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벳푸

콩콩이는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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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자야, 차례차례 먹어야지. 돼지 될래? 엉?”

직업적 의무이기도 하면서 만만한 취미였던 여행은 콩콩이의 탄생 이후 다른 의미가 됐다.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 어쩌면 전혀 모르고 지나칠 뻔한 이면까지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돼준 여행.그래서 콩콩이 엄마는 또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다.

[콩콩이는 여행 중](5) 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벳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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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더니 토끼라고 말한다. 토끼띠라는 이유로 유독 많이 사준 토끼 인형과 최근에 빠져든 실바니안 패밀리의 초콜릿 토끼 시리즈가 만든 대답일 것이다. 질문을 바꿔 물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그랬더니 콩콩이는 어른 토끼가 될 거라고 답해 엄마를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든다. “어른 토끼가 되면 뭐가 좋을까?”라고 물으니 “여행 가는 토끼가 되지!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이모랑 그림 삼촌이랑 아라 언니랑 다 태우고 이렇게 갈 수도 있어”란다. ‘얘, 엄마랑 아빠 빠졌다’ 하려다가 말았다. 실바니안 패밀리의 캠핑카를 운전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콩콩이 여행 좋아해?”라고 물으니 “그럼. 이렇게 가방을 밀고 수첩을 들어야 하니까 엄마 손은 못 잡겠다!”라고 한다. ‘공항 룩’을 많이 봤나 보다.

시작이 여유 있어야 할 이유
콩콩이에게 인천공항은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 줄지어 있는 신세계였다. 내가 백화점 ‘신세계’에 갖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여행보다 공항을, 공항 안에 다양한 놀이거리에 더 흥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점은 엄마의 신세계와는 그 궤가 확연히 다르다. 눈동자가 고정돼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동상이나 플라스틱 캐릭터 입상이나 다를 것 없는데도 동상에는 기겁하는 아이가 키티나 스누피에게는 잘도 다가간다. 꼭 발등을 누르고서는 노래를 하는지, 말을 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한 버릇인지 모르겠다. 그대로 꾸며주면 바로 혼자 자겠다고 할 것 같은 키티의 방, 머리카락이 하나밖에 없어서 안됐다는 찰리 브라운, 스누피 코너, 신발을 벗고 뛰고 싶어지는 어린이 놀이터가 차례대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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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고 국적기를 타는 사람이라면, 아이가 여기저기 관심이 많은 데다 모두 만져보고 해보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아이를 풀어놓기를 권한다. 시간은 촉박하고 면세품 인도장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면세품 매장에는 대폭 할인된 신제품이 넘쳐나는 공항에서 아이가 미끄럼틀이라도 타겠다고 떼를 쓰기라도 하면, 사전 그대로 ‘큰일’이다. 여행을 가기도 전에 엄마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한 마리씩은 키우고 살고 있다는 그 무시무시한 ‘욱’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바로 튀어나온다. 아이들은 떼를 쓰며 뻗대기 시작하면 괴력이 생긴다. 든든히 밥을 먹고 떠났더라도 그런 아이를 보고 있는 엄마는 갑자기 저혈당 증세가 오며 이마빡에 혈관이 튀어나오는 게 스스로 느껴지는 상태가 된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소리를 지르게 되고 아이는 울고, 저 멀리 우리를 찾는 항공사 스태프가 보이고, 짐은 많고 창피하고 신경질 나고. 그야말로 시작부터 고역의 여행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질질 끌듯 비행기를 태워봤자 아이는 풀리지 않은 분-사실은 채 못 쓴 에너지-때문에 골질을 하고 엄마는 내내 피곤하다. 그러느니 일찌감치 도착해 세월아 네월아 갈 테면 가라. 제아무리 에너자이저라 해도 미끄럼틀을 1백 번은 안 탈 테니…. 그러다 보면 처음이 매우 수월해진다. 아이는 금세 피곤해지고 곤하게 잠들며 비행을 시작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가능한 한 콩콩이와의 여행은 그 시작을 채근한다. 일찌감치 떠나 있으면 내내 여유가 생겨난다.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이는 절대로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후쿠오카까지는 매우 가깝다. 음료 한 번, 식사 한 번 먹고 치우면 이제 곧 착륙할 테니 벨트를 고쳐 매라는 방송이 나온다. 긴 비행이 아니어서 선택한 여행지를 콩콩이는 빨리 비행기에서 내리게 된다는 이유로 싫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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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코까 싫어. 리노 좋아.” “엄마는 갈아타는 거 싫어. 멀리 가는 건 괴로워.” “엄마, 괴로운 거랑 싫은 거랑 누가 나빠?”
네가 제일 나빠, 네가.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지나 했지만 늘 이런 식이다. 이럴 때는 대답할 말이 없어진다. 그냥 콩콩이 주스 먹을까?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이 가장 옳은 답이다.

첫 료칸 체험
후쿠오카에서 내려 하카타 역까지 가야 기차를 탈 수 있다. 한국에서 약간의 할인을 받아 들고 온 북규슈 JR패스는 참 편리하다. 편도 몇 번만으로도 후딱 넘어갈 비용으로 내가 타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 하카타 역에 가서 바우처를 패스로 바꾸고 유후인행 좌석을 지정했다. 패스만으로도 탑승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지정석은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매우 편해진다. 유후인노모리. 초록색 외양이 매우 클래식한 기차, 나무 바닥이 있는 기차, 식당칸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바로 원두를 갈아서 향긋하고 그윽한 한 잔을 만들어주는 기차라는 점은 아이에게 아무런 어필을 하지 못했다. 기차에 대한 경험치가 없는 콩콩이에게 기차는 그냥 칙칙폭폭 하며 달리는 긴 탈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눈길을 끈 것은 하카타 역에서 사들고 탄 도시락이었다. 밥이라면 천리만리 도망가는 이상한 아이인 콩콩이도 일본의 에키벤에는 흥미를 보였다. 알사탕만 한 주먹밥과 연근조림, 포슬한 북어보푸라기를 잘도 받아먹는다.

오래지 않아 유후인 역에 도착했고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 열 번은 더 오간 것 같은 유후인의 유노츠보를 아이 손을 잡고 살살 걸었다. 유후인의 료칸 특집 기사를 만든 적도 있었던 터라 아이랑 가면 좋을 유후인 료칸 리스트를 한 장도 나열할 수 있었는데, 정작 고른 것은 번화한 거리에 인접한 역에서도 가까우며 밥 맛있고 온천은 소박한 곳이었다. 일본의 료칸들이 대체로 으리으리한 규모나 인테리어를 내세우지 않는 편이지만 때론 ‘3대 료칸, 5대 료칸’ 이렇게 이름 붙는 곳들은 대체로 기와 하나, 젓가락 받침 하나까지 유서 깊은 이야기들로 으리으리했다. 아직은 장래희망을 토끼라고 말하는 아이를 데리고 가봤자 오히려 미안할 곳이었다. 그리고 비쌌다. 우리가 고른 ‘히노하루’ 료칸은 모든 면에서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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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후 아이와 돌아본 유노츠보 거리는 취재차 왔을 때, 엄마랑 왔을 때, 친구들이랑 왔을 때와 천양지차였다. 콩콩이는 내가 있는 줄도 몰랐던 한 구멍가게의 장난감 뽑기 앞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이가 좋아할 것 같아 사준 금상 크로켓은 먹자마자 뱉어버렸다. 황당하게도 오이에 나무 막대기를 관통시켜 만든 오이 핫도그를 사달라고 하더니 우적우적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석양이 비칠 때 잉어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면 비늘 빛이 금빛으로 보인다는 긴린코까지 유모차를 밀어 데리고 갔는데, 달력 사진처럼 유려한 절경은 보지도 않고 호숫가에 몰려든 뚱뚱한 잉어에게 끝없이 말만 시키고 있었다. 마침 단풍이 한창일 때여서 호수에 비친 나무들은 말 그대로 눈이 시리게 예뻤지만 콩콩이는 잉어에게만 몰입 중이었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 갑자기 나타난 나비 떼에게 혼을 빼앗겨 집시처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나비야’로 시작해서 ‘봄나들이 갑니다’로 끝나는 아주 길고 이상한 노래로 호숫가를 물들였다.

온천부터 할까, 밥부터 먹을까?
료칸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언제나 기대로 넘쳤다. 그 기대감은 일찍 허기를 불러온다. 밥을 먹고 온천욕을 할까, 그 순서를 바꿀까 하다가 손발만 씻겨 밥부터 먹는 쪽을 택했다. 히노하루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곳이었다. 다다미에 앉은뱅이 식탁이 있는 룸으로 인도됐는데-내 방에 차려주는 쪽보다는 음식 냄새도 덜 나고 상 치운 뒤 이불까지 깔게 한 것 같은 이상한 미안함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 더 좋았다-앉거나 일어날 때 요란하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호빵맨 의자가 콩콩이를 위해 준비돼 있었다. 아이의 식사비를 받느냐 아니냐에 관해 료칸마다 원칙이 다른 것 같았는데 나는 아이의 음식 값을 내겠으니 아이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몇몇 료칸은 어른들 음식의 3분의 1 수준으로 무료로 내주는 곳도 있고, 36개월 미만의 경우 말하지 않으면 아예 안 주는 곳도 그리고 무조건 100% 돈을 내야 하는 곳도 있으니 예약할 때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제철 재료로 만든 전통 일본식에 악센트처럼 양식 하나를 끼워 내고, 디저트와 차까지 최소 예닐곱 코스를 내오는 료칸의 가이세키 정식은 먹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먹는 것보다는 장난치는 데 더 몰두하는 아이에게는 무리인 식사 형태일 수도 있었다. 오래 씹는 것, 씹었는데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고 입에 남는 질감의 식재료를 좋아하지 않는 콩콩이에게 스타터로 나온 죽, 테린, 깨두부 등은 훌륭한 식사였다. “맛있지?”를 1백 번쯤 하면서 아이를 격려하며 먹으려는 나는 정작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이하게도 직접 만든 면과 유후인의 닭을 직접 잡아 만들었다는 맑은 국물의, 일종의 닭칼국수가 나오자 나는 이것까지만 먹으면 오늘은 ‘클리어’라고 하며 서버가 면을 떠주길 바라고 있는데 아이의 식탁에서 ‘쿵’ 소리가 났다. 아이가 식탁에 머리를 찧으며 잠이 든 것이다. ‘이이잉’ 하고 울 것 같았지만 그야말로 곯아떨어졌다. 노천 온천에 아이와 함께 몸을 데우며 일찍 어두워진 유후인의 하늘에서 은하수를 찾겠다는 내 계획은 그야말로 헛된 포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 온천욕은커녕 아이가 깨어날까 봐 목욕도 시원하게 못하고 다다미 냄새만 실컷 맡았다.

[콩콩이는 여행 중](5) 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벳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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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수순으로 새벽같이 깨어난 콩콩이와 함께한 온천욕은 좋았다. 밤에 했으면 무서워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천탕은 넓고 깊었다. 물은 뜨겁지 않은 채로 따끈했는데 콩콩이는 수영장인 것처럼 빨개지면서 잘 놀았다. 그리고 머리를 채 말리지도 않고 돌아온 방에서 호지차 한 잔을 마시며 “엄마, 아 따뜻해” 한다. 그러고 또 산책을 나갔다. 아이와 하는 여행은 먹고 산책하고 재우고 먹고 산책하고 또 재우고. 다른 걸 할 게 없다. 유후인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비스피크 롤 케이크를 한 조각 사 먹고, 그곳에서 파는 씨겨자도 몇 통 사기로 했다. 디종 머스터드랑은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씨겨자로 크리미한 질감도, 진한 겨자 향도 없는 대신 겨자가 알알이 씹히며 내는 개운한 맛이 스테이크와 아주 좋은 궁합을 이루는 물건 중에 물건이었다. 콩콩이는 방에서부터 꽝꽝 얼려가 이제는 실온이 된 주스 하나를 손에 들고서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지겨워질 때쯤 어제의 긴린코 앞, 수타 소바집 이즈미에서 메밀 한 판을 먹었고, 개 관련 아이템만 모아놓고 파는 상점에 들어가선 푸들과 몰티즈 인형 사이에서 세 살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하다 스누피를 사들고 나왔다.

쏙 넣고 쿵 하면 으차 꺼낼래
유후인은 누구랑 와도 좋은 곳이긴 하지만 딸이랑 오게 된다면 뭘 좀 아는 때가 더 좋을 듯하다. 수다다운 수다도 떨고, 아무짝에도 쓸데없을 것 같은 물건들을 별별 이유를 다 들어 사 쟁이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때라면 더없이 좋을 곳 같았다.

벳푸에서는 사실 작은 골목들을 누비고 싶었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은 1백 년 된 된장가게, 만들었다 하면 순식간에 없어지고 마는 단팥빵집 토모나가팡야 등등을 다니고 싶었지만 콩콩이는 아직 유모차에 매어둬야 안전한 유아였다. 심지어 히노하루에서는 테이블과 가구에 ‘씨르’를 붙였다고 주의를 들은 애기였다. 우표 옆에 함께 붙였던, 결핵이 먼저 떠오르는 ‘씰’은 스티커를 이르는 일본식 말이었다. 잘 떨어지는 것이라 붙인 것을 다 떼어내고 체크아웃할 생각이었는데 조석으로 방을 치워주며 아마 마음에 걸렸는지 두 번째 날 잠들기 전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서버는 “‘애기’가 좋아하는 것 같아 말하기 매우 미안하다”라며 스티커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매우 미안했고 실제로 말끔하게 떼어내고 나와 ‘애기’는 산뜻하게 퇴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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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가 갈 만한 곳이 벳푸에는 많았다. 물개박수를 정말 물개처럼 치는 물개가 가득한 아쿠아리움 우미타마고, 원숭이가 사람을 보러 내려오는 다카사키야마, 화산이 뭔지 온천이 뭔지 제대로 알려줄 지옥 온천 순례, 아프리카인지 일본인지 알 수 없는 광활한 땅의 동물원인 아프리칸 사파리까지 벳푸에서만 시간을 보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콩콩이는 이 보기 중에서 사자랑 코끼리, 기린이 있는 사파리를 골랐다.

벳푸 역에서 입장료와 왕복 교통비까지 함께 지불하고 유모차도 없이 아프리카로 떠났다. 자동판매기의 천국답게 일본은 자판기가 어디에나 도열해 있었다. 동전을 넣고 무엇인가를 꺼내는 맛에 신이 난 콩콩이는 사파리 전용차를 기다리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쿠우를 가리키며 졸라댔다. 설상가상 일본인 가족이 나란히 쿠우를 무려 3개나 뽑은 것. 세상에 없는 장관을 보는 것처럼 그 광경을 목도한 아이는 다급해졌다. “엄마, 나도 쏙 넣고 쿵 하면 으차 꺼낼래. 나도 나도오오.” ‘쏙쿵으챠’야말로 하기 시작하면 매일 하고 싶어질 것을 아는 엄마로서 그것을 하라고 하기가 떨리는구나 아이야. 그러면서도 동전 하나가 아이 손으로 들어갔고 하나만 뽑겠다고 약속한 새끼손가락이 있다는 것조차 까먹었는지 하나를 들고 또 하나를 뽑자고 조른다. 이유도 얼마나 당당하신지. “엄마도 먹어. 응? 엄마도 시원하게 하나 먹어. 물 많이 먹어야 응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진다구우.” 결국 나는 물 한 병을 다 먹어야 비로소 손이 하나 비는 상황을 맞이했고 아이는 노래를 부르며 사파리를 시작했다.

사파리를 호령한 아이의 배포
아프리칸 사파리는 광활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광활했다. 넓디넓은 땅에 동물들을 풀어놓고 사파리 차들이 지나가며 먹이를 줘서 기르는 것 같았다. 각종 동물 모양의 차가 수십 대 있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쉴 새 없이 초원을 가로질렀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위한 먹이들이 나뉘어 담긴 커다란 그릇에 가위처럼 생긴 거대한 집게를 들고 콩콩이는 신이 났다. 귤과 고구마도 있었는데, 귤은 누가 먹는지 고구마는 또 누가 먹을 건지 대단히 궁금해했다. 닫힌 창문 안에서 창살에 붙여놓은 고기를 떼어 먹는 사자의 목젖을 보는 것보다는 덜 리얼하겠지만, 열려 있는 창밖으로 집게를 내밀어 먹이를 주는 것은 그야말로 원초적인 ‘손맛’을 느끼게 하는 체험이었다. 기린의 혓바닥이 얼마나 긴지, 고기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사자의 입김은 또 얼마나 뜨거운지, 코끼리의 콧물은 점성만 없을 뿐 얼마나 대단한지 그야말로 살갗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내가 놀란 것은 내 아이의 배포였다. 토막 낸 생닭이 사자의 먹이였는데 갈기가 큰 수사자가 버티고 서서 이 집게, 저 집게의 먹이를 모두 낚아채고 있었다. 어린 사자나 암사자들은 가까이에도 오지 못하는 상황, 사람들도 팔은 내밀지언정 몸은 한껏 뒤로 물러나 앉으며 스릴 아닌 스릴에 솜털이 선 상황에서 콩콩이는 반듯하게 앉아 집게를 내밀어 암사자를 향했다. 크르렁 하는 소리와 함께 또 입을 벌리는 예의 그 수사자에게 “아니, 너 말고. 너는 먹었잖아. 내가 줬잖아. 차례차례 먹어야지. 돼지 될래? 엉?” 하며 사뭇 집게로 사자의 콧등을 밀기도 했다. 밥 먹는 사자의 콧등을 건드리는 내 딸, 사자에게 돼지가 될 거냐며 소리를 지르는 내 딸이 나는 자랑스럽고 무서웠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얼굴을 설핏 비친 것 같은 수사자는 콧방귀를 뀌며 아이의 닭을 낚아채는 대신 옆 사람의 닭을 택했다. 암사자가 아이의 닭을 먹었고 콩콩이는 만족스러워했다.

30분 남짓 서식 특성에 따라 각종 동물을 모두 만난 콩콩이는 얼룩말을 가장 좋아했고, 귤을 휘감아 가는 기린의 보라색 긴 혓바닥에 열광했다. 사파리가 끝나고도 볼 게 많은 곳이었고, 수년 전에 엄마는 아기 사자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며 그쪽으로 이끌었으나 콩콩이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붙박이가 됐다.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또 중요한 것은 일정을 빽빽하게 짜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본전’을 뽑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 보여주고 다 누리게 하고 싶고, 들인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남기고 싶지만 그건 어른들의 욕심일 뿐. 아이는 그렇게 계량컵에 물 붓듯 정량이 되지 않는다. 멀리서 동물들을 봤으니 이제 가까이에서 만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어른의 마음에서 피어나지만 아이는 보고 싶은 것 다 봤으니 먹고 싶은 것도 먹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황당하게도 아프리칸 사파리의 주차장에서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폐장 시간에 가까운 평일의 주차장은 한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아이는 칸이 쳐진 넓은 땅을 이유 없이 내달렸다. 나를 먼저 뛰어가라고 하고서는 “엄마, 거기 못 서?” 하면서 빠르게 뛰어왔다. 이게 무슨 짓이니. 아프리칸 사파리에 와서 아스팔트에서 뛰고 있구나.

드디어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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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내리 호텔에만 있었다. 그래도 될 것이 호텔 자체가 밥 먹으러 가다가 아사하게 생긴 넓디넓은 곳이었고, 오락기가 가득한 오락실의 규모가 굉장했으며, 특산품 백화점이라 해도 나쁘지 않을 쇼핑센터도 매우 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천물로 가득한 수영장 그리고 진짜 노천 온천이 있었다. ‘스기노이 팰리스’는 정말 궁전처럼 큰 호텔이었다. 호텔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하게 엄청나게 큰 건물이 3개 연달아 자리해 있었다. 뷔페도 꽤 유명했는데 제아무리 훌륭한 뷔페에 가서도 모닝롤 1개, 스크램블드에그, 국수, 삶은 브로콜리, 구운 가지나 먹고 있는 콩콩이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수영복을 챙겨 온천 수영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전철처럼 만들어놓고 1백 엔을 넣으면 진동과 함께 안내 방송, 문 여닫기, 좌회전, 우회전을 할 수 있는 모형, 같은 형식을 갖춘 자동차, 호빵맨의 집 등은 콩콩이의 턱을 뚝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아이가 하자고 하는 대로 했다가는 탕진가산, 패가망신하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그 난관을 뚫고 수영장에 가기까지 한 나의 읍소와 협박과 회유는 대하소설 수준이었다. 오락실 ‘어뮤즈먼트’를 뒤로하고 물놀이를 하러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한일 국적을 불문한 아이들의 통곡의 계단이었다. 어쨌든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면 바로 전, 어뮤즈먼트가 단박에 잊히는 따뜻하고 보글보글한 수영장이 나타났다. 콩콩이는 ‘따땃한’ 수영장에서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튜브에 몸을 싣고 대만에서 왔다는 한 친구와 망중한을 즐겼다. 그러다 시간이 되자 레이저쇼가 시작됐고, 불빛보다 음악이 더 놀라웠던 콩콩이는 그날 이후 어디에서나 음악이 흐르면 스피커부터

찾으며 어디에서 음악이 나오냐고 물었다.
물만 가득한 수영장에서 음악이 흐른 것이 신기했나 보다. 아이의 체력을 소모시켜 푹 재우는 일 중에 수영만 한 것도 없다. 사실 수영이라기보다는 물속에서 저항을 많이 받는 쪽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아쿠아로빅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콩콩이는 전에 없이 밥도 많이 먹었고, 갸르릉 얕은 코 고는 소리를 내며 달게 잠들었다. 일찍 일어난 아침에는 벳푸의 곳곳에서 오르는 온천 수증기에 불이 났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찜공방에 들러 먹은 각종 찜 요리는 나만큼이나 먹어 ‘얘가 그동안 안 먹은 건 맛이 없어 그랬나’ 하는 반성을 하게도 했다.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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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기차를 탔고 아이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내 가슴에 제 볼을 대고 푹 자고 일어났다. 하카타 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창밖으로 단풍 든 나무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콩콩아, 왜 나무들이 빨개졌는지 알아?” ”어, 그거는 가을이니까.” ”가을이면 왜 빨개져? 저기 노란 것도 있는데?” “어, 그거는, 어 나도 몰라.”

어이없게 아이에게 물을 수 없는 질문을 해놓고 아이가 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자 그게 그렇게 웃겼다. “응, 엄마도 몰라. 나는 콩콩이가 아는 줄 알았지.” 결국 우리는 아빠에게 물어보자며 대화를 마쳤다. 그러다 또 앙상한 나무들이 있는 한 역에 도착했고, ‘나도 몰라’라고 말하는 입이 무척 재미있었던 엄마는 또 물었다. “왜 나무들이 다 옷을 벗었을까? 빨강 노랑 옷을 다 벗었나봐. 왜 그랬지?” ‘나도 몰라’를 기대하는 내 얼굴에 던진 콩콩이의 대답. “어휴, 엄마 옷을 벗어야 또 딴 옷을 입지!” 이 말엔 정말 한 1분 동안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철학적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아니고, 아이의 생각이나 표현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서도 아니었다. 내가 낳아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먹이고 가르치며 키우고 있다고 해서 내가 다 아는 건 아니구나 하는 자각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엉뚱함은 언제나 기대와 생각 밖의 어느 지점을 가리켜 어른들을 기함하게 한다. 그런데 그 엉뚱함, 상상하기 어려운 기지의 근원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고, 비슷한 책을 읽어준 적도,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지만 아이는 현상을 조합해 생각이란 것을 하고 말로 그것을 피력한다. 갑자기 인간을 낳아 기른다는 것이 매우 엄숙하고도 어렵고,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이제는 훌쩍 커버려 부모의 말 같은 것은 듣지도 않고 그 속을 도무지 모르겠을 때 어른들은 “자식 겉 낳지 속 낳냐!”라는 말을 하셨다. 그저 푸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식을 키우는 데 잊어서는 안 될 진리처럼 여겨졌다면 지나친 것일까? 속은 낳아줄 수가 없는 것. 아이의 속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일생 제공하고 아이가 취사선택해 속이 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그 대답의 뒤를 보냈다. 만 3세가 안 된 아이를 두고 한 생각치고는 지나쳤다는 듯 콩콩이는 “엄마, 그런데 쏙 하고 쿵 해서 으차 하는 거. 한 번 더 해도 되지? 어어?” 한다. 자판기라는 말을 계속 가르치지 말까 싶었다. 아이가 느리게 자랐으면 하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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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유후인 히노하루
유후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 유후인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주변 관광과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일본 전통식 정원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아기자기하게 객실이 배치돼 있다. 남녀 온천탕과 가족과 즐길 수 있는 가족탕이 있다.
주소 일본 오이타 현 유후 시 유후인 초 카와카미 1082-1 문의 81-977-84-3106, www.hinoharu.jp

[콩콩이는 여행 중](5) 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벳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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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벳푸 아프리칸 사파리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동물원. 면적 115만㎡에 1만3천여 마리의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고 있다. 서식 특성에 따라 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정글 버스로 이동하면서 야생에 가까운 아프리카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동물들에게 먹이도 줄 수 있다.
주소 일본 오이타 현 우사 시 아지무마치 미나미하타 2-1755-1
문의 81-978-48-2331, www.africansafari.co.jp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11~2월 오전 10시~오후 4시)
입장료 성인 2천3백 엔, 소인 1천3백 엔(정글 버스 승차 요금 성인 1천 엔, 소인 8백 엔)

[콩콩이는 여행 중](5) 다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벳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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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스기노이 팰리스
온천 도시 벳푸에서도 가장 유명한 1천 평 규모의 온천 호텔. 벳푸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타나유’와 온천 수영장 ‘아쿠아가든’, 새벽에도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미도리유’ 등 다양한 테마의 온천탕이 있다. ‘타나유’만 이용 가능한 방문객과 달리 투숙객은 무료로 시설 사용이 가능하다. 뷔페는 벳푸의 자랑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주소 일본 오이타 현 벳푸 시 칸카이지 2-1755-1
문의 81-977-24-1141, www.suginoi-hotel.com/korea

PROFILE 콩콩이는…
2011년생. 말 잘하고 밥 잘 안 먹는 여자아이. 잡지사 편집장 엄마에게서 태어난 덕과 탓에 생후 6개월부터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시작해 현지의 시차와 상관없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는 여행형 어린이로 성장 중.

콩콩이 엄마는…
「GQ」, 「W」의 피처 디렉터, 「Off」, 「magazine C」, 「RAUME」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 끼의 식사가 지닌 의미와 그 사이의 감정들을 두루 쓴 「더 테이블」을 펴내기도 했다. 이따금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나왔지만 지금은 잡지 「ojo」와 「magazine K」의 편집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글&사진 / 조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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