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홉 번째 여정지 → 제주도 2탄

콩콩이는 여행 중

(9) 아홉 번째 여정지 → 제주도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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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엄마, 이러다 늦겠어. 기차가 떠나겠다고”

콩콩이에 대한 취재팀의 애정은 진짜 이모 못지않다. 점점 어린이 태가 나는 외모뿐 아니라 쑤욱 늘어난 어휘 실력을 볼 때면, 자연스레 엄마 미소가 지어지며 마치 같이 키우기라도 한 것처럼 숟가락 얹는 심정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꼬물꼬물 아이 시절이 금세 끝이 날까,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한다.

[콩콩이는 여행 중](9) 아홉 번째 여정지 → 제주도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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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주황 핑크그린… 형형색색 에코랜드
에코, 힐링, 네이처, 퓨어… 이런 말들이 진저리가 처지는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어쩐지 저런 단어들이 붙으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주장’처럼 들리는 뉘앙스가 오히려 우세스러웠다. 그런데 제주를 다녀온 한 외국인이 말하는 에코랜드의 특장은 아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지 않으면 안 될 곳으로 느껴졌다. “증기기관차가 광활한 자연을 가로지른다. 동식물의 천국이다. 그런 식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호수, 숲, 평원이 이어진다.” 듣자마자 하루를 ‘꽁’으로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무슨 랜드, 에코 뭐, 힐링 뭐에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라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 잊었다.

에코랜드에 가기로 정하고 아이에게 기차를 타고 꽃밭도 가고 모래 장난도 하고 물 위에 난 길도 걸을 거라고 하니 아이는 엄마 아빠보다 먼저 신발을 신고 서 있었다. “엄마, 이러다 늦겠어. 기차가 떠나겠다고.” 요즘 아이의 엄마에 대한 힐난은 꽤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다. 이른 점심을 챙겨 먹고 도착한 에코랜드는 이미 아침 일찍부터 보고 돌아 나온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싫어하는 것을 물었을 때 생각할 것도 없이 “서두르는 것과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은 시종일관 늘쩡늘쩡이었다. 우리의 여행 패턴을 아는 택시 기사인 제주 할아버지는 천천히 둘러보라며 아예 차를 멀찌감치 빼놓고 기다리시겠다고 한다. 콩콩이는 많은 사람들에 놀라기도 했지만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브랜드의 점퍼를 입은 한국 관광객의 색깔에 매료된 듯했다. “주황주황 핑크그린 초록주황노랑” 하며 트레킹에서 돌아온 것 같은 아주머니들의 상의 색상을 노래하듯 불러댔다. “콩콩아, 그린하고 초록은 어떻게 달라?” “어, 엄마 초록은 초로옥인데 그린은 그륀이야. 그렇게 달러.” 영어 까막눈인 콩콩이는 주워들은 대로 외국어를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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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이 아빠는 줄 서 있는 사람이 많으니 조금 한산할 때를 기다리자며 아이를 카페테리아로 이끌었다. 생전 처음 구슬 아이스크림을 발견한 아이는 그것만으로도 제주도가 좋아졌다. “어엄마~ 핑크가 정~말 많아~.” 물결표 없이는 아이의 억양과 어조를 살릴 수가 없을 정도다. 핑크홀릭의 여자아이들을 향했는지 구슬 아이스크림은 색소로 낼 수 있는 모든 핑크를 똥알똥알 많이도 만들어 넣어놨다. 기차를 타러 와서 아이스크림과 추러스에 맛을 들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인지라 멀리서 기적 소리가 ‘츄츄’ 하고 들리면 고개를 빼긴 했는데 “엄마, 아직도 아이스크림이 많이 남았어. 그런데 이걸 가지고 기차에 타면 다른 사람 옷에 묻어. 그러니까 다 먹고 타자. 기다려. 알았지? 내 말 알아듣지?” 하면서 엄마를 기함하게 했다. 마지막 한 알까지 구슬을 다 먹은 아이는 기차를 타자고 나섰다.

단체 관광객이 한풀 꺾이는 시간인지 기차는 한산했다. 1800년대의 영국 기차라는 이 증기기관차는 근사했다. 기적 소리도 그럴듯했고 의성어 그대로 칙칙폭폭 달렸다. 첫 번째 역에서 한 시간, 두 번째 역에서 한 시간 반. 콩콩이는 시간을 허리춤에 붙잡아놓은 아이처럼 개미를 따라 개미의 보폭으로 흙길을 걸었고, 맑디맑아서 바닥까지 보이는 호수에서 물고기의 표정을 따라 하며 그곳을 즐겼다. 지구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다는 고생대 식물인 고사리가 가득한 숲을 지날 때에는 강력한 시청각교육 효과 탓인지 어른들은 모두 “아바타”라고 말해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 할 것 없이 같이 웃었고, 뜬금없이 나는 왜 내가 하는 고사리볶음은 촉촉하고 부드럽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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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랜드는 정말 굉장한 곳이었다. 30만 평이라고 하는데 체감할 수 없는 숫자의 공간감이 눈앞에 펼쳐지니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도 꾸며놨는데 입장 시간에 들어와 폐장 시간까지 있겠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곳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작은 도시를 만들어두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박스형 구조물에서 온갖 역할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튤립 철은 아주 장관이라고 하는데 콩콩이가 갔을 때는 아직 축제를 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튤립 앞에서 “튤립이 이렇게 생겼다”라며 얼굴을 찌그러뜨렸다.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반원형의 꽃잎들을 그리던, 그러니까 코스모스나 해바라기와는 다르게 생긴, 튤립의 얼굴이라며 입술을 모아 올렸다. 뾰족한 얼굴이라며. 나무를 보면 나무 자세를 했고 잔디로 만든 곰의 좌상을 보면 마주 앉아 이야기를 청했다. 내가 낳았지만 도대체 아이의 생각의 시작과 그 방향을 알 도리가 없다.

네 살, 아직 달콤한 아기 냄새가 나는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은 이제 여행의 충실한 동반자다. 더 이상 사람들은 가이드북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지도, 그 이후 세대가 했듯 검색 결과를 프린트해서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수공예 하듯 사진 보정에 원고 수정 3교까지 봐가며 만드는 나의 여행 잡지는 정말 부질없는 ‘헛짓거리’는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제주에서는 슬며시 들었다.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진도 찍고 보내기도 한다. 소셜네크워크 서비스는커녕 길 찾기 앱도 하나 못 쓰는 엄마지만 ‘데이터가 팡팡 터지는’ 대한민국 국경 안이라는 사실에 제주 맛집, 아이 데리고 갈 만한 곳, 하다못해 ‘제주 오빠랑’을 검색창에 넣어보았다. 오설록의 녹차셰이크, 녹차요거트 아이스크림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제주 할아버지가 서귀포 안덕으로 차를 몰았다. 오설록 티뮤지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줄을 서 있는 관광버스가 먼저 알렸다. 차는 오설록을 지나 새로 생긴 항공우주박물관, 제주국제학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면 스르르 잠에 빠져 에너지를 비축하고 차가 멈추면 잠든 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이처럼 깨어나는 콩콩이를 잘 아는 그의 배려였다. 캐나다학교, 영국학교, 그래서 생긴 도로, 집, 오른 땅값 등 제주 할아버지는 해주실 얘기가 많은지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친구의 올케가 반포에서 제주국제학교로 아들 둘을 전학시킨 뒤 “엄마, 이렇게 좋은 데 왜 이제 옮겨줬어?”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에 매우 인상 깊었던 나는 그곳을 더욱 찬찬히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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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5세부터 다니지 않고서는 좀처럼 입학할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먼 얘기처럼 들렸다. 만 3세, 한국 나이 네 살. 5세는 이제 반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마음은 가속을 달지 못한다. 개구리처럼 내 가슴에 볼을 대고 누워 있는 몰캉한 애기와 교복을 입혀 학교에 보낸다는 생각, 아빠 혹은 아빠 엄마와 떨어져 섬으로 학교에 살러 보낸다는 생각이 와 닿지가 않았다. 멀지 않은 어느 때에 오늘을 생각하며 왜 그때 정신을 차리지 않았는가 하고 땅을 치더라도 지금은 후회를 그때의 몫으로 미뤄두는 수밖에. 내가 장대한 로드맵을 그려뒀다고 해도 아이의 성향이, 아이의 희망이 그것과 맞지 않으면 그건 무슨 비극인가.

선배들은 “그 아이의 성향도, 그 아이가 꿀 꿈도 엄마인 네가 제일 잘 알 테니 그것에 가장 적합한 미래를 지금부터 찬찬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구성해 대비해줘야 한다”라고 짬이 날 때마다 지도 편달하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애기 엄마’라고 불리는 나는 애기를 영어 집중식 놀이학교에도, 학원으로 불리는 게 나은 듯한 영어유치원에도 넣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직 네 살’이라는 생각이 ‘벌써 네 살’이라는 생각을 앞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살부터 시작해 서울대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남다르게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와 그 엄마들에게는 진작부터 ‘질’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식 농사라는 말처럼 정직한 ‘농사’라면, 그래서 뿌린 만큼 거둔다면 늦게 뿌려 많이 거두려는 것은 욕심일 테니까 말이다. 창밖에 앙증맞은 자태로 유럽 사립학교의 교복을 입은 콩콩이 또래의 아이들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차창 안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쿠마’를 떨어뜨릴까 봐 안고 잠든 내 아이의 달콤한 숨 냄새가 가득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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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의 녹차아이스크림은 유명할 만했다. 초록 아이스크림이라며 나뚜루, 하겐다즈 등등을 고루 먹어본 아이는 맛이 없다고 했다. 쓰고 혓바닥이 답답하다고 했다. 하하, 녹차 맛이 진하다는 의미다. 먹어본 녹차아이스크림 중 가장 진하고 가장 부드러웠다. 사방에 키 작은 차나무가 가득했다. 그 찻잎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티뮤지엄에서 이니스프리 하우스로 올라가는 길은 아이가 산책하기에 좋았다.

적당한 경사와 그늘이 아이를 오르내리게 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아이는 눈이 커졌다. 엄마가 충전되지 않았다고 주지 않는 태블릿이 테이블에 가득했고, 무언가 손으로 만져서 만드는 ‘만들기’ 시간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 비누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세트로 판매하고 그 방법을 태블릿 PC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만들어 포장까지 해 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컹물컹한 질감, 가루 섞기, 굴리기, 뭉치기, 스탬프로 모양 만들기, 종이에 싸기, 스티커 붙이기, 주머니에 넣기, 리본 매기. 비극은 처음에 물렁거릴 때까지 필요 충분의 악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만지기 좋도록 어른이 준비해줘야 하는데, 1만5천원짜리 키트에 3개를 만들 수 있게 돼 있으니 엄마는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길 때까지 때아닌 제주에서의 비누 반죽으로 콧등에 땀방울을 매달아야 했다. 콩콩이는 정말 좋아했다. 친구 호성이 줄 것, 친할머니, 외할머니 드릴 것까지 모두 만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누는 만든 지 1주일이 지나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이에겐 1주일이 얼마나 긴 건지 아이는 밤낮으로 비누 어떻게 됐나 보자더니 정작 1주일이 되는 날엔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느 투정이 아주 심한 날, 극적 환기용으로 아직은 비밀 장소에 보관 중이다.

비누까지 만들고 난 콩콩이는 배가 고프다 했고, 이니스프리 하우스 옆에 있는 곳에서 주먹밥과 미역이 들어 있는 어묵국으로 간단히 허기를 물리쳤다. 에너지가 다시 비축된 아이는 누가 시킨 것처럼 녹차밭으로 달려갔고 얼굴만 숙이면 숨었다고 생각하는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보성 녹차밭 사진에서 본 것처럼 구불구불 능선은 보이지 않았지만 촘촘한 이파리가 다닥다닥 달려 있는 키 작은 녹차나무들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아이는 그 고랑을 따라 달리다 숨다를 반복하며 웃음소리의 데시벨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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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닷가의 핑크 튀튀걸, 바로 저예요
쇠소깍. 이름부터 가고 싶게 만드는 곳. 산굼부리는 같은 맥락으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곳. 불행히도 산굼부리에 도착했을 때는 콩콩이의 깊은 낮잠 시간이어서 유모차를 밀고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규모와 그 양태가 뭍과는 아예 다른 제주 자연의 진면목을 산굼부리는 웅변하고 있었다. 쇠소깍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의 웅덩이’라는 뜻. 서귀포의 비경이라고도 불리는데 모양부터 색감까지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세 살부터 공주에 마음을 빼앗긴 콩콩이는 세상의 모든 튀튀를 갖고 싶어했다. 무릎을 덮고 퍼지기만 하면 무조건 공주 옷이라고 하는 아이는 제주에서도 한 번은 발레 치마를 입고 싶다며 우기고 우겨 여행 가방 안에 진홍색 튀튀를 넣어왔다.

테우(제주 전통 통나무 배)도 타고 싶고 여차하면 모래밭아 앉아 또 하루를 보낼 걸 아는 엄마는 튀튀를 입고 절대 가서는 안 될 곳이 쇠소깍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바로 알았다는 듯 아이는 아침부터 잠옷 위에 그 치마를 겹쳐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 마라 하려거든 꼭 하지 말아야 하나 다시 생각해보라는, 위험하거나 버릇없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니면 웬만해서는 ‘하지 마라’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아빠와 함께 간 여행이라 엄마는 면벽수도의 기분으로 해라 해라, 검은 모래 해변에 진분홍 샤스커트를 입고 뒹굴어라 뒹굴어라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게 그렇게 생각처럼, 책처럼 되는지 어디 한번 보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모래가 켜켜이 낀 튀튀를 어깨가 탈구될 때까지 털어보라지 하는 마음도 함께였다.

테우를 타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탈 수 있는 테우는 오후 4시란다. 아직 어리니 구명조끼를 입혀 카누를 탈 수도 없고. 시리게 푸르고 검은 물 한가운데에서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어른들은 아쉬워했지만 아이는 무조건 해변으로 달린다. 아주 볼 만하다. 각각 다른 이유로 애 어른 할 것 없이 아이의 치마를 보는 눈이 화등잔이다. 예상대로 콩콩이는 돌탑도 쌓고 검은 모래에 나뭇가지를 꽂고 놀았다. 철퍼덕 주저앉아서. 모래와 한 몸이 된 듯 지겹지도 않은지 재잘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적잖이 흘렀는데도 아이는 여전하다. 혼자 놀다가도 “엄마 와서 이 돌 보고 사자야 안녕, 넌 어디 가니, 해” 이런다. 이럴 때 엄마는 부아가 치미는데 태생이 느긋한 아빠는 “너도 쉬어” 한다. 엄마는 도저히 쉴 수 없다는 것을 아빠라는 사람들만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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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가기 전, 제주에서는 동문시장을 들르는 재미가 좋다. 한국관광공사의 전통시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골목골목 누비고 다닌 동문시장은 이제 아는 얼굴이 있을 정도로 정겨운 곳이 됐다. 갈치는 어느 집, 천혜향은 어디, 오메기떡은 어디 해가며 집으로 돌아가기 전 먹고 싶은 것, 선물하고 싶은 것을 차례로 주소 적어 택배 보내는 즐거움도 꽤 크다. 특히 하나에 6백원인 빙떡은 꼬부랑 할머니가 크레이프보다 얇게 전병을 부쳐 삼삼하게 무쳐낸 무나물을 돌돌 말아 주는데, 그 앞 골목에 있는 씨앗호떡이나 오메기떡보다도 맛이 좋다. 물론 달콤하고 고소하기로 치자면 댈 것이 아니지만 뭔가 가벼운데 묵직하고 심심한데 진한 맛이 할망빙떡에는 가득 차 있다. 아이에게도 먹여보니 잘 먹는다.

할머니 앞에 앉아 반죽이 전병이 되고 전병이 빙떡이 되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본다. 아이의 그런 모습이 할머니는 귀여웠는지 더 먹고 싶다는 무나물만 한 손 집어 콩콩이 입에 넣어주신다. 콩콩이는 돌아와서까지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무나물을 넘어가고 있네”라는 노래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인심이 후한 동문시장에서 아이는 배가 불쑥해졌다. 인사 잘하고 잘 웃는 아이여서인지, 아이라는 특권이 그분들의 주머니를 여는지 콩콩이는 입이 비어 있을 사이 없이 천혜향, 올레꿀빵, 레드향, 호떡, 감말랭이 등등을 받아먹었다.

Prologue
계절에 상관없이 제주는 꼭 5월 같았다. ‘오월은 푸르구나아 우리들은 자라안다아~’ 하고 목청 높였던 어린이날 노래가 자꾸 떠오르는 곳이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아이가 푸른 잔디, 파란 하늘을 향해 달릴 곳이 천지였다. 뛰지 마, 소리 지르지 마. 엄마는 이런 말을 잊었고 콩콩이는 매일 달리고 뛰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린 아이는 치과 의사가 걱정할 정도로 물을 안 먹는 아이도, 징그럽게 밥을 안 먹는 아이도, 잠들기 싫어 울던 아이도 아니었다.

‘몸을 쓰게 하면 다 된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제주는 콩콩이에게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쓰게 하는 발산의 땅이었고 그래서 쑥 자라게 하는 성장의 땅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제주공항에서 나올 때와 들어설 때의 키가 달랐다. 숲과 바람이 키우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Epilogue
콩콩이는 푸껫보다 파리보다 전주를 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여행자다. “엄마 여행 가자. 우리 가방 끌고 수첩 들고 이렇게 응?” 하고 생각나면 조르는 아이에게 어디 가고 싶냐고 물으면 8할은 “존쥬!”라고 말한다. 전주가 어땠냐고 물으면 문을 열고 또 열면 방이 있고 이불이 막 이렇게 쌓여 있는 그 집에 가자는 말로 엉뚱하게 대답한다. 전주에서 뭘 봤는데 하면 “쫄쫄 물이 흐르는 데서 넘어졌지? 그래서 피났지? 그래서 이모가 바지 사줬지? 엄마 기억나?” 하면서 되묻는다. 같은 시공간에 있었어도 어른이 본 것, 어른이 기억하는 것과 아이의 그것은 그 궤가 다르다는 것을 콩콩이를 보면서 확인한다. 어른들은 큰 재화와 시간을 들여 선사하듯 한 여행과 소소하게 마실 가듯 떠났던 여행의 밀도 차이를 분명히 느낀다. 그런 차원에서 아이는 순수한 여행자로서의 본분을 본의 아니게 지키고 있는 중이다. 제주는 어떨까.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시간과 비용 따위는 차치하고 아이에게 어떤 감상으로 남을지 흐뭇하게 기다려주면 될 일인데 자꾸만 묻게 된다. 제주는 어땠어? 제주는 또 어디에 가고 싶어? “어? 엄마? 존쥬?” 이럴 때 엄마는 하면 안 될 본전 생각이 슬며시 또 난다.

[콩콩이는 여행 중](9) 아홉 번째 여정지 → 제주도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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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에코랜드
제주에 갈 건데 아이가 오래오래 지겹지 않게 놀 만한 곳, 혹은 사이사이 돈을 많이 쓰지 않을 곳을 묻는 친구들에게 꼭 말해주는 곳이다. 물론 아이가 많이 ‘사회화’돼 자연만으로는 흥미로워하지 않는 시기라면 좋은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콩콩이 또래, 혹은 자연에 관심이 많은 언니, 오빠들도 무척 즐거워할 곳이다.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루 가족이 다녀간 뒤 한층 더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주소 제주 조천읍 번영로 1278-169 문의 064-802-8000 www.ecolandje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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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오설록 티뮤지엄&이니스프리 하우스
안과 밖, 멋과 맛까지 두루 챙긴 곳. 상업적인 공간인데 제주라는 지역 특성 때문인지 그것보다는 즐길거리들이 먼저 다가온다. 시간이 있으면 차 체험도 무척 훌륭한 경험이 될 것. 이니스프리의 비누 만들기는 외국인이나 아이 말고도 특색 있는 기념품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밖에 있는 차밭도 좋은 구경거리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로 425 문의 064-794-5312, www.osull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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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쇠소깍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뜻.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깊은 웅덩이다. 용암이 흘러내려서 굳은 계곡인데 풍광이 아주 독특하다. 작고 평평한 뗏목인 테우를 타고 유유히 지나가면 갖가지 바위를 보는 재미도 무척 특별하다고 한다. 쇠소깍이 있는 서귀포 하효동은 감귤 주산지로 귤향이 진하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과원동로 문의 064-732-1562, www.jejutour.go.kr

profile 콩콩이는…
2011년생. 말 잘하고 밥 잘 안 먹는 여자아이. 잡지사 편집장 엄마에게서 태어난 덕과 탓에 생후 6개월부터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시작해 현지의 시차와 상관없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는 여행형 어린이로 성장 중.

콩콩이 엄마는…
「GQ」, 「W」의 피처 디렉터, 「Off」, 「magazine C」, 「RAUME」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 끼의 식사가 지닌 의미와 그 사이의 감정들을 두루 쓴 「더 테이블」을 펴내기도 했다. 이따금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나왔지만 지금은 잡지 「ojo」와 「magazine K」의 편집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글&사진 / 조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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