도 하고. 수채화빛 소를 끌어안은 아이들과 한참을 밭에서 뒹굴며 사진을 찍었다.

알 자하라 아랫마을에서 만난 당나귀를 타던 형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예멘의 아이들. 열사의 땅. 그리고 아이들. 예멘의 모든 남자들이 차고 다니는 칼, 잠비아.
알 하자라를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 예맨의 수도 사나에서는 골목골목에서 요정 같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아이들의 표정만큼이나 변화무쌍하고 자유로운 것이 또 있을까. 연신 사진을 찍는데도 나 몰라라 코만 파는 녀석, 옆에서 사진을 찍는 친구에게 얼굴을 돌리다가 재빠르게 이쪽을 쳐다보는 눈치 빠른 녀석, 집 안에 있다가 “소라(사진)”라는 말에 뛰어나와 숨을 헐떡이는 녀석, 옆에 앉은 친구가 웃는 것을 보고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웃어젖히던 녀석까지. 그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방인의 카메라를 반겨준 아이들이 있어 더없이 행복한 여정이었다. 한없이 맑고 투명한 예멘의 하늘과 나를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아이들의 미소, 테마파크를 연상시키는 유적 같은 건물들까지 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풍경이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고양이에게 매일 밥을 주던 고양이 할아버지.
길 위의 깨달음, 그리고 또 하나의 문

이곳에선 봉숭아물을 어떤 의미로 물들이는 것일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사람에 쫓겨 인생이라는 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면 언젠가 길을 잃었을 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원래 가고자 했던 길을 찾기 위해서는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어느새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산군에 있는 메루피크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무에게나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하늘로 향하는 문’. 세상의 아이들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또 하나의 문이었다.

부르카를 입고 학교에 가는 여학생들.
김형욱은…![]()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
■정리 / 노정연 기자 ■글&사진 /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