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시간을 더한다는 고운 이름만큼이나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지대를 잇는 이곳에는 과거 말테우리(말떼를 돌보는 목동)들이 말을 키워 임금에게 진상하던 갑마장이 있었다. 이 말들이 다니던 길이 바로 갑마장길이다.
지난해 봄, 가시리는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설오름, 따라비오름, 잦성, 큰사슴이오름, 행기머체, 조랑말 체험공원 등 총 20km 구간 8개의 오름을 지나는 ‘갑마장길’과 그 절반의 구간인 ‘쫄븐갑마장길’의 문을 열었다. ‘쫄븐’은 ‘짧은’의 제주도 방언이다. 기자가 걸어간 곳은 후자. 국토해양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인 녹산로의 끄트머리, 행기머체(지하 용암 덩어리가 지상으로 솟으며 형성된 돌무더기)가 시선을 사로잡는 조랑말 체험공원이 쫄븐갑마장길의 입구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가시천을 지나 따라비오름으로 향하는 길인 오른쪽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땅의 할아버지, 따라비오름
빽빽한 숲길을 지나다 보면 갑자기 눈앞이 훤해진다. 이는 곧 따라비오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정상부까지 이어진 목재 계단을 절반쯤 올랐을까. 숨이 차오른다. 잠시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크고 작은 오름들과 넓은 평원,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90~570m 사이에 고르게 펼쳐진 가시리마을의 화산평탄면이 답답한 마음의 체증을 시원하게 씻어낸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흐릿하게나마 한라산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 오름 전체를 뒤덮은 억새와 마주했다. 가득 찬 억새 물결이 살랑거린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으로 뒤따른 이들의 모습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고요함을 깨는 건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와 풍력발전기 소리뿐이다. 왜 모두가 입을 모아 따라비오름에서 보는 경치를 칭찬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따라비오름에서 하산한 뒤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큰사슴오름이 보인다. 여기부터가 제주도 내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잣성길이다. ‘잣’은 제주어로 ‘널따랗게 돌들로 쌓아 올린 기다란 담’이란 뜻이다. 목장과 목장의 경계를 구분 짓고, 말들을 가둬두기 위해 세웠다.
사철 내내 푸른 삼나무 군락과 나란히 서 있는 잣성길은 굳이 갑마장 기행이 아니더라도 30~40분간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해놓았다. 도보로 우회할 경우 2km, 직선거리로 1.3km 정도며 가시리에서 매년 4월 유채꽃 축제를 할 때 트레킹 코스로 활용되기도 한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잣성길을 따라 곧장 가면 큰사슴이오름 동남쪽에 진입하게 된다. 큰사슴이오름이 목적지라면 이곳부터 산의 정상부를 향해 걸으면 된다. 큰사슴이오름의 매력은 화산평탄면의 원지형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 가시리에 왜 목축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정상 오른쪽으로는 조선 최대의 산마장이었던 녹산장을, 왼쪽으로는 최고 품질의 말을 길러내 조정에 진상했던 갑마장을 조망할 수 있다. 갑마장이 있던 자리는 현재 가시리마을의 공동 목장이 됐다.
바로 옆 작은사슴이오름은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다. ‘작은’이라는 수사가 어울리지 않게 2개의 불구멍을 갖고 있는 쌍둥이 화산체다. 큰사슴이오름과의 샛길에 있는 중잣성길도 산행에 이어 걸어볼 만하다. 큰사슴이오름은 바로 옆 작은사슴이오름과 함께 모양새가 사슴을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사슴이 살았다고 한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행복 걷기]제주 가시리 마을 쫄븐갑마장길을 걷다
(길이 10km, 소요 시간 3시간)
행기머체→조랑말 체험공원→가시천→따라비오름→잣성→국궁장→큰사슴이오름→ 유채꽃 플라자→꽃머체→행기머체
[코스 B] 갑마장길 코스
(길이 20.2km, 소요 시간 7시간)
방문자 센터→가시사거리→설오름→하잣성길→따라비오름→중잣성길→큰사슴이오름→유채꽃 플라자→꽃머체→행기머체→안좌동→가시사거리→방문자 센터
갑마장길 구석구석 가볼 만한 곳
조랑말 박물관 말과 관련된 유물 및 문화 예술 작품 1백여 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3층의 옥상정원에서는 360도 파노라마 뷰로 아름다운 가시리마을을 감상할 수 있으니 반드시 들를 것. 박물관 옆 따라비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탁 트인 초원을 달려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가시리 창작지원센터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이다. 2010년 8월 개관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개인별 혹은 협업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또 문화생활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글&사진 / 김지윤 기자 ■취재 협조 / 가시리 유채꽃 마을 만들기 사업추진위원회(www.jejugasiri.net), 이어도나사(www.ieodotour.com), 조랑말 체험공원(064-787-0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