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이겨낸 용감한 가족들 규슈 다케오 올레길을 걷다

소아암 이겨낸 용감한 가족들 규슈 다케오 올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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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규슈는 푸르렀다. 나지막한 산속에 고요히 자리 잡은 다케오로 용감한 가족들이 길을 떠났다. 숲의 정령이 숨 쉬는 초록 숲 속으로, 내딛는 걸음걸음 웃음꽃이 피어났다.

소아암 이겨낸 용감한 가족들 규슈 다케오 올레길을 걷다

소아암 이겨낸 용감한 가족들 규슈 다케오 올레길을 걷다

일본에서 만나는 올레길
‘집에 돌아가는 좁은 길’, 올레길은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도움을 받아 일본 규슈에도 12개의 올레 코스가 생겨났다. 그중 사가 현에 위치한 ‘다케오 코스’는 규슈를 찾는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길이다. 3천 년의 신비를 간직한 거대한 녹나무와 4백 년을 이어온 도자기 공방으로 유명한 온천 마을. 올레길 따라 산악 풍광을 만끽한 뒤 온천까지 즐길 수 있어 힐링 코스로도 더없이 좋다. 녹음이 짙어가던 초여름, 소아암을 이겨낸 용감한 여섯 가족이 규슈 여행길에 올랐다. 직원들이 월급의 1%를 사회공헌 여행 기금으로 모금하고 있는 ‘여행박사’가 주관이 돼 마련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암과 싸우며 놀이터보다 병원에 익숙했던 아이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마음의 여유를 잃었던 가족들에게 계절의 푸르름만큼이나 생기 넘치는 시간이 펼쳐졌다.

길 위에서 이룬 가족의 꿈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JR전철로 1시간 10분, 다케오 온천 역에서 시작되는 다케오 코스는 도심과 공원, 산과 호수를 지나는 14.5km의 길이다. 곳곳에 신사와 반딧불이 연못, 사가 현 우주과학관 등 흥미로운 장소들이 발길을 붙잡고 상급자 코스와 일반 코스로 나뉘어 취향에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용감한 가족들의 목적지는 다케오 신사 부근에 자리한 다케오 녹나무. 수령이 3천 년이나 된 이 나무는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러서 보고 가는 다케오 코스의 진수다. 3천 년 동안 산 나무라니, 일본에서는 ‘파워 스폿’, 즉 좋은 기운을 받는 곳이라 하여 해마다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녹나무 순례길에 오른단다.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 이긴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힘차게, 용감한 가족들의 행진이 시작됐다.

개구쟁이 지민이네 가족.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아빠와 엄마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준 형 지형이와 애교쟁이 동생 지우까지 모두 함께 스마일~.

개구쟁이 지민이네 가족.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아빠와 엄마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준 형 지형이와 애교쟁이 동생 지우까지 모두 함께 스마일~.

완치 이후에도 재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소아암은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만성질환이자 온 가족이 함께 이겨내야 하는 가족 질환이다. 치료비 부담도 크지만 간병을 위해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형제자매들도 환자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도맡는다. 14세 이전에 발병하는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들의 평균 치료 기간은 5년. 이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재발 위험 때문에 가족 나들이나 해외여행은 꿈조차 꾸기 힘들다. 동그란 눈망울이 귀여운 열한 살 소녀 하은이네 가족 역시 하은이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여행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012년 8월 발병 이후 1년 6개월의 치료 기간이 끝나고 유지 기간을 보내고 있던 중 이번 여행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 하은이가 아팠을 때만 해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정말 암담하기만 했는데, 힘든 과정을 지나고 나니 이런 시간이 오네요. 잘 이겨내준 하은이를 축하해주는 것 같아요.”

1 올레 코스 안내 표시인 파란색과 다홍색 리본이 코스 곳곳에서 여행자들을 맞는다. 2 다케오 신사와 다케오 녹나무를 가리키는 표지판. 한국어가 쓰여 있어 한국인 방문객들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3 신사에서 다케오 녹나무로 향하는 오솔길.

1 올레 코스 안내 표시인 파란색과 다홍색 리본이 코스 곳곳에서 여행자들을 맞는다. 2 다케오 신사와 다케오 녹나무를 가리키는 표지판. 한국어가 쓰여 있어 한국인 방문객들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3 신사에서 다케오 녹나무로 향하는 오솔길.

앞서 걸어가는 어린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의 눈에 슬며시 눈물이 비쳤다. 작은 몸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준 딸이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날, 햇볕이 쏟아지는 날씨에 힘들 법도 한데 도현이, 준현이 두 개구쟁이 녀석은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다운증후군과 백혈병이라는 이중 장애를 앓고 있는 열한 살 동현이의 장난꾸러기 동생들이다. 아픈 형을 보살피느라 일찍 철이 든 두 아이는 멀리 떠나온 여행에서 제 나이를 찾았다. 형 동현이는 어느새 저만치 앞서 여행에서 만난 친구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한 걸음의 기적, 또 한 걸음의 희망
다케오 녹나무로 이어지는 초입, 다케오 신사에 다다랐다. 씩씩하게 오르막을 오른 아이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신사 왼쪽으로 난 오솔길이 녹나무로 가는 길이다. 한낮의 햇살이 눈부신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는 길은 마치 여행자가 가야 할 곳을 안내하는 것만 같다. 오솔길에 들어서자 오른편엔 대나무 숲이, 왼쪽엔 삼나무 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누가누가 더 빨리 하늘에 닿나 내기라도 하는 듯 곧게도 솟았다.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청신한 바람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시원하게 식어간다. 어린 마음에 남겨진 그간의 아픔들도 깨끗이 씻겨지길….

“대나무 숲이 참 시원하고 좋아요. 대학교에 들어와서 MT를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이렇게 오게 돼서 행복해요.”

올해 대학교 졸업반인 아로는 이번 여행 참가자들 중 맏언니다. 그늘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맑은 얼굴에는 13년 전 골수암 판정을 받은 뒤 지난한 투병 기간을 지나온 아픔이 숨겨져 있다. “앙드레 김 선생님처럼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아로는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며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열 살 때의 어느 날, 7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던 아로가 성인이 돼 이 길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 희망은 또 한 번의 싹을 틔운다.

숲을 지나 마침내 다케오 녹나무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파트 6층 높이 정도 되는 거대한 할아버지 나무 앞에서 “와~”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이곳에서 3천 년을 버텨왔다니 신령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사가 현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옆 도시 나가사키와 달리 이 일대가 전쟁의 참화를 피해간 것은 녹나무의 신덕이라 생각한단다.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꼬. 가만히 보니 속이 텅텅 비었다. 오래전 벼락이 떨어져 생긴 구멍이란다. 수천 년의 풍파를 견뎌낸 힘은 어쩌면 비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두 팔을 펼치고 한껏 기를 받았다.

4 열한 살 하은이네 가족. 비행기를 타고 가족과 함께 여행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하은이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5 쌍둥이 정인·정윤 자매. 3분 먼저 태어난 정인이는 아픈 동생을 돌보는 의젓한 언니이자 둘도 없는 친구다. 6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거는 ‘에마’에는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말들이 적혀 있다.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7 웃는 모습이 예뻐 여행 내내 ‘소녀시대’로 통했던 다슬과 아로 자매.

4 열한 살 하은이네 가족. 비행기를 타고 가족과 함께 여행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하은이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5 쌍둥이 정인·정윤 자매. 3분 먼저 태어난 정인이는 아픈 동생을 돌보는 의젓한 언니이자 둘도 없는 친구다. 6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거는 ‘에마’에는 아이들의 건강을 비는 말들이 적혀 있다.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7 웃는 모습이 예뻐 여행 내내 ‘소녀시대’로 통했던 다슬과 아로 자매.

전통 료칸에서 여행의 마무리
다케오 코스의 종점은 바로 다케오 온천이다. 1천3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케오 온천은 알칼리성 온천으로 피로 해소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 올레길을 걸었으니 마지막으로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가라는 재치 있는 발상이다. 다케오 온천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온천 마을이 있는데, 일본 3대 미인탕으로 유명한 우레시노 온천이다.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우레시노 강가에 위치한 전통 료칸 ‘와라쿠엔’에 짐을 풀었다. 왜 미인 온천인고 하니 온천수에 함유된 나트륨 성분이 질병 치료는 물론 부드럽고 윤이 나는 피부를 되찾아준단다. 뜨끈한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낮 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용감한 가족들과 함께한 행복한 여행이 저물어간다.

Tip 규슈 다케오 올레길 (14.5km, 예상 소요시간 4~5시간)
●일반 코스(B코스) 다케오 온천 역(시작점)→시라이와 운동공원→기묘지(절)→ A·B 코스 분기점→ A·B 코스 합류점→다케오시 문화회관→다케오 신사 녹나무→다케오 고교 앞→사쿠라야마 공원 입구→다케오 온천 로몬(도착점)
●상급자 코스(A코스) 는 A·B 코스 분기점에서 반딧불이 연못을 지나 산악도로를 타고 산 정상에 올랐다 코스 합류점으로 돌아온다.
●여행의 시작점인 다케오 온천 역까지 후쿠오카 공항에서는 JR전철(특급)로 70분, 사가 공항에서는 사가 역 버스센터까지 버스로 40분 이동한 다음 JR전철로 40분 걸린다. 티웨이항공이 인천에서 사가 공항을 주 3일, 인천에서 후쿠오카 공항을
매일 취항한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소영(프리랜서), 노정연 ■취재 협조 / 티웨이항공, 사가관광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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