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 ‘리셋’ 여행

베트남 나트랑 ‘리셋’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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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들여 가장 투자 효과가 좋은 것이 여행’이라는 박완서 작가의 말에 공감한 휴가였다니 그 만족도가 얼마나 높을지 짐작이 간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엉킨 몸과 마음을 리셋하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유인경 기자의 베트남 여행기를 싣는다.

에바손 아나만다라의 인피니티풀

에바손 아나만다라의 인피니티풀

“환상적이에요! 꼭 가보세요.”
어디로 휴가를 갈지 고민이라고 하자 한국 마케팅학회 회장인 홍성태 교수(한양대 경영학부)가 베트남 나트랑의 리조트를 적극 추천했다. 혼자 가면 멋지고, 둘이 가면 근사하고, 가족끼리면 더욱 행복해질 거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홍 교수처럼 트렌드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분은 드문지라 그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 그리고 넉넉한 바다
이번 휴가의 컨셉트는 ‘여유와 평화’였다. 그동안은 ‘휴가철이니 무조건 떠나자’, ‘어떤 곳이 뜬다더라’ 등의 말만 듣고 북적대는 곳을 일부러(?) 찾거나 모처럼 외국에 왔다고 필사적으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니느라 휴가가 아니라 행군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아무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그저 몸과 마음, 심지어 뇌까지도 쉬게 해주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베트남 나트랑의 에바손 아나만다라(Evason Ana Mandara Nha Trang)와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Six Senses Ninh Van Bay)다. 에바손과 닌반베이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가 가깝고 느낌이 전혀 다른 곳이라기에 두 곳 다 체험하기로 했다.

나트랑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나짱’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19세기부터 프랑스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풍부한 문화유산과 각종 해양 스포츠, 싱싱한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한 곳이다. 한때 우리나라 백마부대의 주둔지이자 소설과 TV 드라마로 유명한 ‘머나먼 쏭바강’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육감을 뜻하는 ‘식스센스’는 세계적인 리조트 체인의 명칭으로 자연 친화적인 휴양지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다. 베트남 나트랑뿐만이 아니라 태국, 오만, 스페인, 요르단 등지에 식스센스 하이드어웨이, 애티튜드, 데스티네이션 등 각 리조트 성격별로 브랜드를 나눠 운영하고 있다. 각각 특색이 있지만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사랑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혁신적이고 계몽적인 경험을 약속하는 것’이 식스센스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리조트들의 모토란다.

나트랑까지는 서울에서 직항 노선도 있고 성수기에는 전세기가 뜬다. 날짜가 맞지 않는 경우 호치민에서 내려 다시 국내선을 타고 나트랑까지 가면 된다. 공항에서 에바손 아나만다라 리조트까지는 자동차로 40여 분 걸린다. 나트랑 공항에 내리니 에바손 아나만다라 식스센스의 직원이 전용 차량을 갖고 마중 나와 있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수건과 면 주머니로 포장한 차가운 생수병을 건네주는 것으로 서비스가 시작된다. 나트랑은 현재 베트남 관광 붐을 타고 곳곳에 리조트 시설이 건설 중이다.

베트남 나트랑 ‘리셋’ 여행

베트남 나트랑 ‘리셋’ 여행

‘아나만다라’는 ‘손님을 위한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천연 목재와 등나무로 장식된, 과거 베트남 마을을 상기시키는 이미지로 꾸몄다. 에바손 리조트에는 74개의 객실이 있다. 가든 뷰, 수페리어 시 뷰, 리덕스 비치프론트 빌라 등 전망과 인원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천연 목재를 중심으로 돌, 꽃 등 자연 소재로만 인테리어한 숙소들은 영화나 화보에서 보던 모습이다. 기둥 사이로 하얀 캐노피가 드리워진 높은 침대, 동남아 특유의 수공예 솜씨가 돋보이는 소품들, 뒷마당에 자리 잡은 돌로 만들어진 욕조는 푸근하고 쾌적하다.

테라스에는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숙소 앞 해변에는 나무 사이에 해먹이 설치돼 있어 느긋하게 쉴 수 있다. 가는 길마다 남국의 나무, 색색의 꽃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피어 있고, 곳곳에 조성된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만개했다. 떨어진 꽃잎도 일부러 뿌린 듯 아름답다. 종업원이 2백72명이라는데,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꽃을 가꾸고 손님들의 요구에 응한다.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의 비치빌라 침실에서 바라본 전경.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의 비치빌라 침실에서 바라본 전경.

스트레스 제로, 천국 체험
천천히 곳곳을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극정성으로 가꾼 시설들을 구경한 뒤 파빌리온이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트랑은 물론 베트남에서 매우 유명한 셰프가 솜씨를 자랑하는 이 식당은 모든 음식이 정말 맛있다.

식전 빵부터 음료까지 훌륭하다. 비치 레스토랑, 풀 바의 음식들도 수준급인데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다. 베트남은 포란 쌀국수가 유명하지만 레스토랑에는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안 요리뿐만이 아니라 스테이크 등 메뉴가 다양하다. 푸짐한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 풀장에서 밤 수영을 즐겼다. 밤에 바다 수영은 좀 힘들 것 같아 풀장으로 갔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어 민망한 수영복 차림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달밤에 쏟아지는 별과 달빛으로 빛나는 풀장의 물을 보며 수영하는 척만 했다.

다음날 오전엔 예약된 스파를 받았다. 비가 오는 등 궂은 날에는 실내에서 받아야 하지만, 날씨가 좋으면 커튼이 드리워진 야외가 더 좋다. 코코넛 밀림이 우거진 해변에 위치한 스파는 감미롭게 부는 바람, 연꽃과 아로마 오일의 감미로운 향, 테라피스트의 부드러운 손놀림 등이 어우러져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 마사지 가격 역시 몇 만원 정도인데 시설과 수준은 특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마사지를 다 받으면 정자 같은 휴게실에서 연꽃잎 차와 말린 생강을 먹으며 숨을 돌린다.

바다가 보이는 야외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나트랑 시내 구경을 나갔다. 나트랑은 포나가르 사원, 대성당 등 유적지도 있고 재래시장에서 민속품을 살 수 있다. 세련된 카페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 바닷가의 포장마차 비슷한 야외 식당이 즐비하다. 나트랑에서는 제트스키, 스노클링 등 온갖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섬을 체험하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고 수영도 못하는 나는 바다 구경만 할 뿐이다.

자연 친화적인 리조트
오후엔 아쉬움을 남기고 에바손 아나만다라 리조트를 떠나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30여 분 그리고 보트를 타고 20여 분 걸린다. 이런 여정이 귀찮았는데 닌반베이 입구에 내리자마자 탄성과 함께 기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암벽을 기본으로 우뚝 솟은 산, 하염없이 이어지는 백사장, 야자나무 등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나무로 지어진 숙박시설들이 보인다. 식스센스 가운데 ‘하이드어웨이’로 분류되는 닌반베이 리조트는 ‘경험의 재정의’가 테마다. 지속 가능한(Sustainable), 토속적이며(Local), 오가닉하고(Organic), 건전하며(Wholesome), 동시에 계몽적이고(Learning), 영감을 주는(Inspiring), 즐거운(Fun) 체험(Experience)을 표방하는 느리게 사는 삶(Slow Life)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리조트 건물이나 인테리어, 소품까지도 가능한 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인공적 덧칠을 자제했다.

객실은 바닷가에 위치한 비치빌라, 암벽 사이에 자리 잡은 록 빌라, 언덕 꼭대기에 있는 힐탑 빌라, 스파를 강조한 스파스윗 빌라, 대가족이 즐기기에 적합한 프레지덴셜 빌라로 나뉘어 있다. 위치는 다르지만 대개 집 한 채에 풀과 마당이 딸린 것이 기본이다. 내가 선택한 비치빌라는 2층 구조로 아래층에는 침실과 욕실, 마당엔 풀이 있고 2층에는 단독 방과 거실에 따로 소파와 식탁이 있어 옹기종기 자면 6~8명 가족도 묵을 수 있다. 어느 곳 하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고, 베트남스러운데도 지극히 세련되고 우아하다. 단독주택처럼 구성돼 완벽히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또 방도 넓고 대부분 2, 3개여서 코를 심하게 고는 남편, 칭얼거리는 아기가 있어도 큰 불편이 없다.
이곳은 대부분 식자재를 자급자족한다. 오가닉 가든에서는 온갖 채소를 재배하고 직접 닭도 키워 가끔 꼬끼오~ 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바다에는 로브스터 양식장도 있고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이 매일 새벽에 식당으로 운반된다. 객실에 제공되는 물 또한 모두 현지에서 정화해 자체 조달한 생수로, 플라스틱이나 인공 포장재 등의 반입을 줄이고자 신경 썼다고 한다.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의 프레지덴셜 빌라.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의 프레지덴셜 빌라.

시계가 필요 없는 휴식, 행복한 체험
객실마다 자전거가 있어 이를 이용해 신록이 우거진 닌반베이 리조트 곳곳을 다닐 수 있다. 포장이 전혀 되지 않은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지역마다 다르게 심어진 나무들이 각각의 독특한 향을 낸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흩날리기도 하고 새소리도 들린다. 전혀 귀찮게 굴지도 않고 아주 부드럽게 자연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그동안 도시에서 회색 콘크리트와 전자제품 때문에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렸던 식스센스, 즉 온몸의 감각들이 절로 살아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TV나 컴퓨터가 안 되는 곳도 아니다. TV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컴퓨터로 한국 드라마를 다운받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그런 인공적인 것, 부자연스러운 것, 건강에 나쁜 것들이 절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고, 침대나 비치베드에 누워 빈둥거리거나 책을 읽고, 아주 오랜만에 나뭇잎들의 모양을 살피는데도 전혀 불안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물론 심심하면 온갖 해상 스포츠를, 그것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스노클링, 카약, 윈드서핑, 낚시 등을 취향대로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즐기고 싶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리조트의 중앙에 위치한 다이닝 더 베이 레스토랑은 객실에서 제법 걸어야 한다. 목조 건물에 나무 의자, 커다란 쿠션만으로 장식돼 있는데도 참 편안하다. 특히 해 지는 풍경이 정말 근사하다. 이 밖에 와인 동굴에서 즐기는 디너, 오가닉 가든에서 맛보는 웰빙 점심식사 등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또 닌반베이 식스센스 리조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스센스 스파와 요가 클래스도 있다.

생각해보니 이곳에서는 별로 시계를 보지 않았다. 눈이 떠지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하고, 더우면 풀이나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몸을 식히고, 머리가 너무 텅 빈 것 같으면 책을 꺼내 읽고, 어둠이 깊어지면 밤하늘을 보고…. 그러다 보니 엉킨 머릿속과 몸이 리셋된 것 같다.

리셋 비용은 제법 들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럭셔리 여행을 즐기면 그 정도는 들고 몰디브나 유럽의 풀빌라에 비하면 정말 겸손한 비용이다. 무엇보다 박완서 선생의 말씀처럼 돈 들여 가장 투자 효과가 좋은 것이 여행이란 말에 공감하면서 행복한 체험을 했다. 명품 백도 낡고, 시계를 수시로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여행의 추억은 영원히 남아 있고 그 어느 명약으로도 몸과 마음의 리셋은 힘들기 때문이다.

■글 / 유인경(경향신문 대중문화부 선임기자) ■사진 제공 / 식스센스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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