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

(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댓글 공유하기
ㆍ“꽃 같은 네 얼굴 예쁘기도 하구나”

콩콩이는 엄마와 단둘이, 혹은 엄마의 출장팀에 깍두기로 끼어 다니는 여행자다.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한 여행은 사진에는 있어도 기억에는 없는 시간이었다. 지나치게 영양 상태가 좋았던 자신의 영유아 시절을 ‘뚱땡빵’ 때라고 말하는 콩콩이는 “아빠는 뚱땡빵 콩콩이랑만 여행했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번 여행은 아빠가 함께 갈 거라고 하니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는다. “아, 우리 가족이 같이 가는구나!” 엄마하고만 하는 여행은 가족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이번 여행의 주제는 초록 제주
제주도로 행선지를 정한 이유는 남편의 짧은 휴가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근 더 깊이 알게 된 제주의 매력이 더 컸다. 「제주 세계자연유산 산책」이라는 책을 외국인을 위해 만들었는데 기획 단계부터 보니 내가 아는 제주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몇 차례 취재를 따라가봤더니 기획 단계에서 부풀었던 마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됐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말이 움직이는 사진이 돼 거기에 있었다. 외국 휴양지 못지않게 훌륭하게 가꾸어진 특급 호텔의 온갖 프로그램에 기대어 객실, 레스토랑, 수영장에서 뺑뺑이를 돈 아이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이국적인 풍광, 콧속이 다 시원해지는 개방감, 맛있는 음식은 제주에도 있었다. 아니, 제주에 더 많았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제주의 아이들을 위한 시설들은 부모들을 위한 시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제주의 자연이나 문화와는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캐릭터 테마파크, 놀이 시설 등은 일정에서 제외했다. 아이들은 그런 곳에 가면 틀림없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에 부모의 가슴도 뿌듯해진다. 아이가 좋아하는 곳에 데려왔다는 마음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제주가 아니어도,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어도 그리고 금쪽같은 유아 시절이 아니어도 누릴 수 있는 곳들이다.

아이들은 자연을 보면 무조건 달린다. 그리고 물색없이 주저앉아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그러모으고 있다. 그 시간은 부모의 큰 인내심을 동반한다. 자연에 관해 다양한 지식이 없다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을 것 같고, 그런 시간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도 앞선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이라는 것을 떠났는데 그저 돌, 물, 나무, 풀만 보고 온다는 것에 본전 생각도 나고 아이의 터질 것 같은 즐거운 얼굴이라도 봐야 여행에 들인 시간과 재화가 아깝지 않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숲을 달리는 아이를 그냥 지켜만 봐도, 나무 키 재기만 해도, 검은 모래, 흰 모래, 몽돌을 쓸고 내려가는 파도와 숨바꼭질만 해도 제주는 충분한 것 같았다. 아이가 무슨 파크, 무슨 랜드에 다녀왔다는 후일담을 친구들 앞에서 자랑거리로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온 이름 모를 해변, 까만 소, 따온 귤 등으로도 그림일기는 다채롭게 채색된다. 콩콩이의 이번 여행은 초록 제주가 그 이름이었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아빠와 여행하기
아빠와 시작한 여행은 스케일이 달랐다. 아이는 아빠와 마주하면 역할놀이를 즐기던 그 꽃잎 같던 입술에서 “괴애물이다아!”라는 굵은 목소리가 나온다. 아빠는 괴물이 돼 아이를 쫓고, 아이는 검지를 당차게 편 주먹 칼로 용맹하게 무찌른다. 그 장소가 바다가 됐더니 공주 옷만 입겠다고 하는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조용한 서우봉해변을 깨웠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엄마라면 절대 해주지 않을 바위 위에 올라가기, 맨발로 파도 차기, 뒤도 안 돌아보고 무조건 달리기로 하루를 다 보낼 판이었다. 연인들이나 할 것 같은 ‘나 잡아봐라’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갑자기 방향을 바꾼 아빠를 피해 뛰기보다는 전속력으로 달려와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에서나 볼 것 같은 리프트 동작으로 아이는 숨넘어가게 웃었다. 모래바람으로 머리는 산발이 되고 아직은 찬 공기로 콧물이 졸졸 흘러도 아이도, 아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 젖은 바지와 보드라운 모래는 잘 떨어지지도 않는데 저 발은 다 어떻게 닦나, 하는 엄마의 걱정 따위는 그들에게 없었다. 마치 당신들의 아이처럼 생각해준 해변 앞 가게 주인들의 배려로 아이는 쉽게 손발을 씻었고 보송보송한 상태로 돌아왔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성게가 들어 있는 미역국을 시키고 옥돔구이를 반찬으로 점심을 먹은 아이는 다시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더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못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발을 또, 감기라도 들면, 옷을 또. 이런 생각을 하는 엄마에게 예의 가게 주인들은 다 안다는 듯 환한 웃음으로 어깨를 쳐주었다. 아이는 숨이 턱에 차도록 놀았다. “아, 밤샐까 걱정이야? 놀게 놔둬. 지들도 힘들면 나와.” 서울 말씨의 할아버지가 지나가며 웃었다.

Tip 함덕해수욕장
서우봉해변이 무척 아름답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국적인 풍광이 끝내준다. 모래도 보드랍고 물살도 비교적 약해 모래놀이에 빠진 아이라면 적합한 곳이다. 주변에 산책로가 있어 해변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위치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1008

손바닥으로 꽃받침 만들어
자기 이름으로 된 화분이 생긴 아이는 꽃에 관심이 생겼다. 이번 봄부터는 목련, 민들레, 진달래, 개나리, 벚꽃 등을 구별하며 엄마 가르치기에 신이 났다. 진달래를 보고 진달래라고 했다가 모녀간에 큰 전쟁이 벌어질 뻔했다. 잎이 나는 시기도 다르고 꽃이 달리는 수도 다르지만 그건 헷갈릴 수 있으니, 꽃 속에 자주색 반점이 있으면 철쭉이라는 것을 중학교부터 배워온 엄마는 진달래를 ‘철쑥’이라고 우기는 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할머니에게 전화해 “할머니, 엄마가 ‘철쑥’을 자꾸 진달래라고 해. 엄마 혼내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아이에게 제주도는 꽃 천지, 꽃 나라였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시기상 벚꽃도 끝물이고 유채꽃도 절정은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보던 벚꽃하고는 확연히 다른, 주먹만 한 벚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주를 찾을 때마다 취재팀을 도와주시는 (콩콩이는 제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김동욱 기사님이 꽃을 보고 싶다는 아이를 조천에 있는, 전라감사를 지냈다는 한 문중의 묘역에 내려주었다. 묘역이라고는 했지만 꽤 많은 비석이 둥그렇게 서 있었고 봉분은 자연의 하나처럼 누워계셨다. 꽃은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꽃이 무거워 가지가 늘어져 있는 것은 처음 보는 풍광이었다. 꽃은 정말 탐스러웠다. 아이는 거짓말처럼 눈높이로 내려온 주먹만 한 꽃을 만지고 싶어 했다. “누가 네 얼굴을 이렇게 만지면 너도 싫지? 꽃도 싫어해. 그러니 만지면 안 돼” 그랬더니 아이는 양 손바닥을 마주 대어 받침을 만들어 꽃에 대었다. 그러더니 “사과 같은, 아니 꽃 같은 네 얼굴 예쁘기도 하구나. 엄마 눈도, 코도 있는 거야?” 한다.

콩콩이 아빠는 이 웃기는 아이를 보지 않고 뭘 하나 했더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이렇게 묘역을 잘 가꾸는 후손이 있으니 얼마나 기쁘시냐고, 잠깐 들러 소란을 피우는 것을 너그럽게 봐달라고 기도했다며 “너는 왜 예의가 없는 거냐”라며 “너도 해라”라고 핀잔을 준다. 민들레를 발견하고 숨을 내 뱉는 것인지 들이마시는 건지 알 수 없는 볼을 한껏 부풀린 아이는 주저앉아 놀고 있었고 힐난에 약한 엄마는 인사가 늦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도마뱀아, 변해랏!
초록만 보고 가기로 마음을 먹은 제주에는 볼 게 천지였다. 다양한 초록을 보여주기에 한림공원은 맞춤한 곳이었다. 외국인이 한국 사람보다 훨씬 많은 입구에 서니 어깨가 저절로 으쓱했다. 봐요들, 우리나라가 이렇게 예쁘다고요. 한림공원은 총 9가지 테마로 공원이 나뉘어 있다고 했는데 아이가 좋다고 하는 만큼, 체력이 되는 만큼만 돌아보기로 한 부모는 멀찌감치 떨어져 아이의 동선만 좇았다. 아열대 식물원부터 들어간 아이는 튤립을 아는 척하느라 아빠를 크게 불렀다. 튤립들은 굴광성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는데 콩콩이는 그게 이상해서 큰일이 난 아이였다. 자기 얼굴을 외로 꼬며 “꽃들이 다 이렇게 돼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해님을 더 보느라 그렇다고 하니까 이렇게 묻는다. “아빠, 해님은 밤에 다른 나라 비춰주러 가잖아. 그러면 튤립들은 얼굴이 어떻게 돼?” 아빠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나는 모른다. 답할 말이 없어서였는지 정말 기가 막혀서였는지 평소보다 큰 소리로 더 오래 웃는 아빠 앞을 모른 체하고 지나왔다. 하하.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선인장이 모인 곳에서는 가시를 다 만져봐야 했고, 그 사이에 있는 이구아나, 비단뱀을 보고서는 입을 크게 벌렸다. 놀랍고 신기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랬기 때문에 따라 한 것이었다. “엄마, 나 도마뱀이랑 놀고 싶다. 엄마가 꺼내달라고 하면 안 돼?” “안 돼. 근데 왜 같이 놀고 싶어?” 물으나마나 한 소리. “응, 리푼젤도 그러잖아.” “콩콩아, 라푼젤 친구는 도마뱀이 아니고 카멜레온이야. 색깔 변하는.” 그 말을 괜히 했지. 콩콩이는 도마뱀의 색깔이 변하길 기다리다 거기서 돌이 될 뻔했다. 야자수길에서는 아빠와 달리기 시합을 했고 정수리에서 김이 나는 것을 본 것도 같다. 한림공원 안에는 민속촌, 연못, 동굴도 있었는데 체력도 떨어지고 해님도 다른 나라 가려고 채비하는 시간이 되자 아이에게 한 곳을 선택하게 했다. 아이는 잠을 안 자는 애들을 데려가 야단치신다는 ‘깜까미’ 할머니의 집이라 믿는 동굴에 가고 싶어 했다. 실제로 가보니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엄마도 들어가기 무서운 곳. 사람들이 많았다면 모르겠지만 담력 약한 남편과 겁 많은 아이와 단 3명이 입장하기에는 좀 무서웠다. 망설임 없이 돌아 나왔고, 우리는 가벼운 걸음으로 모두 일찍 잠에 들어서 동굴에 잡혀가는 일 없게 하자며 손가락을 걸었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Tip 한림공원
제주의 대표적인 공원. 제주에 온 해외 귀빈들도 이곳부터 찾는다고 한다. 1백만 평 규모에 43년의 역사가 굳건한 곳으로 9가지 테마로 훌륭하게 꾸며놓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충분히 돌아보지 못했지만 사파리조류원의 공작새, 재암민속마을의 초가 등은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국가지정문화재인 협재굴과 쌍용굴도 반드시 봐야할 곳.
위치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300 문의 064-796-0001, www.hallimpark.co.kr

사부작사부작 걷는 길
입장료가 없어서였는지 외국인, 등산객, 산책하는 동네 사람까지 붐비지 않으면서도 빼곡했던 한라수목원도 콩콩이는 무척 좋아했다. 제주수목원 테마파크라는 곳은 아이스뮤지엄, 버킷리스트 아트, 5D 영상관, 체험 관광 등이 있었지만 콩콩이는 한라수목원만 택했다. 야트막하지만 경사가 있는 숲길이 사부작사부작 걸을 만했다. 산책길이 모두 흙길이거나 돌길, 나무 조각들로 만들어진 곳이라 아이는 발에서 느끼는 촉감을 다양하게 말하며 뛰거나 걸었다. 오르막길에서는 힘들어할까 봐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고 내리막길에서는 지나치게 내달릴까 봐 나무 따라 하기를 하며 속도를 조절했다.

콩콩이는 요즘 ‘겨울왕국’의 올라프에 빠져 있는데, 나뭇가지만 보면 길이가 비슷한 2개를 찾아 올라프의 대사를 따라 해 아웃도어 브랜드의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하고 뒤로 걸으시는 제주 아주머니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했다. 한 아주머니가 주신 ‘마이구미’의 세계를 처음 맛본 콩콩이는 ‘포도같이 생겨 쫄깃해서 아주 맛있는 그것’을 받은 곳으로 수목원을 기억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더 먹고 싶다며 엉엉 울기도 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 안 하기로 한 비밀이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Tip 제주 한라수목원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중 개방하는 무료 공원.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모여들 정도로 훌륭한 곳.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돌아볼 만하다. 꽃도 많고 나무도 다양하다. 공항에서도 가깝고 바로 앞에 연우네(064-712-5646)라는 식당도 추천할 만하다. 들깨수제비와 채소비빔밥이 좋은데, 값도 저렴하고 맛도 깔끔하다. 밥 안 먹는 콩콩이도 들깨수제비는 뚝딱 해치웠다.
위치 제주시 연동 수목원길 72
문의 064-710-7575, sumokwon.jeju.go.kr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것이 있는 곳
이번 여행의 테마는 초록이었지만 엄마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숙소였다. 자연만, 제주만 생각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고 그런 곳을 찾은 것 같아 매우 좋았다. 제주스테이 비우다에서 묵을 생각에 엄마는 더 들뜨기도 했다. 내비게이션에도 안 나오고, 중문에서만 택시 기사를 15년 했다는 아저씨도 모른다는 곳이었다. 비밀의 장소에 찾아가는 것처럼 즐거웠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뾰족한 삼각 지붕으로 쏟아지는 별은 환상적이었다. 어느 것 하나 각이 맞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반듯반듯한 모든 것들은 집 짓는 사람이 얼마나 신경 썼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욕조는 테라스에 나가 있었는데 날씨가 허락해 아이와 함께 벗은 몸을 비비며 제주 밤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템퍼의 매트리스는 요라고 하기에는 무척 훌륭했고 광목 이불은 잠을 부르는 침구였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정작 콩콩이는 아무것도 없이 별과 밤과 창 그리고 이불이 전부인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집에 가자고, 뾰족 지붕 방 싫다며 징징댔지만 초록을 누리느라 지친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다. 여행지에 가면 일찌감치 눈이 떠지는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아빠와 함께 찐 고구마와 우유로 요기를 했고, 늦게 일어나는 엄마를 놀라게 하려고 모자를 쓰고 기다렸다고 한다. 놀라는 엄마를 보는 아이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뭐라도 놀라주마. 더 많이 놀라고, 더 신나게 놀라주마.

비우다는 아침이 황홀했다. 적요할 만큼 조용해서 새소리가 호비 알람시계보다 더 크게 들렸다. 아침빛을 받은 방철린 건축가의 건축은 작품이었다. 조리 식품은커녕 반조리 식품, 전자레인지도 없는 주방에서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차린 아침은 훌륭했다. 먹는 것 싫어하고, 특히 씹는 것 싫어하는 콩콩이가 전복을 모두 먹는 것에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놀래주었다. 채소 몇 조각을 제외하고는 토마토, 감자, 전복, 호박을 모두 싹 먹어치운 아이는 그 성취감에 더 신이 났다.

비우다에서 보낸 시간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풍요롭고 자연스러웠다.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지 않고 몸이 저절로 자연에 맞춰 움직이는 순간이 이어졌다. 콩콩이는 아침마다 밥을 뚝딱 먹어냈고 비우다의 강아지인 또순이, 마음이와 오전을 즐겼다. 깨끗한 물을 좋아하는 그들에게 손으로 물을 떠먹이려다 거절을 당했고, “땅에서 달렸으니 손발을 닦아야 감기 벌레가 없어져”라며 앞발, 뒷발을 모두 닦아주려고 해 강아지들을 질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친해진 두 강아지와 한 어린이는 너른 땅을 뛰며 신명이 났다. 해 지는 저녁,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새벽. 하루가 정해놓은 빛깔이 저마다의 느낌대로 비우다에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모든 것이 있는 곳. 콩콩이가 그곳을 느끼려면 아직 멀었겠지만, 뾰족 지붕 집에 마음이, 또순이가 있다며 또 가고 싶다고 했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Prologue
36개월이 지나고 ‘원’에 다니게 된 콩콩이. 친구들과 숲에도 가고, 화단에 꽃도 심으며 봄을 만끽 중이다. 어느 날 스케치북에 그린 나무를 보니 형태는 그저 낙서 같은데 색깔은 노란색, 연두색, 녹색, 남색이 같이 ‘찍찍’ 그려져 있다. 다 그리고 나서 나무라고 하니 나무지, 색깔도 모양도 나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었다. “나무 맞아. 엄마, 나무 잘 모르구나. 이렇게 생겼어.” 아이는 얼마 전부터 ‘모르구나’에 맛이 들렸다. 엄마가 “모르는구나” 하고 뭔가를 가르쳤는지 콩콩이는 “모르구나” 하며 시작하는 설명놀이를 재미있어했다. 친할머니네 산에서 나무 색깔이 전부 다르다는 얘기를 하며 엄마만 ‘모르는’ 나무 색깔 얘기에 열을 올렸다. 같은 초록은 하나도 없는 나무들, 빛을 받고 바람에 스치며 그 명도와 채도가 끝없이 달라 보이는 그 순간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아이에게 더 많은 초록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콩콩이는 여행 중](8) 여덟 번째 여정지 → 제주도

Tip 제주스테이 비우다
방철린 건축가의 건축, 최고급의 침구, 세면용품, 끝내주는 식사, 방마다 모두 다른 디자인 등으로 조용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제주의 새로운 숙소. 문화와 예술에 대한 특별한 감식안을 지닌 권지민 대표의 열린 생각이 빛을 발하는 곳이다. 정말 많은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고 가기를 바라는 비우다의 주인은 아이들의 악의 없는 소음이 어른들의 완벽한 휴양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린이 동반 숙박을 제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치 제주 서귀포시 색달중앙로 121번길 45 문의 064-739-5004, www.biuda.kr

Epilogue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고 물리지 않는 색깔은 초록이라고 했던가? 시인 이상은 초록처럼 질리는 색깔도 없다고, 다채로운 회색이 가득한 도시가 좋다고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천재성은 없는지 콩콩이는 제주의 초록에 싸여 ‘딩동댕 유치원-봉구야 말해줘’, 「호비랑 나랑」, 「까이유」를 보여달라는 말 없이 그곳에서 시간을 즐겼다. 마누엘라가 부르는 「키즈 보사」 앨범을 틀어놨더니 엉덩이를 격하게 흔드는 것으로 엄마를 질겁하게 하긴 했지만 자연에 풀어놓은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크면 풀어놓는다고 해서 풀어놔지지 않는다고 선배 엄마들은 말한다. 자기 의지로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시기가 곧 오게 되면 산책 같은 것은 아주 우스워한다고. 그런 때가 오면 무척 서운하기야 하겠지만 성장의 한때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 전에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되지요’ 하는 아이로 키워보고 싶다. 따라준다면 말이다.

PROFILE 콩콩이는…
2011년생. 말 잘하고 밥 잘 안 먹는 여자아이. 잡지사 편집장 엄마에게서 태어난 덕과 탓에 생후 6개월부터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시작해 현지의 시차와 상관없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는 여행형 어린이로 성장 중.

콩콩이 엄마는…
「GQ」, 「W」의 피처 디렉터, 「Off」, 「magazine C」, 「RAUME」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 끼의 식사가 지닌 의미와 그 사이의 감정들을 두루 쓴 「더 테이블」을 펴내기도 했다. 이따금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나왔지만 지금은 잡지 「ojo」와 「magazine K」의 편집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글&사진 / 조경아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