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편지를 보내고 전국에서 기적같이 책들이 택배로 오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국제 사진 공모전 인물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첫 번째 책인 「손끝에 닿은 세상」이 2009년 가을 세상에 나온 것이다.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출연 섭외가 밀려와 3개월 동안 인터뷰를 1백50여 차례나 했다. 당시 기자들에게 들었던 마지막 질문은 모두 똑같았다. 1천 개 중 3개의 도서관을 지은 상황에서 나머지 9백97개를 완성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였다.
처음엔 책 한 권을 모으는 게 무척이나 소중하고 어려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박스째 들어오는 책들을 네팔로 옮기는 데 드는 물류비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다. 초창기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책들을 네팔에 보내는 데 드는 물류비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의 지인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식사를 한 번 하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백 번이 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기사를 보신 분들이 참 많이 연락을 해오셨다.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열정적으로 연락을 해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히는 약속이 많았다. 조금씩 사람들에게 지쳐가고 있던 때였다. 친구의 지인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맛난 밥 한 그릇 하러 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 만난 사람이 당시 투자 자문회사에서 근무를 하던 강태욱 이사님(지금은 새로운 문화재단을 만들어 캄보디아에서 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이었다. 그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게 지금 당장 급한 게 무엇이냐고물었다. 쌓여 있는 책들을 보내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다음날 아침 그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주셨다. 비슷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왔기에 세상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해 봄, 네팔에 두 번에 걸쳐 열 곳의 도서관이 더 생겨났다.
도서관을 만들 때는 마을과 학교를 방문해서 도서관에 대한 시스템적인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 책을 가지고 들어갈 일정을 정하게 된다. 도서관을 만드는 전체 과정이 100이라고 하면, 학교에 책을 가져다주거나 마을에 책이 들어가는 것이 99를 차지한다. 그 마지막 순간을 위해 99라는 시간을 나는 홀로 고민하며 싸워왔다.
하지만 새벽녘 히말라야 너머에서 영어책을 가지고 온 이방인을 위해 뒷동산에 올라가 야생화를 꺾어 꽃목걸이를 만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이 모두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간의 힘듦과 걱정들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힘든 시간들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어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수많은 고민과 불면의 시간들이 까맣게 잊혀지는, 정말로 마법 같은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벌써 스물한 곳의 마을에서 그와 같은 마법을 경험했다. 도서관 마을의 학교 교장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한국에서 온 미스터 킴이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난 도움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교장선생님의 말을 자르고 이렇게 얘기했다. 이건 절대 도움이 아니라 나눔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마음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지금까지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데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었고 또, 그들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10년, 열 곳의 마을에 도서관이 완성된 뒤 나에겐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도서관을 만들며 종종 기회가 될 때마다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곤 했는데, 전시를 보러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찾아가는 전시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봄날, 한 성당의 신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기사에서 시골 게릴라 전시에 대한 꿈을 보았는데 같이 나누고 싶다고, 통장에 중고차를 살 돈을 넣어놓았으니 차를 사서 전시를 마음껏 하고 다니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던 나는 귀국하자마자 액자를 50개 정도 실을 만한 튼튼한 차를 사 지리산 자락에서부터 전시를 시작했다. 액자를 지탱할 만한 이젤이 없어도 그만이었다. 운동장 한쪽의 너럭바위가 그 역할을 대신했고 그림같이 놓인 산자락이 어느 갤러리 부럽지 않은 풍경으로 마음속에 들어왔다.
2012년 봄, 네팔 1천 개의 도서관 프로젝트 ‘Dive into a Dream’에 선발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학생 15명과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애니메이션학과, 만화창작학과,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은 올 여름 네팔에서 아이들을 만나 멋진 바닷가의 하얀 고래를 한 마리씩 그려주고 왔다. 그 멋진 여름에 1천 개의 도서관은 스물한 번째 마을에 기적을 전했고, 이제 남은 도서관 수는 고작 9백79개가 됐다.
그리고 나는 이것 하나만큼은 굳게 믿고 있다. 책은 아이들에게 적어도 하나의 꿈을 만들어줄 것이고, 좋은 책은 좋은 꿈을, 그리고 컬러 책은 총천연색의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것이라고. 한 마을에 가져다주는 1천 권의 영어책은 히말라야 산간 마을에 수십만 개의 꿈으로 피어나 빛날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그 꿈들을 실현시켜줄 멋진 세상이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글쓴이 김형욱은…
오지탐험가 겸 사진작가. 2006년 자전거로 실크로드 8,000km 횡단. 중국 톈진과 파키스탄을 비롯해 중동과 동남아, 인도, 네팔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1천 개의 영어책 도서관을 목표로 세상 끝에 놓인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등의 오지 마을 17곳에 2만여 권의 영어책을 전해주었고, 더불어 한국의 산간 마을에서의 게릴라 전시, 문화 공간 공연, 공공 도서관에서의 영어책 모금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눔을 전하고 있다. 2012년 12월 현재 남은 도서관 수는 9백79개. 여전히 세상 가장자리에 1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지구별을 방랑 중이다.
■정리 / 노정연 기자 ■글&사진 /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