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게 펼쳐진 세상. 쉽게 생각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1천 개의 도서관을 꿈꾸며 세상의 가장자리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이야기. 그 길고도 아름다운 여정이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편집자 주

선생님들이 하교 사인을 줄 때까지 아이들은 줄을 지어 기다린다. 그리고 내일 다시 보자며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원정길에서 만난 포터들의 마을에 우여곡절 끝에 구한 영어책을 전해주면서 본격적인 1천 개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왜 1백 개가 아닌 1천 개의 도서관을 목표로 삼았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1백 개를 목표로 잡으면 딱 1백 개밖에 못 지을 것 같지만 1천 개를 목표로 하면 1백1 개는 지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다. 여전히 까마득해 보이는 숫자이지만 조금씩 그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지금, 나는 1천 개를 넘어 더 많은 도서관을 꿈꾸고 있다.
한국에서 모인 책으로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고, 그 다음 영어책이 많은 나라에 가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몽상이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내게 시작은 반이 아닌 1백에 가까운 것이라는 걸 히말라야 자락 다스다 마을에서 배웠고, 그곳에서 얻은 용기로 더 큰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 이 생각만으로도 벅찬 일들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또 다른 기적의 도서관을 위해 고민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저녁, 명동성당 옆 작은 카페 ‘섬’의 여섯 번째 섬지기 형님으로부터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콘서트를 열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책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음을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리하여 대학로에 자리한 이음책방에서 2008년 11월 중순 비 오는 추운 주말 저녁에 첫 번째 후원의 밤 공연을 열게 됐다. 마치 김광석씨를 보는 듯 노래하는 섬지기 형님과 다른 후원자들이 자리를 해 노래를 해주었고, 소식을 듣고 찾아준 지인들과 외국인 친구들과 아이들까지, 조그만 지하 책방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으로 가득 찼다.

첫 번째 후원의 밤. 비 오는 추운 가을 저녁임에도 성황을 이루었다. 후원의 밤에 찾아와 각자의 책을 나눠준 멋진 아이들. 후원의 밤 공연에서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필자.
3년 만에 지킨 약속
2008년이 끝날 무렵 나는 네팔의 두 번째 도시이자 그림같은 히말라야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포카라에 도착했다. 몇 해 전 네팔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 가네쉬와 네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난 아이들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가네쉬에게 이곳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었다.
“가네쉬, 지금 이곳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야?”
“책이지. 영어 공부를 해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지. 하지만 지금은 좋은 책을 들여놓을 학교도, 부모들의 사정도 넉넉지 않은 게 네팔의 현실이야.”
“그래? 그럼 내가 언젠가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수많은 영어책과 함께 오도록 할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꼭 지킬 테니 기다려줘.”
무슨 자신감에 그런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약속을 한 지 만 3년 만에 나는 정말로 그곳에 영어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1 할머니와 둘이 살아가는 상기타. 교육을 통해 더 나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2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동생 둘을 책임져야 하는 런치나.
지금이야 마음을 나누어 주신 고마운 분들께 보내주신 책들이 어떻게 히말라야를 넘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지, 쓰임이 없어진 책들이 어떤 식으로 다시 쓰이는지, 그리고 책을 받은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리기 위한 수단의 일종으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지만, 예전에는 이것조차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혼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담은 포카라 아이들의 사진은 의미가 깊다. 수줍음 가득한 아이들의 사진을 볼 때면 그때의 두근거림에 다시 심장이 뛴다.
행운의 편지, 그리고 기적

아이들의 하굣길. 두 번째 학교 아이들.
“아이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이 아이들은 불쌍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의 수단을 전해준다면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첫 번째 도서관은 히말라야 원정길에서, 두 번째는 대학로 조그만 책방의 후원의 밤 공연으로,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도서관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 다시 고민이 찾아왔다.

포카라 페와 호수의 석양.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책을 보는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두 번째 도서관을 위해 찾은 겨울의 네팔.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네팔 포카라, 시작이 된 또 하나의 약속](http://img.khan.co.kr/lady/201211/20121115174829_8_oji_tra8.jpg)
[오지탐험가 김형욱의 손끝에 닿은 세상]네팔 포카라, 시작이 된 또 하나의 약속
오지탐험가 겸 사진작가. 2006년 자전거로 실크로드 8,000km 횡단. 중국 톈진과 파키스탄을 비롯해 중동과 동남아, 인도, 네팔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1천 개의 영어책 도서관을 목표로 세상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등의 오지 마을 17곳에 2만여 권의 영어책을 전해주었고, 더불어 한국의 산간 마을에서의 게릴라 전시, 문화 공간 공연, 공공 도서관에서의 영어책 모금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눔을 전하고 있다. 2012년 7월 현재 남은 도서관 수는 9백83개. 여전히 세상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지구별을 방랑 중이다.
글&사진 김형욱 정리 노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