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망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 왼쪽 큰 섬이 영흥도, 오른쪽 작은 섬이 구봉도다.
여름휴가의 후유증은 길다. 휴가를 보내며 몸과 마음에 여행 바이러스가 침투한 뒤로 주말이 되면 엉덩이가 들썩이고 마음은 뒤숭숭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당일치기 여행할 곳을 찾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
콧바람 잔뜩 들어간 꼬맹이는 캠핑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주말을 앞두고는 “아빠, 주말에 어디 가?” 하며 문자 폭탄을 투하한다. 아내 또한 심상찮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일상으로부터 해방을 만끽하던 그 모습과 사뭇 다르다. 오늘 밤에도 “여보, 주말에 어디 가?”라며 은밀한 눈빛을 쏘아댄다. 기대 충만한 아이와 아내를 향해 아빠가 선전포고하듯 선언한다.
“내일 대부도 가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쾌재를 부른다. 당장 섬이라는 말이 머리에 입력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의 눈빛은 기대 충만이 아니라 오히려 좌절의 눈빛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안산 대부도라는 점이 그 이유다. 기대와 실망의 추를 양손에 들고 운전대를 잡은 아빠의 마음. 이상하리만큼 편안해 보인다. 그 이유가 이제부터 밝혀진다.

1 코스모스가 만발한 바다향기 테마파크. 2 이정표 역할을 하는 해솔길 리본. 3 가족 모두 걷기에 부담이 없는 해솔길.
시속 80km, 시원하게 뚫린 시화방조제를 달린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여럿 보인다. 자칫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이 날 수 있지만 함께 떠났다는 즐거움에 온 가족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른다. 안산 대부도는 서울에서 1시간 30분 거리. 시화방조제 진입로 주변으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에 가급적 일찍 나서는 게 좋다.
안산시 대부도는 한때 섬이었다. 시화방조제와 탄도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오가는 길이 편리해지면서 대부도의 숨은 명소가 수도권 여행자들에게 속속 알려졌다. 대표적인 곳이 방아머리해수욕장과 북망산, 구봉도, 동주염전 등이다. 이런 명소를 연결해 대부 해솔길이 열렸다. 총거리 74km, 7개 코스 중에서 해솔길을 대표하는 코스는 단연코 1코스다. 특히 북망산과 구봉도 구간은 해솔길 도보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개미허리를 지나면 낙조전망대와 꼬깔섬이 보인다. 갯벌의 꼬마 점령군들.
1구간은 시화방조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대부도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한다. 안내소 맞은편 방아머리공원(대부도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큼직한 풍력발전기를 뒤로 하고 1km 정도 걷다 보면 캠핑장 동서가든이 나온다. 이후 북망산으로 향하는 길, 주황색과 짙은 은색 리본이 바람에 흔들린다. 해솔길 가이드 역할을 하는 안내 리본이다. 도보 여행 중에 만나는 작은 리본과 화살표는 나침반과 같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할 때, 길을 잃고 헤맬 때 이보다 더 큰 동아줄은 없다. 주황색은 석양을, 은색은 갯벌을 뜻한다. 북망산은 산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나지막하다. 초등학생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정상부에 올라서면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서해가 발아래 펼쳐지고 구봉도와 꼬깔섬, 무의도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 이곳은 아직까지 외지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호젓한 맛이 있다. '
야영장과 갯벌, 미인송으로 이어지는 변화무쌍함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린 미인송. 바람을 타는 갈대숲. 도보 여행자의 친구가 된다.
갯벌 구간은 썰물 때만 이용할 수 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육지 노선을 택해야 한다. 갯벌에서는 꼬마 사냥꾼들이 갯벌을 누비며 최고 포식자로서 위엄을 뽐낸다. 갯벌을 앞마당 삼은 솔숲 야영장에는 캠핑 나온 가족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야영장 끝자락에 드디어 바다를 향해 ‘V’ 모양의 가지를 뻗은 미인송이 모습을 보인다. 물이 빠지면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반대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뿌리는 물론 아래 기둥 일부분까지 물에 잠겨버린다. 왜 미인송일까. 현지인들에게 수소문해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오히려 “저 나무 이름이 미인송이에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오기도 한다.
해솔길의 명성은 구봉도에서 시작됐다
해솔길 구간 중 최고의 명품 구간으로 손꼽히는 구봉도. 아름다운 봉우리가 아홉 개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개미허리 아치교까지 약 2km 남짓한 숲속길은 기대 이상이다. 아이와 아내 모두 만족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적당하다. 직선보다는 S라인을 살린 오솔길이 마음에 든다. 낮은 경사면이 아래위로 이어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1km 정도를 걸었을까? 언덕 위에 운동기구가 놓인 간이 헬스클럽이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더니 아내가 운동기구에 올라선다. 순간 남편과 아이를 보는 눈이 살벌하다. 마치 ‘내 허리 돌려줘!’ 하는 눈치다. 세월을 원망해서 무엇 하겠는가. 출렁이는 뱃살에 서로 민망한 웃음만 터질 뿐이다.
이어서 개미허리에 도착한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나무다리 모양이 잘록한 개미허리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낙조전망대까지 500m. 안산시에서 야심 차게 관광 조형물을 만들어놓았다. 일몰과 함께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할미·할아비바위를 만난다. 뱃일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할미바위, 집에 돌아와 할미바위를 보고 애통해하다 자신도 바위가 된 할아비의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진다.
이로써 1코스 대단원이 막을 내린다. 온 가족이 함께 솔바람, 바닷바람 맞으며 걸어본 구봉 해솔길.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이 주는 참 행복은 여느 이름난 길에 뒤지지 않는다. 최소한 1주일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영양제로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다.

동주염전에서 천일염 생산 체험을 하는 아이들.
바다향기 테마파크 가족과 연인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4.3km의 산책로와 관찰 데크가 조성돼 있다. 특히 가을에는 코스모스, 해바라기가 만발해 계절의 운치를 더한다. 대형 풍차가 함께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위치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1841-10
동주염전 동주염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천일염을 생산해왔다. 고집스럽게 옹기판염을 이용해 미네랄 함유량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소금 생산 과정을 체험하고 색소금 기둥을 만들어보는 등 체험 학습도 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문의 010-5441-6829, www.djsalt.co.kr

대부도의 특산품 대부포도. 14 가을이면 대부도의 별미 바지락 백합칼국수의 맛도 깊어진다.

가족의 정을 확인하는 데 캠핑만큼 좋은 것도 없다.
문의 안산시청 관광과 031-481-3408, 대부 해솔길 여행 정보 www.haesolgil.kr
찾아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방아머리공원(대부도공원)에 주차, 대중교통은 안산역에서 탄도항행 123번 버스를 타고 시화방조제를 건너 방아머리정류장에 하차.

전설이 있어 더욱 애틋한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와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 업체의 로드플래너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최고다! 섬 여행」, 「대한민국 사계절 물놀이사전」, 「여행의 로망 캠핑카 스토리」를 썼다.
■글&사진 / 임운석(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