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

세상의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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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게 펼쳐진 세상. 쉽게 생각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1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며 세상의 가장자리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이야기. 그 길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편집자 주

우리 원정대의 하이포터였던 바랏과 키르탄의 아이들.

우리 원정대의 하이포터였던 바랏과 키르탄의 아이들.

첫 번째 도서관, 시작은 반 이상이다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산군의 메루피크(6,660m) 북벽은 높은 등반 난이도 때문에 그동안 등반을 시도한 적이 없는 곳이었다. 메루피크의 뜻은 ‘The Gate to the Sky(하늘로 통하는 길)’이다. 이곳에 모든 꿈을 걸고 도전한 클라이머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꿈을 향한 뒷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 세 대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원정대의 막내 대원으로 베이스캠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힌두의 신들이 있었고 그 신들의 영역에서 생존을 위해 산을 오르는 하이포터(베이스캠프에서 전진 베이스캠프나 그 위쪽으로 짐을 옮겨주는 사람) 여섯 명이 함께했다. 전진 베이스 구축을 위한 짐 수송이 시작된 지 여러 날,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순수함에 매료됐고 하루 5천원도 안 되는 일당에 목숨을 거는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스다 마을에서 만난 소녀 선치나. 이 사진을 보기 전에는 아무도 이 아이의 세상이 저 마루가 전부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선치나의 할머니. 새벽녘 미처 터번을 두르지 못한 채 산속에서 만나자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셨다.

다스다 마을에서 만난 소녀 선치나. 이 사진을 보기 전에는 아무도 이 아이의 세상이 저 마루가 전부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선치나의 할머니. 새벽녘 미처 터번을 두르지 못한 채 산속에서 만나자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셨다.

매일같이 짐을 나르고 내려오는 손마디 하나에 잎담배가 아닌 필터담배를 하나씩 끼워주고 불을 붙여주며, 다 낡아빠진 그들의 텐트에 들어가 같이 앉아 술을 마시고 손으로 밥을 먹으며 그 순수한 마음과 교감을 나눴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포터들의 꿈은 ‘사가르 마타’였다. 네팔어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꿈꾸는 젊은이들. 나와 나이가 비슷한 프렘의 대답은 “Dreams Not Came True”였다. 그는 꿈이 있었고 열심히 살았지만 늘 현실은 꿈과 멀리 있었노라고 말했다. 산에서 목숨을 걸고 장비도 없이 정상까지 로프를 깔며 외국 원정대의 짐을 날라 1년에 한화로 25만원의 돈을 버는 45세의 바랏과 42세의 키르탄의 꿈은 하나였다.

 첫 번째 도서관 다스다 마을에 전해진 영어책. 희망의 증거가 되길.

첫 번째 도서관 다스다 마을에 전해진 영어책. 희망의 증거가 되길.

자식들이 좀 더 나은 교육을 받는 것, 그리고 그 후에 자신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뒷바라지하는 것. 어디서나 꼭 같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1년 수입으로 바랏은 네 자녀를 키르탄은 두 명의 딸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처음 꿈꾸게 된 것이 그때였다. 책은 그 안에 있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좋은 책은 보다 좋은 꿈을 꾸게 하고 그 책 속 세상을 만난 아이들은 가지 않은 그곳에 대한 순수한 꿈을 키워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 저녁 베이스캠프의 텐트에서 뜻을 모은 사람들과 가칭 ‘꿈의 도서관’을 위한 회의가 열렸고 나는 다음날 일찍 아이들의 꿈이자 동시에 나의 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80kg의 책과 두 켤레의 신발
인도에서 책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타르카시에서는 영어책을 찾기 힘들었고, 리시케시의 영어책들은 세계 요가의 요람답게 대부분 요가와 명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결국엔 델리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좋은 책은 아이들에게 좋은 꿈을 만들어줄 것이라 되뇌며 그 무덥던 델리의 잠 못 이루던 밤들을 잊을 수 없다. 책을 찾아 나선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외국계 주재원이나 인도 최상류층들만 출입한다는 어느 서점에서 드디어 양질의 책들을 구할 수 있었다. 명작 전집과 백과사전, 동물도감, 식물도감, 세계지도, 해리포터와 나니아 연대기까지 한 권 한 권 보물 같은 책들을 구입했다. 하지만 인도인들을 그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옥죄어놓은 그 수많은 인도의 신화에 대한 책은 단 한 권도 사지 않았다.

타포반 베이스캠프. 우리의 꿈을 위해 짐을 날라준 다섯 명의 하이포터들이 또 다른 산으로 목숨과 바꿀 일당 5천원을 벌기 위해 떠나고 있다.

타포반 베이스캠프. 우리의 꿈을 위해 짐을 날라준 다섯 명의 하이포터들이 또 다른 산으로 목숨과 바꿀 일당 5천원을 벌기 위해 떠나고 있다.

아이들의 순수한 꿈들이 카스트와 카르마에 구속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80kg 정도 사고, 델리 시내에서 신발을 두 켤레 샀다. 4년 전 지나가던 외국인 트레커에게 얻어 신었다는 바랏 아저씨와 키르탄 아저씨의 신발은 수차례 기우고 덧대 이제는 바닥이 갈라져 발바닥이 보일 지경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약속 했었다. 내가 내려가는 일이 생기면 새 신발 하나 사주겠노라고. 그 신발들을 신고 그들이 가족을 위해 얼마나 정직하게 산에 오를지 알기에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첫 도서관을 위한 책들을 구입하고 델리에서 4일에 걸친 책 운반 작업이 시작됐다.

다스다 마을 사람들. 희망이 늘 함께하기를 바란다.

다스다 마을 사람들. 희망이 늘 함께하기를 바란다.

본격적으로 접어든 우기에 하루에도 몇 차례 길이 끊기기를 반복, 어떤 날은 버스가 굴러 갠지스 강에 빠지고 멈추기도 했지만, 트렁크 가득 실어놓은 영어책들은 며칠 밥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배부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도서관이 들어설 마을에 다다랐다. 전화도 되지 않고 TV도 없으며, 화장실도 존재하지 않는 곳. 밥을 먹고 뜨거운 차이를 마시는 얼굴 주위로 수백 마리의 파리 떼가 달라붙어도 행복해서 기분이 좋았던 곳,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매일 길이 끊기고, 하루하루 생활이 어려웠지만 순수한 사람들과 때 묻지 않은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작은 마을 ‘다스다’였다.

다스다 마을의 작은 도서관 기적을 위한 한 걸음
다스다 마을에는 2백5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1백여 명의 아이들이 집안 사정에 맞춰 학교로, 밭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난 몇 년간 오지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보다 더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여 교감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손짓 발짓, 눈과 눈으로 조금씩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마을에 처음 들어선 낯선 외국인은 차츰 이방인이 아닌 친구가 되어갔고 원정대의 포터 1과 포터 2로 남을 뻔했던 바랏과 키르탄은 내게 삼촌 같은 친구가 되었다. 당나귀 두 마리에 책을 가득 싣고 이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을 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동자는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키르탄 씽 아저씨의 가족.

키르탄 씽 아저씨의 가족.

책을 읽는 아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향한 순수한 꿈을 만들어가던 어느 날, 맨 처음 나에게 꿈이 없다고 말했던 프렘이 내게 다가와 새롭게 생긴 행복한 꿈을 이야기해주며 밝게 웃어주었다. 작은 마을에 세상을 향한 수천 가지의 꿈이 생겨나고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등반하기 전 오후의 한 자락.

베이스캠프에서 등반하기 전 오후의 한 자락.

정상 등정 후 첫 번째 기적을 위해 말에 책을 실어 다스다 마을로 가던 길.

정상 등정 후 첫 번째 기적을 위해 말에 책을 실어 다스다 마을로 가던 길.

사실 처음부터 1천 개의 도서관을 짓겠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뚜렷하게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다만 내 손에 닿은 사람의 꿈을 위해 손을 잡아주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시작은 반 이상이었다. 아이들에게 처음 책을 전해주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어떻게 그들의 꿈을 세상에 알려야 할까 고민하게 됐고, 그러한 고민은 단지 두 번째가 아닌 그 길의 끝에 놓일 1천 개의 기적의 도서관을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1 원정길에 짐을 나른 소년 포터. 공부할 시간에 슬리퍼를 신고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나른다.
2 마을에서 놀다가 살구나무에서 떨어져 이마가 깨지고 두 팔이 부러졌지만 연신 웃음을 짓던 아이.
3 첫 번째 희망의 영어도서관이 생긴 다스다 마을에서 만난 눈이 예쁜 소녀.

1 원정길에 짐을 나른 소년 포터. 공부할 시간에 슬리퍼를 신고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나른다. 2 마을에서 놀다가 살구나무에서 떨어져 이마가 깨지고 두 팔이 부러졌지만 연신 웃음을 짓던 아이. 3 첫 번째 희망의 영어도서관이 생긴 다스다 마을에서 만난 눈이 예쁜 소녀.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세상의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다

김형욱은…
오지탐험가 겸 사진작가. 2006년 자전거로 실크로드 8,000km 횡단. 중국 톈진과 파키스탄을 비롯해 중동과 동남아, 인도, 네팔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1천 개의 영어책 도서관을 목표로 세상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등의 오지마을 17곳에 2만여 권의 영어책을 전해주었고 더불어 한국의 산간마을에서 게릴라 전시, 문화 공간 공연을 펼쳤으며, 공공도서관에서 영어책 모금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눔을 전하고 있다. 2012년 7월 현재 남은 도서관 수는 9백83개. 여전히 세상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지구별을 방랑 중이다.


■정리 / 노정연 기자 ■글&사진 /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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