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다카마쓰

콩콩이는 여행 중

여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다카마쓰

ㆍ“엄마, 콩콩이가 만든 거라 정말 맛있어. 후루룩 해봐”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엄마와 콩콩이, 단둘만의 여행이었다. 공항에서부터 달라진 동행 인원을 체감한 아이는 여행 내내 달라진 면모를 과시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출국장에서 게이트까지 멀고 먼 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말이 많았다. 이윽고 엄마는 다 큰 딸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침 ‘확’ 자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어제 다르고 또 오늘이 다르게 크는 중이었다.

[콩콩이는 여행 중]여섯 번째 여정지 → 일본 다카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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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잠들락 말락 하는 아이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얘기를 나는 믿지 않았다. 아이가 듣고 있거나 말거나 숙면에 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무에서 늦게 놓여난 엄마가 하루의 일과를 말해주는데 그것이 아이와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는 간증과도 같은 말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유, 애 꿈자리 사납게 뭘 그렇게 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정말 밥상머리 교육처럼 베갯머리 교육도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이를 재우며 자장가 부르듯 얘기를 했었다. 엄마랑 단둘이 여행을 가게 되면 엄마는 바퀴 달린 가방, 어깨에 메는 가방, 유모차, 콩콩이까지 손에 잡고 가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절대로 안아줄 수가 없다고. 그리고 그렇게 할 게 많은 엄마라서 콩콩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면 곧바로 잡을 수도 없고, 떼를 써도 달래줄 수도 없다고. 그래서 엄마의 두 개밖에 없는 팔이 콩콩이만 안아줄 수 있고 잡아줄 수 있는 때가 되면 다 해주겠지만 그 전에는 엄마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그저 엄마 자신을 위한 암시 같은 말을 사흘 동안 한 것 같다. 아이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놀랍게도“엄마 손은 두 개. 안아줘 하면 안 돼, 뛰어가면 안 돼. 그렇지, 엄마?” 하는 게 아닌가. 기러기 엄마도 아닌데 아이를 안고 공항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늙어가는 것인지 감정 기복이 롤러코스터다.

한 걸음마다 하나의 풍경
다카마쓰는 가까웠다. 한 시간 반. 햄과 치즈, 오이가 들어 있는 롤빵 하나를 받았다. 콩콩이는 밥 안 먹는 아이의 특징답게 입을 작게 벌려 앞니로 살짝 베어 문 뒤 앞니로만 씹더니 오이만 꺼내 먹는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이를 위한 기내용 선물로 종이 퍼즐을 주었는데, 꽤 완성도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노느라 아이는 좌석에서 한 번 일어나지도 않고 비행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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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비슷한 날씨라는 말에 아이 파카 하나 챙기지 않았는데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깨를 한껏 올려 두꺼운 패딩 점퍼 속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는 다카마쓰는 고즈넉했다. 위치로는 더할 수 없이 좋을 듯한 JR 클레멘츠 다카마쓰는 크고 좋았다. 객실도 일본 호텔이라고는 보기 어렵게 널찍했고 통창으로 보이는 전망으로 다카마쓰 성과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김없이 콩콩이는 “우와, 정말 아름답다. 엄마 여기에 아빠랑 호성이랑 내할머니랑 오라고 해. 지금지금” 했다. 콩콩이에게 아름답다는 좋다의 최고 표현. 호성이는 산후조리원부터 일생을 같이 해오고 있는 소울메이트이고 내할머니는 외할머니의 잘못된 발음에서 기인한 호칭이었다.

콩콩이는 해가 진 다카마쓰 골목을 걸어 저녁을 먹으려는 엄마의 계획과 상관없이 방에 있겠다고, 여기서 밥을 먹겠다고 밥도 잘 안 먹으면서 잘도 주문한다. 룸서비스로 새우튀김과 밥을 시켰다. 이내 새우는 머리만 남았고 배가 고픈 엄마는 맨밥과 새우머리로도 요기를 할 수 있다는 경험을 남겼다.

하루는 눈이 펑펑 왔고 하루는 정신이 번쩍 들게 맑았다. 그리고 쨍하게 추웠다. 겨우 달래서 온 아이의 콧물감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도 여행의 활기는 아이를 달리게 했다. 리쓰린 공원은 그런 콩콩이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일본은 어디에나 잘 꾸며진 공원이 있는 편인데, 이 크지 않은 도시에 정말 깜짝 놀랄 만한 공원이 있었다. 일본 정원은 아기자기하고 인공미 넘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 공원은 산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호방하게 꾸며져 있었다. 일보일경(一步一景). 한 걸음마다 하나의 풍경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가 명확했다. 콩콩이는 기기묘묘한 나무와 그린 듯한 풍경에 신이 났다. 아래는 거북이 모양이고 위는 학 모양으로 훌륭한 기운을 전달해준다는 나무 앞에서 콩콩이는 한참을 둘러본 뒤에야 거북이와 학의 모양을 찾아냈고 그 이후에는 상관없이 그저 자라난 나무인데도 낙타, 부채, 포크처럼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지도를 보려고 했고 물색없이 “오른쪽으로 쭉 가서 왼쪽으로 쭉 가면 보물이 나와”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엄마 지금 콩콩이 어디 있는데?” 해서 깜짝 놀랐다. 아이의 현재 위치와 주위의 요소들을 지도와 비교하며 설명해줬다. 그러면서도 만 3세도 안 된 애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물으니 대답한다는 마음으로 상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러나 콩콩이는 곧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으라며 지도 같은 건 본 적도 없다는 얼굴로 비둘기를 향해 “짹짹아” 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목 아프게 설명했던 민망한 시간이 나를 에워쌌다. 아이는 공원 안에 있는 집이 모두 궁금했다. 특히 작은 자갈을 고르게 펴 줄을 내놓은 집 앞에서 들어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 여기 들어가도 되냐고 엄마가 물어봐. 이 콩콩이가 들어가도 되냐고.” 기쿠게쓰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정자였는데 다실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역대 영주가 특별히 사랑했다는 이 공간은 리쓰린 공원의 백미라 말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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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리쓰린 공원
국가 특별 명승지로 선정된 정원 중 최대 규모. 6개의 연못과 13개의 언덕이 배치된 에도시대 초기풍의 유람식 다이묘 정원이다. 매화, 벚꽃, 창포, 단풍, 동백까지 사계절의 절경이 꽃과 함께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 연중무휴, 관람료 성인 4백 엔, 소인 1백70엔.
문의 087-833-7411, ritsuringarden.jp

잉어는 배가 고픈 것뿐이야
아이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지각이 활짝 열린다고 한다. 콩콩이의 지각이 열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을 빛내며 탐험을 시작했다. 다다미가 넓게 깔려 있었고 안에서 보는 풍광은 명징한 산수화였다.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콩콩이는 파리가 더듬이로 살피듯 작은 발로 모든 곳을 돌아보며 즐겼을 텐데 사방이 뚫려 있는 다실로 불어오는 연못의 물기 어린 바람은 꽤 차가웠다. 다실의 주인이 전기장판 위로 아이를 인도했고 콩콩이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앉은 다리 밑으로 빨갛게 언 손을 넣어 온기를 탐했다. 말차와 만주를 나무 쟁반에 담아 온 오바상(할머님)이 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차를 권하자 아이는 뭐가 뭔지 모른 채로 어쩐지 황송한 얼굴이 돼 얼른 무릎을 꿇는다. 그 모습이 우스워 한국, 일본 여자들은 모두 아줌마 웃음으로 고요한 다실의 데시벨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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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이가 더욱 환호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3월 3일 일본의 여자아이의 날로 불려도 좋을 히나마쓰리를 위한 히나단이었다. 딸이 있는 집은 이 축일의 2, 3주 전부터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바라는 의미로 인형을 장식한다. 간단하게는 1단부터 화려하게는 7단까지 꾸민다고 하는데 워낙 고가라서 대를 물려 장식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요즘 정교하게 묘사된 인형에 반한 콩콩이에게 왕과 왕비, 가족과 신하들이 가득한 히나단은 그야말로 꿈의 현시. ‘무조건 왜, 알아들을 때까지 왜’ 증후군에 걸린 아이답게 그 인형들의 모든 것을 엄마에게 ‘왜’라는 말로 묻는 신공을 발휘했다. 만져서는 안 된다고 하니 차마 만질 수는 없으나 무척이나 만지고 싶어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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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인형에서 떼어내 밖으로 나오자 더 큰 즐거움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연못에 말도 못하게 큰 잉어 떼가 굶주린 채로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꿈에 나오면 태몽일 것임이 분명한 장면이었지만 애도 낳았고 물고기 무서워하는 내게는 그야말로 괴기 영화였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아이보다 큰 잉어들은 심지어 입술도 있었고 쩍 벌린 입천장에 요철도 보일 정도였다. 커다란 뻥튀기 스틱을 조금씩 떼어서 주라고 했더니 겁 없는 우리 콩콩이는 손에 자꾸 붙는다며 부숴서 뿌리기 작전을 시도했다. 넘어가는 게 작아서인지 잉어들은 솟구쳐 올라왔고 나는 아이가 연못 속으로 끌려들어갈까 봐 손에 땀이 다 났다. 사자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콩콩이는 잉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엄마 괜찮아. 배가 고파 그런가 봐. 근데 포뇨도 먹으러 와야 하는데”라고 했다. 영화는 본 적도 없이 얘기만 듣고 인형으로 아는 게 전부인 포뇨의 허기까지 걱정하는 아이에게 나는 가끔 대답이 궁하다. 커다란 스틱을 다 먹이고 양손을 탁탁 털어 가루까지 없앤 아이의 손에 쥐어준 건 꼬치에 꽂아 화로에 구운 떡이었다. 따뜻하게 구워 쫄깃하게 씹히는 분홍색 떡을 콩콩이는 정말 잘 먹었다. 그 떡을 들고 1시간이 넘도록 리쓰린 공원 산책을 맛있게도 했다.

아직 콩콩이가 만 3세가 되지 못해 탈 수 없었던 나룻배는 여전히 아쉽다. 삿갓을 쓰고 노를 저어주는 사공의 노래를 들으며 연못을 도는 경험은 머리 색깔과 상관없이 아이들의 볼을 발갛게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오르골도 직접 만드는 언니인데
콩콩이는 ‘핑크 떡’을 들고 도심의 상점가로 나섰다. 가가와 현 관광안내소에 들렀는데 각양각색으로 포장돼 있는 우동과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설탕 과자 와산본을 보고 자꾸만 사자고 졸랐다. 아이들이 즐거워할 공간을 물었는데 작은 도시임에도 아기자기하게 놀 곳이 꽤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마루가메초 그린이 있었다. 멀티 플레이스였는데 아기자기한 숍도 많고 어딜 봐도 자연광이 비치는 개방감이 답답한 실내 쇼핑몰과는 달랐다. 특히 코비코디라는 아이 옷가게가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컬러풀 레깅스와 케이프가 거기 다 있었다. 값도 매우 저렴한 데다 소재도 좋아 엄마들이 가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콩콩이는 엄마의 쾌적한 쇼핑과 여유로운 식사를 위해 낮잠에 들었다가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리락쿠마 모양의 도넛을 사는 중에 깨어났다. 리락쿠마는 외할머니의 선물로 오대양 육대주를 함께 누비고 있는 콩콩이의 트래블 메이트. 콩콩이는 이 곰을 그냥 쿠마라고 부르는데 곰이 일본어로 쿠마여서 그런 게 아니라 그걸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하도 쿠마라고 하니 그렇게 지은 것 같다. 아무리 곰이라는 뜻이니 다른 이름을 지어도 좋다고 해도 이건 곰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얘의 이름이라고 주장하니 그저 곰의 이름은 곰일 뿐이다. 쿠마와 똑같이 생긴 도넛을 사주면 혹시 안 먹겠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야무지게 꿀꺽 잘도 먹는다. 내추럴 도넛이라고 기름도 바로 바꾸고 유기농 밀가루를 쓴다고 강조했던 도넛. 맛은 일본 도넛 같지 않게 많이 달지도, 진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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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이가 다카마쓰에서 환호했던 곳 중 하나는 세계 가라스관이었다. 글라스의 일본식 발음인 가라스. 유리로 된 공예품이 가득한 곳이다. 이런 곳에 잘 먹고 잘 자고 일어나 혈기방장, 호기심 창창해진 35개월의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다는 것은 엄마의 솜털이 모두 서 있어야 한다는 의미. 와장창 깨기라도 한다면, 하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들어가기 전에 아이의 양손을 잡고 강조 또 강조를 했다. 조심조심 살살, 절대로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볼 것. 그런데 예상외로 아이는 엄지만 한 공예품에 큰 감동이 없었다. 너무 작은 인형들에 익숙해서인지 그냥 뭐가 있다는 정도.

그러다 눈이 커다래진 것은 오르골 만들기 코너에서였다. 저마다 가격이 다른 유리 인형도 고르고 음악도 고르고 케이스도 골라 나만의 오르골을 만드는 것. 역사적인 작품을 만드는 대가처럼 콩콩이는 음악도 귀에 바싹 대서 고르고 골라 케이크, 눈사람, 천사를 오르골에 들어갈 주인공들로 정했다. 체험 테이블에 앉으니 나무젓가락 끝으로 접착제를 섞도록 했고 그것을 각각의 장식물 바닥에 발라 중앙에 제 맘대로 붙여 10분을 기다리면 불도 나오고 뱅그르르 돌기도 하며 음악이 흐르는 오르골로 완성됐다. 고르는 것부터 붙이는 것까지 전부 자신이 정했다는 것에 아이는 전율했다. 꽤 예뻤고 아빠에게 이 중대한 상황을 타전하고 싶어 안달했다. 한 손에 오르골을 들고 나서 아이는 의기양양했다. 자존감은 이렇게 생기는 것일까? 오르골도 직접 만드는 언니인데 떼를 쓰면 안 되겠다 했더니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그날 잠이 들 때까지 이 오르골 약발이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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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세계 가라스관
베네치아 무라노 글라스, 스와로브스키를 시작으로 자연석, 가공한 보석, 유리공예품이 가득하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샹들리에가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곳. 아이들과 함께하는 컵 만들기 등도 흥미로우며 특히 오르골 체험은 간단한 경험임에도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 입장료 무료, 연중무휴.
문의 0877-49-3100, www1a.biglobe.ne.jp/stglass

바다는 정말 넓어
콩콩이는 물론 엄마도 환호를 한 곳은 또 있었다. 다카마쓰에는 아이랑 엄마랑 재미있게 즐길 곳이 참 많다. 제목만 들으면 가교 기념관에 볼 게 뭐가 있겠나 싶었는데 가보고 나니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세토대교는 시코쿠와 혼슈를 잇는 기념비적인 다리인데 이 다리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전시관이 그곳이었다. 기념공원도 있고 타워도 있었다. 타워는 원형의 좌석이 빙글빙글 돌며 963m를 올라가는데 자이로드롭에 뚜껑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모습인데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가가와 현은 장관이었다. 높이 올라가도 무섭지 않고 기계 소리가 크게 나도 놀라지 않는 콩콩이는 그저 햇빛이 싫을 뿐이었다. 입구에서 산 불이 들어오는 핑크 쿠마랑 놀고 싶은데 햇빛 때문에 잘 안 보인다며 햇빛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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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고, 지금은 너랑 안 놀아. 핑크 쿠마랑 논다고!” 다 큰 것 같다가 다시 젖을 물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아이가 내 옆에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바다가 정말 넓다. 그치!” 한다. 타워에서 내려간 곳에 있는 전시관은 훌륭했다. 먼저 거대한 원형 스크린이 압도하는 브리지 시어터에서 한국어로 된 기념 영상을 보았는데 우주 장면과 지구본이 휙휙 돌아가는 장면에서는 어른인 나도 탄성을 질렀다. 자동차와 전철이 함께 달리는 이층 다리이며, 이 대교의 다리는 바닷속 깊이 있고, 이 다리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큰 배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땅을 파고…. 이 ‘김수한무…’같이 길고 긴 이야기는 콩콩이가 이곳에서 한 체험으로 줄줄 읊어대는 내용이다. 믿을 수 없게도 징그럽게 정교하리만치 만들어놓은 모형을 아이들이 버튼을 누르고 레버를 돌리면서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두었다. 콩콩이는 하나하나 다 눌러가며 전시관에서 아주 오랫동안 놀았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열두어 살 소년이 있다면 정말 환호할 곳일 것 같았다. 또 골판지 놀이터가 좋았다.

우주를 테마로 지어놓은 놀이터는 멋졌다. 미끄럼틀 하나를 타려 해도 우주선에 올라야 하는 상황. 주말이 되면 아이들을 여기에 ‘풀어놓고’ 망중한을 즐기는 부모들이 많다고 관계자가 귀띔했다. 그리고 나와서도 멋지게 꾸며진 공원에서도 놀 만했다. 타워 위에서 봤을 때 둥그런 원이 궁금해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저 오브제였다. 콩콩이는 그 안에 들어가 소리도 질러보고 둥그런 벽을 따라 사부작 사부작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고토히라로 가면서 아이는 더욱 말이 많아졌다. 도로·철도 병용교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세토대교를 엄마에게 자꾸 각인시켰다. “엄마, 기차가 밑에서 달려가면 위에 자동차는 바다에 빠지게 안 빠지게?” “엄마, 바다 밑에 얼마나 큰 다리가 있는지 알아? 그럼 고래가 뭐래?” 빨리 다른 관심거리가 생기지 않으면 나는 그날 밤 세토대교 위에서 잘 판이었다.

고토히라 그랜드호텔 사쿠라노쇼는 꽤 큰 규모의 전통적인 호텔이었다. 다다미가 깔린 화실을 받았는데 콩콩이는 유난히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의 화실을 좋아했다. 또 아이의 키에 맞는 유카타가 준비돼 있었는데, 1년 전만 해도 안 입겠다고 하더니 함박꽃 웃음으로 팔을 꿴다. 뽈록한 배에 오비를 매어주니 그럴듯한지 거울을 보여달란다. 식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온천욕을 위해 대욕장으로 향하면서 콩콩이는 사람들에게 때와 상관없이 “곤니치와” 한다. 누가 또 그랬나 보다. 일본에 온 지 이틀쯤 지나면 아이는 곧잘 상황에 맞는 일어를 쓴다. 맛있다거나 좋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요 정도. 시키지 않아도 하니 신나긴 하지만 인천에 도착하면 아이는 시켜도 못한다. 그랬다가 그 나라에 가면 또 하고. 그냥 거울처럼 따라 하는 것이라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엄마의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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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세토대교가교기념관
세토대교의 의의를 남기기 위해 만든 기념 시설. 알찬 체험 중심의 시설과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형 돔 스크린의 브리지 시어터가 압권이다. 애기보이, 자기조직전 세포도시 등의 예술 작품도 함께 전시해 볼거리를 더한다. 입장료 무료, 월요일 휴무.
문의 0877-45-2344, www.setoohhashi.com/

우동스키 마마스키
콩콩이는 대망의 우동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소질을 살려 한 곳에 정진하도록 계획한 부모의 의도였다. 아이는 이제부터 우동 기술을 연마해 자긍심 높은 직업인으로 성장할 것이며… 이런 소감을 밝힐 상황이 아님에도 학교라는 말에 비장해졌다. 마치 우동학교에 유학이라도 온 듯 우동과 학교에 집착했다. 꼭두새벽부터 학교에 간다며 자신의 소지품을 챙겼다. 그렇게 입지 말라는데도 아빠가 캐나다에서 사온 정신 사나운 블랙 꽃 벌룬스커트를 뻗쳐 입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 가가와 현의 명물 나카노 우동학교였다. ‘명탐정 코난’에서까지 얼굴을 알린 ‘마짱’ 선생님은 아이에게 앞치마를 둘러주었다. 아이는 소매를 걷어달라며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반죽이 아이의 손에 왔고 아이는 작은 손에 힘을 넣어 반죽을 펴 나갔다. 어른도 어려울 것같이 단단한 반죽은 마짱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슥슥 길어졌고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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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봉을 굴려가며 반죽을 늘이는데 아이의 손목에 아직도 선명한 몽고반점이 보였다. 푸르스름한 반점이 아직 몸의 군데군데에 있는 애기가 점심으로 엄마와 선생님을 위한 우동을 만들어주겠다고 2월 한파에 코 위에 땀을 매달아가며 밀대를 밀고 있었다. 몽고반점이 보이자 코끝이 매워졌다. 진짜 갱년기인지 아무 때나 감동의 쓰나미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반죽이 면이 됐다. 이 면은 점심에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돼줄 것이라고 하니 아이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이번 차례는 밀가루가 반죽이 되도록 하는 것. 가루에 소금물을 붓고 뭉쳐서 반죽을 한 뒤 비닐 속에 넣어 발로 반죽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찰기라는 것이 거기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마짱 선생님은 아이가 더 신나게 밟을 수 있도록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주었다. 비극은 콩콩이는 그 음악을 모른다는 것. 아이가 말춤을 추지 않자 마짱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그 음악을 모른다고 하자 더 놀랐다. 지구인이 아닌 취급을 받았다.

마짱 선생님은 지구력이 놀랍다며 아이를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우동학교 졸업장도 받았다. 다카마쓰에서 아이가 가장 행복해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상으로 와산본 퍼프가 붙어 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하나 선사해주셨다. 우리는 조붓한 찻집에서 도넛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전의 노동을 치하했다. 아이는 졸업장을 소중히 대하며 우동은 언제 먹게 되냐고 채근했다. 고토히라의 상점가를 돌며 좋아하는 키티 스티커도 사고 기모노를 입은 언니 스티커도 샀다. 그리고 대망의 우동 점심시간. 콩콩이는 자기가 만든 면이 담긴 그릇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삐뚤빼뚤한 면이 콩콩이 것이 맞았다. 슴슴한 국물에 말아낸 파만 들어 있는 심플한 우동은 참 꿀맛이었다. 콩콩이는 유례없이 잘 먹었다. 그리고 계속 내게 권했다. “엄마, 콩콩이가 만든 거라 정말 맛있어. 후루룩 해봐. 얼른 후루룩.” 아이의 과한 격려로 밀가루를 끊은 내가 한 양동이를 다 먹었다. 정말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아까 아이가 반죽해둔 것은 선물로 받았다. 집에 가서 밀어서 칼로 ‘우동스키 마마스키’ 해서 아빠에게 주겠단다. 마짱 선생님이 면을 썰면서 말한 리드미컬한 가락이었는데 ‘우동 좋아, 엄마 좋아’라는 뜻. 아이는 뜻은 모르는 채 그 가락을 오랫동안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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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나카노 우동학교
가장 유명한 우동학교. 약 1시간의 수업으로 사누키 우동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수료증도 그럴싸해서 우동집을 하고 있다면 걸어두고 싶을 정도. 다정하고 박력 있는
마짱 선생님도 매력 중의 하나. 우동도 맛있다. 참가비 1인 1천5백75엔,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3시.
문의 0877-75-0001, www.nakanoya.net

Epilogue
가장 오래된 가부키 극장 가나마루에 갔을 때다. 가부키 배우 인터뷰를 한 번 해봤던 엄마는 가부키에 관해 관심이 많아 신이 났다. 2백 년 된 건물, 그대로 남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그때의 시설들, 사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무대, 자연광이 조명이 되는 무대까지. 설명을 듣느라 혼이 나간 엄마의 다리를 아이는 자꾸만 끌어당긴다. 나가자는 얘기였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 환기시키는데도 콩콩이는 칭얼거렸다. “엄마는 콩콩이가 얘기하는데 할아버지랑만 얘기하고, 내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자못 큰 소리로 말하는 아이를 예의 없다 할까 봐 짐짓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아까 얘기해줬지. 어른들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그러면 엄마가 바로 들어줄 거라고. 엄마는 아직 안 끝났는데 이렇게 큰 소리로 떼를 쓰면 엄마는 실망스러워.”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끝날 줄 알았는데 안 끝나잖아. 내가 기다린다고 쳐다봤는데 엄마가 못 봤잖아. 내가 조그맣게 말했는데 엄마가 몰랐잖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진짜 기다렸나? 내가 못 봤나 싶었다. 언제 얘가 이렇게 자기 감정을 다 표현할 정도로 컸나! 설명을 해주는 자원봉사자에게 약간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뒤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눈을 맞췄다. 아이는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콩콩이, 섭섭했어?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엄마가 못 봤나 봐. 미안해. 무슨 얘기 하고 싶었어?” 아이가 울음을 참느라 찐득해진 입을 열었다. “나, 엄마 안고 싶었어. 안아줘, 하려고 했어.” 아, 왜 눈물이 그때 나는지. 돌아보면 웃긴데 2백 년 된 가부키 극장의 무대 뒤에서 15kg짜리 아이를 깃털처럼 안고 눈물을 훔쳤다. 금방 마음이 가벼워진 아이는 할아버지가 기다리니 다시 가자고 채근했다. 잠깐 안겨 있던 힘으로 아이는 다시 핑크 쿠마를 흔들며 가부키 배우처럼 노래를 부르며 돌며 놀았다. 아이가 그 순간을 잊은 것 같기에 나도 다시 환기시키진 않았다. 감정이 오르지 않으면 15kg은 그냥 15kg이니까.

profile 콩콩이는…
2011년생. 말 잘하고 밥 잘 안 먹는 여자아이. 잡지사 편집장 엄마에게서 태어난 덕과 탓에 생후 6개월부터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시작해 현지의 시차와 상관없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는 여행형 어린이로 성장 중.

콩콩이 엄마는…
「GQ」, 「W」의 피처 디렉터, 「Off」, 「magazine C」, 「RAUME」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 끼의 식사가 지닌 의미와 그 사이의 감정들을 두루 쓴 「더 테이블」을 펴내기도 했다. 이따금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나왔지만 지금은 잡지 「ojo」와 「magazine K」의 편집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글&사진 / 조경아 ■취재 협조 / 브라이트스푼(02-755-1266, www.brightsp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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