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여정지→ 사이판

콩콩이는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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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발비큐야, 우리 수영하러 가자”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곳,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좋은 곳이라는 데가 있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그곳이 바로 그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내게 그런 곳이란 모든 곳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이란 없으니까. 더 편하고 덜 편한 곳이 있을 뿐. 그런데 여름이 가까이 오면서 사람들은 알파벳 세 글자를 말했다. 가면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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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아이들을 데려가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 난, 그 소문 때문인지 많은 부모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곳이라는 것은 출국장에서 알 수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이 없는 사람은 탑승권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그곳의 어른들은 모두 아이를 동반한 것 같았다. 아이는 정말 모두 아이여서 초등학교 고학년도 찾아볼 수 없는 놀이터와 같은 풍경이었다. 네 시간을 날아 도착해 사이판 공항 입국장에 쏟아진 탑승객 중에 아이가 없는 승객은 서너 커플이 전부인 듯했다. 날씨 좋고 하늘, 물 빛깔 모두 좋고 멀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는 모두 모아놨다는 것이 PIC 사이판에 부모라는 사람들이 애정을 갖는 이유라고 했다. 사실, 그건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호감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였다. 그런 그들이 며칠 동안 갖게 될 즐겁지만은 않을 일정을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이 눈에 보여 내가 다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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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터미널 같은 공항을 지나자 강렬한 햇빛이 땅바닥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모두 PIC에 가는 것 같았는데. PIC 때문에 사이판 입국 수속 줄에 서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PIC에서 보낸 차를 타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콩콩이는 절대로 쉬지 않는 그 작은 입을 계속 움직이며 그들의 행로를 물었다. 그러게. 엄마도 궁금하다고. 버스라면 울다가도 그치는 콩콩이에게 문이 여닫이로 열리며 에어컨이 백화점처럼 나오는 PIC 버스는 신나는 여행을 알리는 팡파르 같은 것이었다. “엄마 여기 정말 좋다.” 말장난에 물이 오른 39개월의 아이는 ‘피아이씨’에 사과씨, 살구씨, 포도씨, 수박씨를 바꿔 넣어가며 킬킬거렸다. 과장된 엄마의 반응이 있어야 더욱 재미있는 것인데, 엄마도 사람이라는 것만 확인시키고 놀이로 시작해 결국 아이가 야단을 맞으며 끝이 났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10여 분. 사이판은 아이에게 제일 좋은 여행지라는 말에 이끌려 아무 정보도 없이 온 여행자에게도 강렬한 첫인상을 전했다. 날씨가 눈부시고 막힌 곳 없이 트여 있었다. 태평양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입이 가로로 길어졌다.

드디어 아이들의 천국에 입성
퍼시픽 아일랜드 클럽. 버스에서 내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로비에까지 들려왔다. 콩콩이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기내식도 먹지 않고 비행기에서 숙면을 취하고 내려 배터리가 바닥까지 충전된 상태였다. 물론 주스 하나 먹는 것으로 점심을 때워 엄마는 애가 탔지만, 애는 아랑곳없이 뭐를 입 앞으로 가져가도 “뒀다 먹을래. 나중에. 엄마가 가지고 있어. 가방에 넣어놔” 등의 대답으로 엄마의 도끼눈을 피하고 있었다. 안 먹는다고 하면 혼난다고 했더니 콩콩이가 생각해낸 방책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안 먹는 것이었지만. 영원히 안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깐 안 먹겠다는 것, 조금 이따가 먹겠다는 것이었으므로 혼을 낼 수 없어 그러지는 않았다.

콩콩이는 체크인을 하는 곁에서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팔에 끼우고 뛰어다니는 또래를 따라 가고 싶어 침이 말랐다. 한국인의 체크인을 돕는 ‘애리’는 설명할 게 많고 또 많았다. 카드 한 장으로 리조트 안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골드 카드, 있는 내내 따뜻하고 보송보송하게 말린 수건을 사용하도록 교환할 수 있는 타월 카드, 아이를 위한 시계 교환권, 아이를 위한 스티커 북 교환권, 아이가 가면 준다는 백팩 교환권, 리조트 지도, 사이판 지도, 액티비티 시간표, 선택 관광 시간표, 면세점 셔틀버스 시간표 등등 받아야 할 건 또 얼마나 많은지 콩콩이의 입이 오리에서 펠리컨이 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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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서비스에 최적화된 시스템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침대 하나에 안전 가드를 장착했고 수영장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있는 식당 등을 팁으로 알려주는 애리는 신입생만 평생 받아온 기숙사 사감 같았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감이 있다면 말이다. 희부옇게 동이 틀 때 공항으로 끌려 나와 주먹밥 하나, 주스 한 팩 먹고 벌써 오후 4시가 된 콩콩이. 아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물놀이였지만 아이에게 가장 급한 것은 식사였다. 나는 꾀도 뭣도 아닌 수를 쓴다고 수영복 없이 나가면 아이가 포기하고 밥을 먹어줄 거라 생각했다. “뭐가 뭐가 있는지 한 번 보고 오자. 어떤 수영복을 입을지, 오리가 좋을지 상어가 좋을지도 한 번 보고. 그리고 힘이 나야 물에 들어가서 떠내려가지 않으니까 밥도 먹고. 어때, 좋지?”

이때부터 콩콩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아기들이 놀고 있지만 막상 꿈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유아용 풀을 보자 수영복을 입고 나오지 않은 자신에게 골이 난 것 같았다. 바로 그 앞에 정해진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나 식사를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식당 ‘갤리’가 있다는 것은 엄마에게도 딸에게도 비극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대치 상태가 시작됐다. 아이는 삐죽삐죽으로 시작된 엉엉 통곡 소리를 내며 식당에 들어오지 않고 땡볕에 서서 울었다. 밥을 먹으면 수영복을 입고 나올 수 있다는 말은 아이에게 들리지도 않은 듯했다. “그럼 콩콩이는 거기서 울어. 배고픈 엄마는 먼저 밥을 먹을게” 하면서 돌아서도 예전의 아이처럼 뒤따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서 있을 때의 시간은 정말 더디 간다. 1시간이 지난 것 같은 3분. “그럼 우리 아이스크림 먹고 수영하는 건 어때? 시원하고 달콤하고 정말 좋겠다.” 절충안. 콩콩이는 분하고 원통한 아이의 얼굴로 좀 더 울었다. 뭐라도 먹여야 하는 게 옳은 거 아닐까? 먹고 먹이는 것으로 이렇게 끼니때마다 모녀간에 갈등이 생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주문한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왔다. 콩콩이 입장에서는 치사하게도 샌드위치를 먹어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선선하고 고맙게도 양손에 음식 2개를 나눠 들고 ‘딜’하지 않았는데도 콩콩이는 샌드위치 반을 뚝딱 먹어치우고는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안타까워하며 탐닉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이윽고 물놀이 복장을 본격적으로 갖춰입고 나왔을 때 아이의 동공을 확장시켰던 그 유아용 풀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5시가 종료 시간이라고 했다. 하긴 유아용이니까. 만약 PIC에 유아용 풀 하나, 어른용 메인 풀 하나가 있었다면 큰일 날 상황이었지만 언뜻 지도를 봐도 아기자기하게 표시된 파란색 수영장이 많았다. 콩콩이가 밤 수영의 묘미를 알게된 날도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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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리조트에서 이른 식사를 끝내고 땅거미 진 수영장에서 노는 일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물 아래는 시원하나 물 위는 남태평양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수영장이 아니었다. 물의 안팎이 모두 시원한, 사람도 별로 없고 불빛 별빛이 고루 빛나는 낭만적인 풍경이 거기 있었다. 콩콩이는 자기가 골라 입고 간 카무플라주 핑크 수영복-흡사 레슬링 선수의 것처럼 보이는-위에 상어 지느러미가 달린 구명조끼를 입고 밤도, 물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놀고 싶었으나 놀 수 없었던 오후 잠깐의 설움은 기억에조차 없는 것 같았다. 클럽메이트들은 식사를 끝내고 왔는지 더욱 활기 찬 목소리로 수구를 하자고 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쪽으로 몰려가 시끌벅적한 경기가 시작되면서 리조트의 밤에 불을 지폈다.

수영도 했고, 바에서 직접 오렌지주스를 주문해 먹기도 했으며 밴드 앞에서 물개박수도 쳤던 콩콩이에게 남은 일은 먹는 것 다음으로 싫은, 자는 것이었다. “엄마 왜 밤이 됐어요?” “어, 해님이 다른 나라 비춰주러 갔으니까.” “왜 벌써 갔어?” “약속 시간이라서.” “근데 엄마, 왜 밤에는 자야 해요?” “밤에 푹 자라고 깜깜해지는 건데 그때 안 자면 언제 자?” “그니까 왜 자야 하냐고요?” “아침이 되면 힘차게 일어나 신나게 또 놀아야 하는데 잠을 자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으니까!” “나는 안 자도 힘이 많을 것 같은데.” “아냐, 그런 사람은 없어. 잠을 자지 않으면 아침에 막 몸이 아파. 늦게 자면 아침에 힘들어서 못 일어나잖아. 그건 알지?” “난 모르겠어. 그냥 일어났는데 늦게 일어나 바쁘고 엄마가 화가 나는 거야. 그러면 늦게 일어난 거야.” 존댓말로 질문을 하는 건 자신도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할 때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는데 도대체 39개월 된 아이와의 대화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태로 엄마만 나쁜 사람이 되고 끝난 이야기였다. 그래도 일찍 자야 하고 재워야 했다. 일찍이나 자면서 저렇게 말하면 엄마는 분하지도 않았다. 선심 쓰듯 일찍 자야 9시 반. 그런 날도 한 달에 며칠 안 되는 꼬마가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아이가 이렇게 맹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이라도 받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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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숙녀의 새 여행 친구
‘참새가 방앗간을….’ 참새도 방앗간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죽은 비유다. ‘콩콩이가 슈퍼마켓을 그냥 지나치랴’가 나한테는 훨씬 와 닿는다. PIC 사이판의 상점인 부티키는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사실은 엄마에게 더 방앗간이었다. 한국에서만 유독 비싸게 팔리는 래시가드 브랜드인 ‘록시’가 아주 합리적인 가격표를 달고 다양하게 구비돼 있었고 ‘빌라봉’ 등의 리조트웨어도 꽤 있었다. 휴가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구성이었다. 다양한 맥주와 안줏거리, 기념품과 장난감이 빼곡했다. 콩콩이는 자는 일 말고는 남아 있지 않는 밤을 탓하며 걷다가 신세계를 맞닥뜨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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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아둔 오래된 바비 인형들을 보며 ‘날씬한 언니’라 칭하는 콩콩이의 눈에 박스 안에 담긴 새 바비는 날씬한 언니 이상이었다. 꼭 사야 한다고, 사고 싶다고, 계산하겠다고 한다. 인형이 정말 많으니 그 인형을 왜 사야 하는지 엄마, 아빠에게 말해보라고, 그 얘기를 듣고 사줄지 말지 생각하겠다 했더니 아이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통만 한 인형 박스를 이미 안고 말하기 시작했다. “음, 이 인형이 예쁘니까. 예뻐서 가지고 싶으니까.” 콩콩이 아빠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지. 이유가 뭐가 있겠어. 예뻐서 가지고 싶은 것 말고. 뭔가 밀리는 기분이 들어 내가 말했다. “예뻐서 가지고 싶어 산 인형이 이미 집에 아주 많아. 이 인형을 또 사야 할 이유를 엄마는 모르겠어.” “아, 엄마 그거는 말야, 이 발레 하는 언니는 없어요. 그니까 사.” 애 아빠는 더 크게 웃었고 아이는 유쾌하게 ‘득템’했다. 나는 전략이나 전술, 뭐든 바꾸지 않고는 분해서 살 수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여행 내내 허리를 돌리면 플레어스커트가 초미니 스커트로 변하는 바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보고 사람들은 “오 나이스 바~ㄹ비” 정도로 늘 아는 척했는데, 그래서인지 둘째 날부터 콩콩이는 발레 하는 바비 인형을 ‘바~ㄹ비큐’라고 불렀다. 웃기려는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들렸는지 그렇게 불렀다. “발비큐야 어디 있니? 우리 수영하러 가자.” 내 딸의 귀가 이상한지 머리가 이상한지 그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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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밤바다
카드 한 장을 들고 리조트 식당을 순회하며 하는 식사는 내내 즐거웠다. 콩콩이는 특히 아침을 좋아했다. 마냥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 뷔페는 대부분의 아이와 그 아이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부모들이 모두 좋아하는 식사 형태다. 콩콩이는 메인 레스토랑인 ‘마젤란’ 뷔페를 제일 좋아했다. 시리얼과 통성명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직접 핸들을 돌려 색색의 시리얼을 담고 우유도 따라 들고 와 먹는 그 아침을 아이는 황홀해했다. 요즘 콩콩이의 꿈은 ‘다섯 살’, 장래희망은 ‘열 살 언니’. 그런 아이에게 엄마의 도움 없이 어디에 올라가거나 안기지 않고 혼자 한다는 것은 짜릿한 경험인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시리얼을 가져다 먹었다. 먹는 걸 싫어하는 애가 아니었다. 칼도, 안테나도, 올라프의 팔도 되는 기다란 빵 그리시니도 아이가 정말 좋아한 음식. 아침에 하나 들고 나와 정오까지 먹고 놀았다. 부러지지만 않으면 그만한 장난감도 없었다.

시사이드그릴에서의 디너도 좋았다. 애피타이저가 특히 훌륭했다. 테이블에 즐겁게 앉아 새로 나올 음식들을 기대하며 먹을 수 있는 나이의 아이가 있다면 뷔페보다는 더 좋은 선택일 것 같았다. 시사이드그릴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마주하는 밤바다의 풍광도 PIC 사이판에서의 잊지 못할 한 장면이다. 공기 좋은 곳의 별이 얼마나 많고, 그 많은 별이 얼마나 기막히게 반짝이는지 익히 봐왔지만 달이 이렇게 밝게 느껴진 곳은 처음이었다. 꼭 떼어다 안경 닦는 천 같은 걸로 윤을 내서 다시 붙여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밤이라 인기가 시들해진 선베드에 앉아 달과 별을 보는 밤은 좋았다. 콩콩이도 서울의 달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엄마 달이 빤짝빤짝해” 한다. 그다음에 아이가 트윙클트윙클을 부르기 시작한 건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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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여행하기란
PIC 사이판은 오전에 시간을 잘 짜면 더욱 알차게 놀 수 있었다. 낮잠 시간이 있는 아이가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전에 유아풀, 점심 먹여 자기 직전에 늘쩡거리는 유수풀, 재워서 해가 지기 전에 비치, 저녁 먹여 그래도 또 놀고 싶다면 메인 풀. 이 일정이 햇빛, 물 등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했을 때 제일 좋다고 생각하게 된 건 떠나기 전날이었다. 이어지는 시행착오는 아이가 깨어나면 할 게 없는, 햇볕 가장 뜨거울 때 비치에서 모래놀이, 밤에는 탈 수 없는 슬라이드 등으로 후회를 남겼다. 산책만 하려다가 아이는 모래만 보면 주저앉았고, 졸음이 턱에까지 내려와 반은 자면서도 스릴 만점의 슬라이드를 타려고 했다. 전지훈련을 온 것도 아닌데 70kg짜리 늘쩡늘쩡 여유 덩어리인 콩콩이 아빠는 그 일정을 묵묵히 따라주었다. 밥 일정, 잠 일정이 꼬이는 것을 목격해야 하는 엄마는 답답증이 일었지만 그래도 따라주었다. 그대로.

콩콩이 아빠는 여행 중에 뭔가를 못하게 할 거면 여행을 다니지 말라고 말했다. 아이도 일상이 아니니, 여행을 왔으니 기분이라는 것이 있을 테고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는데 부모가 불편하다고 혹은 귀찮다고 나무라고 야단을 칠 거면 왜 데리고 나오냐는 것이었다. 위험하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하고 싶다는 대로, 하는 대로 지켜만 주라는 권고였다. 만지지 마, 하지 마, 뛰지 마 할 때 정말 애가 위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혀서 그런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고 더 얌전하기를 바라서, 더 편안한 여행이기를 바라서, 남의 눈에 나지 않기를 바라서 하는 행동은 없는지 보라고 했다. 그리고 애도 인격이 있는데 아무리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사람들 앞에서 야단맞고, 울게 하지 말라고도 했다. 못 알아들을 것 같아도 알아듣게 설득하고 수긍하게 하라고 했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익스큐즈’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애 키우는 데 이해할 테지라고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나야말로 여행 와서 하지 말라 소리만 듣는 아내의 인격에 대해서도 생각해달라고 했다. 그는 달게 웃었고 나는 쓰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알지만 하기는 어려운 말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럴 때 “그렇겠네” 하는 건 내 남편이 아니다. “어려워도, 어려우니까 하라는 얘기야.” 다시, 아이랑 둘이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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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바캉스, 잘 놀았다
PIC가 아이를 위한 제일 좋은 선택이라는 것은 일정을 어떻게 구성해 움직이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다 들어줄 수 있게 해두었기 때문인 듯했다.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이고 지고 간 모래놀이, 물총 세트, 구명조끼, 퍼들 점퍼, 튜브, 비치볼 등은 거기에도 있었다. 준비성 철저하고 예쁘고 좋은 것 선호하는 한국 엄마들은 모두 아이만의 것으로 풀 세팅해서 그곳에 왔지만, 수영복조차도 PIC 로고가 있는 옷을 입혀 모조리 그곳의 것들만으로도 하루를 짧게 즐기는 외국 엄마들을 보면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신이 번쩍 나는 슬라이드가 타고 싶으면 액티비티 풀의 워터슬라이드를, 서핑을 하고 싶으면 포인트 브레이크를 타면 됐고, 폭포 속으로 튜브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고, 카약을 타고 파도를 지칠 수도 있고, 가족이 모두 스노클링을 할 수도 있다. 이름처럼 게으르게 흘러 다니며 유람을 할 수도 있는 레이지 리버도 즐길 만했다. 3박이든 4박이든 종일 물놀이만 해도 일정이 짧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아이들이 직접 가져다 먹게 만들어놓은 식당도, 원하면 도시락처럼 만들어주는 식당도 그곳에는 있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 있어볼 수가 있을까 싶게 러시아 여행객이 많았는데, 그들은 ‘갤리’의 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밥을 약속한 듯 모두 먹어 평생 그것을 먹고 살아온 한국 아줌마를 놀라게 했다. 하물며 이 메뉴까지 탄탄한 도시락에 담아줘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비치에 나와 맥주와 함께 먹곤 했다.

콩콩이가 커트라인에 걸려 경험해보지 못한 키즈 클럽에 대한 만족도도 매우 높은 듯했다. 아이들은 별별 액티비티를 클럽메이트들과 함께 경험하며 그곳을 즐겼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꼬마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클럽메이트들은 아이의 자존감이 한 뼘은 커지도록 영어로 말을 걸고 영어로 놀아준다. PIC의 마스코트인 시헤키가 액티비티를 즐기는 일러스트 패널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콩콩이도 그 자세를 취하며 하고 싶어 했다. 남국의 펭귄이라는 역설 자체인 시헤키는 디즈니랜드 식당의 미키처럼 종종 나타나곤 했는데 인기는 미키의 뺨을 치고도 남았다. 정작 콩콩이는 만져보지도 못했다. 무섭단다. 아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또 고학년이라면 또 그런대로 빈틈없이 놀기에 PIC는 적절해 보였다.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시설이나 고도화된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놀았다’라는 느낌을 제대로 주기에는 충분했다.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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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아이에게 좋은 여행지를 자주 묻곤 한다. 그건 한창 여배우들 인터뷰를 하며 지낼 때 “만나보니 누가 제일 예쁘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내게 예쁜 배우가 당신에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내가 내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한 여행지가 당신의 아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즉답은 피한다. 아니면 예닐곱 곳을 말하거나. 여행이야말로 취향의 반영이다. 예산이라는 중대한 문제도 있으니 따져보면 하등 무관한 연예인 얘기하고는 아예 급이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아이에게 좋은 여행지를 말할 수는 있다. 아이가 물놀이를 좋아하고 무지 큰돈 안 써도 되고 약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오히려 신나는 사람이라면. 그런 조건이라면 대답할 곳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랑 가는 여행지는 대체로 다 좋다. 그리고 얼마간 힘들다. 그건 여행지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간 부모 된 자의 태생적 괴로움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이란 것이 참 간사해서 목젖이 다 보이도록 넘어가게 웃는 아이를 보면 순간 물거품에 씻겨나가고 만다. 부모라는 것은 참 이상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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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PIC 사이판
서태평양 사이판 섬의 남단부 산 안토니오 비치에 자리한 리조트. 대형 워터파크로 불려도 좋을 각종 풀은 물론 웨딩 채플까지 있는 다채로운 곳이다. 전문 스포츠 강사인 클럽메이트들이 테니스, 양궁, 스쿠버, 다이빙, 윈드서핑, 골프 등 70여 가지 스포츠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것으로도 큰 인기를 모으는 곳. PIC는 이용객이 선택한 객실과 식사의 종류에 따라 럭셔리, 플래티넘, 골드, 실버 등 각기 다른 멤버십 카드를 제공한다. 리조트 체크인시 받는 PIC 카드는 멤버십 카드 한 장으로 객실, 각국의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리조트 내 모든 액티비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문의 www.pic.co.kr

Profile 콩콩이는…
2011년생. 말 잘하고 밥 잘 안 먹는 여자아이. 잡지사 편집장 엄마에게서 태어난 덕과 탓에 생후 6개월부터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시작해 현지의 시차와 상관없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는 여행형 어린이로 성장 중.

콩콩이 엄마는…
「GQ」, 「W」의 피처 디렉터, 「Off」, 「magazine C」, 「RAUME」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 끼의 식사가 지닌 의미와 그 사이의 감정들을 두루 쓴 「더 테이블」을 펴내기도 했다. 이따금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나왔지만 지금은 잡지 「ojo」와 「magazine K」의 편집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글&사진 / 조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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