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코다테와 도야의 가을을 만끽하고 노보리베츠로 이동한 티격태격 모녀는 마치 미식 여행을 떠난 듯 식도락을 만끽한다. 또 홋카이도에서 온천욕 즐기는 것을 빼놓을 리 없다. 아쉽게도 이번 호를 끝으로 티격태격 모녀의 여행기는 작별 인사를 고한다. 하지만 티격태격 모녀의 여행을 따라잡기에 딱 좋은 시즌이 돌아왔음을 위안 삼아보는 건 어떨까. (편집자 주)

멋스럽게 자라난 비에이의 자작나무 숲에서.
한 시간에 두 대꼴로 운행하는 노보리베츠행 기차를 타고 JR 도야역을 출발했다. 역시나 조용한 일본의 기차. 엄마는 어김없이 잔뜩 신이 나서 떠드는 내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했다.
“엄마, 여기는 곰이 유명해. 엄청 큰 곰 목장이 있거든. 저기 봐! 곰 인형도 세워놓았네.”
우리는 개찰구에 세워진 거대한 곰 모형을 보며 감탄했다. 노보리베츠는 곰과 도깨비로 유명한 작은 온천 마을이다. 다양한 종의 곰이 살고 있는 목장은 노보리베츠의 인기 관광 코스로 꼽힌다. 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도깨비상은 노보리베츠에 있는 지옥 온천을 지키는 도깨비를 상징화한 것으로 일본 특유의 귀여운 인상을 한 것부터 험악한 인상까지 다채로운 표정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빠져나왔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통 온천 호텔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손님이 도착하기 전에 와 있는 것이 보통인데,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예약을 해준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바쁜지 “기다려”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30분이 넘게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았다. 온천 단지는 기차역에서 자동차로 15~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빠가 셔틀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던 터라 미리 현지 버스 노선을 알아두지 않았기에 더욱 막막했다. 참다못한 엄마가 오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그럼 당장 택시 타고 가야겠네. 좀 똑바로 하란 말이야! 뭐? 10만원? 웃기고 있네! 끊어!”
오빠의 실수였다. 우리가 묵을 온천 호텔은 평일에는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오빠는 요금이 10만원은 나올 것 같다며 버스를 타라고 했다. 아무리 택시 요금이 비싼 일본이라지만 20분 거리에 10만원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일단 택시를 잡아탔다. 어쨌든 3만원이라는 만만찮은 돈을 지불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이 그저 다행스러울 따름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는 천연 족탕!
지옥 온천, 호수 온천, 곰 목장, 온천 호텔에서의 만찬과 온천욕 등 노보리베츠에는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천연 족탕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말 그대로 천연의 온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온천은 해당 지역의 온천수를 공급받아 적정한 온도와 수질 환경을 조성하는데 반해, 천연 온천은 그러한 과정을 생략한 자연 그대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상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 온천 호텔에 짐을 풀고는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노보리베츠 온천 단지는 넉넉히 한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지옥 온천과 호수 온천 사이에 작은 산을 올라갈 때 힘이 조금 들긴 해도, 험한 편은 아니라서 걸어갈 만하다. 엄마와 나는 지옥 온천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지옥 온천’은 현재진행형인 활화산 분화구가 있는 곳으로 유황 연기가 마치 지옥처럼 솟아오르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진한 유황 냄새가 진동할 뿐만 아니라 자욱한 연기로 인해 자칫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엄마는 “관광객도 몇 명 없는데 더 깊이 들어가지 말자”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옥 온천에서 작은 산 하나를 오르면 호수 온천이 나온다. 하지만 산길이라서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노란 모자를 눌러쓴 자원봉사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에 호수 온천이라고 했더니 함께 가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친절한 할아버지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하니 회색빛 호수에서는 뜨거운 김이 펄펄 나고 있었다. 분위기는 그럴싸했으나 깊은 산속에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이 엄마를 예민하게 만든 것 같았다. 엄마의 손이 잡아끄는 대로 다음 코스인 천연 족탕으로 향했다.

1 노보리베츠의 온천 호텔들은 대부분 멋진 노천탕을 갖고 있어서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좋다. 2 지옥 온천은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분위기다. 진한 유황 냄새와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3 노보리베츠의 상징인 도깨비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엄마.
잠깐 마음이 답답했다.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즐겁게 산책할 수 있는데, 엄마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10초에 한 번은 뒤를 돌아보면서 산을 내려갔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천연 족탕. 몇 년 전에 출장차 왔을 때는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오늘은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회색빛 온천수가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계곡을 따라 흘렀다. 얼른 신발을 벗고 나무 의자에 앉아서 천연 온천에 발을 담갔다. 잿빛 물도 신기했지만, 온천 특유의 냄새도 기분 좋은 자극이 됐다. 감촉도 미끄덩하니 좋았다. 이곳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천연 온천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수온이 급작스럽게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물의 온도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은주야, 그만하고 내려가자.”
“30분만 더 있다가 가자. 이런 기회가 또 있겠어? 천연 온천인데….”
결국 노보리베츠의 하이라이트 천연 족탕은 슬쩍 맛만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계속 “해외여행 중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사건은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일어났어”라는 말만 했다. 물론 엄마의 말도 옳다.
홋카이도 쇼핑의 중심 삿포로
다음날 온천 호텔에서 제공하는 삿포로행 버스를 탔다. 노보리베츠의 대형 온천 호텔은 대부분 삿포로와 신치토세 공항행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할 때 공항에서 바로 노보리베츠 온천 호텔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이곳에 오는 코스도 권할 만하다. 두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JR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삿포로에서 가장 큰 백화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당연히 백화점 구경부터 나섰다.
“은주야, 이거 어때? 사이즈가 커서 정말 좋다. 대체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작은 사이즈만 갖다놓는 건지! 가격도 괜찮네.”
“예쁘네, 엄마. 이거 꼭 사! 근데 아이보리색 말고, 빨간색으로 사!”
“남편 죽은 여자가 시뻘건 옷 입고 다닌다고 욕하면 어쩌지?”
“엄마가 빨간 옷 입는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해. 사라니까!”
엄마는 빅 사이즈 매장에서 빨간색 모직 원피스를 샀다. 종종 일본 여행을 올 때마다 백화점 빅 사이즈 매장에서 괜찮은 물건을 사곤 했는데, 이번에도 잘 골랐다. 텍스 프리 혜택을 꼭 챙기라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약간의 잔돈도 되돌려받았다. 또 백화점 1층 매장에서 우리가 늘 공략하는 아이템은 모자와 스타킹이다. 유럽의 고급 브랜드를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상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가격이 우리나라의 중저가 브랜드와 비슷하다. 물론 디자인은 훨씬 세련된 것이 많고, 균일가 제품 중에서도 건질 만한 것이 제법 있다.
홋카이도는 쇼핑을 즐길 만한 곳은 아니다. 일본인이 건너와 살기 시작한 역사도 길지 않거니와 대부분의 공산품은 본토에서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버터, 우유 등 농수산물은 어느 곳 부럽지 않게 풍부하며 맛이 뛰어나기도 하다. 그나마 쇼핑이 괜찮은 곳이 삿포로다. 일본의 특화된 아케이드 상가와 대형 쇼핑센터가 잘 발달한 덕분이다.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 오타루
JR 삿포로역에서 오타루행 기차를 탔다. 오타루는 세계적인 만화가 된 「미스터 초밥왕」의 저자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고향으로, 생선 초밥 거리가 따로 조성돼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생선 초밥을 맛보기 위해 즐겨 찾는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이 작은 마을은 오르골과 홋카이도산 생우유로 만든 치즈케이크로도 유명하다. 누구보다 생선 초밥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시내로 들어섰다.
오타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로 운하다. 지난 1923년 홋카이도의 주요 무역항 역할을 위해 건설됐으며, 30년 전 운하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정비하면서 관광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야경이 멋있기로 소문이 났는데,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유명한 초밥 장인이 있는 식당,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오르골 박물관과 은쟁반에 초콜릿과 치즈케이크 조각을 담아 관광객에게 건네는 호객꾼도 만날 수 있다.
“내 친구는 며느리 볼 때 여기서 산 오르골 보석함에 이것저것 넣어줬다더라. 나도 그때를 대비해서 하나 살까?”
“엄마! 내 것부터 사줘!”
오타루 오르골 박물관에 들어선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무척이나 예쁜 모양의 인형이 시선을 잡아끌고 듣기 좋은 음악이 귀를 사로잡았다. 한참 동안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손에는 마음에 드는 오르골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오르골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싼 편이다. 그렇지만 오타루에 왔다면 하나쯤 사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빠가 알려준 생선 초밥집은 10분은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엄마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 그냥 저 집에 가서 먹고 가자.”
맛있는 초밥집에 가려고 했지만, 엄마가 걸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서 신장개업이라고 써 붙인 식당에 갈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에서 전통 있는 식당이 아닌, 개업집에 가다니!

1 아기자기한 오타루 시내. 유리 공예품점, 오르골 상점, 초밥집 등이 모여 있다. 2 오타루 시내를 운행하는 빨간 전차. 3 오타루에는 유명한 초밥 장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여럿 모여 있다. 단 가격대는 결코 만만치 않으니 참고할 것. 4 관광객을 맞이하는 곰들의 애교도 볼 만한 곰 목장. 5 천연 온천에서는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자연 그대로의 온천수를 체험할 수 있다. 6 오타루의 특산품 오르골.
왕복 600km를 달려 다녀온 비에이와 후라노
삿포로에서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고민하던 중,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당일치기 투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기차역에서 관광지까지 오가는 수고도 덜 수 있고 무엇보다 맛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용자의 후기’가 마음에 들었다. 삿포로에서 출발해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을 둘러보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왕복 거리가 600km에 이르는 대단한 여정이었다. 차를 오래 타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같은 날에 예약한 신혼부부와 함께 총 네 명이 12인승 승합차를 타고 다닌 덕분인지 생각만큼 피곤하진 않았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살면서 자식을 세 명 이상 낳는 가구에 한해 귀농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줍니다. 그리고 그 세 명의 자식이 20세까지 거주하는 조건으로 농경지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해요. 일본인이라면 한 번 와서 살아볼 만하겠죠?”
하코다테 출신의 아내를 만나 삿포로에 터전을 잡은 여행 가이드는 홋카이도에 대한 여러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날의 관광은 ‘나무 구경’으로 시작했다. 마일드 세븐 나무, 오야코 나무, 켄과 메리 나무, 세븐 스타 나무, 크리스마스트리로 불리는 나무, 철학의 나무 등 비에이 지역의 광활한 농경지를 돌며 나무 구경을 실컷 했다. 드넓은 벌판 위에 별칭이 붙은 나무들이 딱 한 그루씩 서 있는데,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점이 신기했다. 특히 자작나무 숲이 압권이었는데, 무척이나 멋진 풍광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지금은 홋카이도 옥수수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계절입니다. 어때요? 맛이 끝내주죠?”
가이드는 고속도로 옆 농장에 차를 세운 뒤 옥수수 몇 개를 가져왔다. 삶거나 구운 것이 아닌 즉석에서 딴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그냥 베어 먹으라며 주었는데, 엄마와 나는 조금 망설였다. 하도 먹어보라고 권유를 하는 통에 생옥수수를 먹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주스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동네 할아버지들이 홀딱 벗고 탕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아는 척 말고 그저 즐겁게 쉬면 됩니다.”
일정 중에는 시라가노 지역에 위치한 대설산의 천연 온천탕 방문이 있었다. 사전에 수영복을 옷 속에 입고 오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입진 않았다. 남녀 혼탕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보니 깊은 산속 약수터 같은 공간에 덩그러니 온천탕이 있고 몇몇 어르신이 옷을 벗은 채 탕에 들어가 명상을 즐기고 계셨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발이라도 담그러 내려갔지만, 엄마는 시종일관 ‘이게 뭐 하는 짓들인지’ 하는 표정이었다.
짧게나마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을 둘러보고 늦은 밤이 돼서야 삿포로에 도착했다. 마지막 만찬을 위해 오빠가 꼭 가보라고 알려준 치킨커리 식당을 찾았는데, 그 맛이 우리의 닭볶음탕에 매운 커리를 넣은 듯했다. 감칠맛이 좋았다. 일본의 어느 곳에 견주어도 여행하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었던 곳, 홋카이도에서 우리는 즐거운 추억을 아로새기고 돌아왔다.

무지갯빛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난 후라노의 꽃 공원.
1 당일치기 여행 상품을 활용하자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상품 유형 중 하나가 바로 자유 시간을 충분히 즐기면서 하루 정도 일정이 짜인 관광을 하는 것이다. 홋카이도에도 이러한 당일치기 여행 상품이 여럿 있다. 인터넷 여행 카페나 여행사 등에 문의하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티격태격 모녀도 이러한 당일치기 여행을 미리 계획하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삿포로에서 출발해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을 돌아보는 코스를 택했다. 다섯 시간 넘게 차를 탔지만, 일반 패키지 관광처럼 분주하지 않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기념품 관광 같은 코스는 과감히 생략하자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바로 여행 책자다. 어느 도시에 가면 어디를 반드시 가야 한다는 식의 설명이 많은데, 이것이 오히려 여행의 피로를 누적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에서 이러한 스케줄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티격태격 모녀는 삿포로에 머무는 3일 동안 삿포로의 ‘기본 관광 코스’ 둘러보는 것을 생략했다. 구 시청사, 오도리 공원, 한 맥주 회사의 공장, 시계탑 등을 가는 것보다 근교인 오타루와 당일치기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여행의 기술은 남들이 다 가는 곳을 가보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글&사진 / 정은주(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