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1만7천 개에 달하는 거대한 군도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그것을 이루는 어지러운 섬들의 숫자만큼이나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나라였다. ‘적도의 에메랄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사람이 많이 사는 인구 대국’, ‘마지막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발리가 있는 곳. 그간 이 먼 나라를 대표하던 수식어들을 걷어내고 오감으로 느껴지는 인도네시아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혼돈과 평화가 공존하는 이 크고도 작은 나라는 신에게 바치는 공경심만큼이나 따뜻하고 신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속살을 맛보다
천 년의 시간이 잠든 신비의 사원, 보로부두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7시간,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 도착해 국내선으로 갈아탄 뒤 다시 1시간여를 날아 족자카르타에 도착했다. 세계 최대의 섬나라인 만큼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려면 몇 개의 주요 섬들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단 인도네시아의 주도(州都)이자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와 태고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수마트라, 최근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술라웨시 정도는 머릿속에 넣어두자.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띤 부처의 불상.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사원 벽면에는 부처의 일생이 새겨져 있다.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족자카르타는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4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자바 섬의 문화 중심지다. 화려함과 번잡함으로 수도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자카르타와는 달리 고대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도네시아의 고도(古都).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 정도가 되는 곳으로, 30개가 넘는 대학이 있어 인구의 40%가 학생인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최대 도시인 자카르타를 지나쳐 족자카르타를 먼저 찾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세계 최대의 불교 건축물인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기 위해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바간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불리는 보로부두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불교 유적지로 아직까지도 수많은 비밀에싸여 있는 신비의 사원이다. 거대한 화산으로 둘러싸인 푸른 쿠두 평원 한가운데 위치한 이 사원은 기원전 9세기경 샤일렌드라 왕조에 의해 건설됐다가 지어진 지 1백 년 만에 인근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버리고 만다.
보로부두르의 목이 잘린 불상.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부처의 목은 식민 시절마다 선물로 바쳐져 씁쓸하고도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동남아 최대 힌두 사원인 프남바난.
사원이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1천 년 뒤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영국군에 의해서다. 1천 년의 시간을 고요히 잠들어 있던 사원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에 휩싸였고, 녹지로 둘러싸인 평원 한가운데에서 고대인들이 어떻게 돌을 구해 이 거대한 사원을 완성했는지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고고학적 가치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대의 전설이 아니더라도 보로부두르는 여행자들에게 충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피라미드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구조와 1층부터 10층까지 정방형으로 쌓아 올라가는 거대한 규모에, 사원 벽면에는 부처의 생애를 담은 생동감 넘치는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만 무려 1만 명에 달한다. 해 질 무렵 고대의 정령들이 춤추는 사원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녹색 들판과 운무에 휩싸인 산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이방인을 둘러싼 신성한 기운이 그저 깊은 탄성으로 터져 나올 뿐이다.
자카르타의 작은 시장. 인도네시아 어디에서든 열대과일과 향신료를 맛볼 수 있다.
아름다운 자바 건축의 백미, 프남바난
보로부두르를 봤다면 이제 힌두 사원인 프남바난을 볼 차례다. 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을 비롯해 힌두교와 불교, 기독교, 가톨릭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데, 족자카르타는 자바 섬 중남부라는 개방적인 위치로 인해 여러 종교들이 저마다의 독자적인 문화를 평화롭게 이어나가고 있다. 1천 년이 넘는 불교 사원 보도부두르와 힌두 사원 프남바난이 한 도시에 공존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동남아 최대 규모의 힌두 사원인 프남바난은 9세기 중부 자바에서 번성한 마타람 힌두 왕국에 의해 지어졌다. 힌두 전통신인 시바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원래 이름도 ‘시바의 집’이라는 뜻의 ‘시바그라’였다고. 보로부두르가 웅장하고 독특한 분위기로 여행객들을 사로잡는다면 프남바난은 정교함과 세련된 균형미를 뽐내며 자바 건축의 백미를 보여준다.
보로부두르와 마찬가지로 프남바난 역시 모진 풍파의 흔적이 남아 있다. 16세기에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무너져 2백 년 넘게 방치되다가 일부 신전이 복원됐으며 현재 나머지 신전들도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프남바난 사원은 넓은 벌판에 50여 개의 사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중앙에 솟은 시바 신전은 47m 높이로 동남아 최대 규모다. 해 질 녘에 방문하면 노을빛에 드리워져 더욱 아름다운 크고 작은 사원을 감상할 수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사원 옆 야외극장에서 힌두 전통 무용인 ‘라마야나 공연’도 볼 수 있으니 잊지 말고 들러보자. 화려한 힌두 고유의 의상과 아름다운 무용수들의 몸놀림이 신비로운 남국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동남아시아 제1도시, 자카르타 시내 전경.
거대한 카오스 속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도시, 자카르타
인구 1천1백만 명의 동남아시아 제1의 도시, 크고 화려한 건물들 사이로 소음과 활기 가득한 자카르타에 적응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새것과 낡은 것, 부(富)와 빈(貧), 무질서와 평화가 어우러진 거대한 카오스 한가운데에서 이방인은 잠시 어찌할 줄 모르는 심정이 돼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혼란의 도시에 흡수되는 건 한순간이다. 동틀 녘, 여행객의 귀를 깨우는 기도 소리, 여유롭고 환한 미소로 이방인을 반기는 거리의 발 벗은 이들, 매혹적인 축제와 이국의 풍습,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노점들과 넘쳐나는 먹을거리들은 가난한 여행객의 여정을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게 만든다.
인도네시아 민속촌 '타만 미니'에서 만난 전통춤을 추는 소녀들.
자카르타를 찾은 이라면 ‘타만 미니 인도네시아 인다’에서 한층 더 깊은 인도네시아를 경험할 수 있다. ‘자카르타 최고의 관광명소’로 꼽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인도네시아를 축소시켜놓은 작은 공원’이라는 뜻의 민속촌으로, 인도네시아 각 지역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아름답게 조성해놓은 테마파크다. 자카르타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위치한, 150ha 규모의 거대한 공원 안에는 개성 강한 양식으로 지어진 인도네시아 각 지방의 가옥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여러 종족의 의식주는 물론 문화 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각종 놀이시설과 아름다운 호수, 동물원과 다양한 전시관까지 마련돼 관광객들은 물론 많은 자카르타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수많은 볼거리 중 파충류 전시관과 새 전시관은 그냥 지나치지 말 것. 살아 있는 공룡이라 불리는 ‘코모도’ 왕 도마뱀과 인도네시아 각지의 화려한 새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1 인도네시아의 전통의상인 바틱을 만들고 있는 여인. 2 족자카르타의 바틱 공장. 알록달록한 염료들이 바틱에 수를 놓는다. 3 족자카르타는 은세공으로 유명하다. 곳곳에서 정교한 은세공 공예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독특한 인도네시아 전통 공예품과 동남아시아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자카르타는 쇼핑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시내의 주요 쇼핑센터로는 그랜드 인도네시아 몰과 플라자 인도네시아, 스나얀시티 쇼핑몰 등이 있고 블록엠 지역과 수라바야 거리에서는 여행객들을 위한 기념품과 선물로 많이 찾는 전통 공예품,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인 바틱을 만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파리’, 사랑스러운 고산도시 반둥
주말이면 자카르타 사람들은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180km 떨어져 있는 고산도시 반둥으로 향한다. 자동차와 기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면 닿을 수 있는 반둥은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로, 연평균기온 22℃의 시원한 날씨를 자랑하는 곳이다. 선선한 기후, 다양한 음식뿐 아니라 화산 관광과 온천 체험, 쇼핑과 골프를 즐기기 위해 주말이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특히 중소 규모의 아웃렛이 밀집된 쇼핑의 천국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끄는 이곳은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 레스토랑과 쇼핑몰들이 늘어서 있어 ‘인도네시아의 파리’라 불리기도 한다. 자카르타에서 반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보고르 식물원과 따만 사파리도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관광명소. 반둥 시내 인근에 있는 ‘탕쿠반 프라후’ 휴화산을 구경하고 천연 유황온천수로 유명한 ‘치아트르’ 온천에 몸을 담그면 천혜의 자연 속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인도네시아 여행 정보
전 지역 평균기온이 25~27℃에 이르는 덥고 습한 열대성 기후. 화폐는 루피아(Rupiah)로 1천 루피아가 우리 돈으로 120원 정도다. 시차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자카르타와 자바, 수마트라 지역은 한국보다 2시간, 발리와 칼리만탄, 슬라웨시는 1시간 느리다. 공항과 정부기관, 사원에서는 소매가 없는 옷이나 짧은 반바지, 비치샌들 착용은 피하는 것이 좋고, 물은 끓여 마시거나 미네랄워터를 사서 마실 것을 권장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왼손은 부정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악수를 하거나 물건을 받을 때는 가급적 오른손을 사용하도록.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30일 이하 체류시에는 25달러를 내고 공항에서 간단하게 발급받을 수 있다.
■글&사진 / 노정연 기자 ■사진 제공&취재 협조 / 인도네시아 관광청(tourism-indonesi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