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아침 7시 45분, 초여름의 기차역은 떠나는 이들의 흥분으로 들떠 있다. 더해져가는 도심의 열기를 벗어나 청정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길. 설렘은 가득, 일상은 내려놓은 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O-트레인’에 몸을 실었다. 청정 자연 속 푸른 세상으로 떠나는 기차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지난 4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O-트레인’은 강원과 충북, 경북을 잇는 중부내륙순환열차다.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의 대동맥 역할을 했던 중부내륙철도가 관광열차로 새롭게 이름을 단 것. 영동선과 태백선, 중앙선을 원스톱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관광열차로 운행 1개월여 만에 이용객이 2만 명을 넘어섰다는 화제의 그 열차다. 여행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기차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외관부터 남다르다. 알록달록한 색을 입은 열차에 오르니 유럽 특급 관광열차를 연상시키는 목조품 객실이 여행객을 반긴다. 차창 밖으로 느리게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 멀게만 느껴지던 목적지에 다다랐다. 낙동강 상류, 경북 봉화군 첩첩산중 골짜기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간이역, 분천역이다.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여우천에서 흘러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고 하여 이름 붙은 분천역은 50년 전, 금값보다 귀하다던 경북 울진과 봉화의 금강송들이 거쳐 가던 곳이다. 한때 수백 명이 근무했을 정도로 영화를 누렸지만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해 사그라졌고, 기나긴 침체기를 보내야 했다. 백두대간 오지에서 반백 년을 지낸 외로운 간이역이라 들었는데, 기차에서 내려 마주한 분천역의 첫인상은 동화 속에 나오는 통나무집 같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목조건물 위에는 세모 지붕이 얹혔고, 시원한 역 광장에는 수령이 1백 년은 넘어 보이는 수양버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분천역은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솔바람 강길’, ‘아름다운 호수길’ 등 백두대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채로운 여정을 만끽할 수 있는데, 그중 분천역과 양원역 사이, 비동 승강장에서 출발하는 2.2km의 코스는 산과 기차, 계곡을 누비며 다이내믹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산골마을과 작은 고개를 넘어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는 여정이 알프스를 걷는 듯한 기분이라 하여 ‘체르마트길’이라 이름 붙었다. 길은 분천역에서 카셰어링을 이용해 비동승강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 관문은 낙동강 줄기를 가로지르는 철교. 발아래 흐르는 시원한 강줄기를 내려다보며 철교를 건너는 기분은 아찔하면서도 스릴 있다. 철교를 건너자 가파른 언덕이 이어진다. 우거진 초록을 헤치며 언덕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흐를 겨를도 없이 청량한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총 2.2km, 소요시간 약 1시간)
분천역↔비동승강장↔양원역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분천역 체르마트길
분천역까지 가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O-트레인’을 타는 것이다. 서울역 출발 노선에 이어 최근 수원역-오송역을 거치는 노선이 추가돼 접근성이 좋아졌다. 조금 멀리 가고 싶다면 분천역에서 시간별로 차를 빌려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는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보자. 분천역이나 철암역에서 차를 빌려 지척에 있는 봉화, 태백, 울진, 동해까지 다녀올 수 있다. 이용 요금은 10분당 1천원. 유류 값은 km당 별도로 1백90원을 받는다. 자전거 역시 대여 가능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취재 협조 / 레일유럽, 코레일, 스위스 관광청 ■문의 / 분천역(054-672-7711), 코레일(1544-7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