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하이킹은 선유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군산 여행의 시작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이곳은 군산의 근대문화와 해양문화를 테마로 설립된 곳으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각종 고증 자료를 두루 잘 갖춰 놓았다. 군산은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년에 개항한 항구도시다. 다른 개항도시와 달리 호남, 충청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때문에 일본 상공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이 같은 아픈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무엇보다 군산의 다양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여행 초기에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박물관 왼편에는 옛 군산세관 건물이 자리해 있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건축물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한다. 1908년 대한제국이 벨기에로부터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건축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서울역, 한국은행 본점과 비슷하게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동시대에 지어졌으며 같은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외 풍경만 살펴보고 지나치는데, 사실 그 속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실내에는 세관으로 사용될 당시의 소품들이 전시되어 퇴색된 옛 영화를 보여준다. 걸으면 끼익 소리가 나는 청록색의 마룻바닥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해망굴 앞은 수산물 시장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사진 왼쪽). 봄을 재촉하는 동백꽃.
거장 임권택 감독이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장군의 아들’을 내놓았던 지난 1990년. 군산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달성하며 김두한 신드롬을 탄생시켰다. 남학생들은 김두한을 흉내 내기 위해 어깨에 ‘뽕’이 심하게 들어간 재킷을 입고 다녔다. 그 시절 친구들끼리 거리를 걸을 때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긴 목도리를 휘날리곤 했다. 김혜수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영화 ‘타짜’ 역시 군산에서 촬영됐다. 두 영화 모두 같은 장소에서 촬영했는데, 그곳이 ‘히로쓰가옥’이다.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가 살던 집이라고 해서 ‘하야시 집’으로 더 잘 알려졌다. 히로쓰가옥은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식 가옥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주인이었던 히로쓰는 포목상으로 돈을 번 일본인이다. 이색적인 붉은색 담장과 이어진 본체로 들어가는 대문은 전국시대 일본의 사무라이 가옥 구조를 따랐다고 한다. 마룻바닥 위를 걷다보면 유별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큰 지점이 있다. 바로 히로쓰의 방문 앞이다. 관리인의 설명에 따르면 무사 가옥의 특징이란다. 즉, 자객의 침입을 확인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당시에는 이런 장치가 최첨단 무인 경비 시스템이었을 것이다.
골목길이 주는 고즈넉한 풍경
군산 해망굴 근처에 있는 골목길 마을은 19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나팔바지로 한껏 멋을 부린 청춘들이 구석구석을 쓸고 다녔을 법한 예스러운 골목은 마치 영화 속 세트장을 옮겨놓은 듯하다. 비탈에 위태롭게 자리를 잡은 달동네지만 이곳 역시 군산의 과거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우선 해망굴은 군산이 개항되면서 건축된 대표적인 토목 시설이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지휘소로도 쓰였다.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현재 차량 진입은 금지되고 보행자 통로로만 사용된다.

건축미가 뛰어난 (구)군산세관.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인 히로쓰가옥. 비탈진 해망동의 좁은 골목길(사진 왼쪽부터).
월명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동백나무와 벚나무가 가득하다. 벚꽃이야 봄기운이 완연해야 개화하지만 봄바람이 콧잔등을 간질이는 3월 초가 되면 새빨간 동백꽃을 구경할 수 있다. 하늘로 치솟은 횃불 모양의 수시탑은 야간에 찾아도 그 멋스러움이 대단할 듯싶다. 실제로 현지인들은 벚꽃이 만개하는 4월에 이곳으로 야간 꽃구경을 나선다고 한다. 월명공원에서는 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곳곳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봄볕을 즐겨도 좋고 준비한 간식이 있다면 가볍게 배를 채워도 좋겠다.
이름도 낯선 뜬부두, 그 내막은 수탈이었다
군산근대문화유산 거리를 걷다보면 낯선 집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다다미집’과 ‘나가야집’이다. 대문 앞을 지켜보고 있자면 1930년대 중절모를 쓴 신사가 나올 것 같다. 동그란 렌즈의 안경을 쓰고서 말이다. 나가야집은 일본식 건축물의 대표적인 형태로 단층이나 2층 건물이 길게 이어진 집을 일컫는다. 연립주택처럼 한 건물에 다가구가 산다. 적산가옥에는 일본식 돗자리가 깔린 다다미집이 남아 있기도 하다.
사연 많은 골목길과 옛집들을 뒤로하고 다시 군산 바다가 보이는 내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는 ‘뜬다리’라는 낯선 이름의 다리가 있다. 그물을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께서 “뜬다리는 조수 간만의 차가 있을 때 다리가 같이 움직여. 그래서 뜬다리라고 해”라고 말씀하신다. 쉽게 말해 물이 빠지면 다리가 내려가고, 물이 들어오면 다리가 올라가서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단다. 왜 이런 다리를 만들었을까. “일제시대 때 군산에서 엄청나게 쌀을 싣고 갔대. 그때 쓸려고 이렇게 만들었다는군.”

선유도와 연결된 장자도의 풍경. 야경이 아름다운 은파유원지(사진 위부터).
반짝이는 물결이 파도친다는 뜻의 ‘은파’. 이곳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인공 저수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을 만큼 그 역사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재는 군산 시민을 위한 유원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4월경에는 화사한 벚꽃이 만발해 꽃 터널을 이룬다. 바람이라도 불면 꽃비가 날려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야간 조명을 받으면 그 분위기는 더욱 환상적으로 바뀐다. 또 여름에는 상큼한 아카시아 향이, 가을에는 낭만적인 가로수길이 운치를 더한다. 특히 길이가 370m에 달하는 보도현수교인 ‘물빛다리’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화려한 조명이 켜지는 야간이면 그 고운 자태를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들이 속속 들어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선유도, 경치는 걱정하지 마! 신선이 놀던 곳이니까
군산은 섬이 있기 때문에 당일치기 여행 코스로 끝내기엔 아까운 곳이다. 선유도로 대표되는 고군산군도는 무려 63개에 이르는 많은 섬들이 자리하고 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해망굴. 일본식 가옥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군산의 거리(사진 왼쪽부터).
선유도를 자전거로 하이킹하기 위해서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를 이용하면 된다. 자전거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3~4시간 몸을 맡기기엔 무리가 없다. 미리 안전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고 빌리면 된다. 코스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북쪽의 망주봉, 서쪽의 대장도, 동쪽의 무녀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첫 코스는 북쪽의 망주봉이다. 가는 길에 명사십리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시원하게 뻗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벌써 신선이 된 듯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포장도로를 질주하면 우뚝 솟은 망주봉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생김새부터 큰 종을 엎어놓은 듯 특이하다. 두 번째 코스는 장자도다. 섬 크기는 작지만 섬으로 향하는 대교만큼은 위풍당당하다. 잔잔한 바다 위에 아찔하게 설치된 철교를 건너는 동안 다리의 힘이 쫙 풀린다. 장자도는 한적한 어촌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마지막 코스인 무녀도는 해안 절벽이 압권이다. 위태롭게 바다와 맞선 모양이 제주도의 절경 주상절리를 연상시킨다.

1930년대 당시를 재현해놓은 근대역사박물관 내부. 어부의 아내는 뜬부두 앞에서 그물 손질에 한창이다. 월명공원의 수시탑은 야경이 멋지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쌍용반점의 짬뽕은 전국적으로도 인정받은 맛이다.
1박 2일 군산 여행 추천 코스
▶1일 차 근대역사박물관(백년광장)→(구)군산세관→가부끼 극장(월명동주민센터)→수덕산공원→군산서초등학교→해망굴→월명공원 수시탑→군산여고→(구)히로쓰가옥→초원사진관→이성당→(구)법원→(구)군산부윤관사→선양동 해돋이공원→정주사집 문학비→개복동예술인의 거리→(구)조선은행→군산진사적비→째보선창→진포해양테마공원→은파유원지
▶2일 차 비응항→선유도 유람 및 자전거 하이킹→귀가
●맛집 1945년에 문을 연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063-445-2772), 짬뽕이 맛있는 쌍용반점(063-443-1259), 싱싱한 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군산수산물센터와 비응항수산물센터 등이 있다.
●숙소 은파유원지 인근에 깨끗한 모텔들이 많아 숙박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유로빌리지(063-471-1112)는 군산에서 유일한 유럽 스타일의 대규모 휴양단지이다.
●문의 군산시 문화관광진흥과(063-450-6110, http://tour.gunsan.go.kr)
근대역사박물관(063-443-8283, http://museum.gunsan.go.kr/)
월명유람여객선(063-445-2240, www.wmmarine.com)
여행작가 임운석은…
2001년 본인보다 여행을 1% 더 좋아하는 아내와 결혼해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와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 업체의 로드플래너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글&사진 / 임운석(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